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바이움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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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릴리바이움 해전.jpg

1. 개요
2. 전개
3. 결과



1. 개요[편집]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인 기원전 218년 여름 시칠리아의 릴리바이움 인근 해안가에서 로마 함대와 카르타고 함대가 맞붙은 해전. 제2차 포에니 전쟁 최초의 해전이다.

2. 전개[편집]


기원전 218년, 로마는 9개월간의 사군툼 공방전을 치른 끝에 로마의 '친구'를 자처하던 사군툼을 함락시키고 시민들을 노예로 팔아버린 한니발 바르카를 인도할 것을 카르타고 원로원에 요구했다. 그들이 단호히 거부하자, 로마는 카르타고에 선전포고했다. 카르타고 정부는 육군 지휘를 한니발에게 맡기는 한편, 제1차 포에니 전쟁 때 상실한 지중해의 재해권을 되찾기 위해 해군을 투입하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이탈리아 해변을 황폐화시키기 위해 1,000명의 군인과 20척의 전함을 파견했다. 8척은 리파리 섬으로, 8척은 불카노 섬으로 이동했으며, 3척은 해류에 의해 우회하여 메시나 해협에 도착했다.

한편, 메시나 해협에서 로마 집정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롱구스를 기다리고 있던 시라쿠사 함대는 3척의 카르타고 전함이 모습을 드러내자 즉시 12척의 함대를 투입하여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사로잡았다. 이후 선원들을 문초한 결과, 카르타고 함대 35척이 곧 릴리바이움을 공격할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시칠리아 군주 히에로 2세는 릴리바이움의 수비대 지휘관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대비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릴리바이움에 주둔한 로마 함대는 20척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경고를 받은 직후 해상에서 적을 과감하게 기습하기로 마음 먹고, 각 배에 적절한 수의 로마 군단병을 배치했다. 또한 각 해안가에 감시탑을 설치해, 적의 움직임을 살피게 했다. 한편 카르타고 함대 35척은 아이게이츠 제도에서 잠시 휴식한 뒤, 야밤에 릴리바이움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곧 로마 감시탑에 발각되었고, 로마 함대는 즉시 출격했다.

로마 함대가 접근해오자, 카르타고 함대는 돛을 내리고 외해에 이동하였고, 양측은 곧 격돌했다. 당시 카르타고 함선들은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각 함선당 전투병은 로마군보다 부족했다. 로마 함대는 카르타고 함대에서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무릅쓰고 배를 붙인 뒤 과감하게 뛰어들어 순식간에 적선을 장악했다. 그 결과 카르타고 함선 7척이 나포되었고 1,700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나머지는 본국으로 도주했다. 로마군의 피해는 알려지지 않았다.

3. 결과[편집]


로마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시칠리아에 전진 기지를 세우려던 카르타고의 계획을 막아냈다. 이후 시칠리아에 도착한 셈프로니우스는 몰타를 장악하고 그곳의 수비대장 하밀카르 기스코와 2,000명의 포로를 잡아 노예로 팔았다. 이후 불카노 섬에 숨었다고 알려진 적선을 잡기 위해 이동하던 중, 한니발 바르카가 알프스 산맥을 넘어 북이탈리아에 들어왔으니 속히 북이탈리아로 이동하라는 원로원의 훈련을 들었다. 그는 곧바로 군대를 이끌고 북이탈리아로 달려갔고, 시칠리아는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에게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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