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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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경' 복원 상상도. 지붕을 금으로 씌운 금입택을 묘사한 것이 군데군데 보인다.

파일:신라 왕경도.jpg
파일:신라 왕경도 내 금입택의 모습.jpg
신라 왕경도의 월성과 대궁지 부근에 묘사된 금입택의 모습

1. 개요
2. 상세
3. 금입택 목록
4. 관련 유물 발견



1. 개요[편집]



통일신라의 전성기 시절, 수도 서라벌의 고위 귀족들이 거주한 호화저택. 황금을 씌운 집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거대한 집 전체에 통째로 황금 금박을 씌웠다. 저택마다 각자의 고유한 이름이 정해져 있었다.

조선에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사치와 허례허식을 굉장히 경멸했기 때문에 금입택이 지어지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다만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들이 일본의 금입택을 보고 남긴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데, 대단히 사치스럽다며 놀라거나 감탄하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다며 비판하거나 돈을 쳐바른 것이 자신의 주군이라는 자의 집보다 더하니 이거 위아래가 없는 거 아니냐며 비난하기도 했다.


2. 상세[편집]


신라가 전성기일 때는, 수도에 178,936호(戶), 1,360방(坊), 55리(里), 35금입택(金入宅)이 있었다. 금입택은 남택(南宅)ㆍ북택(北宅)ㆍ우비소택(亐比所宅)ㆍ본피택(本彼宅)ㆍ양택(梁宅)ㆍ지상택(池上宅)(본피부(本彼部)이다.)ㆍ재매정택(財買井宅)ㆍ북유택(北維宅)ㆍ남유택(南維宅)(반향사(反香寺)의 하방(下坊))ㆍ대택(隊宅)ㆍ빈지택(賓支宅)[반향사의 북쪽]ㆍ장사택(長沙宅)ㆍ상앵택(上櫻宅)ㆍ하앵택(下櫻宅)ㆍ수망택(水望宅)ㆍ천택(泉宅)ㆍ양상택(楊上宅)(양부(梁部)의 남쪽)ㆍ한기택(漢岐宅)(법류사(法流寺) 남쪽)ㆍ비혈택(鼻穴宅)[위와 같다.]ㆍ판적택(板積宅)(분황사(芬皇寺)의 상방(上坊))ㆍ별교택(別敎宅)[내의 북쪽]ㆍ아남택(衙南宅)ㆍ김양종택(金楊宗宅)[양관사(梁官寺) 남쪽]ㆍ곡수택(曲水宅)[내의 북쪽]ㆍ유야택(柳也宅)ㆍ사하택(寺下宅)ㆍ사량택(沙梁宅)ㆍ정상택(井上宅)ㆍ이남택(里南宅)[우소택(于所宅)]ㆍ사내곡택(思內曲宅)ㆍ지택(池宅)ㆍ사상택(寺上宅)[대숙택(大宿宅)]ㆍ임상택(林上宅)(청룡(靑龍)의 절 동쪽에 연못이 있다.)ㆍ교남택(橋南宅)ㆍ항질택(巷叱宅)(본피부(本彼部)이다.)ㆍ누상택(樓上宅)ㆍ이상택(里上宅)ㆍ명남택(椧南宅)ㆍ정하택(井下宅) 등이다.

삼국유사》제1<기이> 진한 (다만 이 링크의 글에 따르면 《삼국유사》가 아니라 《삼국사기》이다.)


《삼국유사》에선 금입택이 35채였다고 적혀 있으나 그 뒤에 실제로 금입택이라고 열거하는 걸 세보면 39채다(...). 잘못 썼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신라 6부의 부명(部名)을 갖는 양택(梁宅), 사량택(沙梁宅), 본피택(本彼宅), 한기택(漢岐宅) 등 4개의 금입택은 왕실의 이궁(離宮)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1]. 고려의 얘기기는 하지만 의종 대 별궁이 기록에 따라 “궁”이 아닌 “택”으로 지칭되는 경우도 있어 호환이 가능하기 때문. 다만 양궁, 사량궁, 본피궁과 다르게 한기택이 궁으로 나온 기록은 없어서 다소 애매하다. 이렇다 보니 일단 기록에 나온 숫자는 헌덕왕대가 기준이나 헌덕왕 때 다 지어진 게 아니라 그보다 이전 시기부터 금입택이 지어진 거 같다는 등 금입택에 대해선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일단 역사학계에선 권세를 가진 진골 귀족이 가진 저택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저 중 김유신 가문의 제매정택 집터는 현재에도 그 위치가 비정되고 있는데, 경주 월성과 교동마을 바로 서쪽이다. 그 외에도 많은 집의 이름이 전통있는 귀족 집안일 것이므로 다른 여러 기록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언급되는 이름이 많다.

고려 중후기 때 몽골 제국과의 전쟁에서 모두 파괴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금입택을 기억해야 하는 상황은 각종 한국사 시험(...)이다. 신라나 고려나 비슷하게 귀족제 사회였지만, 지문에 금입택이 나오면 그건 신라고, 고려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현대에는 황금으로 도배했다는 임팩트 덕분에 '사치끝판왕'이라는 이미지로도 인식되고 있다. 물론 사치가 맞고 한국사에서는 유례없는 케이스긴 한데, 세계사로 범위를 넓혀보면 건물을 금박으로 씌운다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사례만 찾아도 일본금각사, 인도암리차르 황금사원, 미얀마쉐다곤 파고다 등이 있다. 사실 신라나 고려왕조의 귀족사회가 특별히 사치를 심하게 했다기보다는 유교적 검약을 중시한 조선왕조가 세계적으로는 예외적 사례에 가깝다. 세계사의 귀족 사회들로 영역을 확장하면 신라의 금입택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의 돈지랄 끝판왕들이 즐비하다.

2020년 발굴 조사에서 ‘금입택’의 역사적 실체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큰 연못 터가 경주시 구황동 낭산 기슭의 왕실 사원터인 황복사터 유적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단독] 경주 황복사터에서 인공연못 발견


3. 금입택 목록[편집]


  • 1. 남택(南宅) : 경주 월성 남쪽에 있었던 황금 저택으로 현 국립경주박물관 인근. (박물관 터 조성 중 남궁지인(南宮之印) 인장기와 출토)
  • 2. 북택(北宅) : 경주 월성 북쪽에 있었던 황금 저택, 현 성동동 전랑지 인근
  • 3. 우비소택(亏比所宅)
  • 4. 본피택(本彼宅) : 신라 6부(훼부(양부), 사훼부(사량부), 본피부, 한기부, 사피부(습비부), 잠훼부(모량부))의 이궁으로 추정. 법류사(法流寺) 남쪽에 위치
  • 5. 양택(梁宅) : 삼국사기에 나오는 양궁(梁宮)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 현 용황 초등학교 뒷쪽 공터.
  • 6. 지상택(池上宅) : 신라 6부 중 본피부(本彼部)에 있었던 황금 저택. 현 헌덕왕릉 남쪽 북천 인근.
  • 7. 재매정택(財買井宅) : 김유신의 생가. 사적 제246호 재매정에 위치
  • 8. 북유택(北維宅) : 신라 6부 중 본피부(本彼部)에 있었던 황금 저택. 현 괘릉리 인근
  • 9. 남유택(南維宅) : 신라 6부 중 본피부(本彼部)에 있었던 황금 저택. 현 괘릉리 인근
  • 10. 대택(隊宅)
  • 11. 빈지택(賓支宅) :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 빈지(賓之). 현 괘릉리 인근
  • 12. 장사택(長沙宅) : 현 망덕사 인근. 경명왕비가 태어난 곳이다.
  • 13. 상앵택(上櫻宅)
  • 14. 하앵택(下櫻宅)
  • 15. 수망택(水望宅) : 글자 순서를 바꿔 망수택(望水宅)이란 기록도 있으며, 전라남도 장흥군보림사금 160푼과 곡식 2천곡을 기부한 기록이 있다.
  • 16. 천택(泉宅)
  • 17. 양상택(楊上宅) : 신라 6부 중 양부의 남쪽
  • 18. 한기택(漢岐宅) : 신라 6부 중 한기부에 있었던 황금 저택. 법류사(法流寺) 남쪽에 위치
  • 19. 비혈택(鼻穴宅) : 법류사(法流寺) 남쪽에 위치
  • 20. 판적택(板積宅) : 현 분황사 북편.
  • 21. 별교택(別敎宅) : 현 분황사 동편 원지 발굴지(천북면(川北面) 인근)
  • 22. 아남택(衙南宅)
  • 23. 김양종택(金楊宗宅) : 양관사(梁官寺) 남쪽에 위치
  • 24. 곡수택(曲水宅) : 현 분황사 동편 원지 발굴지(천북면(川北面) 인근)
  • 25. 유야택(柳也宅)
  • 26. 사하택(寺下宅) : 칠처가람(흥륜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천왕사, 담엄사) 중 한 곳의 남쪽
  • 27. 사량택(沙梁宅) : 삼국사기에 나오는 사훼부(사량부)의 사량궁(沙粱宮)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
  • 28. 정상택(井上宅)
  • 29. 이남택(里南宅) : 전라남도 장흥군보림사금 160푼과 곡식 2천곡을 기부한 기록이 있다.
  • 30. 사내곡택(思內曲宅)
  • 31. 지택(池宅)
  • 32. 사상택(寺上宅) : 칠처가람(흥륜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천왕사, 담엄사) 중 한 곳의 북쪽
  • 33. 임상택(林上宅)
  • 34. 교남택(橋南宅) : 월정교춘양교 남쪽에 위치
  • 35. 항질택(巷叱宅) : 신라 6부 중 본피부(本彼部)에 있었던 황금 저택.
  • 36. 누상택(樓上宅)
  • 37. 이상택(里上宅) : 신라 최대 황룡사 대종을 주조한 장인 집단을 보유했다고 한다.
  • 38. 명남택(椧南宅) : 경주 남산에 있는 북명사(北椧寺)의 남쪽
  • 39. 정하택(井下宅)

번외1 사절유택(四節遊宅) : 4계절별로 음주가무와 풍류소리가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던 신라의 초호화별장
  • 봄 : 동야택(東野宅)
  • 여름 : 곡량택(谷良宅)
  • 가을 : 구지택(仇知宅) : 경주 배반동 일대
  • 겨울 : 가이택(加伊宅)

번외2 월유택 : 금입택에는 들어가있지 않으나 삼국사기에서 따로 황금으로 만들어진 저택으로 묘사된 곳

기타

4. 관련 유물 발견[편집]





2022년 1월 6일에 금입택의 파편으로 추정되는 유물 50여개가 경주시에서 발견되었다.

이번에 발견한 것은 신라시대 당시 계단 양옆에 설치한 난간 받침돌의 파편인데 연구 결과 당시 신라인들이 계단 전체를 황금 및 금동판으로 화려하게 감쌌음이 드러났다. 계단 전체에 금동판을 부착한 뒤 고정하기 위해 27개의 못을 박은 흔적이 뚜렷하며, 그 형태가 경주 월지에서 발견된 각종 황금금동판 장식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계단에 뚫어놓은 못 구멍에 신라인들이 과학적으로 88.7%의 납을 충전재로 넣었다는 사실 또한 포항공대 나노융합기술원이 밝혀냈다. 우리나라 전 역사를 통틀어 계단 받침돌까지 금동판으로 화려하게 황금빛으로 꾸민 것은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라고 신라문화유산연구원 등이 파악하였다.

중국 자금성기와가 황금빛이라 자금성도 금입택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자금성 기와는 엄연히 황금색으로 칠한 기와이다. 금입택 기와처럼 금박을 씌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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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기동, <신라금입택고>, ≪진단학보≫ 45,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