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비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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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무장친위대 대장. 친위대에서 가장 뛰어난 명장 중 한명이다.
2. 초기 행적[편집]
독일 중부 베르니게로데에서 태어난 비트리히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에 육군 항공대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해 종전시 중위로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그 후 바이마르 공화국에 잔류한 그는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육해군 항공대의 보유가 금지되자 소련으로 파견되어 항공 교육을 받았다. 1932년엔 친위대에 입대해 이어서 나치당에 입당했다.
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34년에 무장친위대의 전신인 친위대 특무부대에 들어간 비트리히는 <라입슈탄다테 아돌프 히틀러>에 배속되었다가 1939년에 제1연대<도이칠란트>에 배속되어 제2차 세계 대전시 폴란드 침공 및 프랑스 침공작전에 종군했다. 비트리히는 1941년 10월부터 12월에 걸쳐 부상으로 인한 요양을 마치고 파울 하우서 대신 제2 SS 기갑사단<다스 라이히>의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비트리히 휘하의 다스 라이히는 모스크바 공략작전에 참가해 모스크바 근교까지 진격한 공로로 그는 기사 철십자훈장을 받았다. 1943년 2월까지 제8 SS 기병사단<플로리안 가이어>의 사단장으로 일한 비트리히는 루체프와 오룔 지구의 방어전에 참가했다. 1943년 2월부터 1944년 6월까지는 제9 SS기갑사단 <호엔슈타우펜>의 사단장으로 종군했다. 1944년 6월에 다시 제2 SS 기갑군단[1] 의 군단장으로 부임한 비트리히는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을 상대로 대적했다. 8월엔 캉에서 미군에게 포위당했었지만 돌파에 성공했다. 이 일은 히틀러의 호감을 사 그에겐 백엽검 기사철십자훈장이 내려졌다. 독일군이 네덜란드로 후퇴한 뒤 9월 17일에 영국군이 마켓 가든 작전을 개시했다. 영국군은 비트리히의 제2 SS 기갑군단이 진을 치고 있는 아른헴에 낙하했지만 비트리히의 격퇴전에 밀리고 말았다. 이것은 서부전선의 독일군에겐 마지막 승리였다. 그 후 요제프 디트리히의 지휘하에서 제2 SS 기갑군단을 지휘해 헝가리에서 소련군을 격퇴한 비트리히는 1945년 4월부터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방위를 담당했다.
4. 전후 전범재판 및 최후[편집]
1945년 5월 8일에 미군에게 체포된 비트리히는 신병요구로 미군에서 다시 프랑스 정부로 인계되었다. 그는 17명의 레지스탕스를 살해한 혐의로 프랑스 군사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징역형을 살다가 1954년에 석방된 후 서독으로 돌아가 1979년에 바이에른 주의 볼프라츠하우젠에서 사망했다.
5. 매체에서[편집]
마켓 가든 작전을 다룬 영화인 <머나먼 다리>에선 오스트리아의 배우 막시밀리안 셸이 비트리히 역할로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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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9 SS기갑사단과 제10 SS 기갑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