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호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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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합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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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를 존치한다. * 본 문서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관련된 인터넷 밈으로 규정하고, 두 선수 간의 비교는 호날두의 우위로 서술한다.

참고사항:}}}





1. 개요
2. 주요 쟁점
2.1. 호날두가 우위다
2.2. 뮐러도 비교가 가능하다
3. 결론



1. 개요[편집]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라이벌 대결인 메호대전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메시가 염원하던 월드컵 트로피골든볼과 함께 거머쥐면서 메시의 승리로 종결됐다.

메시가 FIFA 공식 트위터를 시작으로 많은 매체에서 축구의 GOAT로 평가받게 되자, 메호대전으로 매일같이 치고박던 한국의 커뮤니티 등지에서 '호날두는 메시는커녕 게르트 뮐러에나 비교해라' 라는 식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둘의 비교가 시작됐다.

일명 게호대전이라 부른다.


2. 주요 쟁점[편집]


원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역대 4~5위를 놓고 다투고 있었으나, 2022년 들어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각종 추태를 부린 끝에 방출당하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5경기 1골 8강 탈락을 한 데다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알 나스르에 입단한다는 소식이 들리며 최악의 말년을 보내고 있다. 비슷하게 말년에 도핑, 마약 관련 문제로 평가가 깎인 디에고 마라도나처럼 호날두도 부정적인 재평가를 피할 수 없었던 것. 거기다 메시가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우승하며 자타공인 GOAT로서 인정받자, 호날두에 대한 인식이 유독 좋지 않은 한국의 커뮤니티 등지에서 게르트 뮐러를 데려와 비하하기 시작했다.[1]

수많은 축구 선수 중 하필 게르트 뮐러를 거론하는 이유는 호날두와 뮐러 둘 다 잡이였기 때문이다. 호날두가 전문 스트라이커 출신은 아니지만 이미 골게터로 전향한 지 상당히 오래됐고, 이에 따라 호날두를 고평가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들고오는 수치가 바로 골이다.[2] 그러니까 그렇게 '골이 전부다' 라고 외치고 싶으면 진짜로 골 원툴끼리 한번 비교해보자는 얘기다.

주요 쟁점은 호날두와 뮐러 둘 다 전성기때 전형적인 '순수 골잡이'[3][4]였다는 것. 보통 역대 1~3위를 다투는 이른바 GOAT를 논하는 삼대장인 펠레, 마라도나와 메시는 골을 넣을 때 1선에서만 머무르며 다른 팀원들이 골대 근처까지 볼운반 해주고 킬패스 찔러넣어 주면 마무리하는 역할뿐 아니라 2선에서부터 본인 스스로 출발해 마무리까지 다하는 유형의 골이 많았고 심할 경우 하프라인에서부터 시작해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골만 잘 넣은게 아니라 공격 전개과정을 조립하거나 다른 선수가 골넣게 기회를 제공하는 등 컨트롤 타워로서도 엄청났던 모습 덕분에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받는다. 마라도나는 애초에 주 포지션 자체가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펠레와 메시는 마라도나보다는 골에 집중하는 포지션이지만 역시나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뛰어난 선수들이다.[5] 물론 호날두와 뮐러가 연계나 찬스메이킹에 약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6], 단독돌파 솔로골 비중이 높거나 플레이메이커로 보기엔 여러모로 부족하고 주로 팀이 창출해준 기회를 마무리하며 골사냥에 집중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논쟁이 생긴 것이다.

호날두를 골 원툴이라고 비하하는 용례는 이전부터 있었다. 유벤투스 이적 후 PK 포함 수많은 찬스를 몰아먹고도 득점왕을 놓치면서 호대전, 호대전 드립이 돌았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 그래서 게호대전도 콸호대전처럼 출범했지만, 게르트 뮐러는 저 둘과는 커리어가 차원이 다르고 호날두에겐 없는 기록도 있었기 때문에 스탯 하나하나를 뜯어서 vs놀이를 할 요소가 많았고 이게 게호대전이 흥행(?)하는 원인이 됐다. 게호대전 명칭이 메호대전과 유사한 것도 한몫했다.

결론 문단에서 후술하듯, 진지하게 호날두와 뮐러를 비교하려는 의도가 아닌 그저 호날두를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치업이므로 진지하게 볼 필요는 없다.


2.1. 호날두가 우위다[편집]


이는 어디까지나 그간 악성 호날두 팬덤이 보여준 이중적이고 추한 잣대에 대한 조롱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옳다. 진지하게 분석하면 뮐러는 리그 득점왕 2번을 제외하면 발롱도르 등 개인 수상이 호날두에게 꽤나 뒤쳐지고, 플레이 스타일로 평가를 하더라도 호날두가 펠레, 메시, 마라도나, 지단과 같은 최고 수준의 플레이메이커는 아니었지만 커리어 초기엔 리그 최고 수준의 드리블러였다는 점에서 호날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타당한 평가다. 호날두가 무릎 부상 이후 온더볼 상황에서의 능력을 대부분 잃고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오프더볼을 활용한 득점만을 노리는 소위 '캠핑족'이 됐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호날두는 뛰어난 드리블러였다. 애초에 호날두가 당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게 된 이유는 뛰어난 드리블을 가진 윙어가 득점까지 웬만한 스트라이커 이상으로 잘 했기 때문이다.

또한 뮐러의 골 기록도 다소 뻥튀기된 부분이 있는데, 당시 분데스리가는 경기당 평균 득점이 3점 중반에 육박할 정도로 골이 많이 터지던 리그였으며, 클럽과 국가대표 모두 화끈한 공격 축구를 하는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다득점에 매우 유리한 환경에서 뛰었다. 반면 2010년대 라리가는 경기당 평균 득점이 2점 중후반에 불과하다.

요약하면 그간 악성 호날두 팬덤의 논리[7]를 기준으로 했을 때 호날두가 게르트 뮐러에 밀리는 것을 두고 그간 억까를 당해왔던 메시팬들이나 일반 축구팬들이 그들을 비꼬고 있는 것일뿐,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진짜 호날두를 게르트 뮐러보다 못한 선수라고 평가하면 곤란하다. 당연히 그간 호날두 팬덤이 펴왔던 논리는 억지에 불과하고, 일반적인 선수 평가 기준[8]을 적용했을 때 호날두는 뮐러보다 유의미하게 뛰어난 선수로 평가하는 것이 정당하다. 일반적으로 호날두는 항상 10위 이내로 평가받는 반면 뮐러는 10위권 초중반 정도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9]


2.2. 뮐러도 비교가 가능하다[편집]


그렇지만 게르트 뮐러도 엄연히 시대를 관통한 레전드이다보니 스탯이나 팀 커리어면에서는 호날두와 전혀 꿀릴 것이 없기 때문에 호날두와도 비교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미미한 호날두와는 다르게 이쪽은 국대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일궈냈으며 국대 커리어는 뮐러가 호날두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경기당 골과 토너먼트 골도 더 많은 건 덤. 발롱도르에 월드컵 우승+득점왕(10골)[10]+결승전 결승골, 유로 우승+득점왕(4골)+결승전 결승골, 유러피언컵 3연패, 유러피언컵 득점왕 4회, 리그 우승 4회, 리그 득점왕 7회 등등... 호날두 팬이 아니라 메시 팬이 봐도 경이로운 커리어였던 것이 재조명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해 최다골/한시즌 최다골도 메시가 91골/73골로 1위, 뮐러가 85골/66골[11][12]로 2위인 반면 호날두는 69골/61골로 저 둘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뮐러가 말년 호날두처럼 캠핑족 유형인 줄 알았는데 어시스트까지 잘하고 발밑까지 좋았다는 점도 재조명됐다. 심지어 경기당 골 수도 0.2골 정도로 호날두보다 뮐러가 훨씬 더 많으며 클러치도 뛰어나 국대 우승할 때 전부 본인이 결승골을 넣었다.[13] 여기에 바이에른 뮌헨 천하인 2000년대 이후와는 다르게 당시의 분데스리가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된다. 뮐러는 여기서 베켄바워와 더불어 2부 리그 소속이었던 바이언을 1부로 승격시킨 뒤 독일을 넘어 유럽 최강으로 만들었고 나아가 분데스리가도 유럽 최고 리그로 만든 것이다.[14] 게다가 당대 서독 대표팀에서 월드컵+유로 우승의 핵심으로 활약했으니 소속팀+리그+국대까지 모두 세계 최고로 만든 뮐러의 이 업적은 호날두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성과라 할 수 있다.[15]

또 게르트 뮐러는 항상 조용하고 인터뷰도 꺼리고 미디어에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공적을 호날두처럼 언플하지 않았던 점이 후대의 주목을 덜 받게 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당대 요한 크루이프 vs 프란츠 베켄바워라는 두 개성 넘치는 축구천재의 대결 구도하에서 뮐러는 조용히 시대의 3인자 자리 정도로 만족했던 게 후대의 저평가 원인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플레이메이킹을 중요하게 보는데 하필 동시대에 올타임급 플레이메이커가 둘이나 있었기도 했고 저 두 선수 모두 언론을 상대로 적극적인 의견 제시를 주저하지 않았다. 베켄바워를 보면 크루이프가 자기 제치고 발롱도르를 차지하니까 '어쨌건 월드컵 우승은 내가 했는데 왜 크루이프를 주냐?'라고 저격하며 자존심 상해했고 실제로도 '그러네 어쨌건 승자는 베켄바워 아닌가?' 하는 여론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크루이프도 성격이 만만치 않아 언론에 자기 의견을 매우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그 정도를 넘어서 축구계 오만한 독설가의 대표주자가 크루이프다. 둘 다 실력도 어마어마하지만 언론과 대중을 다를 줄 알았고 스타성도 엄청났다.[16] 뮐러가 만약 베켄바워, 크루이프 같은 성격이었다면 베켄바워가 아니라 내가 1인자다, 리그, 챔스, 유로, 월드컵까지 골을 넣는건 언제나 나였고 축구는 골이 가장 중요하다, 크루이프를 이긴건 베켄바워가 아니라 나다 왜냐면 결승전에서 결승골 넣은 자가 나니까. 이런 식으로 호날두식 언론플레이를 했을 것이고, 실제로도 뮐러는 저 드립들을 단순 드립이라 넘길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활약도를 가지고 있으니 자기 의견에 동조하는 세력을 꽤나 모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뮐러는 자기 평가 올려보겠다고, 스포트라이트 한번 받아 보겠다고 베켄바워와의 우정과 팀 분위기를 망치는 짓을 한적이 한번도 없었으며 오히려 베켄바워 쪽에서 "뮐러는 바이에른의 전설", "뮐러가 없었다면 바이에른과 독일 국대의 경력 또한 없었을 것이다."라며 뮐러를 존중하고 띄워주는 발언을 많이 했다. 축구역사를 보면 같은 팀 선수들끼리 누가 '팀내 1인자냐?' '누가 1등 공신이냐?' 하는 문제로 신경전과 언론플레이를 벌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특히 2인자, 조력자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그런 평가에 반발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요한 크루이프가 감독으로 이끌던 드림팀 시절의 바르셀로나가 붕괴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의 자존심 대결 때문이었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피펜조던에 대해 '너무 혼자서만 공을 독차지했다'라며 저격을 했는데 그게 실제로 효과가 있어 조던의 독박농구, 원맨팀이라는 인식을 어느 정도 환기시켜 '그래 조던도 어쨌거나 팀원 도움이 있었지.'라는 반응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17] 호날두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에게 최대한 모이도록 필사적으로 어그로를 끌고 폭탄 발언 해대는게 다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언플한다고 해서 '메시에 밀린 불운한 2인자' 위치를 극복하게 된 건 아니었지만 9대1의 평가를 8대2로, 7대3으로 좁히는데는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호날두가 자신이 메시보다 나은 점, 더 뛰어난 기록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필사적으로 대중에게 어필해댄 것이 '호동생 결집'에 아주 큰 힘이 됐다. 하지만 게르트 뮐러는 진짜로 그냥 선수 생활 내내 조용히 딱 볼만 차고 골만 넣었으며 은퇴 후에도 그 어떤 언플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살다 떠났다.

한 해축갤러가 지적했듯 누적 스탯은 호날두가 많이 쌓았기에 호날두 팬들이 그동안 누적 스탯으로 호날두가 역사상 최고 선수라고 막무가내를 쓴 것인데 호날두 팬들이 스탯 놀이에 열중하다 보니 그에 반감을 산 축구 팬들의 다른 레전드 재조명으로 순식간에 호날두의 위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진지하게 따지면 호날두나 뮐러 두 선수 모두 어지간한 선수는 범접할 수도 없는 반열에 오른 선수들이다. 기나긴 축구 역사상 역대 축구 선수 순위에서 10위, 20위 안에 들어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지 호날두는 메시와 비교하자니 부족한 면이 보이는 것이고 뮐러는 호날두와 비교하자니 부족한 면이 보이는 것이다. 이미 메시는 월드컵 우승으로 메호대전의 승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호날두의 극성 팬들은 여전히 호날두가 메시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주장하니, 이에 대한 반발로 호날두가 메시 레벨로 보이는 것은 스탯 놀음에 불과하고 비슷하게 스탯을 들고 오면 뮐러도 호날두 레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당황한 호날두 팬들은 메시 시대에 5발롱, 메시 시대에 챔스 3연패라 뮐러와는 가치가 다르다며 그토록 인정하기 싫어하던 메시 GOAT론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애초에 호날두의 평가를 올릴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루트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메시와 라이벌로 불렸던 선수'이기 때문.


3. 결론[편집]


축구 전문가들에 따르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게르트 뮐러보다 더 위대한 선수라고 볼 수 있다. 호날두는 여러 축구 전문 매체에서 평균적으로 역대 4~7위 정도의 평가를 받고 뮐러는 역대 11~15위 정도의 평가를 받는다.[18] # #

게호대전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리오넬 메시가 엄청난 기량으로 조국에 월드컵 트로피를 안겨준 반면 호날두는 소속팀에서의 부진이 월드컵에서도 이어져 아무 성과 없이 선수 경력 마지막 월드컵을 마감, 메시가 확실히 호날두를 제압해 메호대전이 종결되자 국내 커뮤니티에서 메시 대신 호날두와 비교할 대상을 찾기위해 시작된 것이다. 뮐러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두 선수 모두 팀에서 골잡이 역할을 맡았고, 두 선수 모두 엄청난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뮐러의 국가대표 성적이 호날두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뛰어났기에 호날두 조롱목적으로 시작된 논쟁이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호날두와 우열 논쟁이 일어나는 선수는 여전히 디 스테파노,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지네딘 지단 등이다.

덤이지만 이 논쟁에 긍정적인 포인트가 있었는데, 게호대전이 벌어지며 2000년대 이전 해외축구에 무지한 편이었던 한국 축구 팬들이 게르트 뮐러의 기록을 찾아본 결과 엄청난 선수였다는 것을 깨닫고 과거의 레전드들에 대한 재평가가 소소하게 일어났단 점이다.
[1] 무엇보다 호날두가 월드컵 토너먼트 8경기 0골 0도움 MOM 0회라는 처참한 기록을 낸게 치명적이었다. 메시 역시 2022 카타르 월드컵 전까지는 토너먼트 골이 없었다는게 약점이었는데, 호날두는 한술 더 떠서 공격포인트, MOM 그 어느 것도 없었던 것.[2] 호날두는 맨유 1기 초창기엔 클래식 윙어였고, 점점 기량이 발전해 드리블 능력과 득점력을 갖춘 파괴적인 인버티드 윙어로 플레이했었는데, 2014년 무릎 부상 이후 점점 골게터의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 시절에도 전형적인 골잡이하면 떠오르는 최전방 공격수, 소위 9번의 플레이 방식과는 여러모로 다르긴 했다(피지컬을 이용하기보단 오프 더 볼 센스를 이용한 득점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3] 다만 호날두의 경우 축구선수로서 가장 뛰어났던 '기량 전성기'는 10-11~14-15 전반기 시기였으며 그 중에서도 프라임 시즌은 11-12가 주로 꼽힌다. 허구한날 온더볼 역량으로 호날두 까는 메시 팬들조차 호날두 11-12 시즌은 온더볼도 좋았다는 말에 굳이 토 달지는 않을 정도. 그런데 정작 호날두의 커리의 전성기는 기량이 쇠퇴하고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만 움직이게 된 챔스 3연패 시기다. 호날두의 대표적인 팀 업적이 기량적으로 최전성기가 아닌 시기에 나왔다는 것이 약간 아쉬운 부분. 뮐러 역시 게르트 뮐러 문서의 플레이스타일 문단에 나와있는 것 처럼 완성형 스트라이커 유형의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4] 2022년에 신설된 트로페 게르트 뮐러도 여기에 착안해서 골 넣은 횟수만 따져서 시상한다. 수상자도 골잡이인 레반도프스키, 홀란드다.[5] 펠레는 58 월드컵은 선배 디디가 플레이메이킹을 하고 본인이 골을 담당했으나 반대로 70 월드컵에선 본인이 플레이메이커가 되고 후배 자이르지뉴가 골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메시는 세 얼간이의 노쇠화와 은퇴를 계기로 14-15 시즌 쯤부터 플레이메이커로 뛰기 시작했고 국대에선 더 이전부터 수비수를 자기쪽으로 끌어들이고 동료에게 기회를 창출해주는 역할로 뛰고 있었다.[6] 특히 뮐러는 분데스리가 통산 도움 역대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연계도 훌륭했다.[7] 오직 팀 커리어, 득점력, 클러치 능력만이 축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식.[8] 플레이 스타일, 팀 커리어, 개인 커리어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평가.[9] 애초에 스트라이커 포지션 자체가 골만 넣는다는 이미지가 있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기에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는 호나우두가 10위권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경우가 많다.[10] 6경기에서 10골을 넣어서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했다. 월드컵 최대 경기수가 7경기로 늘어난 뒤에도 한 대회에서 10골을 넣은 선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11] 원래는 67골이었으나 UEFA가 뮐러의 72/73 시즌 유러피언컵 골기록을 12골이 아닌 11골로 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12] 다만 뮐러의 72/73 시즌 66골엔 DFL-리가포칼에서 기록한 5경기 12골이 포함되어 논란이 약간 있다. DFL-리가포칼은 1973년에 1972 뮌헨 올림픽으로 시즌 개막이 늦어지자 특별 경기로 한번 열리고 폐지된 대회였기 때문. 이후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다시 DFL-슈퍼컵을 잠시 대체하기도 했으나 1973년에 열린 대회와는 성격이 다르다.[13] 다만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는 두 선수 다 결승골을 넣은 적이 없다. 뮐러는 73/74 유러피언컵 결승 재경기에서 3번째 골과 4번째 골, 74/75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2번째 골을 넣은게 전부고, 호날두는 챔스 결승 통산 4골에 07/08 챔스 결승과 16/17 챔스 결승에서 선제골을 넣었지만 역시 결승골을 넣은 적은 없다.[14] 반면 호날두의 경우 호날두의 이적 전부터 이미 유럽 최고의 명문 클럽이었던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가 없던 시기에도 무려 10회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15] 물론 게르트 뮐러가 저평가받는데엔 바로 클럽이나 국대나 그의 모든 커리어와 업적에 프란츠 베켄바워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1인자가 되지는 못했다는게 문제.[16] 물론 그렇다고 크루이프, 베켄바워가 언플빨로 뮐러보다 높게 평가받는다는 소리는 당연히 아니다. 근본적으로 팀을 지휘하는 사령관과 돌격대장이라는 차이가 곧 평가격차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뮐러가 호날두 같은 성격이었으면 '뮐러가 너무 저평가 받았다.' '뮐러는 2인자가 아니라 쌍두마차로 평가해야 맞지 않냐?'라는 여론을 훨씬 많이 모았을 거란 가정도 충분히 일리 있다.[17] 물론 여전히 절대다수의 의견은 조던이 엄청난 하드캐리로 시카고 불스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던 말고 다른 팀원에게는 거의 관심조차 없던 언론과 대중의 시선이 조던의 팀원들에게도 가게 된 계기가 된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우는 아이 젖 한번 더 준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게 아닌 것.[18] 공신력이 어느정도 보장되는 메이저 언론사들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부트발=호날두 7위권 밖-뮐러 18위, 마르카=호날두 6위-뮐러 없음, 포포투=호날두 4위-뮐러 11위, 스포르트1=호날두 3위-뮐러 11위, 데일리레코드=호날두 전문가 5명 중 4명이 탑5에 선정-뮐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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