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성/선수 경력/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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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전
2. 페넌트레이스
2.1. 4월
2.2. 5월
2.3. 6월
2.4. 7월
2.5. 8월~9월
3. 총평
4. 시즌 후


1. 시즌 전[편집]


등번호는 NC 시절 달았던 49번을 달게 됐다.[1] 본래 49번은 박소준이 새로 달고자 했으나, 박소준이 43번으로 바꾸면서 강진성이 49번을 달 수 있게 되었다.

1차 스프링캠프 명단에 외야수로 포함되면서 두산 구단에서는 강진성을 코너 외야수로 기용할 의중을 밝혔다. 기존 코너 외야 자리에는 김재환김인태가 유력한 주전 후보로 꼽히며, 백업으로 유력할 것으로 보이는 1루수는 양석환이 굳건하기에 당장 주전 및 선발 경쟁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지만 체력 안배와 수비력 강화 등에 목표를 둔 배치를 감안한다면 기회를 그럭저럭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수행, 안권수와 더불어 코너 외야 백업으로 돌아가며 나올 것으로 전망을 받았다.

한편 시즌 전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는 왼쪽 내복사근 손상을 입어 출전이 불가피한 양석환 대신 1루수 대타로 출전하고 있다. 시범경기서 타율 0.409(22타수 9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 페넌트레이스[편집]



2.1. 4월[편집]


4월 3일 한화전 1-0으로 앞선 7회말 2사 2루에 대타로 나서 3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4월 5일 잠실 삼성전 5-3으로 뒤진 7회말 무사에 대타로 나서 3루수 방면 내야안타를 쳤다. 두산에서의 첫 안타. 이후 허경민의 2루타로 시즌 첫 득점도 올렸다.

4월 6일 잠실 삼성전에서 7-0으로 뒤진 9회말에 페르난데스의 대타로 들어서서 문용익을 상대로 시즌 1호 홈런이자 두산 이적 후 첫 홈런을 때려냈다.

4월 7일 잠실 삼성전에서 비록 3회 아쉬운 수비[2]로 뜬공을 2타점 적시타로 둔갑시켰지만, 8회 우규민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팀의 5-6 역전승에 기여하였다.

4월 8일 사직 롯데전 5번 우익수로 선발출전해 2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하고 5회 정수빈으로 교체되었다.

4월 9일 사직 롯데전 5-2로 뒤진 5회 초 2사 2,3루 상황에서 부상을 입은 양석환의 대타로 출전해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2타수 1안타 2타점.

4월 10일 사직 롯데전 5번 1루수로 선발 출전했으나 5타수 무안타 1삼진으로 부진했다. 3-2로 뒤진 8회초 1사 1,2루 상황에 병살타를 치며 좋은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고, 3-3 동점인 10회초 1사 2루 상황에서도 1루수 플라이로 물러나고 마는 등 경기 후반 강진성에게 좋은 득점권 찬스가 두 번이나 왔는데도 모두 해결하지 못했다.

4월 12일 수원 kt전 7번 1루수로 선발 출전해 2회 초 2사 3루에서 적시타를 치며 선취타점을 올렸다. 이후 4회 초 2사 2루에서 다시 한번 적시타를 때려내며 팀에 2-0 리드를 안겨주는 등 4타수 2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고, 지난 롯데전에서의 득점권에서 부진을 만회했다.

4월 20일 광주 KIA전 5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침묵했다. 이후 옆구리와 허리 쪽에 통증을 느끼면서 조수행으로 교체되었다.

4월 23일 잠실 LG전 4-2로 앞선 7회말 1사 2루에 대타로 나서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다.

4월 27일 친정팀 NC와의 홈경기에서는 6번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안타를 치진 못했으나 4회 말 볼넷을 얻어 1득점을 가져왔다.

양석환의 부상 말소 이후에 1루수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다만 SSG전부터는 안권수, 조수행에 밀려 외야수 등판 기록이 없다. 실전 공백도 영향을 끼친 듯.

2.2. 5월[편집]


5일 LG와의 어린이날 시리즈에서는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10일 고척 키움전에서 8회 박계범의 대타로 나와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해 1득점을 가져왔다.

14일 대구 삼성전에서 9회초 장승현의 대타로 나왔으나 뜬공을 쳤다.

시즌 초반 좋았던 타격감이 한 달 동안 쭉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197까지 내려가버렸다. 이 정도 속도의 하락세는 .250까지 기록했다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179까지 떨어진 오재원에 맞먹는다(…).

16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2.3. 6월[편집]


6월이 다 되도록 1군 콜업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고 있고 2군 등판 기록도 5월 중순 이후로 4경기 출장에 그쳤는데 지난 4월 KIA전에서 옆구리 쪽 통증을 느끼면서 교체된 것이 영향을 준 듯 하다.

6월 초 들어서 2군 출장이 이뤄지고 있다. 지명타자 내지는 코너 외야수로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타율 .318로 감을 찾아가고 있으며 6월 18일 기준 .373의 타율로 1군에 올라갈 준비를 거의 마쳤다.

19일에 최원준과 함께 1군 콜업되었다. 그리고 당일 경기 kt전 7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해 수비에선 그럭저럭 활약했으나 타석에서는 2타수 무안타로 침묵했고 조수행으로 교체되었다.

21일 문학 SSG전에서 7회초 양석환의 대주자로 출전했으나 조수행이 중견수 앞 짧은 코스의 안타를 치자마자 홈 쇄도를 시도했으나 최지훈의 송구에 주루사를 당했다.

24일 잠실 KIA전에서 대 6회말 박계범의 대타로 나왔으나 3루수 땅볼을 쳤다.

25일 아리엘 미란다의 1군 등록으로 말소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대타 겸 대수비 자원으로 쏠쏠하게 활약했지만 몇 경기 반짝하고 완전히 망해버렸다. 현재까지의 모습은 그냥 응원가 원툴. 2군에서는 3할 6푼의 타율을 기록하며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곤 있지만, 정작 홈런은 없고 장타율도 낮은지라 시즌 초반과는 달리 1군에 올라오면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전혀 못해내고 있다.


2.4. 7월[편집]


7월 25일에 1개월만에 김인태, 김태근과 함께 1군에 등록되었다.

26일 잠실 롯데전에서 7번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정훈의 높은 타구를 좋은 펜스플레이로 쫒아가 점프캐치로 잡아내는 호수비를 펼쳤지만 타석에서는 2타수 무안타에 그치면서 결국 4회초 조수행으로 교체되었다.

27일 잠실 롯데전 9회초 좌익수 대수비로 나와 정보근의 타구가 좌측으로 높게 뜬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담장 바로 앞에서 뜬공을 잡아내며 중요한 아웃카운트 하나를 올렸다.

28일 잠실 롯데전 7번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4회말 2사 만루에서 타선이 빅이닝을 달성한 가운데 반즈의 슬라이더를 퍼올렸고, 이 타구가 좌측 담장으로 높게 날아갔지만 아깝게도 폴대 바로 옆에서 꺾여들어가면서 파울 홈런이 되고 말았다. 결국 곧바로 볼넷을 얻어내 1점 밀어내기를 가져온 것에 만족해야 했다. 간만에 좋은 타격감을 보여줄 뻔 했던 상황이었던 만큼 아쉬운 부분.

29일에 신성현으로 대체되어 1군 말소되었다. 본인에게나 팀에게나 전 날 롯데전에서의 파울 홈런이 만루 홈런이 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울 듯 하다.

2.5. 8월~9월[편집]


그 후로 8월 한 달 동안 2군에도 거의 나오지 않다가[3] 9월 확장 엔트리 시행과 동시에 1군 등록되었다.

2일 잠실 롯데전에 2타석동안 땅볼과 병살로 물러난 지명타자 페르난데스의 대타로 출장했지만 두 타석 모두 삼진을 당했다.

8일 잠실 한화전 9회말 2사 1루 4:5 스코어에서 대타로 등장했지만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면서 전혀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9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8회초부터 1루수 양석환의 대수비로 출장했다.

결국 또다시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13일에 1군에서 말소되고 말았다. 김태형 감독이 지나치게 강진성을 기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번째 시즌은 백동훈의 두산 이적 직후 못지 않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내며 폭망했다. 다음 시즌에서의 반등이 요한 상황.


3. 총평[편집]


그냥 망했다. NC가 왜 이 선수를 보호 명단에 넣지 않았고, 그동안 두산이 써왔던 보상선수 이적 신화[4][5]가 어찌보면 굉장한 운이 따라줬기에 가능했다는 점, 그리고 보상 선수로 전력 수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쉬운 일이 절대 아님을 명백히 증명한 시즌이다.

사실 강진성을 두산이 보상 지명할때만 해도 강진성은 2020 시즌을 다소 플루크성이 짙은 호성적을 내며 마치긴 했지만 NC 내야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었고, 외야 수비도 NC에서 봉인당하긴 했지만 대수비 요원으로 적절한 시프트에 투입시킬만한 기량은 가지고 있었으며, 플루크가 터지기 전에도 기량이 만개하지 않아도 2군에서 호성적을 내고 관계자들 사이에서 실링은 확실하게 증명이 되었던 선수였던 만큼 보상 지명에 오히려 호평하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두산의 외야 자리는 이미 유망주들이 차고 넘치는 데다, 1루수로 기용하기엔 올 시즌 강진성의 공격 측면에서의 기량이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그 선수가 전 소속팀에서 확실한 실링이 있다 해도 플루크성 포텐 이력이 있는데다 이미 한번 크게 부진을 겪는 등 그 가능성을 그대로 이적 이후에도 보여줄 수 있을지 예측 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도박수가 작용하는 점인데, 결국 안 좋은 쪽으로 예상한 점이 몰아서 터진 셈이다.

강진성의 두산 보상 이적 이후에도 NC 시절에 보여준 기량을 보여줄 지에 대한 의문이 적진 않았고, 딱 대타나 대수비 요원 정도의 기량만 보여줘도 선방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도 심하게 무너졌다는 반응이다. 그래도 명색이 2020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에, 내재한 실링과 경기 감각이 올라왔을때의 포텐은 확실했고, 또 두산 상대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여왔던 만큼 두산 팬들에게 있어 이름값이 낮은 선수는 절대 아니었던지라 기대하는 여론이 많았지만[6], 이 선수가 단순히 보상 선수 한계를 드러내는 수준이 아니라 민병헌의 보상 선수였던 백동훈[7] 급의 성적을 낼 것이라고는 예측한 사람도 적었을 것이다.[8] 올 시즌 모습만 놓고보면 NC때의 모습은 완벽한 플루크였다는 게 중론.[9] 실제로도 NC 다이노스 측에서도 "이 선수의 그 동안의 성적은 플루크다"라고 확신을 한 시점에서 20인 내로 묶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성적 부진과 별개로 자리가 없었다는 점에 더해 타격감이 점점 떨어질 여지가 보이려는 찰나에 김태형 감독이 그냥 2군에다가 시즌 내내 박아둔 탓에 부진했던 부진하지 않았던 간에 본인의 기량을 증명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점도 있다.[10] 그리고 뒤늦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시즌 초 허리 부상을 입은 여파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고 한다.

구단 측의 입장에 따라 내년 시즌의 행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인데, 현재 상황으로는 보류선수 명단에서 빠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 정도로 부진한 모습만 보여줬지만[11] 만약 구단의 위로 차원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받게 될 경우에는 그 만큼 더 분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4. 시즌 후[편집]


같이 NC에서 두산으로 팀을 옮긴 임창민은 10월 17일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방출되었지만, 강진성은 일단 1~2차 방출자 명단 모두 포함되지 않은데다 구단 유튜브에 올라온 훈련 영상에서도 모습을 비췄기 때문에 잔류가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10월 23일 문학 경기장에서 열린 SSG의 한국시리즈 대비 연습 경기에서 7:7 동점 상황인 7회초에 대타로 나와서 1타점 역전 적시타를 쳤고, 팀이 9대7로 승리하면서 이 적시타는 결승타가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1일1깡
[1] 49번은 민병헌이 두산 시절 달던 등번호였다.[2] 다만 바람의 영향이 있긴 했다.[3] 총 3경기 출장해서 10타수 1타점 1득점 3삼진이라는 기록을 낸 것이 전부.[4]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원석, 이형범이다. 홍성흔의 보상선수로 두산에 이적한 이원석은 롯데 시절부터 내야 백업 요원으로 상당히 많은 실링을 보여주면서 즉전 내야수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그 덕에 내야 전력이 차고 넘치지만 그렇다고 안정감이 확실하지는 않았던 두산의 코너 내야 자리에 곧바로 자리를 잡아가며 주전 자리까지 올라섰다. 양의지의 보상선수였던 이형범 역시 이적 직후부터 불펜에서 이닝 이터 역할을 해주며 함덕주의 부진을 틈타 마무리 투수 자리를 넘겨받았고, 125억 마무리라는 별명까지 받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사실상 2019년 두산의 우승에 많은 기여를 했다.[5] 다만 전역 이후 FA로 삼성에 이적하며 보상 선수 첫 FA 이적 사례를 남길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이원석과 달리 이형범은 그 이후 완전히 망해버리며 1군 추격조로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리며 2019년 성적이 BABIP신의 가호로 이루어진 플루크였다는 것만 증명되고 말았다.[6] 당장 2021 시즌 보상과 트레이드로 두산에 온 강승호양석환이 대표적인 두나쌩이었고, 이 둘 모두 이적과 동시에 두산에서 커리어 하이를 쓰며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7] 백동훈도 두산에서는 49번이었다.[8] 참고로 어느정도 잠재적 가능성을 경기력으로 보여준 바 있고 덕분에 이름이 그럭저럭 널리 알려진 편인 강진성과 달리 백동훈은 롯데 팬들 사이에서도 생소한 반응이 더 많았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선수였다.[9] 물론 이는 이미 2021년에 사실상 증명되었지만, 작년에는 어떤 대형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주측 전력들이 모조리 나가리가 되면서 사실상 좋든 싫든 NC 입장에서는 강진성에게 주전 자리 기회를 줘야했던 팀 상황이 겹쳤다.[10] 시즌 40경기 출장에 타석수가 100타석이 안 된다.[11] 방출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기본적으로 타격 실링이 어느정도 있고, 1루와 코너 외야를 볼 수 있는지라 기량이 터진다면 플래툰 요원으로 자리를 잡을 수도 있는 만큼 다른 구단의 입단 제의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또 강진성의 나이도 이제 겨우 30세고, 부상 이력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몸 상태는 나쁘지 않은 편이기도 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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