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SS기갑사단

덤프버전 :



다스 라이히[* Das Reich. 제국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독일어에서 Reich는 국가라는 뜻에 가깝다. 영어로 번역하면 The Nation. 라이히 문서 참고. 앞의 Das는 영어 관사 The에 해당.]
Das Reich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35px-SS-Panzer-Division_symbol.svg.png
창단일
1939년 8월 9일
해산일
1945년 5월 9일
국가
[[나치 독일|

나치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나치 독일"
행정구
]]

사단가
친위대는 적지에서 행군한다
주요참전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
2. 편제
3. 역사
4. 참여 전투
5. 전쟁범죄
6. 출신 인물
7. 역대 사단장



1. 개요[편집]


2 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는 무장SS의 정예 사단들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SS 페어퓌궁슈트루펜(Verfügungstruppen;전투부대)[1]으로서 첫 편성되었고 폴란드 침공부터 참전한 부대이다. 연대에서 사단으로 개편되면서 무장SS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울 하우서가 초대 사단장을 지냈다. 게다가 무장SS의 참군인으로 불리는 발터 크뤼거도 이 사단의 사단장이었다.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 SS 사단이고, 또한 SS 사단들 중에서도 1 SS기갑사단 LSSAH, 5 SS기갑사단 비킹(20 무장척탄병사단, 에스토니아 나르바 대대 포함) 같은 메이커 사단이라 인기가 높다.


2. 편제[편집]


(이하 1943년 기준 편제)

  • 지휘본부
    • 2 SS기갑정찰연대
    • 2 SS기갑연대
    • 3 SS기갑척탄병연대 '도이칠란트'
    • 4 SS기갑척탄병연대 '데어 퓌러'[2]
    • 2 SS야전기갑보충대대[3]
  • 2 SS기갑공병대대
  • 2 SS기갑포병연대[4]
  • 2 SS기갑대공대대
  • 2 SS차량화로켓포병대대
  • 2 SS기갑통신대대
  • 2 SS기갑사단 보급단

비록 미국에 비해선 기계화보병 및 차량화보병비율이 가면 갈 수록 저하된 것이 무장친위대 부대들의 특성이나, 대표적인 SS 기갑사단들 중에서도 기계화/차량화 비율이 매우 높았다. 또한, 자주포나 차량화통신부대 등 차량화의 비율이 높았기에 기동성도 매우 좋은 부대였다.


3. 역사[편집]


다스 라이히의 원조 격인 SS 페어퓌궁슈트루펜은 1939년 8월 히틀러의 명령으로 인해 생겼다. 육군 최고사령부에 배치되었으며 폴란드 침공에 참여하였으나 이때는 초기의 무장SS 부대들이 그랬듯 큰 공을 세우진 못하였다.
파일:220px-Bundesarchiv_Bild_183-H15390,_Berlin,_Kaserne_der_LSSAH,_Vergatterung.jpg
SS페어퓌궁슈트루펜의 병사[5]
육군 최고사령부는 해당 연대를 해체하려고 했으나, 힘러는 이가 히틀러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아예 이를 사단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게 바로 다스 라이히 사단이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에서는 라이프슈탄다르테 사단과 다른 곳에 배치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전투 이후 프랑스 침공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1941년 초, 정식적으로 무장SS의 부대가 되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배치되었으며, 국방군 사단과는 다른 곳에 배치되었다. 다스 라이히는 이곳에서 프리츠 클링겐베르크[6]의 활약으로 수도인 베오그라드를 점령하였다.

파일:da2f5qx2gg151.jpg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노획한 소련군기를 보여주는 다스 라이히 병사들.

유고슬라비아에서의 활약 이후 다스 라이히는 동부전선에서 중부 집단군에 배치되었다. 소련에서 태풍작전의 선두였다. 하지만 소련에서 전투력의 60 퍼센트를 잃었다. 이후 기갑척탄병사단으로 재편성되었다. 재편성 이후 쿠르스크 전투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후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다. 티거 전차, 판터 전차와 돌격포들을 받았으나, 대부분이 전투경험이 없는 신병들이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방어에 참여했으나, 큰 활약을 하진 못하고 후퇴를 거듭하였다. 이후 아르덴 대공세에 참여하게 되지만 공세는 실패로 끝났고, 전황이 더욱 암울해진 가운데 미군에게 포위되어 1945년 5월 9일 항복하였다.


4. 참여 전투[편집]




5. 전쟁범죄[편집]


다스 라이히는 라이프슈탄다르테나 베테랑들이 싹 갈려나가며 신병 위주로 채워졌음에도 사단의 악습인 전쟁범죄를 끊지 못해 종전기까지도 이어진 전쟁 범죄로 악명높은 토텐코프 등에 비하면 타 SS사단과 달리 정치색을 직접적으로 띠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초창기부터 전쟁 범죄에 무관하진 않았다.


5.1. 민스크 유대인 학살[편집]


1941년 9월경의 동부전선, 독일의 슈츠슈타펠 산하 인종청소부대가 정화작전을 명목으로 인종학살을 실시하자, 다스 라이히는 이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운 전쟁범죄 전과가 있다. 이로 인해 무려 공식 합계 910명이나 되는 학살 피해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5.2. 유고슬라비아 침공[편집]


이 때에도 다스 라이히는 또다시 학살을 저질렀는데 대략 지표로 표기된 학살 피해자들만 무려 200명 안팎으로 죽었다고 한다.[7]


5.3.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편집]


1944년 전쟁 후반기, 다스 라이히는 프랑스 마을 오라두르쉬르글란에서 레지스탕스들이 다스 라이히 장병들을 습격한 것이 발단이 되었고 이 때 다스 라이히 장교레지스탕스에게 생포당했다는 소식에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을 저질렀으며, 장교 구출과 보복으로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는 튈 학살 사건을 추가적으로 저질렀다. 그러나 장교는 납치된 것이 아니었다.


6. 출신 인물[편집]




7. 역대 사단장[편집]


이름
파일:attachment/파울 하우서/Example.jpg
파울 하우서
Paul Hausser
파일:빌헬름 비트리히1.jpg
빌헬름 비트리히
Wilhelm Bittrich
파일:캄프3.jpg
마티아스 클라인하이스터캄프
Matthias Kleinheisterkamp
파일:220px-Georg_Keppler.jpg
게오르크 케플러
Georg Keppler
파일:Vahlherberternst.jpg
헤르베르트-에른스트 팔
Herbert-Ernst Vahl
계급
SS상급집단지도자
SS여단지도자
SS여단지도자
SS집단지도자
SS여단지도자
이름
파일:9725080715103357p.jpg
쿠르트 브라삭
Kurt Brasack
파일:발터 크뤼거.jpg
발터 크뤼거
Walter Krüger
파일:heinz-lammerding-c823f0d3-b5a2-46ba-9b7d-ee4f69c10fd-resize-750.jpg
하인츠 레머딩
Heinz Lammerding
파일:Bundesarchiv_Bild_101III-Zschaeckel-212-09,_Christian_Tychsen.jpg
크리스티안 티센
Christian Tychsen
파일:8257061114084521p.jpg
오토 바움
Otto Baum
계급
SS연대지도자
SS집단지도자
SS여단지도자
SS상급돌격대지도자
SS상급지도자
이름
파일:KreutzK-1.jpg
카를 크로이츠
Karl Kreutz
파일:오스텐도르프.jpg
베르너 오스텐도르프
Werner Ostendorff
파일:RUDOLF_LEHMANN.jpg
루돌프 레만
Rudolf Lehmann
파일:KreutzK-1.jpg
카를 크로이츠
Karl Kreutz

계급
SS집단지도자
SS상급지도자
SS상급지도자
SS집단지도자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14 22:56:57에 나무위키 제2SS기갑사단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Verfügung은 자유롭게 사용가능한 이라는 뜻이고 Truppen은 부대, 즉 병력들이라는 뜻인데 이는 히틀러나 힘러가 자유롭게 동원 가능한 부대라는 의미이다. 일본어 번역에서 옮겨온 특무부대라고도 불리나 아인자츠그루펜 및 SD 보안방첩대 등과 별칭이 겹쳐 동원부대로 해석하는 쪽이 좀 더 정확하다. 즉, 동원연대 출신 사단인 것. 발음은 퍼퓨궁슈터픈에 가깝다.[2] 데어는 'The' 의 용어로 쓰이므로, 총통연대로 불리운다.[3] 위키나 번역에서는 야전교체기갑대대 정도로 표현되나, 올바른 번역은 부대 본 성격을 고려하여 예비동원대대 정도의 어감을 살린 야전기갑보충대대가 적절하다.[4] SS 기계화사단의 돌격포, 자주포 연대를 독일에선 기갑포병연대로 불렀다.[5] 다스 라이히가 아닌 라이프슈탄다르테의 장병들이다.[6] 사실 이 일은 프리츠의 명령 불복종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고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받았다.[7] 당장 암매장, 시신 소각 및 훼손 등을 포함해서 온갖 전쟁범죄 증거 은폐행위를 남발했던 슈츠슈타펠 특성상 200명보단 실제론 국방군과 무장친위대, 일반친위대에 의한 실질적 학살 피해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 수는 오히려 수많은 민주국가들이 매긴 지표 상에선 한 부대 당 저질러온 민간인 학살의 킬카운트가 사실상 수천에서 수만 이상에 이를 것이란 예측과 의혹들이 오히려 정설로도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