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구설/타팀 도발 및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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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타팀 선수 공격 발언
2.1. 박재홍 부정타격 논란
2.2. 해태 선수 비하 논란
2.3. 다니엘 리오스 투구폼 논란
2.4. 봉중근 기용 관련 발언 및 말바꾸기
2.5. 제구력 없으면 몸쪽 투구 자제해야 - 발언
2.6. 류현진 기용 비판 발언
2.7. 조정훈 포크볼 너무 많이 던지다가 빨리 간다 - 발언
2.8. 박현준 로진 사건
2.9. 박찬호 한화 복귀 반대 및 말바꾸기
3. 타팀 관련 지적에 발언
3.1. 부정망망이 논란
3.2. 마운드 높이 시비 논란
3.3. 2002년 한국시리즈 폄하 발언
3.4. 롯데 외국인 감독 선임 관련 말바꾸기
3.5. 롯데 관중 야유 비판
3.6. "KIA랑만 하면 이상하게 판정에 문제가 생긴다" 발언 논란
3.7. 양준혁 덕아웃 사건
3.8. 한화 2군 선수 SK 오면 주전으로 뛸 수 있다 - 발언
4. 타팀 비하 발언
4.1. 두산, KIA 개미 비하 발언
4.2. 롯데는 모래알 같은 팀 발언



1. 개요[편집]


김성근 관련 구설수에 대한 내용 중 경기 외적인 인터뷰 발언 등을 통해 타팀을 도발하거나 그에 따라 갈등이 일어난 사건들을 모은 문서이다.


2. 타팀 선수 공격 발언[편집]



2.1. 박재홍 부정타격 논란[편집]


1996년 쌍방울 김성근 감독은 신생팀 현대 주포인 신인 박재홍의 타격이 부정타격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성근 감독은 박재홍이 타격 후 왼발이 배터박스를 벗어난다며 '부정타격'이라고 주장했다. 배터박스 앞부분을 활용하는 박재홍은 타격 후 왼발이 배터박스를 걸치거나 나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문제삼은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박재홍의 타격에 대해 경기가 한동안 중단될 정도로 격렬하게 항의하거나 아예 선수단을 철수시키기까지 했다. 김성근 감독이 이듬해까지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에 논란은 꽤 오랜기간 프로야구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김성근 감독의 항의가 계속되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6월 26일 규칙위원회를 개최해 야구 규정 6조3항[1] 등에 의거해 박재홍의 타격에 대해 적법판정을 내렸다.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박재홍의 타격 자세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당시 심판위원장으로 곤욕을 치렀던 김광철씨는 지금도 “박재홍의 타격 자세는 문제가 없었다. 아예 처음부터 왼발이 배터박스를 벗어나 있었다면 문제이지만 타격 후 자연스런 동작으로 연결된 점은 문제가 없다. 규정에도 자연스런 동작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KBO의 적법판정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의 이의가 제기되자 KBO는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사무국과 일본야구기구(JBO)에까지 자문을 구하기도 했는데 역시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김성근 감독이 박재홍의 타격 자세를 문제삼은 것은 잘나가던 현대의 분위기를 가라앉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당시 야구계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심판진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의 이의제기가 계속되자 결국 박재홍은 타격 자세를 오픈 스탠스로 바꿔야 했다. 하지만 박재홍이 타격자세를 수정한 이후에도 김성근 감독은 한동안 박재홍의 타격자세에 계속 이의를 제기하였다.


2.2. 해태 선수 비하 논란[편집]


5월 20일 광주 해태-LG전에 앞서 해태 왼손 투수 최영완이 엔트리에서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김성근 LG 감독대행이 언론에 "그 선수가 빠지면 우리는 어떡하라고."라고 발언한 것에 해태 팬들이 분개했다. 최영완은 5월 18, 19일 LG전에서 6타자 3피안타 2볼넷으로 크게 부진했다. 김성근 감독대행의 발언은 상대 팀과 선수를 무시하는 발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2.3. 다니엘 리오스 투구폼 논란[편집]


2007년 시즌초부터 김성근 감독이 두산의 두 외국인 투수인 '리오스와 랜들의 투구폼에 문제가 있다며 여러차례 이의를 제기하여 논란이 되었다. 김성근 감독은 두명의 외국인 투수 중 특히 리오스의 투구폼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SK와 두산의 페넌트레이스 1위 싸움의 분수령이었던 8월 21일~23일 3연전 내내 김성근 감독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지면서 리오스의 투구폼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겠다. 잘하는 것은 인정하면 될 문젠데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 따지고 들면 8개 구단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투수가 없을 것인데 트집을 잡아 프로야구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고 말했다.

황석중 심판위원장 대행은 "규칙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리오스가 다른 국내 투수와 비교해 빠른 투구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정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며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황 심판위원장의 판결 이후에도 한국시리즈에서까지 계속 리오스의 투구폼을 지적하였다. 뿐만 아니라 김성근 감독은 리오스가 의식적으로 문제가 있는 투구폼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빈볼보다 악질이며 한국야구를 깔보는 행위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증폭시켰다. 리오스의 투구폼 자체에 대한 논란과는 별도로 리오스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투구폼을 계속사용하여 한국을 무시하고 있다는 김성근 감독의 관심법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김성근 감독이 유독 두산의 두 외국인 투수의 투구폼 만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 라이벌팀을 심리적으로 흔들어 놓으려는 의도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KBO가 "리오스의 투구폼에는 문제가 없다"고 유권 해석을 내렸음에도 김성근 감독의 이의제기가 계속되자 두산측은 "정말 문제 된다면 다른 팀은 왜 가만히 있었겠나. 시즌 막판 중요한 시점에 목소리를 높인 건 한국시리즈 파트너가 유력한 팀의 에이스를 흔들어놓겠다는 것 아니겠나"라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 김성근 감독이 박재홍의 타격자세를 두고 심판진들로부터 문제없다는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부정타격 의혹을 제기하며 라이벌팀에 대한 신경전을 펼쳤던 전례가 회자되기도 했다. 한국시리즈를 앞둔 미디어데이에서 김성근 감독이 다시 리오스의 투구폼을 지적하면서 한국시리즈에서도 그런 면이 나온다면 어필하겠다고 경고하자 김경문 감독이 박재홍을 거론하면서 김성근 감독의 심리전에 맞불을 놓기도 했다. # 나중에 리오스가 일본으로 진출한 후 보크판정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의 판단이 옳았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아무 문제없이 던졌던 박찬호가 일본에서 보크판정으로 고생했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나라마다 보크에 대한 룰을 조금씩 달리 적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2.4. 봉중근 기용 관련 발언 및 말바꾸기[편집]


2009년 9월 6일 LG의 에이스였던 봉중근SK와 선두경쟁을 하던 KIA와의 경기를 앞두고[2] 팀이 7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엔트리에서 말소되자 이를 비판하였다. "마지막까지 해야지. 팬들에 대한 결례 아닌가. 또 봉중근 얘기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 야구계 풍토가 고쳐야 할 점이 있다. 3억~5억원 연봉 받는 선수들이 아프다는 건 의무감이 없는 것이다. 아파도 운동장에 나서서 최선을 다해 줘야지. 관중들은 그러한 것을 보러 오는 것 아니냐. 그런데 경기에 안 나오면 얼마나 실망하겠나. 기본을 모르는 것이다. 600만 관중이 오면 뭐하나. 부끄럽지 않게 야구를 해야지. 최종 순위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봉중근을 보러 오는 팬들이 있을 텐데…. 이들을 기만하는 행위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불과 한 달 전에 봉중근이 SK전에 선발등판이 예정되어 있을 때 김성근 감독은 '봉중근 같은 투수를 혹사시키는 건 국가적 재원 낭비다.'라고 발언한 적도 있었기에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말을 바꾼다고 비판받았다. 김성근 감독 스스로도 찜찜했는지 봉중근의 엔트리 말소를 비판하면서도 인터뷰 말미에 "결코 SK의 유·불리를 염두에 둔 말이 아니다. 야구인들에게 '순위'가 아닌 '팬서비스'를 우선 순위에 두자고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사족을 덧붙였다. 부끄러운 변명입니다 이어 김성근 감독은 "LG는 15일 경기 때 (승부가 기울자) 9회 박용택 타석을 시작으로 줄줄이 대타로 교체했다. 이런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며 LG의 선수 기용을 한번 더 비판하여 논란을 부채질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LG 김재박 감독은 "이젠 남의 팀 선수 기용까지 참견하시네요."라고 운을 떼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김재박 감독은 "솔직히 기분 나쁘다. 봉중근의 엔트리 말소는 전적으로 감독인 나와, 당사자인 봉중근, 구단이 협의를 해서 내린 결정인데 왜 다른 팀 감독이 그걸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봉중근은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부터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고, 남은 경기 등판보다는 내년을 대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뺐다. 정상적으로 등판이 가능했다면 16일 SK전에 낼 수도 있었다. 팬들도 다 이해하는 부분. 야구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에이스가 등판한다 해서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게다가 4강 경쟁에서 탈락한 팀들은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당연한 수순인데 그걸 가지고 다른 팀 감독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분명히 월권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봉중근이 팔꿈치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선발 등판을 했을 땐 김성근 감독께서 뭐라 하셨나. 그땐 정반대로 '저러다 고장이 나면 누가 책임 질 것이냐'고 하지 않았나"라며 김성근 감독의 내정간섭을 작심 비판했다.

김재박은 한이 쌓였는지, 얼마 후 9월 19일에도 외국인 투수 존슨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지자, “존슨 제외, 그분이 뭐라하실지라며 김성근 감독을 디스했다.


2.5. 제구력 없으면 몸쪽 투구 자제해야 - 발언[편집]


2010년 8월 15일 KIA 윤석민의 공에 롯데 홍성흔이 손목이 골절당하는 부상을 입자 17일 김성근 감독은 "제구력 없으면 몸쪽 투구 자제해야"라는 발언을 했다가[3]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말았다. 이는 이전부터 계속되던 KIA와 SK간의 빈볼 등으로 인한 시비가 누적되던 차에 생긴 일이었다. 팬들은 채병용 등 사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SK의 감독이 할 말은 아니라는 평. 사실 윤석민의 공이 깊게 날아와서 미처 못피하고 다친것은 아니고 홍성흔도 순간 배트 내밀다가 맞은것이다.


2.6. 류현진 기용 비판 발언[편집]


2010년 8월 22일 김성근 감독은 "류현진이 잘 던지긴 하는데 팀이 어려울 때 안 나온다. 에이스라면 팀이 어려울 때 나와서 이겨줘야 한다"라고 발언하여 소년가장 류현진을 까버리면서 한화팬들을 분노케 했다. 이번에도 김성근 감독이 타팀의 선수기용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상대팀을 흔들어 놓으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일었다. 특히 당시 류현진이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야구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발언이 야비, 졸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로테이션상 8월 22일 SK-한화전에서 SK 김광현과 한화의 류현진의 맞대결이 예상되었다. 예전부터 일각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자꾸 류현진을 피해 김광현의 로테이션을 짠다는 말이 있던 차였다. 그런데 류현진은 8월 8일 롯데전에서 조성환의 타구에 맞아 정강이에 부상을 입어 제 컨디션이 아닌 상황이었다. 한대화 감독은 로테이션을 조정해주는 등 류현진을 관리하고 있던 차였다. 이처럼 류현진이 부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김성근 감독은 "류현진은 팀이 어려울 때 안 나온다. 에이스라면 팀이 어려울 때 나와서 이겨줘야 한다"면서 신경전을 펼쳤던 것이다.

이미 한대화 감독이 왼쪽 정강이 상태가 좋지 않은 류현진의 등판일을 조정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류현진이 제 컨디션이 아님을 확인한 김성근 감독은 8월 13일 인터뷰에서 22일 SK-한화전에 김광현을 선발 등판시킬 것임을 밝힌 후 "이번에 류현진이 등판하지 않으면 한대화 감독이 피하는 것이다."면서 도발했다. 결국 류현진이 8월 22일 SK전을 거르자 김성근 감독이 "에이스라면 팀이 어려울 때 나와야 한다"고 발언하여 한화팬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SK전을 거른 류현진은 9일만에 넥센전에 등판했지만 아직 제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난조를 보이면서 퀄리티스타트 기록을 29경기에서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불과 석달전인 5월 23일 김광현과 류현진이 맞대결을 앞두고 있었을 때 김성근 감독은 “류현진이 좋을 땐 조심해야 된다”, “(승산이 불투명한 경기에 넣기엔) 김광현이 아깝다”, "붙여야 할 지 고민스럽다"라고 말하며 자꾸 맞대결을 피하려는 심산을 비췄다. 결국 5월 23일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되어 김광현과 류현진의 맞대결은 무산되었다. 류현진-김광현의 맞대결이 무산되자 많은 야구팬들이 아쉬워했고 이에 한대화 감독은 약 일주일 후인 6월 1일 SK전에 류현진을 투입할 것을 미리 예고했다. 이에 류현진-김광현의 맞대결을 기대하는 전국의 많은 야구팬들이 다시 한번 술렁였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6월 1일에 김광현을 내보낼지에 대한 질문에 계속 애매한 반응을 보이다가 결국 6월 1일 경기에 로테이션상 등판이 유력시되던 김광현이나 송은범 대신 이승호를 깜짝 선발로 투입하여 류현진 등판 경기에 버리는 카드로 사용했다.


2.7. 조정훈 포크볼 너무 많이 던지다가 빨리 간다 - 발언[편집]


2010년 4월 25일 롯데와의 경기를 앞두고, 전날 패전 투수인 롯데 조정훈에 대해 김성근 감독이 포크볼을 너무 많이 던져서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포크볼을 너무 많이 던지다가 부상을 입어 빨리 갈 수도 있다는 것.

전날 24일 경기에서 SK 선발 김광현은 9이닝을 완투하며 5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롯데 선발 조정훈은 8이닝 6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조정훈의 높은 포크볼 구사율에 대해서는 이미 롯데 팬들이나 다른 야구전문가들도 이미 충분히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롯데 팬들도 이 발언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별로 큰 반향은 없었다. 노리타들은 역시 다른 팀 선수까지 걱정해주시는 야신님이라는 찬양의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김성근에 하도 물린 바가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광현의 강력한 다승왕 경쟁자로 떠오른 조정훈 흔들기가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또 선수 혹사로 유명한 김성근은 다른 팀 선수들을 걱정하기에 앞서 자기팀 선수들이 빨리 갈 수도 있다는 걱정부터 먼저 해야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혹사로 유명한 김성근이 타팀 선수가 부상당할 것을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진심을 선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김성근 특유의 상대팀 에이스 흔들기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노리타들은 조정훈 선수를 걱정하는 야신님에게 예의 없이 무슨 말이냐고 비난했다.

비록 선수 혹사로 유명한 김성근의 내로남불성 발언이긴 했지만, 발언 내용 자체가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 그리고 대단히 불행하개도 이 말은 맞게 되었다. 이후 조정훈은 공익근무기간 2년을 포함해 이 시즌 말부터 17시즌 7월까지 장장 7년에 걸친 재활 끝애 복귀하며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날렸고, 18시즌을 끝으로 만33세에 은퇴하게 된다.


2.8. 박현준 로진 사건[편집]


2011년 8월 2일 LG 트윈스 전에서 LG가 3대 1로 앞서나가고 있던 5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김성근 감독이 LG 선발 박현준이 경기 도중 손바닥의 로진을 입으로 부는 투구 습관에 대해 두 번이나 장황한 항의를 했다. 이 사건은 김성근 감독의 항의가 근거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무위로 끝난 해프닝이었으나, 나중에 감독팬들의 사실왜곡으로 인해, 김성근 감독의 항의가 정당한 것이었으나 심판진이 받아들이지 않은 억울한 사건으로 둔갑하여 현재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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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항의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박현준이 투구를 재개하자 김 감독은 한번더 항의했다. 하지만 심판진은 박현준이 입김을 부는 동작이 부정행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김성근 감독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심판진은 투수가 로진을 많이 묻힌 채로 투구할 경우 로진이 날려 타자의 타격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박현준이 입김으로 로진을 털어내는 것을 옳은 행위라고 판정했다. 김성근 감독이 들어가자 LG의 野石 박종훈 감독이 발끈해서 항의를 했다. 박종훈 감독은 선수의 투구습관을 가지고 왜 항의하느냐고 어필했고, 아울러 한번 항의를 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가지고 다시 항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을 심판에게 전달했다. 네이버 중계창에는 별 걸 가지고 다 항의를 한다며 비난이 쏟아졌다. 김성근 감독의 트집은 이날 호투를 벌이고 있던 박현준에게 SK 타자들이 맥을 못추고 팀이 끌려가다가 승부처에서 박현준을 흔들어 놓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었다. 경기가 속개된 후 박현준은 김성근 감독의 의도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오히려 로진을 꽉꽉 묻히고 로진가루를 더 크게 부는 등 기싸움에 눌리지 않는 패기있는 모습을 보여 LG팬들의 칭찬을 받았다. 경기가 속개된 후 박현준이 SK의 안치용정상호를 연속 내야플라이로 처리하며 5회말을 마무리하자 네이버 중계창의 LG팬과 SK 안티팬들은 권선징악 내야플라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승리투수가 된 박현준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SK 시절부터 해오던 습관이었다. 그 전까지 누구도 그런 행동을 지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어필 내용을 듣고 오히려 승부욕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박현준은 2009년에 SK에 입단하여 2010년 7월 LG로 트레이드될 때까지 김성근 감독과 한솥밥을 먹었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은 다음날(3일) 해명을 하면서 전날(2일) 경기 후 직접 알아본 몇가지 내용를 교묘히 덧붙히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물타기에 들어갔다. 경기 후에 박현준이 로진을 얼마나 쓰냐고 물어본 일, 일본 지인에게 전화로 물어본 내용, 자신이 박현준의 투수 시간을 직접 다시 측정해본 것 등등을 뒤늦게 언급한 것이다. 또 갑자기 스피드업 규정 얘기를 꺼내 전날 박현준의 투구와 연결지었다. "내가 계산해 봤더니 박현준이 손 위에 로진백을 올린 뒤 통통 치는 동작과 훅 부는 것까지 5초~6초는 걸리더라. 한 경기로 치면 15분~20분이 걸린다는 얘기. 그 동작들을 다 하고 난 뒤에 사인을 본다. 그럴 땐 12초 룰이 뭔가 싶다"며 심판들이 스피드업 관련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처음에 5초~6초 걸린다고 말했을 뿐 전체 동작이 12초 넘게 걸린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실제 박현준이 12초룰을 어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어쨌거나 이날(3일) 김 감독의 발언은 사건의 논점을 흐리는 발언이다. 김성근 감독이 전날 항의한 내용은 박현준이 로진을 부는 행위 자체에 대한 것에 국한되어 있었고 이는 규정에 위배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주심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팬들은 이날(3일) 김성근 감독의 교묘한 물타기성 해명 발언을 바탕으로 역사왜곡을 시작했다. 이들은 2일 경기에서 김성근 감독이 로진을 많이 묻힌 행위에 대한 항의를 했고 이는 규정에 따른 정당한 항의였다면서 사실을 날조했다. 과거 로진의 과다하게 묻히는 행동은 규제대상이 아니었지만 2010년부터 로진을 과다하게 묻히는 행위를 직접 규제할 수 있도록 규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또 2010년의 야구규정 개정이 스피드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8월 3일 발언 중 스피드업 관련 발언과 교묘히 연결해서 사실을 왜곡했다. 심지어 김성근 팬들은 사건당일(2일)에 심판진들이 결국 김성근 감독의 항의를 받아들였다고까지 왜곡했다. 그러자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김성근 팬들의 날조된 주장과 이를 바로잡으려 팩트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뒤엉켜 키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왜곡된 사실이 인터넷에 널리 떠돌면서 안타깝게도 사건의 진상을 이렇게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건의 팩트는 김성근 감독은 사건 당일 '로진을 부는 행위'에 대해서만 어필을 했고, '로진을 많이 묻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필하지 않았으며, 심판진들은 규정에 따라 김성근 감독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2.9. 박찬호 한화 복귀 반대 및 말바꾸기[편집]


2011년 12월 박찬호의 한화 복귀를 특혜라며 반대하면서 이미 특별지명된 김병현, (자기 팀이었던) 추신수 복귀시의 문제를 근거로 들어 대인배 박찬호가 자신의 연봉 전액을 전액 유소년 야구발전 기금으로 기부하면서 논란을 정리하였다. 반면 자신의 팀인 고양원더스의 정영일, 남윤성이 해외진출후 복귀시 제재조항을 원칙대로 적용하여 2년간 프로팀과 경기를 뛸 수 없게 되자 독소조항이라며 반발했다.#


3. 타팀 관련 지적에 발언[편집]



3.1. 부정망망이 논란[편집]


1997년 5월 5일 삼성-LG 3연전에서 LG 천보성 감독이 삼성이 부정배트를 사용한다고 항의한 부정방망이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KBO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한 이는 정작 천보성 감독이 아닌 쌍방울 김성근 감독이었다. 5월 29일 김성근 감독은 KBO에 공문을 보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KBO 관계자들이 미국, 일본에 출장을 가며 고생을 한 끝에 미국 조사기관에서 배트는 정상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김성근 감독은 부정방망이 이의 공문을 보내기 하루 전날인 5월 28일 현대 유니콘스 선수들이 야구규칙에 명시되지 않은 검정색 방망이를 사용한다고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소했다. KBO는 출범 당시 유색 방망이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으나 지난 88년 다갈색 방망이에 한해 허용한 이후 이 규정은 사문화되어 1997년 당시 검정색, 담황색, 암갈색 등 대부분의 선수들이 유색방망이를 써왔다. 김성근 감독의 방망이 색깔 파동은 당시 쌍방울이 1승6패의 부진에 빠지자 분위기 전환용으로 라이벌 팀의 트집을 잡은 것으로 풀이되었다. 김성근 감독의 이러한 행태는 누워서 침뱉기, 프로야구 죽이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더군다나 쌍방울 선수들도 제소하기 전날까지도 검정색 방망이를 거리낌없이 휘둘러왔다는 사실이 밝혀져 김성근 감독은 큰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3.2. 마운드 높이 시비 논란[편집]


1998년 후반기 개막일인 7월 11일 수원야구장에서 열린 현대-쌍방울 전에서 김성근 감독이 "마운드가 규정보다 아주 높아 보인다."며 김병주 주심에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첫 타자 조원우를 타석에 보내지 않아 경기 시작이 39분이나 지연된 끝에 퇴장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성근 감독이 퇴장당하자 쌍방울 프런트가 선수들을 경기에 투입하도록 지시하여 경기가 시작되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쌍방울의 정식 이의제기를 접수한 KBO는 이날 밤 10시 40분께 이상일 운영부장이 토목기사 한 명을 대동, 수원구장으로 급히 가서 구장 시설계장과 양팀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운드 높이를 실측했다. 그 결과 마운드의 높이는 41cm(16.27인치)로 규정(10인치)보다 높게 나와 KBO는 수원구장 측에 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여론은 김성근 감독이 마운드 높이에 대해 이의 제기한 것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당시 메이저리그도 투고타저, 타고투저가 있을 때 마다 마운드높이 규정을 수시로 바꾸는 등 국제적인 기준이 일관되지 않았기에 KBO도 마운드 높이에 대해 크게 제재하지는 않았고 각 구장이 마운드 높이를 조절하는 것은 홈팀 어드밴티지로 여겨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날 김성근 감독이 마운드높이를 항의하다 퇴장당하자 당시 언론들은 마운드가 높을 경우 현대 선발 정민태처럼 오버핸드 투수에게는 유리하지만 쌍방울 김기덕같이 언더핸드 투수에게는 불리하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이 마운드 높이로 시비를 걸고 있다고 김 감독을 비판했다. 또 부정 방망이 사건 때도 김 감독이 본인의 팀은 방망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팀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항의했던 누워서 침뱉기,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행태를 다시한번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성근 감독 자신은 언더핸드가 많은 쌍방울의 특성을 활용하기 위해 전주구장도 마운드 높이를 규정보다 훨씬 낮게 유지할 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구장의 마운드 높이를 문제삼는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또 방망이 색깔이나 마운드 높이처럼 당시 사문화되어 KBO가 실제로 규제하지 않던 부분에 대해서 트집잡기식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 팀이 연패로 상황이 좋지 않을 때마다 상대팀의 트집을 잡아 자신의 팀의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이용하려 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앙금이 결국 빈볼 사건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는 점 등도 거론되면서 김 감독에 대한 비판은 거세졌다.

이 사건은 해묵은 쌍방울-현대 간의 마운드 높이 시비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그 시작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성근 감독은 팀이 재정이 풍부했던 현대에 대해 오기가 발동해서 마운드 높이, 박재홍 타격자세 등으로 현대 측에 계속 시비를 걸었다.


▲ 1996년 플레이오프 당시 쌍방울 김성근 감독이 평지처럼 평평하게 깎은 전주구장 마운드[4]

하지만 위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김성근 감독은 정작 쌍방울의 전주구장의 마운드는 규정보다 훨씬 낮게 평지수준으로 깎았다.[5] 현대는 주로 정통파 스타일 투수들로 낮은 마운드에 적응하기가 힘든 반면 쌍방울은 성영재, 김기덕, 김현욱 등 언더핸드 투수들이 주류를 이뤄 낮은 마운드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마운드를 깎은 덕분인지 쌍방울 레이더스는 전주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연승했지만 전주구장을 떠나 인천과 잠실에서 열린 3, 4, 5차전에서 내리 패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김성근 감독은 플레이오프에서 2연승한 뒤 3연패로 탈락하자 "3차전부터 갑자기 판정에 문제가 많았다."면서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여기서 말하는 "판정"이라는 건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현대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그 당시 해태의 선수나 코칭스태프 출신들이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현대한테 유리했다고 증언한다. 그 당시 해태는 현대보다 쌍방울을 껄끄러워했고, 한국시리즈를 쌍방울이랑 붙을 것을 염두에 뒀으나, 현대가 유리한 판정을 받고 올라오자 해태는 다른 방면의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김응용 감독은 6차전 주심이 현대한테 너무 유리한 판정을 내리자 6차전 주심의 이름을 듣고 아예 7차전을 염두에 둘 정도였다고 한다. 6차전 도중에 최해식이 주심한테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항의하고 퇴장당하고 나서야 해태는 승기를 잡고 6차전에 우승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해태 출신들은 1996년 한국시리즈는 최해식 덕에 우승했다고 말한다. 이를 근거로 마운드 문제와 별개로 판정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가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훗날에도 김성근 감독은 박동희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현대는 리그 최고의 부자구단이었다. 그래서인가. 이상하게 3차전부터 심판 판정이 석연치 않았다. 선수들 사이에서 ‘저래도 되는 거냐’고 발끈할 만큼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이 이어졌다. 그러다 조금씩 경기가 말리기 시작했는데 결국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꼬이고 말았다.”


1998년 7월 11일에 벌어진 사건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KBO가 마운드높이를 대충 넘겨왔다는 잘잘못을 떠나, 김성근 감독이 자신은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서 타 구단이 마운드 높이가 규정에 맞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한 점, 그리고 연패를 당하던 쌍방울의 팀 분위기 전환용으로 물고 늘어진 점 등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이 사건 이후 KBO는 전구장의 마운드 높이를 규정에 맞추도록 지시했다.

이후 김성근은 이듬해인 1999년에도 다시 한번 수원구장 마운드가 높이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KBO는 토목기술자를 대동해 전국의 모든 구장을 1박2일간 뛰어다니면서 마운드를 쟀다. 결과는 ‘문제없음’으로 나타났다. #

훗날 김성근 감독은 인터뷰와 강연 등에서, 당시에 자신이 내로남불 행태로 크게 비난받았던 사실은 감추고, 본인이 퇴장도 불사하고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에 전구장의 마운드높이가 통일되어 한국야구 선진화를 앞당겼다면서 자신의 업적으로 사실을 왜곡, 미화했다. 김성근 감독의 미화, 왜곡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고 김성근 감독이 야구장 마운드높이 통일의 주역임을 찬양하는 글들이 구글을 검색하면 수도 없이 나왔었다. 그러나 현재는 많이 삭제된 상황이다.


3.3. 2002년 한국시리즈 폄하 발언[편집]


김성근 감독은 2011년 11월 5일, 그의 자서전 중 하나인 <김성근이다>를 출간했는데 여기서 나온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더러운 거 덮는다고 덮어지는 게 아니다. 눈에는 안 보일지 몰라도 결국 속에서는 썩어간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만 생각해도 그렇다. 그냥 승자 위주로 넘어간다. 내용을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가 갈릴 뿐이지 내용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냥 덮어버린다. 그러니까 강자가 독식하고, 돈 많은 사람만 잘 사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야구를 위해 준비한 노력과 실력은 다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일부 야구팬 커뮤니티에서 당시 6차전에 대한 복기에 들어갔지만 석연찮은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아무런 증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고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폄하한 것에 대해 졸렬하다고 매우 까였다. # # 아울러 LG 트윈스를 졸지에 돈 없는 구단, 약자인 구단으로 매도한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3.4. 롯데 외국인 감독 선임 관련 말바꾸기[편집]


2008 시즌을 앞두고 롯데 자이언츠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출신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하자 SK 김성근 감독은 극도의 적대감을 표출했다. 김성근 감독은 "이제 롯데에게는 질 수 없다. 롯데를 상대로는 어떻게든 이기겠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김 감독은 "로이스터 감독은 미국 메이저리그를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롯데와의 대결은 한국야구와 미국야구의 대결이라 볼 수 있다. 절대 질 수 없다"라고 밝혔다. 며칠 후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김성근 감독은 "일본 오릭스의 테리 콜린스 감독이 메이저리그식으로 팀을 운영하다가 실패했다"면서 로이스터호 롯데에 대해도 비관적인 전망을 표명했다. 김성근 감독은 과거 삼성 감독 시절에도 구단 전통인 LA 다저스와의 합동 전지 훈련 일정을 축소하자고 주장했던 것을 비롯하여, 메이저리그 야구에 대해 극단적인 반감을 드러내곤 했는데, 이는 기회있을 때 마다 일본 야구가 우리나라 보다 한 단계 높은 선진야구이며, 일본 야구를 배워야 한다고 말해 온 것과는 사뭇 상반된 모습이다.

그런데 로이스터 감독이 선임되기 전인 2007년 김성근 감독은 한국야구계가 변화를 무서워하고 손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에 외국인 감독이 선임되지 못하다면서 야구계를 비판한 바 있다. 당시 김 감독은 "일본이다, 한국이다 하는 좁은 생각들을 해선 안된다. 나라와 나라가 아니라 야구인으로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축구는 외국인 감독이 이미 흔하고, 일본 프로야구 역시 외국인 감독이 4명이나 되지 않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한데 모두 변화를 무서워하고 손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외국인 감독이 아직 안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6] 김성근 감독이 생각한 외국인 감독은 일본인에게만 해당하는 듯

2009년 7월 19일 문학구장에서 롯데와의 시즌 14차전을 앞둔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이 "우리는 더러운 야구를 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여 야구팬들에게 파문을 일으켰다. 김성근 감독은 "왜 SK 야구가 지저분하다는 것이냐"라고 말하며, 유독 SK가 상대 타자를 위협하는 빈볼을 많이 던진다는 세간의 시선은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부인했다. 또 김성근 감독은 "우리는 5점차로 이기고 있어도 8, 9회 번트 한 번 한 적 없다. 역사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경기 풀영상

한편 이날 롯데가 SK를 16대6으로 크게 앞서고 있던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롯데 로이스터 감독이 나승현에서 이정훈으로 투수를 교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SK가 헌납한 16실점은 김성근 감독이 SK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역대 최다 실점 기록이었다. 롯데의 9회말 2아웃 투수 교체는 좀처럼 투수교체를 하지 않았던 로이스터 감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교체였는데, 이는 크게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도 9회말 2아웃 이후에 정대현 등으로 투수를 교체하는 일이 많아 다른팀의 반발을 샀던 김성근 감독에 대한 보여주기 교체였다는 해석이 많았다. 이를 지켜보던 7개팀 야구팬들이 매우 통쾌해 했다고.


3.5. 롯데 관중 야유 비판[편집]


경기 영상

2009년 7월 18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전에서 롯데팬들이 SK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이날 롯데팬들의 야유는 그동안 SK와 여러차례 빈볼 사건이 이어져 오던 끝에 4월 23일 롯데의 주장 조성환이 광대뼈 함몰의 부상을 입는 등 그간 SK에 누적된 앙금이 표출되었기 때문으로 풀이되었다. 이날 경기에서 패한 김성근 감독은 "보는 매너가 필요하다"라며 롯데 관중들을 비판하여 논란을 확대했다.


3.6. "KIA랑만 하면 이상하게 판정에 문제가 생긴다" 발언 논란[편집]


2009년 8월 24일, 인터뷰에서 KIA랑 경기하면 유독 오심이 많다라고 말했다. "KIA랑만 하면 이상하게 판정에 문제가 생긴다. 우연인지 몰라도 그것 때문에 승패가 갈린다"라고 인터뷰 한 것이 논란을 야기했다. 심지어 김성근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까지 "올해 KIA하고만 하면 심판 문제가 걸린다"며 시비를 야기했다. 그러나 이런식으로 특정팀이 편파 이득을 보고 있다는식의 인터뷰는 신중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언론에서도 이를 김성근 감독의 장외 심리전으로 해석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게다가 김감독의 인터뷰내용은 한동안 KIA를 싫어하는 야구팬들이 지역드립을 칠때 사용되기도 했다.[7]

파일:7차전 5번째 점수.jpg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SK가 오심으로 이득을 보았다. 그것도 7차전에서. 심지어 그 점수는 4:1에서 5:1로 벌어지는 점수였으며 이 점수가 나자마자 하일성을 비롯한 야구계 인사들은 경기가 기울어진 것으로 보고 야구장을 떠났으나.... 모두가 알다시피 그 해 기아의 최대 장점인 장타를 앞세워(내야 안타-홈런-홈런-3루타-볼넷-땅볼-2루타[8]-홈런[9]) 우승을 차지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주심인 임채섭 주심은 기아 팬들에게 영원히 까일 뻔했다.

하지만 1년전인 2008년 11월 14일 아시아시리즈 세이부전에서 SK 박재홍의 파울이 심판의 오심 덕분에 홈런으로 선언되었을 때 김성근 감독이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 세이부는 심판 핑계 말아야라고 인터뷰한 바 있었다. 이 자료가 발굴되면서 야구팬들에게 김성근 감독의 아전인수식 말바꾸기 행태가 다시한번 도마에 올랐다. 역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후 프로야구 심판 매수 사건이 터지면서 이 말이 주목받는 듯했지만 금품을 건넨 시점은 2013년으로 그 해 기아는 꼴찌에서 2등을 하였다. 그 전설의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 시즌으로, 이후 검찰수사로 이어졌으나 저 말이 나온 시점에서는 금품 수수 사실이 없어 다시 잊혀졌다. 물론 돈 먹이고도 8등하는 팀이라는 조롱은 들었지만. 그리고 그 해 KIA는 우승했다.


3.7. 양준혁 덕아웃 사건[편집]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의 양준혁이 덕아웃에 앉는 것에 대해 SK 김성근 감독이 반대의견을 피력한 것에 대해 크게 논란이 일었다. 양준혁은 포스트시즌 전인 9월 19일 은퇴식은 하였으나 아직 현역 선수로 등록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규정[10]상으로는 덕아웃에 앉을 수 없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두산의 양해를 얻어 덕아웃에서 경기를 관전했다.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는 플레이오프의 양준혁 이외에도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의 박기혁 등이 엔트리에서는 빠졌지만 덕아웃에 있었다.

10월 14일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 때 "양준혁이 덕아웃에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자 김성근 감독은 "인간적으로 양준혁과 나는 친하다. 선 감독과의 인간관계도 있다. 그러나 원리원칙에 벗어나는 일이 너무 많다. KBO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KBO도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양준혁이 삼성 덕아웃에 앉는 건 엔트리에 없는 코치 한 명이 더 앉는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양준혁이 벤치에 앉으면 결국 항의를 할 것이다."라며 원칙론을 펼치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또 김성근 감독은 "나는 양준혁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싶지 않다. 양준혁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삼성이 조심할 문제다."라며 삼성 구단측에 경고를 보냈다.

결국 양준혁은 한국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 팀 버스에서 혼자 남아 쓸쓸히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거의 확정되고 삼성의 패색이 짙었던 마지막 4차전에는 양준혁 스스로 덕아웃에 들어가 삼성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이미 SK의 우승이 거의 확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SK측에서는 굳이 이에 대해 항의하지는 않았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김성근 감독은 4차전에서 양준혁이 벤치에 앉은 것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김성근 감독의 이같은 원칙론이 논란을 야기한 것은 몰인정하다는 등의 여타의 비난들을 다 떠나서, 정작 김성근 감독 본인이 스스로 내세운 원칙론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포스트시즌에서 부상으로 엔트리에 등록되지 않았던 SK의 김광현, 전병두가 한국시리즈 때 덕아웃 벤치에서 경기를 관전했다.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또 김성근은 2005년 치바 롯데 마린스에서 이승엽의 개인 인스트럭터 시절을 하던 시절에도 마린스의 정식 코칭스태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승엽 관리(주로 통역) 명목으로 덕아웃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2005 리그 우승 당시 중계 영상. 1분 5초~10초 쯤에 잠깐 나온다.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 중계 영상. 2분 22초 전후 쯤에 잠깐 나온다.

이후 2015년 한화 감독 당시 아직 1군 등록되지 않은 외인선수 로저스가 덕아웃에서 관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규정을 지키려는 모습이 없었다. 규정으로 보면 심판원 내보내야 하나 양준혁 사건 이전에도 상대팀의 지적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는 관례가 있었고[11] 양준혁 사건 이후로도 어느 팀이든 별말이 안나오고 있다.


3.8. 한화 2군 선수 SK 오면 주전으로 뛸 수 있다 - 발언[편집]


2011년 4월 21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김성근 감독은 "SK 전력은 강한 편이 아니다"며 "한화에도 잘하는 선수들이 있다. 2군에서 뛰고 있는 나성용과 김용호가 SK에 오면 바로 주전으로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우승팀 SK에서도 충분히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기량을 갖춘 선수들을 하위권팀인 한화가 2군에서 썩히고 있다는 것.

김성근 감독의 이같은 발언이 전해지자 한화 한대화 감독은 "어휴~ 험한 말 나올뻔 했네"라면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 감독은 할 말을 잊은 듯 '허허'라며 웃다가 "안 좋은 말 나올 뻔 했다"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국가대표 선수 8명이나 데리고 있는 감독님이…"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 감독은 "그럼 트레이드 하자고 전해달라. 박정권이랑 정상호랑 2:2 트레이드 하면 딱 좋겠네~"라고 말했다. "이렇게 공개 트레이드를 제안한 것도 처음이다. 임훈이라도 달라. 김 감독님께서는 없는 집 살림을 욕심내신다. 지난 해에도 윤규진을 그렇게 탐내하시더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4. 타팀 비하 발언[편집]




4.1. 두산, KIA 개미 비하 발언[편집]


2009년 6월 기자들과 인터뷰하면서 등산에 이야기를 하다가, 순위경쟁을 하는 두산과 기아를 개미로 비하하여 해당팀 팬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재밌게도 그 해 한국시리즈인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개미 취급 당한 기아가 역사에 남을 끝내기 홈런으로 SK를 털었다.


4.2. 롯데는 모래알 같은 팀 발언[편집]


2010년 5월 31일 성균관대에서 한 '리더십과 직업관' 초청강의에서 "롯데는 모래알 같은 팀"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어 "로또로(롯데가) 번 돈은 쉽게 쓰게 된다. SK는 피땀 흘린 돈이지만 롯데는 그렇지 않다. 이기고 지는 데 아쉬움이 없다"라고 말했다. 강연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롯데 팬들이 분노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김성근 감독은 "롯데가 번 돈"이라는 부분에서 "로또"라고 말한 것이 "롯데"로 와전되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발언의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의 어설픈 해명은 롯데팬들의 분노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결국 김성근 감독은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배재후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12] SK 민경삼 단장도 롯데 배재후 단장에 전화해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또 김성근 감독은 같은 날 인천 한화전에 앞서 기자들에게 모래알 발언을 해명했는데 "당시 롯데가 11-10까지 쫓아와 어떡하나 싶었는데 5회부터 타자들의 스윙이 제멋대로 바뀌어 있었다. 모두 커져 있었다. 그러더니 마치 모래알처럼 스르르 쉽게 가버리더라. 그래서 재미있게 표현하려다 그렇게 나온 말이다. 롯데를 폄하하려는 뜻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게 뭔 해명인지 롯데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이런 해명에 더 어이없어 했다.

논란의 배경에는 당시 KBO의 두 개의 큰 조류였던 김성근식 야구와 로이스터식 야구의 대립[13]과도 관련있다. (관련 기사 '김성근 식이냐, 로이스터 식이냐') 2008년 시즌 초 롯데가 연승을 달리며 선두를 질주하면서 돌풍을 일으키자 그렇지 않아도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던 언론에서는 전년도에 우승을 차지한 SK 김성근 감독의 관리야구, 데이터야구와 롯데 로이스터 감독의 메이저리그식 자율야구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당연히 기사들의 논조는 로이스터의 메이저리그식 자율야구에 판정승을 주는 뉘앙스가 많았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그런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스토브리그 때부터 로이스터의 메이저리그식 야구에 적대감을 표출해왔던 김성근 감독이 이러한 여론에 더욱 자극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애초에 김성근 감독은 첫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가 롯데에 선임되었을 때부터 "이제 롯데에게는 질 수 없다. 다른 팀은 몰라도 롯데를 상대로는 어떻게든 이긴다"라고 말하며 적대감을 표출한 바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로이스터 감독은 미국 메이저리그를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롯데와의 대결은 한국야구와 미국야구의 대결이라 볼 수 있다. 절대 밀릴 수 없다"라고 밝혔다. 로이스터가 선임되기 전인 2007년 김성근 감독은 "한국 야구계가 변화를 무서워하고 손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외국인 감독이 선임되지 못하고 있다."라고 한국 야구계를 비판했지만 정작 첫 외국인 감독인 로이스터가 선임되자 말을 바꾸어 극도로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과거에도 일본야구를 높이 평가한 반면 메이저리그식 야구와 대립각을 세웠는데, 메이저리그 연수 후 국내에서 자율야구를 표방한 이광환 감독과의 갈등을 벌인 것이 대표적이고, 삼성 감독 시절에도 구단이 과거부터 해왔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합동 훈련에 반발하는 등 미국식 야구를 추구해온 삼성에서 색깔지우기에 나서 팀 내외에서 갈등을 일으킨 바 있었다.

김성근 감독과 로이스터 감독의 야구는 여러면에서 대조를 이루었는데, 빈번한 번트와 작전, 잦은 투수교체를 했던 김성근의 SK야구와 달리 로이스터의 야구는 노피어 정신으로 휘두르는 빅볼 야구를 추구했다. 당시 롯데는 작전을 거는 경우가 타팀에 비해 확연히 적었고, 실책도 많았고, 불펜이 난타당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여러 단점들을 오로지 방망이의 힘으로 극복하는 스타일이었다. 투수교체가 빈번했던 SK와 달리 로이스터는 선발이 5점 이상을 얻어터져도 좀처럼 교체하는 일 없이 웬만하면 7회 정도까지 끌고간 후 교체했다. 훈련량에 있어서도 차이가 컸는데, 엄청난 훈령량으로 유명했던 김성근식 야구와 당시에는 파격적일 정도로 팀훈련을 최소화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선수별로 훈련을 하건 휴식을 취하건 자율적으로 했던 로이스터 야구는 여러모로 대척점에 있었다.

김성근 감독이 있는 동안 SK가 3회 우승을 한만큼 김성근의 야구가 높이 평가받았지만, 7년 연속 최하위권에 있던 롯데를 단숨에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로이스터 감독에 열광하는 이들도 많았다. SK의 경우에는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기 전에도 이미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정도로 탄탄한 전력을 보유했던 반면, 7년 동안 최하위였던 꼴데를 강팀을 변모시킨 로이스터의 지도력이 더 낫다는 평도 심심치 않았기에 이러한 평가가 김성근 감독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는 것.

2007년부터 SK와 롯데간에 몇 차례 빈볼,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면서 앙금이 누적된 상황에서 2009년 4월 23일SK 채병용의 사구로 롯데 주장 조성환이 안면함몰 부상을 입어 롯데팬들이 크게 분노하였는데, 이후 7월 18일 사직구장에서 SK와 경기가 다시 열리자 롯데 관중들이 김성근 감독에게 크게 야유를 보냈다. 이에 김성근 감독은 롯데팬들에게 보는 매너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면서 비판을 가한 것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또 다음날인 2009년 7월 19일 롯데가 SK를 16대6으로 앞서고 있던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로이스터 감독이 나승현을 이정훈으로 교체한 사건이 있었다. 좀처럼 투수교체를 하지 않았던 로이스터 감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교체였는데, 이는 크게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도 9회말 2아웃 이후에 정대현을 투입하는 일이 잦았던 김성근 감독에게 '보여주기' 교체라는 해석. 이 사건을 본 나머지 7개 구단의 야구팬들은 매우 통쾌해했다고 김홍식의 야구 칼럼 전했다. 이 사건도 김성근 감독을 크게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김성근 감독이 롯데에 적대감을 가지게 된 이유가 그동안 롯데가 김성근을 한번도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로 기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모래알 발언 사건 당시나 지금이나 프로야구 원년 6개 팀(후신 팀 포함) 중에서 김성근을 한번도 감독이나 코치에 기용하지 않은 팀은 롯데가 유일하다. 과거 마산상고 감독을 역임한 적이 있어 나름 부산/경남권 야구와 인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롯데에서 끝까지 자신을 기용하지 않은 점에 대해 원한이 생겼다는 것.

1993년에는 롯데가 김성근을 감독으로 영입한다는 설이 돌기도 했는데, 결국 물먹은 적도 있었다. 1993년 시즌종료 후 평소 구단과 트러블이 많었던 롯데 강병철 감독이 갑자기 사퇴하고 빙그레 이글스 감독으로 가자 롯데 프런트는 뒤늦게 새로운 감독을 구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감독 경력이 있던 다른 지도자들은 이미 모두 다른 팀에서 영입한 상태였고, 삼성에서 경질된 후 야인생활을 하고 있던 김성근 전 감독만이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언론들은 롯데가 김성근 전 감독을 영입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했으나, 롯데는 메이저리그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김용희 코치를 내부승진으로 신임감독으로 임명했다. #

또한 1992년 준플레이오프에서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삼성이 롯데에게 속절없이 패한 것이 김성근 감독이 삼성에서 경질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악연이 있기도 하다. # 한편 동아일보에서 삼성을 모래알팀이라고 디스한 적이 있는데 이걸 롯데에 되받아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1] 타자석의 선도 타선의 일부라고 명시되어 있음[2] 엔트리말소 시점은 SK와 LG가 경기하던 시점이었으나, 봉중근의 다음 등판예정 경기는 KIA전이었다.[3] 당시 김성근 감독은 4강 싸움 전망을 묻는 질문에 "우리부터가 걱정이라서 그건 모르겠고 홍성흔과 관련해서는 얘기할 게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4] 20초에 김기태 타자가, 2분 20초에 염경엽 2루수가 등장한다.[5] 현대구단과 김재박 감독은 김성근 감독과 달리 전주구장의 마운드높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6] 근데 이것도 김성근이 틀린 부분이 있다. 2007년 당시 당시 NPB 외국인 감독은 닛폰햄트레이 힐만, 치바 롯데바비 발렌타인, 오릭스테리 콜린스, 히로시마마티 브라운 소프트뱅크왕정치. 이렇게 5명이었다. 일단 왕정치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교진군, 호크스와 NPB의 전설 그 자체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으로 생각하지만 엄연한 대만 국적 보유자이며 본인도 스스로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일단 국적 등으로 따지면 엄연한 외국인이다.[7] 이날 김성근 감독의 인터뷰로 인한 논란 과정에서 지역드립이 처음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2009년 한국시리즈 KIA우승 이후 넷상의 지역드립이 대폭발하면서 일베저장소가 형성되었다.[8] 기록은 2루타이나 1히트+1에러가 더 적절하다[9] 끝내기[10] 관련 규정 3.17 양팀의 선수 및 교체 선수는 실제로 경기에 참가하거나 경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거나, 1루 또는 3루의 베이스 코치로 나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 팀의 벤치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경기중에는 선수, 교체선수, 감독, 코치, 트레이너(Trainer), 배트 보이(Bat Boy) 이외는 어떠한 사람도 벤치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페널티:본 조항을 위반하였을 때는 심판원은 경고를 한 뒤 반칙자를 경기장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原註]현역 선수 등록에서 빠진 선수가 경기 전의 연습에 참가하거나 벤치에 앉는 것은 허용된다. 그러나 경기 중에는 투수의 웜업이나 상대팀을 야유하는 등 어떤 행동도 금지된다.[11] 하지만 포스트시즌의 경우 대부분 상대팀 벤치의 양해를 구하는 절차를 거쳤다. 양준혁 사건이 있은 2009년 포스트시즌에서도 준플에서 롯데의 박기혁, 플옵에서 삼성의 양준혁은 모두 상대편 벤치의 양해를 구한 후 덕아웃에 앉았다.[12] 사과했다고는 하나 롯데와 로또를 사람들이 헷갈렸다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갔다.[13] 당시 김경문 감독의 야구도 공격야구로 유명했다. 로이스터와 김경문의 야구를 함께 공격야구로 분류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도루 등의 발야구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에서 발이 느려 도루에는 잼병이었던 롯데 야구와는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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