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우/선수 경력/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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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FA 과정
2.1. 원 소속팀 및 타 구단과의 협상
2.3. 이적 이후 평가



1. 개요[편집]


박건우의 FA 과정을 정리한 문서.


2. FA 과정[편집]



2.1. 원 소속팀 및 타 구단과의 협상[편집]


2021 시즌 후 생애 첫 FA 자격을 얻게 되었다. 외야 전 포지션을 모두 볼 수 있는 우타 자원인데다 타격에 있어서는 같이 풀리는 중견수 박해민보다 확연히 앞서기 때문에 많은 구단이 노릴 것으로 보였고, 두산 측도 물론 프랜차이즈 스타인 박건우를 잔류시키기 위해서 꽤 노력할 것으로 보였다.

FA선수 자격공시가 임박한 11월 말, FA를 앞둔 외야수 두 명이 각각 6년+140억과 6년 계약을 원한다는 기사가 떴다. 6년+140억을 요구한 외야수는 나성범으로 추정되었고 6년 계약을 원하는 선수는 박건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1]

시즌 내내 박건우를 탐낸다는 소문이 들리던 SSG 랜더스는 샐러리캡 대비와 장기계약 건으로 조용했고, 외야 보강이 절실한 한화 이글스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의외로 영입전에 나서지 않았다.[2] LG 트윈스 역시 같은 잠실을 홈으로 쓴다는 이유로 막강한 자금력과 함께 구애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박해민과 링크가 강하게 뜨면서 외야수가 충분해진 LG의 참전 가능성 역시 희박한 상황이었다.

2022년 2월 박건우의 에이전트인 이예랑 리코스포츠에이전시 대표가 밝힌 바로는 NC의 박건우 영입에 관한 논의는 나성범의 거취 결정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특히 애런 알테어의 팀 이탈이 가시화되면서 NC는 전력보강 카드로 외야수비에 장점이 있는 박건우에 눈독들이게 되었고 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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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랑 에이전트가 이야기하는 박건우 FA계약 비하인드
그러던 중 당초 NC 잔류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되던 나성범의 KIA행 링크 정황이 구체화되면서 NC가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월 13일 오후 '대안 찾기에 나선 NC와 박건우 측이 최근 만나 협상을 진행했고 계약 기간 및 금액 등에서도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는 기사가 떴다. 14일 새벽 3시에는 박건우가 NC와 6년 100억의 조건에 합의했고 발표만 앞두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두산 팬들은 황당하다,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이었다. 해당 기사가 뜨기 이틀 전인 12월 11일[4] 박건우가 본인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양재천을 걷다가 갑자기 고라니가 보여 신기해서' 라이브를 켰다고 말했는데, 당시 라이브 채팅창에는 두산에 잔류해달라는 아우성이 가득했다. 이때 박건우는 자신의 FA 상황을 묻는 채팅창 질문에 "다음주 정도면 발표가 나지 않을까요?" 라고 말했는데, 두산 팬들은 해당 발언에 대해 잔류를 바라는 팬들의 채팅에 답한 것으로 해석하고 행복회로를 돌렸다.# 그러나 해당 라이브방송을 한 지 사흘만에 NC 계약발표가 뜨면서 두산 팬들은 '팬들을 기만한 것 아니냐'며 비난하게 된 것이다. 물론 박건우는 "다음주 정도면 발표가 난다" 라고만 했지 두산에 잔류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5]


2.2. NC 다이노스 이적[편집]


12월 14일 오후 1시, NC와 6년 총액 100억원 계약 발표가 나며 이적이 공식화되었다.# 항간에 떠돌던 'FA 모 외야수가 6년 보장에 150억대의 계약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 외야수가 박건우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계약 액수로 보아 이 외야수가 나성범인 것으로 일단락되었으며, 박건우는 이보다 훨씬 낮은 100억으로 계약이 체결되면서 NC가 괜찮은 조건으로 잘 잡았고 박건우도 장기계약을 보장받으며 서로 만족할만한 합의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었다.[6]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두산 구단측은 박건우에게 4년 총액 근 70억원 수준을 제시했다는데, 이미 지난 해 동료들이 두산에게 7년 85억, 6년 56억의 초장기 대형 계약을 따낸 것을 지켜본 박건우는 당연히 두산이 대놓고 팽한 수준의 제시기간도, 금액도 성에 차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두산이 같이 시장에 나왔던 김재환과는 4년 115억(보장 110억)의 통큰 조건으로 재계약한 것을 보면 두산 구단측이 애초에 박건우에게 넉넉한 제안을 하지 않았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7]

NC 팬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박건우와의 계약을 발표하던 당일 오전, 박건우 계약 타결 직전에 뜬 박해민의 LG 이적 4년 60억 계약 발표와 박건우의 계약 조건이 대비되면서 야구팬들은 모두 상대적으로 혜자라는 반응을 보였다.# 총액을 계약연수로 나눈 실연봉 역시 박해민이 15억, 박건우가 16.7억으로 별 차이가 없는데다가 시장평가는 확실히 박건우가 앞서기 때문에 계약기간이 더 길긴 하지만 NC가 생각보다 더 효율적으로 움직였고, 박건우를 합리적으로 잘 데려왔다며 호평했다. 굳이 불안한 점을 꼽자면 박건우가 그동안 가을야구에서 매우 약했다는 점이지만 나성범과 알테어가 동시에 빠지는 NC의 외야풀을 생각해보면 NC는 찬밥 더울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반면 두산 팬들은 예상보다 낮은 액수로 박건우가 이적하자 당황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2020년과 2021년 최주환, 오재일, 이용찬을 모두 보냈고 정수빈, 허경민에게 141억, 김재호와 유희관까지 176억까지 투자한 두산인데 더 상위 매물인 박건우에게는 100억도 부르지 않았냐며 또다시 프랜차이즈 스타를 놓치게 된 것에 대해 모기업 두산그룹과 야구단 프런트에게 분노했고## 실제로 본사에 트럭시위 차량도 보냈다.[8][9]

이적발표 직후 박건우는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팬들의 사랑을 평생 잊지 않겠다는 손편지와 함께 김태형 감독과 허경민, 정수빈을 언급했는데 두산 팬들은 '감성팔이다', '나중에 셋이서 코치생활을 하고 싶다는 말을 남긴 것이 황당하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10][11][12]

박건우의 보상선수는 강진성이 선정되었다. NC 팬들은 플루크 시즌을 보낸 내년에 나이 서른이 되는 1루수로 유망주들의 유출을 막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으며 두산 팬들도 1루수 및 외야 백업 겸 대타 자원을 얻었다며 만족했다.



2022년 12월 22일 보상선수 강진성 지명

해가 바뀌고 2022년 1월 26일 NC 입단식에서 이른바 '90 트리오' 해체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박건우는 "수빈이랑 경민이가 당연히 (두산에) 남아달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처음 FA를 하는 거라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인 줄 알았다. 시장이 열리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 에이전트에 따라야 하는 것도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NC에서 좋은 제안을 해주시기도 했다"고 짧게 언급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도 비슷한 뉘앙스의 인터뷰를 한 것을 보면 이적을 결정하기까지 여러 사정이 있었던 모양.



2022년 1월 26일 NC 입단식


2.3. 이적 이후 평가[편집]


다만 이적과 관련된 잡음들과는 별개로 FA 이적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FA를 얻은 김재환 대비 FA 경쟁력이나 팀 내 입지를 생각했을때 박건우의 이적에 대한 두산 팬들의 반감은 적었다. 이미 박건우의 장타툴이 2018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는데다, 확실하게 득점권에서 점수를 퍼낼수 있는 클러치와 장타를 요구하는 두산의 팀 타선의 상황을 생각했을때 에이징 커브를 겪고 있어도 장타툴과 클러치는 확고했던 김재환을 잡을 수 있다면 외야 수비력에서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굳이 장타툴도 줄어들고 있고 잔부상도 안고 있는 박건우에게 오버페이를 제시 할 여지 자체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었다.

두산 팬들은 오히려 김인태, 조수행, 안권수 등의 주전 후보들을 하나씩 1군에서 기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에 2022년 7월 기준에서는 호불호가 조금 갈리고 있긴 하지만 결국 "박건우를 잡지 않는 쪽이 맞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룰 정도였다.[13]

하지만 시즌 막판을 기점으로는 김재환과 같이 FA 선언을 하게 되면서 사실상 잡을 수 없는 선수였다는 반응과 대체자가 널리고 널렸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던 두산 팬들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건우는 시즌 도중 부상으로 한 달 가까이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막판까지 타격왕 경쟁을 하면서 이적 첫해부터 FA 밥값 이상을 해낸 반면, 박건우를 놓아주면서 붙잡은 김재환계약 첫해부터 완벽하게 먹튀로 전락했고 대체자로 평가받았던 김인태, 안권수 등은 박건우의 빈 자리를 잘 해결하는 듯 싶었지만 둘 다 부상을 입은 이후에는 부상 회복 이후 날아다닌 박건우와 달리 완전히 타격감을 잃어버리고 1군에서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지면서 결과적으로 박건우의 빈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즉, 2022 시즌이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정수빈을 오버페이해서 잡고 박건우를 놓친 두산의 선택은 완전하게 실패한 선택이었음을 증명했다.[14]

그러나 팀 외야 뎁스의 격차와 창원 NC 파크잠실 야구장의 환경 등을 고려했을때 무작정 박건우를 잡았다고 해서 2022 시즌 두산의 성적이 반등할 수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분석도 있고[15][16], 무엇보다 2022 시즌 후 두산이 양의지를 다시 복귀시킬 수 있던 것 역시 비록 정수빈을 거액에 장기 계약으로 앉히는 패착을 고했지만 박건우에게까지 선택과 집중을 고려했을때 절대 불가능했을 만큼 여전히 박건우를 잔류시키지 않은 것을 무작정 틀린 선택이라고 하긴 어렵다는 반응 자체는 유효하고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두산이 박건우를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기조는 변하지 않았지만.[17][18]

박건우를 포기한데 이어 용병 농사까지 망치면서 22시즌 성적 부진이라는 참담한 대가를 받은 두산 입장에서는 박건우를 포기한 것이 1년 후 양의지를 노릴 수 있는 밑바탕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FA 당시 박건우에게 보인 두산 프런트의 태도는 차갑다 못해 냉담하다고 밖에 할 수가 없었다.[19]
[1] 실제로 그런 조건대로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다.[2] 박건우의 이적발표가 난 다음날인 12월 15일 한화는 FA 시장 철수를 공식화했다.# 이후 기사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한화가 이번 FA 시장에 참전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3] 당시 NC가 알테어의 대안으로 박해민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시장에 돌았는데, 박해민은 4년 60억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LG로 이적하게 된다. 따라서 NC는 박건우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4] 해당일은 MLBPARK에 박건우 창원 목격담이 떴는데# 박건우가 인스타 라이브방송으로 양재천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팬들은 그 목격담이 헛소문임을 알게 되었다.[5] 이적 후 두산 팬들 사이에서는 냉정하게 생각하면 박건우가 '떠날만한 선수' 였다고 평하기도 했는데, 두산은 이미 김재환과 정수빈으로 주전 외야 3자리중 2자리가 차 있는데다 대체자원도 조수행, 김인태 등으로 그럭저럭 준비되어 있어 박건우에 오버페이를 해서 잡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2021 시즌 중 감독과 언해피를 띄웠기 때문으로, 감독과 다툰 선수가 팀에 남는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6] 시장 예상치보다는 살짝 낮긴 하지만 애초에 KIA의 나성범 영입의 연쇄작용으로 추정 몸값이 치솟았기도 했고 어쨌든 총액이 세자릿수 금액이기 때문에 박건우 역시 충분히 만족할 만한 계약으로 보인다.[7] 두산 역시 2021년 FA에 장기계약 조건은 제시하지 않기로 내부 기조를 정하면서 4년 계약조건을 고집했고,# 실제로 김재환과 4년 계약을 했다. 박건우의 이적발표 후 두산 측에서는 박건우의 계약에 대해 따로 할 말은 없다고 코멘트했다.[8] ###[9] 당시 트럭시위를 주도한 두산베어스 갤러리 이용자의 여론은 대체로 박건우와 김재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김재환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김현수, 민병헌, 양의지 등 한 때 두산을 대표하던 선수들이 줄줄이 이탈하고 직전 시즌에도 최주환, 오재일 등의 선수들이 팀을 떠났으며 여기에 계속해서 들려오는 두산그룹의 재정난 소식이 더해짐에도 구단을 매각한다거나 금전적 지원을 보태주지 않는 모기업의 모습에 열불이 터지던 두산 팬들이 예상대로 박건우를 잡지 못하고 이적이 발표된 후 김재환의 이적 소문까지 시장에 떠돌기 시작하자 다급하게 시위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10] 1년 전 정수빈이 FA 당시 한화에서 더 큰 돈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류에 초점을 맞춰 에이전트를 재선임 하는 등 두산에 남았는데, 정작 본인은 허경민과 정수빈의 남아달라는 요청에도 돈 많이 주는 곳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두산 팬들의 조롱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금액차가 너무 많이 나긴 했기 때문에 단순비교해서는 안된다. 정수빈은 한화의 4년 40억도 제안을 뿌리치고 두산과 6년 56억 계약을 했지만 박건우의 경우는 두산에서 4년 근70억 제안을 했고 NC에서 6년 100억 제안을 했으니 기간도, 금액도 NC가 제시한 조건이 압도적으로 좋았다.[11] 사실 '정수빈이 박건우의 요청으로 팀에 남았다'는 것부터가 감정적인 해석이다. 4년 115억원 조건으로 두산에 잔류한 김재환 역시 잔류 발표 직후 '두산만 생각했다'고 인터뷰했고 두산 구단측 역시 '협상에 난항이 없었다'라고 입장을 밝혔으나, 김재환의 에이전트인 이예랑이 직접 방송에 출연해 말한 바로는 '김재환이 가장 경쟁이 치열했다'고 했다. 애초에 립서비스와 진심이 적당히 섞인 인터뷰들을 워딩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야구팬들의 바람이 섞인 낭만일 뿐이다.[12] 물론 선수생활과 코치는 별개이기에 얼마든지 코치로 두산에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고, 기아 영결 이종범이 LG에서 코치하듯 셋이서 롯데나 기아 등 전혀 연고가 없는 팀에서 코치를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이 역시 전혀 문제없는 발언이다.[13] 라방으로 인한 반감 이적 당시와는 달리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일부 팬들의 사적인 감정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 FA 이적건에 민감한 시점에서 굳이 라방 켜서 쓸데없는 소리로 두산 팬들을 분노케 했다는 반응도 이적 당시에야 들끓었던 것이고 어차피 결국 일부 팬들이 사적인 감정으로 민감하게 반응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14] 정수빈 역시 김재환과 함께 쌍으로 먹튀로 전락했다.[15] 그리고 박건우가 중견수 풀타임으로 무릎이 받쳐주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했을때 수비 범위가 좁아질 우려도 있는 만큼 가뜩이나 정수빈의 먹튀로 골치가 아픈 두산 입장에서도 김재환이 없었다고 해도 무작정 박건우를 잔류시키려고 하기엔 리스크가 제법 있었다. 내야와 투수진에 가려져서 그렇지 두산의 외야 자리도 세대교체가 확실히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고. 또 22시즌 박건우의 성적과 별개로 박건우에게 풀타임 중견수가 구장과 상관없이 무리였다는 사실은 결국 NC가 시즌 후 제이슨 마틴을 영입하고 손아섭을 좌익수로 보내면서 스스로 증명해버렸다.[16] 그리고 김재환, 양석환이 부진했을 뿐만 아니라 페르난데스가 34병살타를 치며 팀 타선 침체의 주 원흉으로 전락한 탓에 박건우가 두산에 잔류했더라도 20~21시즌처럼 리드오프를 안권수, 김인태 등으로 돌려막고 박건우를 3번에 배치켜도 팀 타선의 응집력이 유지되었을 것이라고 섵불리 예측을 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17]양의지가 두산으로 다시 돌아오고, 두산이 공수주와 프로의식 모든 면에서 나빠지는 모습을 보인 박세혁을 NC로 치워버리며 정리하면서 다시 한 번 재조명되고 있다. 가뜩이나 정수빈을 고액에 장기계약으로 잡은 시점에서 박건우까지 두산에 잔류했을 경우 졸지에 두산은 양의지 복귀는 고사하고 포수 뎁스를 처방하기 위해서 졸지에 곧죽어도 박세혁과 함께 굴러가야 하는 평생 동반자 신세가 되었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하다.[18] 즉, 두산 입장에서는 박건우를 어쩔 수 없이 놓칠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어차피 팀의 외야 뎁스가 충분한 만큼 내부에서 김대한, 양찬열, 홍성호같은 유망주들을 주전으로 키우면 그만이지 놓친 박건우에게 미련 가질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19]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잔류 1순위였던 김재환을 놓치는 일이 벌어질 경우 박정원 구단주가 직접 선회 루트로 김현수에게 협상을 제시해 친정 복귀를 제안하는 쪽으로 플랜B를 세웠다는 사실이 있었다고 한다. 김재환과 박건우가 같이 FA가 되었음에도 김재환을 놓치는 경우를 대비해 김현수에게 협상을 제안하는 선회루트를 미리 깔아놓는 동안에도 박건우의 이름이 단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FA 전부터 선수 쪽이나 구단이나 결별을 예상 및 암시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박건우 입장에서는 잔류를 하고 싶어도 구단의 잔류 의지가 전혀 없었으니 이적 의사가 없었다 쳐도 반강제적인 이적은 거의 확실시했던 것이나 마찬가지로,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이적 말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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