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율돌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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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耶律突呂不
(? ~ 942)
요나라의 인물. 자는 탁곤(鐸袞)이며 일찍이 태조(太祖)를 섬겨 중용되었다.
2. 생애[편집]
신책(神冊) 5년, 거란(契丹)의 대자(大字) 제정에 야율돌려불이 참가하여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얼마 후 문반임아(文班林牙)가 되어 국자박사(國子博士)와 지제고(知制誥)를 겸하였다.
신책 6년, 옥법(獄法)의 제정에 임하였다.
천찬(天賛) 원년, 태조가 유주(幽州)를 공격하자 야율돌려불은 왕욱(王郁) 그리고 황태자(皇太子) 야율돌욕(耶律突欲)과 함께 정주(定州)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군사를 돌려 순주(順州)에 이르자 유주마보군지휘사(幽州馬步軍指揮使) 왕천(王千)이 군사를 거느리고 내습해왔다. 이에 야율돌려불이 그의 말을 활로 쏴 넘어뜨리고 왕천을 사로잡았다.
천찬 2년, 황자(皇子) 야율요골(耶律堯骨)이 대원수(大元帥)에 임명되자 야율돌려불이 보좌하여 평주(平州)를 함락시키고 곡양(曲陽)과 북평(北平)을 점령하였다. 역주(易州)에 이르자 역주의 군사들이 해자를 넘어와 막고자 하였는데 이경장(李景章)이 항복해오면서 성민들은 싸울 의지가 없다고 성 안 민심을 알려왔다. 이에 대원수 야율요골이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야율돌려불이 "저희는 멀리서 와 군사들과 말이 모두 피로하니 사기가 떨어질 것입니다." 라고 간하여 말하니 이에 그만두었다. 군대가 돌아오자 대원수가 야율돌려불의 지혜를 보고하였는데 태조가 이에 크게 기뻐하여 넉넉하게 하사하였다.
천찬 4년, 서쪽을 정벌할 때 야울돌려불은 대원수 야율요골과 함께 선봉에 서서 당항(党項)을 토벌해 전공을 세우자 태조가 수정산(水精山)에서 그들에게 음식을 내려 위로하였다. 대원수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야율돌려불은 서남부(西南部)에 진을 치고 머무르다가 다시 당항을 정벌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천현(天顯) 원년, 태조가 발해(渤海)를 정벌하자 대인선(大諲譔)이 항복하였는데 다시 배반하여 공격하였다. 이 때 야율돌려불이 선봉에 섰다. 발해를 평정한 뒤 야율돌려불은 명을 받아 태조의 공덕을 영흥전(永興殿) 벽에 새기었다. 본군이 귀환한 후 항복했던 발해의 많은 지역들이 다시 저항하자 야율돌려불은 대원수와 함께 그들을 토벌하였다.
태조가 붕어한 뒤 순흠황후(淳欽皇后)가 정권을 잡자 야율돌려불이 근거없는 거짓말을 하였다고 태후가 격분하였는데 이에 야율돌려불이 두려워하여 달아났다. 그러나 태종(太宗)이 그의 무고함을 알고 돌아오도록 하였다.
천현 3년, 오고부(烏古部)를 공격하여 많은 무리를 사로잡았다. 또 좌익(左翼)을 이끌고 후당(後唐)의 하사채(霞沙寨)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천현 11년, 후진(後晉)의 석경당(石敬瑭)에게 사신으로 보내져 낙양(洛陽)에 갔다. 후에 석경당이 즉위하자 모든 예의에 관한 일을 맡고 특진(特進) 검교태위(檢校太尉)가 되었다.
회동(會同) 5년, 사망하였다.
3. 여담[편집]
어렸을 때 총명하고 민첩하며 배움을 즐겼다고 한다.
형제 관계로 야율탁진(耶律鐸臻)과 야율고(耶律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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