로큰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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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간략한 역사(1950년대 로큰롤)[1]
2.1. 발단
2.2. 로큰롤의 탄생
2.3. 전성기
2.4. 몰락
2.5. 부활
2.6. 몰락과 부활의 반복
2.7. 그 외


1. 개요[편집]


1950년대 미국 흑인에 의해 미국 남부에서 시작된 음악 장르이다. 이는 "록 음악"으로 발전해 지금까지 이른다.

로큰롤[2][3]은 주로 블루스컨트리, 가스펠아프리카 고유 템포와 혼합된 형태로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유행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이다. 로큰롤의 토대는 1930년대 컨트리와 1920년대 블루스 음반이었으나, 1950년대까지는 로큰롤이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로큰롤과 가장 근접한 음악은 리듬 앤 블루스가 있었다. 애팔래치아 민요가스펠의 영향을 받은 블루스 음악을 컨트리와 결합한 로커빌리는 초기의 로큰롤 양식이다.

"로큰롤(Rock and roll)"이라는 말은 현재까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뜻이 있는데, 그 쓰임은 비슷하다.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American Heritage Dictionary)과 메리엄 웹스터 사전(Merriam-Webster Dictionary) 모두 로큰롤을 "록 음악"의 동의어로 정의하고 있으나 올워드닷컴(Allwords.com)은 그 중 특히 1950년대의 록음악을 가리키고 있다. 워낙 광범위하여 록 음악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4] 구별을 두기 위해 본 문서에서는 올워드닷컴의 정의를 사용하기로 한다. 로큰롤이란 단어 자체는 "rocking and rolling"(배가 흔들리다)는 오래된 관용구에서 유래한 것이며,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이 당시 기준으로 매우 격렬했기에 나온 표현이다.

1940년대 후반 ~ 1950년대 초반의 초기 로큰롤을 살펴보면 주로 피아노색소폰이 리드악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기타를 추가하거나 리드악기를 기타로 대체하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백비트가 두드러지는 부기우기 블루스 리듬을 기본으로 하며, 후기에는 스네어드럼이 거의 빠짐없이 포함되었다. 클래식 로큰롤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대의 일렉트릭 기타(리드 기타와 리듬 기타), 더블 베이스, (1950년대 중반 이후)베이스 기타, 드럼을 사용한다.

1950년대에 로큰롤은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전세계를 사로잡은 로큰롤의 엄청난 인기는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프라이멀 스크림의 멤버 바비 길레스피(Bobby Gillespie)는 "척 베리가 <Hail, hail, rock and roll, deliver me from the days of old>라는 가사를 들고 나왔는데[5], 정말 제목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척 베리는 로큰롤을 통해 범세계적인 영혼 해방의 물꼬를 텄다."라고 회고하였다.[6]

로큰롤은 단순한 음악양식을 넘어 영화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 라이프 스타일과 패션, 사고방식, 언어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로큰롤은 다양한 하위 장르를 만들어냈으나 초기의 백비트와 같은 특징을 가지지는 않는다. 현재는 이 하위 장르들을 통칭 "록 음악"이라 부른다.


2. 간략한 역사(1950년대 로큰롤)[7][편집]



2.1. 발단[편집]


1940년대 후반,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 가기 시작하고 대중음악은 여전히 재즈와 가벼운 스탠다드팝 위주로 점령당한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젊은 세대들은 평화가 찾아오고 점점 사회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하에 풍요로운 시대를 누리게 된다. 전시 체제가 청산되고 미국은 발전된 자본주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청년들의 급여도 향상되었고 이전시대와는 다른 금전적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찾기 시작했고 이는 새로운 트렌드의 추구로 나타난다.

복잡하고 어려웠던 재즈 음악 외에도 스탠더드 팝(프랭크 시나트라, 빙 크로스비, 냇 킹 콜, 페리 코모등)은 사실 철저히 성인취향의 음악이었고, 10대 젊은이들에게는 좀 더 자극적이고 단순하며 경쾌한 가사의 음악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도회지의 젊은이들은 흑인의 리듬 앤 블루스하드 밥 음악을 들었다. 이는 폭력교실(원제:The Blackboard Jungle), The Wild One을 비롯한 1950년대 젊은이들의 생활을 그린 영화나 소설에 잘 묘사되어있다.

1950년대 중반쯤 되면 미국 흑인 음악은 이미 미국의 10대들에게 퍼질만큼 퍼진 상태였다. 이미 젊은 세대는 새로운 음악의 출현을 목말라 하고 있었고 레코드회사도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10대들에게 자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지만 기성세대의 눈에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가수를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생각보다 보수적인 청교도 국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1950년대 초반, 컨트리 가수이자 지역 DJ였던 빌 헤일리는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직접 실행에 옮겼다. 당대 흑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리듬 앤 블루스 곡에서 저속한 속어나 과격하고 음울한 연주를 제거하고 직접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8]

빌 헤일리는 1954년 재즈/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인 빅 조 터너의 "Shake, Rattle and Roll"을 커버하여 발표했는데 이게 대박이 터진다. 그리고 이듬해 "Rock around the clock"이 영화 폭력교실에 삽입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전국의 폭주족들 가죽재킷에 빌 헤일리 앤 더 히즈 코멧츠(Bill Haley & His Comets)의 이름이 새겨지게 되고, 영화관에서는 일대 소란이 일어나고, 10대 불량배들은 이 노래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참 아이러니했던 것이, 이미 빌 헤일리의 나이는 30대에다가, 부인도 있고 아이도 키우는 유부남이었다. 새로운 음악에 목말라하던 10대 청소년들이 기성세대 아저씨의 노래에 열광한 것(...)


2.2. 로큰롤의 탄생[편집]


로큰롤 이전의 시대는 재즈블루스가 대중음악인 시대였다. 하지만 복잡해지고 어려워진 재즈는 대중의 외면[9]을 받았으며 블루스는 현대 모든 대중음악의 조상격으로 재즈와 리듬 앤 블루스 더 나아가 록큰롤에 이르기까지 기본 베이스 음악으로써 불쏘시게 역할을 하였다.

블루스에서 발전한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은 우후죽순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등장시키기에 이른다. 록 기타주법을 최초로 완성시킨 척 베리라든가, 반항과 불량과 기괴함을 최초로 시도했던 리틀 리처드라든가, "폼 나는" 남자 인생을 주로 소재로 삼았던 칼 퍼킨스, 무법자 이미지로 유명했던 쟈니 캐쉬, 로큰롤 피아니스트로서 훌륭한 주법을 완성해낸 제리 리 루이스[10], 멤피스의 무서운 아이들 브루넷츠(후에 조니 브루넷 트리오로 이어지는)등이 모두 1954년~1955년 사이에 등장한 뮤지션들이다.

이 시기에는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이 서서히 로커빌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커빌리의 상대적으로 촌스러운 이미지[11]를 탈피하기 위해 당시 10대들 사이에서 널리 쓰인 속어인 "록 앤 롤"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로큰롤은 로커빌리에서 분화되어 나오기 시작한다.

시간상으로 따져보자면 빌 헤일리가 새로운 리듬 앤 블루스를 1950년대 전반 내내 선보여 오다가 1954년 전국적인 붐을 일으키게 되고, 1955년 척 베리가 기타주법을 선보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리틀 리처드가 격동적인 피아노 주법을 도입한다.

이때쯤 이제 신기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데, "흑인처럼 노래하는 백인 가수가 나오면 게임 끝난다"는 것이었다. 이미 빌 헤일리가 "백인의 흑인음악"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이는 어려운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 각지의 다양한 레코드 회사들은 이러한 아티스트를 찾는데 혈안이 되고, 이때 선 레코드에서 발굴해낸 불세출의 아티스트가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다. 이때가 1955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얼마나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지는 설명 자체가 불필요 하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955년부터 쟈니 캐쉬, 칼 퍼킨스, 엘비스 프레슬리는 함께 전미 투어에 나서게 되고, 이때부터 이들이 명성은 확고부동한 위치를 갖게 된다. 이들이 뿌린 씨앗은 1956년을 로커빌리의 해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1956년 칼 퍼킨스의 "블루 스웨이드 슈즈"와 쟈니 캐쉬의 "폴섬 프리즌 블루스",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트 브레이크 호텔"이 발매되고, 로커빌리는 전국적인 음악이 된다. 이들은 모두 백인이었으며 인종에 관계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로커빌리가 좀 더 블루스의 부기우기 셔플리듬에 컨트리적 감성이 가미된 것이라면, 로큰롤은 리듬 앤 블루스의 스트레이트한 리듬을 잘 계승했다. 이러한 스트레이트한 음악은 전 미국을 강타하게 되고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2.3. 전성기[편집]


"과거에 리듬 앤 블루스로 불렸지만 이제 로큰롤이라고 불리는" 이 음악이 미국을 강타하고 전 세계로 퍼저나가게 되자, 다양한 뮤지션들이 뒤를 이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1956년 이후의 뮤지션들은 모두 앞서 말한 로커빌리 뮤지션들을 보고 가수가 되기로 마음먹은 세대.

이 시기에 등장한 뮤지션들은 로이 오비슨, 버디 홀리, 진 빈센트, 에디 코크런, 리치 발렌스, 빅 바퍼등이 있다. 또한 완다 잭슨, 재니스 마틴같은 여성 로커빌리 뮤지션도 등장하기에 이른다.

영국에서는 미국을 흉내낸 뮤지션들이 출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빈스 테일러[12], 빌리 퓨리, 조 브라운, 위 윌리 해리스, 클리프 리처드등이 훗날 영국 록의 토양에 밑거름이 되는 뮤지션이 된다.

대개 1955년부터 1958년까지를 로큰롤의 전성기로 친다. 후반부로 갈수록 로커빌리 방식의 그루브한 셔플 리듬의 로큰롤에서 스트레이트한 로큰롤로 변화하는 것도 주목할만한 양상이다(척 베리Johnny B. Goode이 1958년 발매된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로큰롤은 미국에서 그리서라는 서브컬쳐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리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로큰롤 패션인, 리젠트머리에 가죽 쟈켓과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을 말한다(머리에 기름을 잔뜩 발랐기 때문에 그리서).[13] 이 서브컬쳐는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이름과 모양을 약간씩 달리 하면서 전세계를 휩쓸게 된다. 예를들면 영국에서는 로커스로 불렸고,[14] 북유럽에서는 Raggare라고 불렸다.


2.4. 몰락[편집]


로큰롤의 종말은 의외로 일찍, 그것도 불현듯이 찾아오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이 되자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미국 사회와 언론은 무언가 그들을 제어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반항과 자유의 상징이었던 로큰롤은 기성세대의 눈엣가시였고 그들은 무언가 사고가 터지길 바라고 있었다.

1958년이 되자 로큰롤 뮤지션들 주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게 된다. 제리 리 루이스는 13살짜리 미성년자 사촌 동생과 결혼한 것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되고, 쟈니 캐쉬는 마약에 빠져 헤롱대고 있었다. 리틀 리처드는 갑자기 목사가 되겠다며(...) 은퇴를 했고, 척 베리는 미성년자 여자아이를 데리고 주 경계선을 넘다가 걸려서[15] 법적, 도덕적인 치명타를 입고 수감된다. 앨런 프리드는 1958년 관객들에게 "경찰은 여러분이 즐기길 원하지 않을겁니다"라고 이야기 했다가 폭동을 선동했다는 죄로 수감되고, 이후 뇌물을 받고 특정 곡들을 틀어준 사실[16]이 밝혀지면서 방송에서 하차하고 벌금형을 선고받는다.[17]

이러한 스캔들에 로큰롤이 지속적으로 시달리게 되자, 엘비스의 매니저 '대령' 톰 파커는 기가막힌 전략을 생각해 내는데, 바로 입대하는 것이다. 미국은 당시 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군대에 갈 필요가 없었지만,[18]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10여년밖에 안 되었고,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착실한 젊은이"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자진입대를 결정한 것이다. 엘비스가 나이가 들면 반항적인 느낌의 로큰롤 청춘스타라는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있을테니, 자진 입대를 통해 기성세대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이후 보다 폭넓은 팬층에게 사랑을 받는 '국민가수'로 전환시키는게 장기적인 안목에서 꼭 필요하다는게 톰 파커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엘비스는 전역 후 60년대 내내 로큰롤 음악활동보다는 삼류 영화들에 자주 출연하며 배우 활동에 더욱 주력했고, 60년대 후반에 점프슈트를 입고 라스베가스에서 공연을 시작하면서 음악계에 컴백한다.

1959년 버디 홀리리치 발렌스, 빅 바퍼를 태운 비행기가 악천후로 인해 추락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이 세명의 젊은 로큰롤 뮤지션들 또한 세상을 떠나게 된다.[19][20][21]

1960년, 진 빈센트와 에디 코크란은 영국에서 투어를 돌고 있었다. 그들은 공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그만 택시의 타이어가 터지는 바람에 교통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에디 코크란은 사망하고 진 빈센트는 평생 다리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게 되고 다리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다량의 술과 약물을 복용하게 된다. 결국 이는 그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결과, 1961년부터 62년까지 Runaround Sue, The Wanderer, Lovers Who Wander를 연속으로 히트시킨 디온(가수) 만이 남게된다. 이때부터 로큰롤은 몇년간 깊은 잠에 빠진다. 대신 빌보드 차트에서는 로큰롤에게서 파생되긴 했지만 아예 가사가 없는 기교 중심의 서프 음악이 대중들을 사로잡기 위해 여러 사운드를 발전시켰고, 후에 나올 신세대 록 뮤지션들이 이에 영향을 받아 사이키델릭을 비롯한 여러 시도를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또한, 60년대 초에 처비 체커의 The twist가 역사에 한획을 그으면서 트위스트 열풍이 불었다. 이 두가지가 로큰롤을 몇년간 붙들어 놓으며 완전히 한물간 장르가 되버리는 상황은 피할수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로큰롤은 그 본래의 정신과 활력을 잃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이렇게 로큰롤이 시들해지게 된 건, 위의 교통사고처럼 뜻하지 않은 사고의 탓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로큰롤 1세대인 기존 로큰롤 뮤지션들의 창작력이 고갈되고 더이상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서 음악적으로 정체되어버린 상태였다는 점도 큰 원인이었다. 음악적으로 더이상 딱히 새로운게 안나오니 음악팬들도 차차 질려하며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로큰롤 뮤지션들 스스로도 이젠 나올만 한건 다 나왔나 보다라며 로큰롤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잃어갔기 때문이었다.

어떤 분야든지 이런 답보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새로운 세대로의 교체 및 외부로부터 뭔가 신선한 바람이 유입되는게 필요하기 마련이다.


2.5. 부활[편집]


정작 미국 본토에선 로큰롤이 다 소탕되었다고 믿었지만, 대서양 건너편에서 로큰롤의 음악적 유산을 간직한 비틀즈롤링 스톤스를 비롯한 영국 밴드들이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통해 로큰롤 열풍의 부활을 알렸다. 그리고 이 밴드들은 더 나아가 로큰롤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새로운 록 음악의 시대를 개척한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수 십년 간 대중 음악계에서는 록 음악이 주류 장르로 자리메김 하게 되었고, 그 이후 파생되고 탄생한 수 많은 대중음악 장르의 음악적 기반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새옹지마.

영향력은 The Association, Gary Lewis And The Playboys, Classics 4 정도가 적당한 예.


2.6. 몰락과 부활의 반복[편집]


"요즘 록 음악의 문제점은 밴드들이 록(Rock)은 잘하지만 롤(Roll)은 못하는데 있다.[22]

[23]"

키스 리처즈


이후 로큰롤은 블루스와 더불어 록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기반이 되었으며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등 여러 록음악의 중요한 세부 장르들을 탄생시키게 된다. 하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록 공연 문화와 밴드 시장이 거대해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더 빠르고복잡하고화려한 음악들을 선호하게 되면서 로큰롤은 잊혀지게 된다. 물론 초기 메탈, 글램록에서는 로큰롤, 블루스적인 측면이 많이 남아있으나 80년대 이후에는 메탈이 하드록과 구별되는 헤비 메탈로 진화하고 글램 록이 음악적인 측면을 배제한 화려한 측면만 강조한 글램 메탈로 진화하게 된다. 이렇게 속주등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더 진화했지만 로큰롤 음악이 가지고 있는 그루비함, 대중성이 많이 퇴색된 록 음악에 많은 사람들이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24] 물론 70년대에서 팝의 시대인 8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섹스 피스톨즈를 비롯한 펑크 록엘비스 코스텔로, 브루스 스프링스틴같은 솔로 아티스트들, 블론디, 더 카스, 토킹헤즈같은 뉴웨이브 아티스트, 레너드 스키너드, CCR, 다이어 스트레이츠같은 루츠 록 아티스트 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기술적인 측면에만 집착하는 다른 록 아티스트들과 구별되는 음악들을 들려주고 히트곡도 많이 만들었으나 결국 헤비 메탈글램 메탈에게 록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이렇게 80년대에는 밴드들이 부족한 리듬감과 창의성을 샤우팅, 속주, 통속적인 가사등의 과장된 구성으로 감추자 대중들도 점점 외면하게 된다. 이렇게 점점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록 시장에 나타난 밴드가 바로 너바나다.

다시 록음악의 본연적인 정체성, 작가주의 정신, 대중성, 기성세대와 상업주의에 저항하는 야수성을 되살리자는 너바나의 외침은 얼터너티브 록그런지음악으로 이어지게 된다.[25] 이렇게 90년대에 영국에서는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펄프 등의 밴드들과 미국에서는 펄 잼, 너바나, 스매싱 펌킨스 같은 밴드들이 초대형 히트곡도 내고 명반들도 내면서 다시 록 음악의 인기를 되살리고 영광의 시대인 1960년대가 재현되고 제2의 비틀즈, 롤링 스톤즈, 더 후, 킹크스, 레드 제플린이 나올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90년대에는 60년대와 다르게 록 음악만 있었던게 아니기에 R&B, 힙합의 인기를 꺾기에는 무리였고[26] 상술한 90년대 밴드들은 보컬의 자살, 매너리즘, 멤버들의 불화 등 여러가지 이유로 선배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명반 1,2개만 내고 잊혀지게 된다.

이후에 90년대 후반으로 들면서 얼터너티브 록라디오헤드[27]의 음악들로 변하게 되는데 이 음악들의 특징은 작가주의 정신과 창의성에는 부합했으나 위의 밴드들이 보여주었던 로큰롤 정신(야수성, 대중성)들이 결여되어있다. 2000년대로 오면서 스트록스화이트 스트라입스, 프란츠 퍼디난드같은 복고풍의 로큰롤 밴드들이 다시 성공하면서 라디오헤드류의 얼터너티브 록이 왕좌를 가지고 있던 록음악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나 싶었으나 복고음악의 근본적인 문제인 매너리즘의 벽을 못넘고 롱런에 실패한다. 이후 라디오헤드류의 얼터너티브 록이 2020년대 현재까지도 유효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많은 평론가들은 로큰롤을 단순히 음악 장르를 넘어 록 음악 역사를 양분해서 설명하는것도 가능할 정도로 록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음악이라고 간주한다. 위에서 인용한 키스 리처즈엘비스 코스텔로의 말처럼 요즘 밴드들은 록(Rock)은 잘하지만(Roll)은 못한다는 발언도 결국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7. 그 외[편집]


  • 미군들이 전투준비를 외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락엔롤!! 락 엔 로드를 빨리 발음하면 이해할 수 있다.


  • 문명 4에서 불가사의로 등장한다. 효과는 매 턴 위대한 예술가 점수와 고유한 사치품인 인기 음악 몇 개(지도의 크기에 따라 다름), 행복을 제공하며, 이 불가사의가 지어진 도시의 매 턴 문화에 50%의 보너스를 제공하는 것. 문화 승리를 거두기 위해 꼭 확보해야 할 불가사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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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시기를 좀 더 소프트하게 다룬 것을 보고 싶다면 최훈의 웹툰 락커두들의 초기편들을 참고하면 좋다.[2] 영어로는 주로 Rock and roll, rock & roll, rock 'n' roll 로 표기[3] 미국에서는 "락앤롤"이라고 발음하며, 영국에서는 "로큰롤"이라고 발음한다. 국립국어원을 따르면 한글로는 로큰롤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4] 50년대 로큰롤의 색채가 희미한 후대 록 밴드나 심지어는 힙합 아티스트(...)조차도 자신들의 음악을 로큰롤로 규정하는 일이 빈번하다.[5] 척 베리의 곡 'School Day'에 나오는 가사다. [6] 비틀즈존 레논만약 로큰롤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면 ‘척 베리’라고 바꿔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7] 이 시기를 좀 더 소프트하게 다룬 것을 보고 싶다면 최훈의 웹툰 락커두들의 초기편들을 참고하면 좋다.[8] 이 때문에 흑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훔쳐갔다고 분통을 터트린다. 다만 빌 헤일리가 취입한 노래들은 커버곡이 상당수 였지만, 자작곡도 일부 끼어있었다.[9] 영화 버드에서 색소폰으로 들고 아무 클럽에 들어간 말년의 재즈뮤지션 찰리 파커가 자신이 서야할 무대에 록큰롤 뮤지션이 서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통곡하는 장면이 나온다[10] 이승환의 노래 '제리 제리 고고'의 주인공[11] 로커빌리 자체가 록+힐빌리(컨트리 음악)의 합성어다.[12] 약간 정신이 이상했던(...) 로큰롤 뮤지션으로, 훗날 데이빗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의 모델이 된다. 맨날 기차역 앞에서 땅바닥에 지도를 놓고 UFO가 착륙할 지점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13] 뮤지컬 "그리스"의 이야기가 바로 이 그리서들 이야기다.[14] 참고로 테디보이는 로커스보다 좀 더 앞선 서브컬쳐로 영국 오리지날 서브컬쳐다. 이들은 재즈와 스키플을 들었다.[15] 그 당시에는 범죄로 취급되었다.[16] 이건 문서가 가리키는 '페이올라'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이기도 하다.[17] 당시로서는 돈을 받고 특정 곡들을 틀어주는게 이상한게 아니었고, 사실상 로큰롤 확산의 주범이었던 앨런 프리드를 희생양으로 삼은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18] 하지만 당시 징병제는 유지되고 있었다. 물론 학업이나 취직등 다양한 이유로 징병을 손쉽게 피할 수 있었고, 처음부터 예비역으로 주 방위군이나 연방군에 지원해서 출퇴근 하며 짧은 군생활을 마치는 방법도 있었다(한국의 과거 방위병이나 상근예비역이 이 제도에서 기원한다). 지금 대다수의 청년들이 무조건 끌려가는 한국의 징병제랑은 결이 달랐다. 징병제가 다시 빡세진건 베트남 전쟁 이후다. 여튼 엘비스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징병검사에 응하게 되고, 기왕 군대 가는 김에 사병으로 가서 주독미군으로 자대배치를 받는다. 2년동안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구르다 나왔다고 한다(...).[19] 이날 신문을 읽고 한 소년이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 소년은 훗날 뮤지션이 되어 이날의 충격을 곡으로 남긴다. 그 소년은 바로 돈 맥클린이었고 그 곡은 아메리칸 파이였다. 가사 자체에도 "그날, 음악이 죽은 날"이라는 부분이 들어가 있다.[20] 음악이 죽은 날이란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향년 22세였던 버디 홀리는 단 18개월의 활동만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정도로 로큰롤과 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단적으로 록밴드 표준 구성에서 색소폰과 건반을 치워버린 것도 버디 홀리의 더 크리켓츠가 최초이다. 그리고 영화 라 밤바로 잘 알려진 리치 발렌스의 향년은 만 18세였고, Chantilly Lace를 빅 히트 시킨 '빅 바퍼' J.P.리처드슨이 최연장자였는데 이 때 나이가 만 28세였다.[21] 버디 홀리, 리치 발렌스, 빅 바퍼와 함께 겨울 댄스 파티 투어를 다니던 디온(가수)은 사고 비행기에 타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 이후 그는 프랭키 사르도와 당시 무명가수였던 바비 비와 함께 남은 2주간의 겨울 댄스 파티 투어를 다녀야 했다.[22] Rock이 록 음악으로서의 형식과 테크닉만을 뜻한다면 Roll은 로큰롤 정신부터 그루브, 소울까지 지칭한 표현이다. 60년동안 로큰롤 음악만 파온 롤링 스톤스를 생각해볼때 정말 찰떡 같은 표현이다.[23] 참고로 로큰롤 음악의 또다른 래전드인 엘비스 코스텔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24] 원래 예술에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건 기술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다.[25] 물론 너바나 이전에도 얼터너티브 록REM이나 U2같은 밴드들은 록 시장을 넘어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음악성을 인정받던 밴드들이였으나 너바나 음악이 등장하면서 더더욱 평가가 높아지기 시작한다.[26] 이 이유로 90년대 영국 밴드들이 60년대와 다르게 오아시스를 제외하고 미국 시장의 벽을 끝내 못넘었다. 미국에서는 록음악보다 R&B, 힙합, 팝음악이 더 인기가있었기 때문이다.[27] 영미권에서도 실제로 라디오헤드 류의 음악이라는 뜻인 ‘Radioheadism’이라는 단어를 쓴다. 대표적으로 콜드플레이와 뮤즈의 초기작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