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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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6.25 전쟁의 전투 및 작전 목록 파일:북한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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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북한군의 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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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산 포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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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고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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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9-973-883고지 전투


7월
중공군 7차 공세(7/13)

· 금성 전투

· 백암산 전투

· 425고지-406고지 전투


첨자 : 공산군의 승리 / 첨자 : 유엔군의 승리
월표기: 전투 개시일 기준, 실제 교전기간은 개별 문서 확인




파일: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 전쟁기념관, 한국문화정보원(공공누리).jpg
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 기록화

1. 개요
2. 전투 전 상황
3. 1차전 (7.7 ~ 7.8)
4. 2차전 (8.5~8.7)
5. 3차전 (9.6~9.20)
5.1. 9월 6일
5.2. 9월 7일
5.3. 9월 8일
5.4. 9월 9일
5.5. 9월 10일
5.6. 9월 11일
5.7. 9월 13일
5.8. 9월 14일
5.9. 9월 18일
5.10. 9월 20일
6. 4차전 (9.28~ 9.29)
6.1. 9월 27일
6.2. 9월 28일
6.3. 9월 29일
7. 5차전 (10.6~ 10.14)
8. 중공 6월 공세 방어전 (1953.6.12 ~ 6.15)
8.1. 6월 12일
8.2. 6월 13일
8.3. 6월 14일
8.4. 6월 15일
9. 여담



1. 개요[편집]


6.25 전쟁이 한창인 1952년 7월부터 1953년 7월까지 금성천 북쪽 수도고지(610고지)-지형능선을 장악한 수도사단(1~5차전)과 국군 8사단(6월공세 방어전)이 이를 탈취하려는 중공군에 맞서 치룬 고지전.


2. 전투 전 상황[편집]


수도사단이 사수중인 수도고지-지형능선은 본디 51년 10월 말 제6사단이 탈취한 이래 지금껏 1개 소대를 교대로 배치해가며 경계 및 방어하고 있었으며, 중공군이 점령한 747, 748 고지들을 감제할 수 있었으나, (높이가 비슷했던 탓에) 중공군들 또한 아군을 감제할 수 있었다.

또한 동북쪽으로 뻗은 지형능선은 690고지, 중앙의 730고지(최고봉), 710고지(지형고지)의 3개 고지군으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이 능선군은 북동쪽, 북쪽 경사면은 완만해 적의 접근이 쉽지만 남쪽은 급경사라 아군에게 불리했고, 설령 여기서 물러나더라도 남쪽 금성천을 두고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어 필사적으로 사수해야할 위치는 아니었지만 휴전협정장에서의 기 싸움을 위해선 제법 중요한 곳이었다.


3. 1차전 (7.7 ~ 7.8)[편집]


621고지 및 지형능선의 A,B,C 고지 공격전.


4. 2차전 (8.5~8.7)[편집]


참고자료

야음 속에서 피리와 꽹과리 소리와 함께 2000여명의 중공군이 삽시간에 1연대 진지들을 돌파함으로서 이 전투의 서막을 알렸다. 또한 1연대장 박춘식 대령의 회고에 따르면 적들은 우리 진지 앞에 굴을 파고 숨어있다 기습해왔다고 한다.


5. 3차전 (9.6~9.20)[편집]


참고자료1 - 625 진실 알리기 본부 참고자료2 - 조갑제 닷컴

5.1. 9월 6일[편집]


오후 6 50분 수도고지 전방 748고지 서쪽에서 녹색 신호탄 5발과 함께 26연대 2대대가 지키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 일대에 공격준비사격이 실시되었다.

오후 7시경엔 26연대 2대대의 관측소인 663고지 일대에 연막탄이 떨어졌는데, 직후 1개 중대에 이어 1개 대대급 병력들이 수도고지 좌우 계곡으로 공격해 왔으며, 5중대 1소대가 지키던 수도고지를 피탈했다. 이에 연대는 663고지 후사면의 10중대에게 역습을 준비시키면서 9중대에게는 10중대가 있는 곳으로 가도록 명령한다.

오후 7시 20분 지형능선을 지키던 기갑연대 5,6중대 진지도 2개 중대급 공격을 받았고, 이후 8시에 1개 중대급 공격을 추가로 받아 지형능선의 일각(F고지)을 상실하였고, 6중대가 지키던 575 고지도 연이어 공격당했으나 사수에 성공한다.

오후 8시 50분 26연대 10중대가 수도고지 탈환을, 그리고 오후 9시 30분 기갑연대 5중대 1소대가 지형능선의 중공군에게 반격하기 위해 각자 돌격하나, 모두 돈좌되었다.

오후 11시 30분 경 663고지 후방으로 철수한 26연대 10중대는 지원사격의 엄호 속에 수도고지를 향해 재돌격한다.


5.2. 9월 7일[편집]


자정 무렵 26연대 10중대는 계속 돌격해 적 진지까지 돌입하였으나, 적의 저항으로 다시 후퇴하였다.

오전 2시 10분 경 26연대 9,10중대는 3대대로 다시 예속되었고, 오전 3시경 3차 돌격을 감행해 오전 4시 35분경에 수도고지에서 백병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적의 증원에 5시 40분경에 다시 물러나야 했다.

오전 7시 35분 기갑연대 2중대는 지형능선 피탈부로, 26연대 11중대는 오전 7시 40분 엄호 사격 속에 수도고지로 재돌격하였으나 이조차도 모두 돈좌되었다.

이후 정오 무렵 26연대에 배속된 제1연대 제1대대는 663고지에 집결해 돌격을, 26연대 3대대는 663고지 엄호 사격을 위한 준비를 해 오후 2,3시경 돌격하나, 분당 2천발이 넘는 포탄 속에서 오후 4시 20분 경 돈좌되고 만다. 이후 양 대대는 잠복조를 차출해 먼저 전방 배치한 뒤 오후 6시 30분경 재돌격을 감행해 10시경에 수도고지에서 백병전이 벌어진다.

5.3. 9월 8일[편집]


자정 무렵에도 수도고지에 대한 적의 거센 저항으로 1연대 1대대와 26연대 3대대의 탈환 시도는 돈좌되었다.

오전 3시 663고지에 남아있던 1연대 1중대가 후속 돌격을 감행, 6시 50분경 고지 위까지 당도했고, 이에 2,3중대도 가세하나, 적의 맹렬한 포격으로 1중대 2개 분대가 전멸한다. 그래도 이전과 달리 완전히 물러나지 않고 수도고지 남쪽 사면에서 대치하게 되었고, 이 와중 26연대 3대대는 663고지 부근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30분 3대대는 11중대를 먼저 돌격시키나 포격 앞에 돈좌되었다.

오후 2시 후퇴한 11중대는 1연대 1대대 잔여 병력들과 함께 120여명급 후속 돌격을 감행하나 적의 증원 앞에 적진 50m 사이를 두고 대치하게 된다.

이렇게 사단의 모든 탈환 시도가 돈좌되자 사단장 이용문 준장은 오후 6시에 지형능선의 기갑연대를 시작으로 오후 9시엔 나머지 부대들에게도 일체의 모든 탈환 시도를 중지시켜 우선 수비를 한 뒤 지형능선 748고지에 폭격을, 그리고 수도고지 일대에 포격을 실시한다.

5.4. 9월 9일[편집]


오후 7시 40분경 공격준비사격이 실시되었고, 직후 1연대 2대대 5,6중대가 전면을, 7중대는 예비로 뒤따르는 공세가 시작되어 오후 11시 20분 경 수도고지 탈환에 성공한다.

5.5. 9월 10일[편집]


오전 3시 중공군 1개 중대급 무리가 748고지 서쪽으로 다가오자 포격으로 이를 격퇴시켰고, 5시 20분 경 후속 공격이 시작되었으나 이 또한 6시 10분경에 격퇴한다.

오전 7시 (26연대 배속이 해제된) 1연대 1대대는 차후 작전에 대비하고자 광대골로 내려간다.

오후 8시 40분 기갑연대는 지형능선의 중공군 탄막을 우회해 무혈 점령하였다.

오후 9시 10분 경 1연대 5,6중대가 지키던 수도고지를 향해 중공군의 포격과 함께 2개 중대급 역습이 시작되었다.

오후 9시 50분 지형능선에도 2개중대급 역습이 시작돼 10시 20분경 또다시 피탈당하고 만다.

5.6. 9월 11일[편집]


오전 2시 1연대 7중대 1개 소대가 수도고지에 우선 도착해 남아있는 중공군들을 정리하였으나, 새벽 3시경에 재역습이 시작되었다.

오전 5시 7중대의 나머지 소대들이 도착했으며, 뒤이어 중공군 1개 중대가 수도고지 남쪽으로 뒤치기를 시도했으나, 1연대 수색중대가 이를 돈좌시켰다.

오전 6시 수도고지 사수에 성공한 1연대와 26연대 부대들은 수색중대에게 수도고지를 잠시 인계하고 재정비에 들어갔고, 이후 진지공사에 들어갔다.

5.7. 9월 13일[편집]


오전 3시 30분경 748고지를 향한 포격과 함께 머리에 흰 띠를 두른 중공군 1개 대대가 7부 능선까지 육박해 왔으나 1연대 5중대의 분투로 오전 5시 30분경 이들을 돈좌 및 추격해 격퇴시켰다.

오전 5시 25분 지형고지에서도 기갑연대 3대대가 재탈환에 성공한다.

5.8. 9월 14일[편집]


오전 7시 지형능선을 향해 1개 중대급 역습이 시작되어 7시 40분 또다시 피탈당한다.

오전 8시 15분 1연대 9,11중대 기갑연대 2중대가 탈환을 시도하나, 돈좌되었다.

5.9. 9월 18일[편집]


오후 8시 1연대 7중대 2소대 진지에 중공군 1개 중대가 돌격해 쌍방간 수류탄전이 전개되었으나 50분 뒤 격퇴했다.

5.10. 9월 20일[편집]


오전 3시 1연대 7중대 진지로 중공군 1개 중대가 재차 돌입해 백병전이 벌어졌으나 5시 25분 경 격퇴한다.


6. 4차전 (9.28~ 9.29)[편집]


참고자료

6.1. 9월 27일[편집]


오후 3시 한 무리의 중공군이 26연대 2중대 진지 앞 계곡을 통과해 후사면으로 사라지자 이백균 1소대장은 이를 중대에 보고해 포격이 시작된다.

오후 5시에 포격이 이뤄진 곳으로 가보니 그곳엔 중공군 시체들 및 깊숙히 파여진 동굴(혹은 갱도)이 있었고, 이후 동굴 입구를 폭파시켰다.

6.2. 9월 28일[편집]


오후 6시 30분 중공군들이 능선 부근에 모여들어 공격 준비를 한다.

오후 10시 15분 수도고지 정상을 향해 공격준비사격이 5분간 이뤄졌다. 그 뒤 1개 중대급 병력들이 사방에서 몰려왔으나 수류탄을 아낌없이 퍼부어 격퇴시켰다.

오후 11시 이번엔 6부 능선을 따라 한무리의 중공군이 누런 마대 자루를 들고 올라왔는데, 이들은 조명탄이 터질 때마다 마대를 뒤집어 써 은엄폐를 하는 지능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조명탄 빛이 사그라질 무렵 '일제히 움직이는' 실수를 범해 TOT 포격에 몰살당했다.

6.3. 9월 29일[편집]


자정에서 오전 1시 30분 사이 후속 공격이 시작돼 26연대 2중대 진지에서 백병전이 전개되었다. 이에 박격포와 VT신관을 이용한 진내사격이 실시되어 진지나 참호 안으로 뛰어들지 못한 중공공들은 말 그대로 피떡이 되었고, 예비로 대기중인 3중대가 후속 돌격해 이들을 몰아낼 수 있었다.


7. 5차전 (10.6~ 10.14)[편집]



8. 중공 6월 공세 방어전 (1953.6.12 ~ 6.15)[편집]


참고자료

중공군의 6월 공세(금성 전투)가 시작될 무렵, 이곳을 담당한 국군 8사단은 지형능선 일대에 16연대를, 수도고지 일대엔 21연대를 배치해 방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5월에서 6월 초 사이 찌르기식 집중공격을 해오다 한동안 잠잠해졌다. 그리고 6월 10일, 1000여발의 포탄이 이 일대를 두들겼지만 후속 공세는 없었다. 그러다가 12일부터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8.1. 6월 12일[편집]


오후 10시 21연대가 지키던 진지들을 향해 중공군의 5개 대대급 공세가 시작되었고, 이 물량에 의해 3대대가 지키던 973, 883고지가 돌파당하자 3대대장은 10중대를 663고지로 보내는 한편 수도고지의 11중대장이 "적 4개 중대 진내 돌입, 백병전 전개중, 진내사격 바람!" 이란 말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되자, 증원이 올 때까지 버티라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이 와중 8사단 동쪽 5사단의 973, 883고지 또한 적에게 완전히 돌파당했다.

8.2. 6월 13일[편집]


자정에도 적의 공세는 멈출 줄 몰랐고, 우선 우인접 1대대 1중대 진지가 돌파당했고 좌인접 2대대 7중대 진지에서도 교전이 벌어져 증원을 기대할 수 없는 가운데 수도고지, 663고지 일대가 피탈당하기에 이른다. 이에 사단장은 후방 10연대에게 663고지와 1중대 진지를 탈환하라고 명령해 10연대 1,2대대가 일출 무렵 각자 출발한다. 하지만 이들의 탈환 시도는 적의 거센 저항 앞에 돈좌되었다.

오후 9시 25분경 중공군은 수도고지 점령의 기세를 몰아 16연대가 지키는 지형능선까지 공격하였는데, 이 당시 이곳은 3대대가 좌측, 1대대는 우측, 배속된 10연대는 중앙을, 그리고 2대대는 예비대로 능선 후방에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11시경에 수색중대 전초, 10분 뒤 지형고지를 피탈당했다.

8.3. 6월 14일[편집]


오전 2시 지형능선 최고봉(730고지)이 피탈당하는 가운데 10연대 9중대는 690고지를 사수하고 있었다.

오전 3시 40분경 2대대 6중대의 탈환 시도가 있었으나 이조차도 돈좌되었다.

이후 중공군은 나머지 고지군을 탈취하기 위해, 21연대와 16연대 2대대는 저지선을 각자 구축해 대치상태에 들어간다. 하지만 중공군은 야간에 각 저지선마다 1개 대대급 공세를 펼쳤다.

8.4. 6월 15일[편집]


상황이 절망적으로 흘러가자 2군단장은 자정 무렵 수도고지-지형능선에서 저항하는 8사단과 인접한 5사단에게 후퇴를 명령하는 한편 예비로 배속된 3사단에게 이들을 엄호할 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이후 추가적인 탈환 시도 없이 정전을 맞게 됨으로서 결과적으로 중공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9. 여담[편집]


참고자료

  • 이 일대 역시 잦은 포격과 폭격 속에 나무들이 뿌리채 박살나거나 파해쳐져 민둥산이 되었는데, 문제는 여기가 흙산이라서 포탄 하나만 떨어져도 먼지가 모래폭풍처럼 날려 시야는 시야대로 가려지고 총기류 또한 잘 고장났다. 그래서 공격할 때 소총 따윈 아예 팽개치고 마대자루 수십개에 수류탄 50개를 담아 돌진했다.

  • 또한 이렇게 가져간 마대자루에 먼지 폴폴 날리는 흙을 담아 진지공사를 해도 포탄 한발 떨어지면 거의 와장창 박살날 정도로 참호의 내구성은 형편없었다.

  • 한편 화약 냄새 그득한 먼지는 눈병을 야기할 정도로 유독해 운전이나 전차병이 쓰는 보안경이 인기 품목이 되었다고 한다.

  • 전방 진지 뿐만 아니라 대대지휘소에도 포탄이 떨어져 인수하려던 대대장이 실려가자 인계하고 가려던 대대장이 그 대대를 지휘하기도 했다고 한다.

  • 쌍방의 잦은 포격으로 20개 이상 깔아둔 통신선 단선이 잦자 50~100m 간격으로 유선병을 배치해 수리시키기도 했다.

  • 중공군으로부터 노획한 물자 중 아편이 나와 인해전술시 마약 먹이고 돌격시켰다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 국가보훈처가 매달 선정해 발표하는 6.25 영웅 포스터 중 2019년 9월의 영웅으로 이 전투에서 전사한 공해동 하사를 선정했는데, 문제는 국군이 아닌 중공군의 공세 사진을 써서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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