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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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6.25 전쟁의 전투 및 작전 목록 파일:북한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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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군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인포그래픽

1. 개요
2. 전개
2.1. 1차 시도
2.2. 2차 시도
3. 기타


1. 개요[편집]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은 6.25 전쟁 중인 1952년 1월 12일부터 1월 15일까지 4일에 걸쳐 대한민국 공군이 벌인 폭격 작전이다.


2. 전개[편집]


승호리 철교는 평양 동쪽의 대동강 지류 중 하나인 남강에 놓인 철교였다. 이는 평양 남쪽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평덕선 철로의 일부로, 강 서안의 청룡역과 동안의 립석리역을 이었다. 평덕선은 원래 평안남도 북부의 탄전지대에서 나오는 석탄을 운송하던 산업철도 역할을 하는 노선이었지만, 원산을 향하며 동-서부전선를 이어주는 핵심 간선인 평원선(현재의 평라선)과 교차하기 때문에 이의 우회 노선으로서도 중요했다.

원래의 승호리 철교는 이미 미군 제5공군이 파괴한 바 있었다. 하지만 북한군은 기존 철교의 북쪽(하류 방향) 약 200m 지점에 목재를 쌓아 임시 교각을 만들어 복구를 해 놓고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당시 동-서 교통로 파괴를 위해 평원선 전체를 난타하고 있던 미 공군은 이 임시 승호리 철교에도 폭격을 퍼부었다. 북한군 및 중국인민지원군도 철교 방어를 위해 다수의 대공포를 주변에 배치해놓고 집요한 방어를 펼쳐, B-29 500소티 이상을 출격시켰어도 완전 파괴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미군에서는 밑져야 본전이란 식으로 한국 공군에게 폭격 임무를 맡겨 보기로 한다. 이에 작전을 맡은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장 김신 대령[1]은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을 달성한 조종사인 김두만 소령[2]에게 임무를 맡겼다.


2.1. 1차 시도[편집]


1952년 1월 12일 아침 7시 40분, F-51 5기로 이루어진 폭격 편대가 강릉기지에서 출격했다. 각 기체는 500파운드(226.8㎏) 짜리 통상폭탄 2발, 5인치 고속항공로켓탄(HVAR) 4발을 장비하였다.

  • 편대장 김두만 소령
  • 2번기 장성태 대위
  • 3번기 김금성 대위
  • 4번기 이기협 대위
  • 5번기 전봉희 대위

하지만 이 첫 작전은 미군의 폭격작전과 마찬가지로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기관총과 로켓으로 대공포대를 제압하고 투하한 폭탄은 모두 빗나가서 모래바닥 위에 떨어졌다.

같은 날 오후, 머스탱 3기로 이루어진 두 번째 편대가 폭격을 시도했으나 다리 위의 철로만 손상됐을 뿐 다리는 부수지 못했다.

  • 편대장 윤응렬 대위
  • 2번기 주영복 대위
  • 3번기 정주량 대위



2.2. 2차 시도[편집]


김신 대령은 참모들과 숙의한 끝에 8,000ft(2438m)에서 강하를 시작하여 3,000ft(914.4m)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미군 전술을 포기하고 위험성이 훨씬 더 크지만 폭격 명중률을 크게 높일 수 있도록 안전 고도보다도 더 낮은 4,000ft(1219m)에서 강하를 개시해서 1,500ft(457.2m) 상공에서 폭격하는 것으로 작전을 전환한다.

1월 15일 오전 8시 25분, F-51 6대가 2개 편대를 이루어 재차 공격에 나섰다. 1편대가 로켓으로 다리를 일차 공격한 뒤 주변의 대공포 진지를 제압하고, 2편대가 로켓탄과 폭탄을 투하하여 마침내 철교를 부수는데 성공했다.

  • 1편대장 윤응렬 대위
  • 2번기 정주량 대위
  • 3번기 장성태 대위

  • 2편대장 옥만호 대위
  • 2번기 유치곤 대위
  • 3번기 박재호 대위

파일:image__2017_108865_15816556382779504.jpg
폭파 전과 후 비교 사진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은 훨씬 경험 많고 능력있는 미군조차 실패하고 있던 상황을 신출내기 한국 공군이 해내면서 그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고, 작전 성공 이후 2000년대 넘어와서까지도 평양 대폭격 작전, 351고지 전투 항공지원작전과 더불어 대한민국 공군의 쾌거로 늘 거론되고 있다.


3. 기타[편집]


  • 영화 <빨간 마후라>에서 이 승호리 철교 폭파적전을 각색해 절정부에 써먹었다. 당시 촬영 환경의 한계로 실제 투입된 F-51이 아닌 영화 촬영 당시 한국 공군에서 운용하던 F-86 세이버가 투입되는 모습이며, 실제로는 다리를 끊고 모두 생환했지만 영화에서는 피격당하고 중상을 입은 한국 공군기가 자폭 공격으로 희생하여 끊어낸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 비슬산 유가사로 올라가다 보면 전투기 모양으로 건립한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이 있다.[3] 유치곤의 고향이 이 유가읍이어서 지역민들의 모금 등을 통해 건립하였다.

  • 제주특별자치도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활약상을 전시해 둔 곳에서도 소개가 되어 있다.

  •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베테랑 조종사들은 대부분 이후 대한민국 공군의 주요 지휘관으로 성장했다.
    • 1편대장 윤응렬은 공군작전사령관(소장)을 역임하고 2022년 10월 24일 오후 2시에 사망하였다.
    • 2편대장 옥만호는 제12대 공군참모총장(대장)을 역임하고 2011년 5월 13일에 사망하였다.
    • 1편대의 정주량은 1952년 12월 5일 사천비행장 부근에서 비행 중 사고로 2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 1편대의 장성태는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준장)을 역임하고 2007년 9월 8일에 사망하였다.
    • 2편대의 유치곤은 공군 제107기지단장(대령)으로 재직하다 1965년 1월 1일에 과로로 사망하였다. 사후 준장 계급이 추서되었다.
    • 2편대의 박재호는 공군작전부사령관, 제11전투비행단장(준장)을 역임하고 현재까지 생존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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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2] 작전 당시의 계급으로, 나중에 공군참모총장(대장)까지 지낸다.[3] 유치곤 장군 동상 옆에는 아들 유용석 소령의 흉상도 세워져있다. 유용석 대위(사후 소령 추서)또한 아버지의 뒤를이어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조종사가 되었지만 제주 C-123 추락사고로 인하여 순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