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 클라인하이스터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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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마티아스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친위대 지휘관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때 참전했다.
2. 제1차 세계 대전[편집]
오늘날의 부퍼탈에서 태어난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고교졸업 후 바로 독일육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1914년부터 1915년까지 서부전선에서 종군하다가 1915년부터 1916년에 동부전선, 1916년부터 1918년까지 다시 서부전선에서 싸웠다. 소대장, 대대 부관, 연대 부관 등을 전전하다가 1918년에 큰 부상을 입은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제1,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3. 슈츠슈타펠에 입대하다[편집]
1차 대전 후 자유군단에 참가한 그는 1921년 바이마르 공화국 치하의 국가방위군으로 전속되어 대위까지 진급했고 1933년에 나치당이 정권을 잡자 친위대에 입대했다. 1935년에는 무장친위대의 전신인 친위대 특무부대에 배치되어 파울 하우서의 부관이 되었다. 1937년 4월 20일에 나치당에 입당한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1938년에 부대를 무단이탈해 친위대 내부의 재판을 받기도 했지만 사면되었다. 1938년 12월에 뮌헨으로 이동해 제2 SS 장갑사단<다스 라이히>에 배치된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제3대대장이 되었다.
4.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39년 폴란드 침공시 바르샤바에 있던 독일계 시민을 피신시키는 역할을 맡았던 그는 1940년 5월에 제3 SS 장갑사단 <토텐코프>의 제3 보병연대장이 되었다. 당시 사단장이던 테오도어 아이케와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1941년 7월에 아이케가 부상당하자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잠시 토텐콥프의 사단장 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케와 불화가 더욱 심해지자 그는 석달 후 다시 다스 라이히로 돌아와 동부전선에 배치되었다. 전공을 세워 기사십자장을 받은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1942년 4월까지 다스 라이히의 사단장으로 임명되어졌다. 1942년 4월에 잠시 제6 SS 산악사단<노르트>의 사단장을 맡았지만 이 때는 임무가 주어지지 않아 1942년 6월에 다시 새로 임명되어 1943년 6월까지 노르트를 지휘해 핀란드에서 소련군과 참호전을 전개했다.
이 공적으로 핀란드 정부로부터 자유십자훈장을 받은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1943년 6월까지 제7 SS 장갑군단, 1944년 6월에 제3 SS 장갑군단, 1944년 8월부터 패전까지 제 6 SS 장갑군단의 군단장을 역임했다.
1945년 4월 28일에 베를린을 둘러싸고 공방전을 벌이던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소련군에게 잡히고 말았다.
5. 최후[편집]
포로가 되어 베를린 남동쪽의 할베근처에 수용된 그는 포로가 된 다음날인 4월 29일에 자결했다. 그러나 베를린의 총통부는 그가 사망한 사실을 모르고 백엽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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