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피에르르무티에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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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백년전쟁 시기인 1429년 11월 4일, 잔 다르크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샤를 7세를 여전히 따르지 않던 루아르 강변의 생피에르르무티에를 포위 공격해 함락시킨 공방전.


2. 상세[편집]


1429년 9월 13일 1차 파리 공방전을 중단하고 부르주로 돌아온 샤를 7세는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와의 협상에 전념하기 위해 4개월간의 휴전 협약을 맺었다. 그러는 한편, 루아르 강변에서 아직까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몇몇 도시들을 복속시키기로 했다. 11월 4일, 파리 공방전 도중 허벅지에 석궁 화살을 맞은 부상을 입은 뒤 몇달간 요양하다가 회복된 잔 다르크는 왕명을 받들어 드뢰 백작 샤를 2세와 함께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생피에르르무티에로 진격했다.

작은 언덕 위에 세워진 생피에르르무티에 시는 한 개의 성벽과 3개의 탑, 3개의 성문을 갖췄으며, 성벽 앞에는 인근 연못을 통해 물을 공급받는 해자가 있었다. 프랑스군은 이 정도 도시 쯤은 손쉽게 공략할 수 있으리라 믿고 공격을 감행했지만 수비대의 결사적인 항전으로 인해 패퇴했다. 이때 잔 다르크는 다들 퇴각하는 와중에도 몇 명의 부하와 함께 현장에 남아서 상황을 살폈다. 훗날 잔 다르크의 시종이었던 장 도롱(Jean d'Aulon)은 잔 다르크의 복권 재판에 출석해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고 거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때 성녀가 다른 사람들과 거의 동행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을 타고 그녀에게 다가가서 거기서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다른 사람들처럼 물러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머리에서 투구를 벗은 후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5만 명의 사람이 여전히 저와 함께 하며 도시가 함락될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있는 사람은 4~5명밖에 없고 적들도 이것을 봤으므로 다른 사람들처럼 빨리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도시의 해자 위에 다리를 놓기 위해 장작나무와 선반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부하들과 함께 다리를 건너 도시로 달려갔고, 도시는 별다른 저항 없이 함락되었습니다.


샤를 7세의 주치의이며 석궁 화살에 맞은 잔을 치료했던 레지날트 티에리(Réginald Thierry)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잔은 생피에르르무티에의 성 안에 있었습니다. 도시가 습격당했을 때, 무장병들은 교회를 약탈하고 귀중한 물건들을 약탈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잔은 강인한 에너지로 이에 반대해, 그들이 어떤 것에도 손을 대지 않도록 막았습니다."


이리하여 생피에르르무티에를 공략하는 데 성공한 잔은 라 사리테 공략에 착수했다. 그곳은 잘 요새화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오랜 포위 공격을 버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보급품을 보유했다. 또한 잔이 이끄는 군대에는 포병이 없었다. 잔은 11월 7일 부르주에 지원군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11월 9일 샤를 2세와 함께 재차 요청했다. 그러나 샤를 7세 정부는 한참 동안 보내주지 않다가 한 달 후에야 약간의 병력과 포병을 보내줬지만, 그 때는 이미 겨울이 시작되어서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었다. 결국 잔은 라 사리테 공략을 포기하고 귀환해야 했다.

생피에르르무티에와 라 사리테 공방전을 치른 후 부르주에 돌아온 잔은 샤를에게 공로를 치하받고 가족과 함께 귀족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하지만 봉토나 병사를 거느릴 권한이 없는 사실상 명예직에 불과했다. 일각에서는 샤를이 그녀에게 문장과 귀족위를 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은퇴하길 희망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잔은 끝까지 전쟁에 참여하고자 했고, 외교를 통해 이득을 챙기고자 했던 샤를 7세는 그런 그녀를 점차 멀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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