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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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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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등장인물은 등장인물 문서 참고.


노태건
盧泰建 | No Tae-geon[1][* 실제 노태우의 영어표기는 Roh Tae-Woo이다.]

파일:서울의 봄(영화) 캐릭터 포스터 노태건.jpg

모티브
노태우
계급
소장
직책
제9보병사단
배우
박해준

1. 개요
2. 작중 행적
3. 특징
4. 실제 인물과의 비교
5. 기타



1. 개요[편집]


열차가 앞만 보고 달리는데, 여기 뛰어내릴 사람 있습니까?


내는 겁 안 뭇데이. 알제?[2]

영화 서울의 봄의 등장인물로, 반란군 측 서브 주인공이자 이 영화의 서브 빌런. 하나회의 2인자이자 전두광의 가장 믿을 만한 친구이다.[3]


2. 작중 행적[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전방부대(9사단)의 사단장을 맡고 있다. 10.26 사건 이후 합수본부장으로서 권력실세로 떠오른 전두광의 막역한 친구인데, 전두광이 잇다른 월권으로 육군참모총장인 정상호의 눈밖에 나 좌천의 위기에 처하자 걱정하고 전두광이 반란으로 정상호를 제거하고 군부를 장악할 계획을 밝히자 처음에는 펄쩍 뛰지만 결국 친구의 부탁에 반란에 가담한다.

12월 12일 거사를 일으킨 반란군은 정상호 총장을 체포하여 성공하는 듯 했으나, 최한규 대통령이 연행안을 재가해주지 않고, 진압군측이 병력을 동원하자 반란군은 위기에 몰린다. 이때 노태건은 전두광의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던 자기 부대를 빼내 서울로 투입하는 결단을 내린다. 이와 함께 각 진압군 부대측에 있던 하나회 회원들은 전두광의 명령을 떠받을어 자기들의 상관에게 하극상을 벌이는 사태가 벌어져 결국 반란은 성공한다.

결국 노태건은 반란 성공의 1등공신이 되며, 다음날 12월 13일 보안사에서 전두광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3. 특징[편집]


화끈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전두광에 비해 노태건은 비교적 소심하고 심지가 약하며 온건하고 합리적인듯한 다소간 수동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긴 했지만 이태신 사살을 막았고, 전두광의 행동들에 대해 놀라거나 되묻는 장면 등 그나마 나름대로의 선을 지키는 모습을 보인다. 전두광이 일을 벌이기 전까지 감히 자신들이 쿠데타 수준까지 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하며 계속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4] 이는 모티브인 노태우의 대통령 시절 별명이기도 한 '물태우'라는 이미지를 각색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사건 발발 이후에는 달라진다. 너라도 내 편을 들어달라는 전두광을 격려하거나 자신은 겁 안 먹었다고 분위기를 풀어주는 등 두려움 있던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 강조된다. 그리고 전두광이 부재하는 동안 경비단에서 다른 장성들을 통솔하고 김준엽 준장이 총리공관 경비대에게 전두광 체포 명령을 내리자 당장 총리공관에서 벗어날 것을 지시하는 등 2인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한다.

사실 다소 흔들렸을뿐, 군사 반란 구상 단계부터 계속해서 노태건은 보이지 않게 오른팔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두광이 다른 장성들을 이끌고 대통령 재가를 받으러 갈 때에도 본부를 지킨다. 또 처음에 하나회에게 반란 계획을 설명할 때 멤버들이 의구심을 표하자 전두광이 준장 이하의 후배 쪽 전등을 먼저 끄며 분위기를 잡고, 노태건이 소장~중장 쪽 전등을 이어 끄며 동조해 준다. 2공수를 출동시키란 지시를 받은 도희철이 망설이자 "형이 (전화)걸어줄까?"라고 압박을 넣은 것도 노태건이었다.

이래저래 휘둘리기 보다는 이제까지 챙긴 게 있으니 그거라도 잡아야겠다 생각하고 반란에 가담하는 등 결정력과 상황 판단 능력은 있다. 전황 하나하나에 줏대없이 흔들리는 다른 하나회 장성들에게 "열차가 앞만 보고 달리는데, 여기 뛰어내릴 사람 있습니까?"라고 다그치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관할부대인 9사단의 2개 연대를 동원하는 결정도 능동적으로 내리며[5] 사분오열을 방지하는 등 2인자로서의 리더십도 보여준다. 물론 결말에서 전두광에게 '우리 아직 친구 맞제?'란 말로 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친구 관계라도 전두광이 우위에 있어 보인다.


4. 실제 인물과의 비교[편집]



  •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보다 외모나 말투에서 현실고증이 잘 되어 있다. 실제로 전두환은 대구광역시에서 성장했지만, 사투리가 심한 편은 아니었던 반면, 노태우는 대구 토박이라서 사투리가 매우 심했다.

  • 영화에서 노태건과 전두광은 막역한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실제로도 노태우가 전두환보다 1살 어리긴 했지만, 육사 11기 동기였기 때문에 둘은 허물없이 반말하며 지내는 친구 사이였다. 문민정부 당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으로 둘 다 감옥에 간 뒤 법정에 출석했을 때 아래와 같이 반말로 문답이 오갔다는 기록이 있다.
전두환: "자네 구치소에서는 계란 프라이 주나?"
노태우: "안 준다."
전두환: "우리도 안 줘."
이는 이전에 12.12 군사반란을 다뤘던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반말을 하고 노태우는 '전 장군'이라고 존대하며 반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연출한 것과 대비된다.[6]

  • 노태건이 마지막에 전두광에게 "우리 아직 친구 맞제"라고 하는 장면은 쿠데타의 주역으로 시대의 주인이 되어가는 전두환과 2인자로 굳어지는 노태우의 사이가 친구에서 주군과 가신으로 바뀌게 되는 운명을 암시하는 대사이다.

  • 노태우는 실제 역사에서도 고명승에게 전화로 지시를 내려 청와대 경비병들을 불법 출동 시켜 총리 공관을 접수하고 전두환의 신변을 보호하였으며, 또한 영화에서처럼 9사단 병력을 서울로 출동시켜 쿠데타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노태우는 육사 성적도 전두환보다 훨씬 좋은 엘리트였지만, 하나회를 비롯한 군대에서나 청와대서나 철저하게 2인자 역할을 했다. 이 때문인지 두 사람이 친구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우열 의식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두환 퇴임 이후 서로 멀어진 이유가 이때의 기억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또한 노태우 본인은 6.29 선언의 역사적 의미와 자신이 민주화 이후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란 상징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 노태우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전두환에 비해 좋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노태우는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기에 전두환에게는 없었던 정당성과 정통성을 모두 가졌던 대통령이다.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도 노태우가 전두환보다 훨씬 좋다. 북방외교 및 남북한 UN 동시가입 등이 노태우 정부의 업적이다.[7] 그리고 수감 생활을 마치고 칩거하며 아들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유언으로도 용서를 구하는 등 참회의 의사를 여러 번 남겼다. 또 5공과 비자금 조성 재판의 추징금까지 모두 납부하고 이후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5. 기타[편집]


  • 극중 9사단 출동을 지시할 때 참모장을 설득하면서 "믿어 주세요!"하는 장면이 있는데, 노태우 재임시기를 살아봤거나 관련된 유머를 아는 세대에게는 웃음을 준다. 이는 실제 노태우가 13대 대통령 선거 유세 도중에 했던 말이기도 하다.

  • 노태건을 연기한 박해준은 실존인물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상당히 유사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다. 노태우의 아들인 노재헌과도 관상이 비슷하다.

  • 박해준은 미생에서 사내정치 중간에서 얽혀 고통받는 천관웅 차장 역을 연기했는데, 그 특유의 후달리는 심정 연기를 여기에서도 잘 해내었다고 평가 받는다.

  • 작중 '열차가 앞만 보고 달리는데, 여기 뛰어내릴 사람 있습니까?'라는 대사를 하는데, 실제 노태우는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렸다가 콘크리트 구조물에 머리를 박고 큰 부상을 입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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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밥그릇 , 클 , 세울 [2] 노태건의 심경 변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초반부 반란군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 전두광에게 반발하는 장군들을 말리면서도 전두광의 과감한 작전에 반발하기도 하는 등 양쪽 사이에 치여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이에 대해 전두광에게서 "너도 똑같애 임마!"라는 일갈을 듣고 고민 끝에 각성하면서 던지는 말이 저 대사이다. 해당 장면 이후 노태건은 전두광을 전적으로 지지하게 된다.[3] 전두광의 집을 찾아갔을 때 전두광이 방석을 아무렇게나 던져주자 역시 격없이 발로 방석을 고쳐 받고, 오랜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도 하며, 상황을 뒤집어버린다는 속마음도 유일하게 듣는 등 확실히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4] 이는 작전을 12월 12일에 진행할지, 연기할지 의견이 갈리던 전두광과의 보안사령관실 독대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자신과 전두광의 차이를 불평하다 혼자 담배를 붙이지 못하며 투덜대고 있자, 전두광이 피던 담배의 불씨를 옮겨 붙여준다. 전두광이 노태건의 두려움을 떨쳐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장면이다.[5] 미군의 통제를 받지 않아 전황을 바꿀 열쇠였던 2공수의 여단장 도희철이 전두광의 지시로 부대를 출동시킨 것과 대조된다. 물론 북한의 남침을 막아야 할 전방부대를 반란에 돌린 노태건은 작중에서도 나오듯 '미친 짓'을 한 것이 맞다.[6] 다만 전두환과 육사 11기 동기생이긴 했지만, 노태우가 1살 어렸기 때문에 완전 친구 처럼 편하게 반말을 쓰진 않고 반존대 정도의 말투를 구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군대에서는 계급이 전부긴 하지만 나이가 많은 부사관들이나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선배에겐 반존대, 해요체를 쓰는 등 유교적인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7] 노태우 정부/평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