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에 데샹/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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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디디에 데샹의 지도자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이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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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모나코 감독 시절

현역 은퇴이후 2001년 33세의 나이에 AS 모나코 감독에 선임되었다. 2002-03 시즌에는 팀이 리그 2위로 마쳤고, 2003-0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체인 팀을 이끌고 준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여 뛰어난 젊은 감독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당시 상대인 FC 포르투의 감독이 조세 무리뉴였고, 모나코는 포르투 상대로 잘 싸웠지만 하필 그 경기에서 주전 선수의 부상 아웃이라는 불운으로 인해 분위기가 와해되어 결국 0대 3으로 아쉽게 패배했다.

이 당시 유벤투스의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었는데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뒀다면 유벤투스 감독으로 부임했을 거라는 것이 정설이다. 2005년 9월 성적 부진과 클럽 수뇌부와의 갈등으로 경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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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감독 시절

2006년 7월 유벤투스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칼초폴리 여파로 세리에 B 소속이 된 유벤투스를 승점 삭감이 있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리그 1위로 세리에 A로 승격하는데 성공시켰다. 승격 이후 보드진에 영입 전권을 요구하였으나 보드진은 이를 거절하였고, 선수 영입 의견에도 역시 마찰이 생겨 결국 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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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감독 시절

이후 2009년 7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선임된 후 첫시즌만에 리그컵과 리그앙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1-12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8강과 리그컵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리그에서는 10위로 부진하였다. 2012년 여름 마르세유와 계약이 만료되었고, 로랑 블랑의 후임으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전임 3명의 감독 아래에서 무너진 대표팀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았지만, 그보다도 블랑의 인종차별 스캔들로 분열된 선수단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하는 일이 급선무었다.

3.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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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으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월드컵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루다.

139경기 89승 28무 22패[1]



3.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편집]


로랑 블랑 후임으로 부임 후 맞이한 첫 메이저 대회인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8강에서 대회 우승팀 독일을 만나 탈락했다. 90분 내내 접전을 벌였으나 아쉽게 석패. 그래도 지난 월드컵과 비교하면 나름 리빌딩에 성공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현대축구에서 귀한 포지션이 된 풀백자원들을 성공적으로 대표팀에 정착시킨 점도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3.2. UEFA 유로 2016[편집]


UEFA 유로 2016을 홈에서 치루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기대했지만, 최종명단 발표 이후 프랑스 현지에서는 의리 엔트리 논란으로 홍명보급으로 까였다. 내용은 여기서 참조하길 바란다.

논란을 뒤로 하고 막강한 전력을 앞세워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우승을 포르투갈에게 내주면서 개최국 우승에 실패했다. 결승전 항목 참조.


3.3.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편집]


예선을 1위로 마친 후 조별리그도 무난히 통과한다. 그 후 16강에서 만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노쇠한 아르헨티나 수비진을 젊고 빠른 프랑스 공격진으로 뚫는데 성공했다. 이후 8강에서 우루과이도 꺾으면서 12년만에 팀을 4강으로 이끄는 데 성공하였다.

4강에서는 황금세대 벨기에를 또 다시 꺾으며 12년만에 결승진출을 이끌었고,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우승에 도전하게 되었다. 참고로 선수시절과 감독시절 월드컵 우승을 모두 경험한 축구인은 브라질의 명장이자 축구 원로인 마리우 자갈루와 독일의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뿐이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4-2로 크로아티아를 대파하면서 자갈루와 베켄바워에 이은 3번째로 선수,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축구인이 되었다. 그리고 베켄바워와 함께 대표팀 주장과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을 이끈 대업적을 이뤄내며 커리어의 최정점에 올라서게 되었다.

러시아 월드컵 이후 계약기간은 UEFA 유로 2020까지 연장되었다. 유로까지 우승할 경우 최초로 월드컵과 유로를 선수와 감독으로 1번씩 우승하는 감독이 된다.[2] 그리고 2019년 12월 계약을 연장함으로써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데샹이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아마도 카타르 월드컵이 데샹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일 것으로 추측되었었다.


3.4. UEFA 유로 2020 ~ UEFA 네이션스 리그/2020-21 시즌[편집]


본선에서 카림 벤제마를 복귀시키는 등 최정예 자원들을 데리고도 조별리그에서 1승 2무를 하며 조 1위는 했지만 꽤 어렵게 16강에 진출하였고[3], 16강 상대는 한 수 아래인 스위스인만큼 가볍게 8강에 가리라는 예상과 달리 뒷심 부족으로 동점이 되는 바람에 연장전을 넘어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고, 킬리안 음바페가 마지막에 실축하면서 8강행 티켓을 스위스한테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지난 대회 디펜딩 챔피언 포르투갈과 준우승한 [4] 프랑스는 나란히 16강에서 탈락했다.[5]

거기에 유로 직전에는 지루가 음바페를 저격하는 인터뷰를 하거나, 수비진간의 다툼과 파바르와 포그바, 바란, 라비오간의 갈등 등 선수단 내부적으로도 분위기도 좋지 않고 갈등이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감독이 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래도 월드컵 우승 경력 덕분에 유임하게 됐는데, 프랑스 내에서는 성적은 둘째치고 팀 관리에 실패한 이상 경질이 맞다며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한번 더 기회를 받긴 했지만, 만일 수습에 실패해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실패한다면 커리어가 그걸로 끝날 것이다. 다행히 2020-21 UEFA 네이션스 리그 우승을 시키면서 어느정도 체면치레에는 성공했다.[6]


3.5. UEFA 네이션스 리그/2022-23 시즌[편집]


그러나 2022-23 UEFA 네이션스 리그 1차전에서 덴마크에게 20년만에 패배하였다. 그 이후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못하면서 현재 2무1패로 최하위에 위치해있다. 게다가 크로아티아전에서는 햄스트링 상태가 좋지 않던 쥘 쿤데의 출전을 강행시켰다가 결국 부상으로 인해 수술대에 오르게 되면서 더욱 비판을 받고 있다.

인터뷰 내용이 더 가관인데, 기자가 “쿤데가 오늘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서 몇달 간 빠질텐데 괜찮으신가요?”라고 묻자, 데샹은 “쿤데의 몸 상태가 안좋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미 몇달 전부터 부상 당할 것이라 얘기가 나왔어서, 오늘 그를 출전 시켰다. 결국 그는 오늘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고, 빠르면 내일 수술에 들어갈 것이다.”라는 개소리를 시전했다.

그리고 급기야 4차전 크로아티아와의 홈 경기에서조차 패하고 말았고 이로 인해 파이널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1차전의 패배로 인해 무언가 문제점이 분명히 있음에도 4차전까지 승리하지 못해 해결하지 못했음을 드러냈고 이는 결국 데샹 본인에 대한 불신이 다시 터져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5차전 오스트리아전에서는 2-0으로 승리하며 분위기 반전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6차전에서 덴마크에게 0:2로 패하며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아 버렸다. 안 그래도 덴마크는 경기 후 2달 뒤에 열리는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도 상대해야 하는데 벌써 2패를 적립함으로써 부담감을 심하게 받게 되었다. 오스트리아가 크로아티아에게 져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강등당하며 잉글랜드의 뒤를 따라갈 뻔했다.[7] 잉글랜드의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만큼은 아니지만 이쪽도 여론이 매우 좋지 않다.

이 때문에 현지 언론에 의하면 월드컵 이후 지네딘 지단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3.6.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편집]


그러나 이런 악평이 무색하게 막상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본선에서는 첫경기부터 호주를 4대1로 처부쉈고, 이후 덴마크도 2대1로 이기고 이번 대회 1호 16강 진출 성공팀이 되면서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 따위는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증명했다. 로테이션을 돌린 최종전인 튀니지전은 비록 0대1로 패하긴 했지만, 어차피 16강이 확정된 상태여서 별 의미는 없는 경기였고, 고대로 조 1위도 덤으로 유지되면서 16강에서는 폴란드와 맞붙게 되었다.

그리고 폴란드를 상대로 3대1 승리를 거두어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3연속 8강 진출을 달성했고, 숙명의 라이벌 잉글랜드에게 2대1로 승리하면서[8] 사상 2번째로 2연속 4강 진출에 성공하는 대기록을 남겼다.[9] 그리고 벨기에, 캐나다, 스페인, 포르투갈을 연파하며 올라온 대회 최고의 돌풍의 팀 모로코를 상대로 한 준결승에서도 2:0으로 깔끔하게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연속 결승 진출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10][11]

덕분에 UEFA 유로 2024까지 감독 계약을 연장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우승할 경우 계약 연장은 거의 확정적이며[12] 설령 준우승에 그친다 하더라도 프랑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감독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노엘 르그라에 프랑스 축구 협회(FFF) 회장은 4강 진출 후 인터뷰를 통해 "좋은 감독과 훌륭한 코치진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행운이다. 계약을 연장하는 건 전적으로 데샹 감독에게 달려있다"면서도 "이렇게 뛰어난 실력을 지닌 지도자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제 바람은 잔류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데샹의 연임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다.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리오넬 스칼로니가 빅게임 플레이어인 앙헬 디 마리아를 좌측에 배치하고 리오넬 메시를 우측에 배치하며 다시 한 번 유연성을 보여준 것에 완전히 당해 전반전 아르헨티나에게 끌려가면서 2실점을 내주며 끌려갔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전반에 지루와 뎀벨레, 후반에는 그리즈만을 빼고 4강 모로코 전에서도 빛을 본 교체 카드인 랑달 콜로 무아니, 마르쿠스 튀랑, 에두아르도 카마빙가 등을 투입해 플랜A를 과감하게 폐기하는 용병술을 발휘했다. 아르헨티나가 힘이 빠질 무렵 교체되어 들어간 선수들이 킬리안 음바페의 2분 간격 멀티골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면서 데샹은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했다. 이후 연장승부에서도 메시와 음바페가 장군멍군으로 한 골 씩 주고받으면서 승부차기까지 경기가 진행되었으나, 첫번째 키커 음바페의 성공 이후 코망, 추아메니가 연달아 실패하고 결국 4-2로 패배, 준우승에 머물러 60년 만의 2연속 월드컵 우승에는 실패했다.

이번 대회 직전 부진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으며 출발한 데샹 감독은 카림 벤제마의 낙마와 함께 네이션스리그, 유로 등에서 시도한 백3 및 투톱 전술을 폐기하고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UEFA 유로 2016,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보여준 4-2-3-1의 그리즈만 & 지루의 빅 & 스몰 + 음바페의 스피드를 살린 선수비 후역습 축구를 구사했고, 프랑스의 넓은 선수풀을 살려 중원에서 은골로 캉테 - 폴 포그바의 부상 낙마로 생긴 공백 및 레프트백에서 뤼카 에르난데스의 낙마도 잘 메꿔냈다. 또한 경기력에서 많이 고전한 4강 모로코 전, 결승 아르헨티나 전에서 콜로 무아니, 튀랑의 교체카드도 적중시켜 자신이 선수빨 버스만 타고 월드컵 2연속 결승에 진출한 감독은 아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결승전에 스칼로니 감독의 맞춤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나, 유로 2020 때의 부카요 사카처럼 승부차기 경험이 없는 추아메니를 3번 키커로 내세우는 등 아쉬운 모습도 확실히 보였다.[13]

어쨌든 명암이 있는 감독이긴 하지만 대회 전 불안한 시선이 많았던 프랑스를 이끌고 2연속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업적은 부정할 수 없으므로 과연 데샹이 유임을 할 것인지는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물러난다면 지네딘 지단이 지휘봉을 이어받을 것이 확실해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결승전 이후 공개적으로 데샹 감독이 유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결국 2026년까지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2026 FIFA 월드컵까지 프랑스를 이끌게 되었다. 다만 노엘 르그라에 프랑스 축구 협회 회장이 프랑스 현지 시각 8일 데샹과의 연장 계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인터뷰 도중, 지네딘 지단의 향후 거취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지단이 브라질로? 상관 없다. 그는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다. 난 지단을 만난 적도 없고 데샹 감독과 헤어질 생각도 절대 하지 않는다."라는 경솔한 발언을 하는 바람에 그를 우상으로 섬기는 킬리안 음바페 및 각종 언론, 정치권으로부터 전방위적인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중간 입장인 데샹 감독에게 엄한 불똥이 튈 뻔한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4. 감독 스타일[편집]


데샹은 로랑 블랑이 시도했으나, 메이저 대회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던 4-3-3 전술을 국대 내에서 제대로 완성시켰다. 그 예가 바로 프랑스가 다시 재기하게 된 2014 월드컵이다. 카림 벤제마가 원톱, 그리즈만과 마티유 발부에나를 각각 좌우 윙포워드로 배치한 이 라인업은 당시 횡적으로 움직이는 마튀이디와 전방위로 피치위를 움직이는 포그바와 함께 좋은 시너지를 내면서[14] 8강까지 진출을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유로 2016에서 역시 4-2-3-1전술과 4-3-3전술을 혼용하려 했는데, 여기서 벤제마가 문제의 그 협박 스캔들로 인해서 나가리가 되어버린다. 벤제마 없이는 4-3-3 전술을 쓰기 힘들었던지라, 데샹은 당시 폼이 좋던 라사나 디아라가 축이 되는 4231전술을 고려하였다. 허나, 또 대회가 시작하기 직전에 라사나 디아라마저 나가리가 되어버리게된다.[15] 결국 데샹은 유로대회에서 캉테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맞이하게 된다. 허나, 현실은 개망이었다. 포그바나 마튀이디는 왼쪽 메짤라 위치가 주선호 포지션이다 보니 다른 위치에 서게 되면 폼도 시망이었고, 캉테는 수비는 잘했으나 전성기 카바예나 라스와 같은 경기 조율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게다가, 2014 -15 시즌부터 소속팀에서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한 탓에 톱에 익숙했던 앙투안 그리즈만은 윙어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했고 지루는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팀의 전체적인 모습이 아쉽게 되었다. 그나마, 그리즈만 & 지루의 갑툭튀 골과 드미트리 파예의 군계일학과 같은 플레이가 팀을 토너먼트로 이끌어 나갔다. 그러다가, 프랑스는 아일랜드전에서 팀을 결승에까지 올리게 되는 중요한 전술적 변화를 맞는다. 기존의 4-3-3 전술 대신에 그리즈만을 지루와 함께 중앙에서 플레이하게하는 4-2-3-1 전술을 채택했던 것.

지루&그리즈만의 플레이는 전형적인 빅&스몰의 정석을 보여주면서 아일랜드를 무너뜨렸고, 이후에도 존 스탁턴칼 말론처럼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팀을 결승에 올리는데 큰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더불어서, 파예와 무사 시소코가 수비가담을 중요시하는 윙어로 밸런스를 맞춰주고 3선의 포그바 & 마튀이디는 좀 더 중원 장악에 힘쓰는 스타일로 전환을 하면서 팀을 본궤도에 올렸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4-3-3 전술을 주로 사용했었다. 하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호주전에서 공격진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자 두 번째 경기였던 페루전에서 다시 4-2-3-1로 전술을 바꾸고 이전 경기에서 윙어로 출전했던 그리즈만을 본 포지션인 쉐도우 스트라이커 배치한 뒤 왼쪽 윙에는 중앙 미드필더인 블레즈 마튀이디를 투입하는 독특한 전술을 선보였다. 이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결국 결승전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나아가 마침내는 우승까지 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특정 상대에 맞춤 전술을 꺼내드는 지략형 감독이나, 경기 도중 적절한 전술 변화와 선수 교체로 승기를 가져오는 승부사형 감독은 아니다. 대신 팀 전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고 답을 찾아내면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매니지형 감독으로, 프랑스의 두터운 선수층을 잘 활용하고 있다.

4.1. 단점[편집]


데샹은 조국에게 20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안겨주고 선수시절까지 합쳐 월드컵 결승만 3번가는 등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의 반례이자 명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역시나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데샹 감독의 단점은 다음과 같다.


4.1.1. 확실한 중원의 조율사가 부재[편집]


프랑스를 유로 결승에 올렸음에도 데샹이 까인 것은 라스 디아라가 나가리가 된 이후에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한 것이다. 다만, 이는 데샹을 커버쳐줄 거리가 좀 있는게... 마튀이디 & 포그바가 너무 별로였다는 것이다. 자원이 한정된 국대감독으로서, 저 두명이 그나마 패스와 중원장악이 될 선수다 보니 라스가 빠지게 되자 프랑스 축구는 아이슬란드전을 제외하고는 다 지지부진한 경기력으로 결승에 올라갔음에도 계속 까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스티븐 은존지의 성장과 은골로 캉테의 등장으로 이 자리를 메울 선수가 생기게 되었다. 거기다 월드컵에서는 맨유에서 부진한 활약으로 조롱받던 포그바까지 살아나면서 고민하던 문제점이 너무나도 쉽게 해결되어버렸다.

UEFA 유로 2020부터 팀의 득점을 책임졌던 앙투안 그리즈만을 한 칸 내려 쓰면서 팀의 조율과 빌드업을 맡기고 있으며 그리즈만은 유로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지단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유로 16강 스위스전 88분 이후라든지,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튀니지전 73분 이전과 같이 그리즈만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의 공백을 대체할 마땅한 자원이 없어 빌드업과 플레이 메이킹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 스위스전에서는 그리즈만이 교체 아웃된 이후 역전패했으며, 튀니지전에서는 그리즈만이 교체 투입되기 전까지 튀니지에게 스코어, 경기력 둘 다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4.1.2. 선수 발탁에 대한 논쟁[편집]


데샹 감독은 "나는 프랑스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23명을 뽑는 게 아니다."라고 못박을 정도로 선수의 개인 실력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 이상으로 선수단 팀 케미와 선수 개인의 인격을 굉장히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한 때는 팀 에이스였지만 팀 동료의 불미스런 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있던 카림 벤제마와 한창 전성기를 달렸지만 사생활에서 잡음이 나오고 있었던 사미르 나스리 등 팀의 결속력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선수 또는 개인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선수들은 아무리 팀의 에이스라도 실력에 상관없이 과감히 내쳐 버리거나 아예 안 뽑는 모습을 보인다. 좋게 말하면 철저한 원리 원칙주의자 감독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지나치게 보수적인 감독이어서 팀이 하나로 뭉쳐 좋은 성적을 내면 별 문제가 나타나진 않지만 팀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선수 발탁에 관한 문제점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UEFA 유로 2016에서는 벤제마야 그렇다 치더라도[16] 굳이 팀 내에 올리비에 지루가 있는 상황에서 앙드레피에르 지냐크을 선발한 것은 전술적 다양성에서 최악의 선택이었다. 지냐크는 유로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는데, 진작에 케빈 가메로와 같은 선수를 발탁했으면 전술적인 폭이 더 다양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아쉬운 선택이었다. 실제로 지루와 앙투안 그리즈만유로 2016 결승전에서 터프한 포르투갈 수비진을 상대로 무언가를 만들지 못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반대로 최전방 공격수를 올리비에 지루 1명만 데려가는 바람에, 지루가 골은 커녕 유효슈팅을 전혀 때리지 못하며 경기에서 부진하고 있는데도 명확한 대체 자원이 아예 없어 전 경기를 뛰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앙투안 그리에즈만이 내려앉은 중앙 공격수로 위치하고 신성 킬리안 음바페와 반대편에서 뛰는 우스만 뎀벨레를 이용해 공격 루트를 확보해 볼 수 있겠으나, 음바페와 그리에즈만은 최전방 공격수로 사용하기에는 무리여서 무조건 지루만 최전방 공격수로 사용해야 했다. 이에 앙토니 마르시알이나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둘 중 적어도 한 명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뽑았어야 했다는 의견이 많았다.[17] 그리고 아드리앙 라비오의 미발탁과 관련해서 말이 많았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결정은 한편으로는 변명이 가능한 것이 애초에 라카제트와 마르시알은 선발명단 발표 당시에 프랑스인들에게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던 터라 뽑았어야 했다는 의견 자체가 나올 수 없었고, 지루는 월드컵에서 최전방에서 유효슈팅과 골을 주도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닌 상대 센터백들과 경합하며 2선에서 뛰는 측면 공격수 음바페와 그리에즈만, 뎀벨레가 방해를 받지 않고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주는 포스트업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지루에게 향한 패스들의 90분당 기대도움 수치만 보더라도 월드컵 스트라이커들 중 12위였다는 점에서 프랑스가 채택한 전술은 지루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하는 전술도 아니어서 지루의 골을 더욱 기대할 수는 없었다.

또한 아드리앵 라비오의 경우 애초에 라비오가 안 뽑았다고 논란이 터져 나올 정도로 실력이 탁월한 선수는 아니었다. 라비오를 대체한 스티븐 은존지는 홀딩 미드필더 롤에서 그 어떤 프랑스 선수들보다 중원 조율에 있어서 탁월한 선수이고 다른 미드필더들 중 한 명인 코랑탱 톨리소의 경우, 확실히 라비오보다 소속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중원 깊숙한 곳에서 득점을 노리는 유형의 중미가 전무한 팀의 특성상 중거리슛을 정확하게 찰 수 있어 발탁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데샹이 이번에 선발한 미드필더들은 역할이 모두 다 달랐는데, 라비오와 같은 유형은 이미 폴 포그바라는 훨씬 뛰어난 존재가 있고 박스 투 박스에서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할 미드필더로는 은골로 캉테블레즈 마튀디가 라비오보다 더 뛰어난 선수였다. 그리고 라비오는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것이 어린애도 아니고 2018 월드컵 스쿼드에 안뽑히니까 데샹과의 인연을 끊겠다라고 말했고 동료들의 연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데샹의 잘못보다는 라비오의 업보라고 할 수 있겠다.[18]

그 외에도 킹슬레 코망[19] 등 소속팀에서 나름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이 제외되긴 했으나 각각 동일한 포지션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어서 별 말은 없었다.

월드컵 이전에는 선발 명단에 관해 말이 많았으나, 월드컵 본선에서 지루가 데샹의 의도대로 움직이면서 음바페와 그리에즈만이 본선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데샹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선발 명단에 관한 볼멘소리가 쏙 들어가게 되었다.

다만 월드컵 이후에도 선수 기용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은데 그 이유로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안 된 선수를 주전급이라고 무조건 뽑는 것과 기본적인 선수 선발이 매우 보수적인 면 등이 뽑히고 있다. 2019-20 시즌에 은골로 캉테가 데샹의 고집 때문에 A매치만 되면 대표팀에 선발되어 경기에 뛰고 잔부상을 당한 채 돌아와서 시즌 전반기에 첼시에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뤼카 에르난데스도 바이에른 뮌헨 이적을 확정지은 직후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 박사가 오른쪽 무릎에서 안쪽 인대 부상을 발견·수술을 진행했지만 완벽히 낫지 않아 무릎에 통증이 남아있어 클럽 경기를 결장하고 있었고, 이에 구단에서 회복을 위해 차출 거부를 요청했는데도 자기가 확인해야겠다며 무작정 뽑았고 결국 루카스는 경기를 뛰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과의 경기에서 90분 풀타임을 뛰었다.[20] 이게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같은 시기에 똑같이 파리 생제르맹 FC에서 요청한 킬리안 음바페 대표팀 차출 거부는 그대로 들어줬으면서 뤼카에게는 이를 똑같이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뤼카는 국가대표팀에서 부상이 악화되어 2019년 10월 22일 올림피아코스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경기 중 제롬 보아텡과 교체된 후 19/20 시즌 전반기를 통째로 결장해야 했다.

그리고 UEFA 유로 2020에서 기대 이하의 경기력 끝에 16강 광탈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데샹의 선수 기용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FC 바르셀로나에서 최악의 폼을 보인 클레망 랑글레를 뽑은 것도 모자라 16강전에서 선발로 기용했다가 경기를 대차게 말아먹었고, 소속팀에서 부진했던 무사 시소코코랑탱 톨리소 역시 팀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일단 유로 이후 20/21 UEFA 네이션스 리그 우승으로 분위기를 일신했지만, 만일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도 부진을 겪는다면 요아힘 뢰프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21]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 햄스트링 부상이 있는 쥘 쿤데를 선발로 출전시켰고, 쿤데는 부상악화로 경기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수술을 해야했다. 21년 가을에는 분데스리가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하던 크리스토퍼 은쿤쿠를 선발하지 않고 맨유에서 이미 주전경쟁에서 밀렸던 앙토니 마르시알을 선발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22] 다행히도 은쿤쿠는 분데스리가 21/22 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리그에서의 활약이 매우 뛰어나 더 이상 주목하지 않을 수 없어 2022년 3월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고, 그 무시무시한 프랑스의 공격진에서도 지루와 더불어 그리즈만, 벤제마, 음바페의 1순위 백업 선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버려 명단에서 제외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23]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의 맞춤 전술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까닭도 결국 이런 보수적인 선수 운용에서 비롯했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주전들을 대거 빼고 로테이션을 돌렸는데, 선수 개개인의 폼과 별개로 자주 손발을 맞춰보지 않은 티가 너무 심하게 났고, 결국 본선 토너먼트에서도 주전들만 중용했다. 덕분에 스칼로니 감독 입장에선 맞춤전술을 짜기가 쉬웠던 것.

[1] 2022 카타르 월드컵 종료 기준.[2] 그것도 데샹은 선수때 주장으로서 월드컵과 유로를 들어올렸으니, 그 기록의 희소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3] 독일, 포르투갈, 헝가리와 같은 조에 묶이면서 험난한 조편성이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4] 이자 월드 챔피언[5] 더불어 지난 대회 4강 진출국이였던 독일과 웨일스도 16강에서 탈락했다.[6] 원래 클럽감독이나 국대감독이나 다 외줄타기 인생이다. 그나마 선수는 잠재력을 보고 기회를 몇번 더 주기도 하지만 감독은 오직 실적만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팀이 해체되었거나 한 게 아니면 아무리 지금까지 잘했어도 한번 미끄러지는 순간 재기하기 어렵다. 예시로 주제 무리뉴를 보면 알수있는대 클럽의 수준이 맨유->토트넘->AS로마 이렇게 꾸준히 내려가고 있다.[7] 거기에 더 심각한 점이 있는데 음바페, 벤제마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보유하고도 조에서 득점 순위가 오스트리아보다도 낮은 꼴찌를 기록했다는 점이다.[8] 이는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프랑스가 잉글랜드를 꺾은 사례다.[9] 첫번째는 플라티니가 활약하던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이다.[10] 같은 감독으로 연속 결승 진출을 이룬 사례는 이탈리아(비토리오 포초,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르헨티나(카를로스 빌라르도,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독일(프란츠 베켄바워, 1986·1990) 총 3번이 있다.[11] 만약 우승을 한다면 지난 대회에 이어 대회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12] 심지어 4강 경기를 직관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경기가 끝나고 프랑스가 2연패에 성공한다면 데샹 감독은 반드시 연임을 해야한다고 얘기하며 힘을 실어주었다.[13] 다만 상대 전술에 완전히 말려서 PK와 승부차기에 강점이 있는 그리즈만, 지루가 모두 교체 아웃된 점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찍 교체 아웃을 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해 물병을 바닥에 집어던지는 지루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지만, 어쨌든 데샹은 본인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정했고 그 결과 압살 당할 뻔했던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14] 공격 성향이 강한 이 둘을 수비적으로 보좌했던 것은 카바예.[15] 참고로, 프랑스가 우승을 못한 이유는 벤제마 아웃보다는 라사나 디아라의 공백이 당시에는 컸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라사나 디아라의 폼이 이당시 절정으로 올라온상태이기도 했고 사실, 벤제마가 지루보다 기량면에서 압도적으로 좋은 선수인 것은 확실하나, 국대에서 활약을 보면 지루나 벤제마나 비슷하기 때문이다.[16] 마티유 발부에나 섹스 비디오 유출 사건때문에 여론이 엄청나게 악화되어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제명되었었다.[17] 물론 마르시알은 시즌 후반기에 부진했기에 대표팀 제외는 이해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라카제트는 시즌 후반기에 좋은 폼을 보여줬기 때문에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18] 그래도 라비오는 유로 2020부터 재발탁되었고, 2022 월드컵에서 추아메니-그리즈만과 함께 최상급의 3미들 조합으로 활약해주고 있다.[19] 다만 코망은 부상 때문에 사실상 러시아에 갈 수 없었다.[20] 이때 데샹은 자신의 선택을 옹호하기 위해 "뤼카는 한쪽 다리로도 뛸 수 있다"는 망언을 했다. 당연히 바이에른 뮌헨 보드진들과 팬들은 경악했으며 FC 바이에른 뮌헨은 뤼카는 부상으로 대표팀에 갈 수 없다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뮐러볼파르트 박사가 국가대표팀 선발 이전 뤼카의 오른쪽 무릎 회복을 위해 뤼카를 뽑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는데 데샹은 이를 완벽히 무시한 것.[21] 월드컵 우승 이후 한정으로 2년 후의 유로 성적을 제외하면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는 뢰프호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22] 베테랑 리더로서의 모습을 항상 보여주던 올리비에 지루와는 달리 맨유팬들이라면 알겠지만 마르시알의 멘탈적인 부분은 절대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23] 대신 그 대체자로 뽑힌 랑달 콜로 무아니는 준결승에서 교체투입 1분만에 쐐기골을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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