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롯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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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연도
2.1. 2000년: 결성
2.2. 2001년
2.3. 2002년
2.4. 2003년
2.5. 2004년
2.6. 2005년
2.7. 2006년
2.8. 2007년
2.9. 2008년
2.10. 2009년
2.11. 2010년
2.12. 2011년
2.13. 2012년
2.14. 2013년
2.15. 2014년
2.16. 2015년
2.17. 2016년
2.18. 2017년
2.19. 2018년
2.20. 2019년
2.21. 2020년
2.22. 2021년
2.23. 2022년
2.24. 2023년: LG의 탈출, 그리고 해체


1. 개요[편집]


엘롯한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이다.

2. 연도[편집]



2.1. 2000년: 결성[편집]


작년에 이어 양대리그제가 유지되었으며 전 시즌인 1999년 통합 승률이 짝수 순위였던 롯데(2위), 한화(4위), LG(6위)와 신생팀이었던 SK가 매직리그에 배정되며 엘롯한이 모두 매직리그에 들어가게 되었다. 2000년 매직리그에서 LG가 1위, 롯데가 2위를 거두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한화는 3위를 거두어 포스트시즌에 탈락했다. 당시 매직리그 2위였던 롯데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드림리그 1위였던 현대와 플레이오프에서 대결했을 것이지만 당시 드림리그 3위 삼성의 승률이 매직리그 2위 롯데의 승률보다 높았기 때문에 3선승제 준플레이오프를 치렀고, 삼성이 작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복수에 성공하며 시리즈 전적 1:3으로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한편 매직리그 1위였던 LG는 드림리그 2위였던 두산과 4선승제 플레이오프를 치렀으나 역시 시리즈 전적 2:4로 탈락한다.

그리고, 이 시즌이 엘롯한이 무관을 하게 될 20여년간의 기나긴 시즌 중 첫 번째 시즌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2.2. 2001년[편집]


양대리그제에서 3년 만에 단일리그로 바뀐 첫 시즌이다.

당시 정규시즌에서는 삼성이 1위, 현대가 1위와 7게임차 2위, 두산이 2위와 6.5게임 차, 4위와 4.5게임 차 3위로 넉넉히 1, 2, 3위를 달성했기에 마지막 남은 한 자리인 4위를 두고 박 터지는 경쟁을 펼쳤다. 결말은 4~8위가 한화-KIA-LG-SK-롯데 순으로 한화와 롯데의 승차는 겨우 1.5경기차였다.

한화가 시즌 내내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이며 0.469의 낮은 승률로도 4위에 턱걸이하며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두산에 2 대 0으로 패배했다.

시즌 전 홍현우와 로마이어의 가세로 우승후보 소리 듣던 LG는 시즌 초 9승1무25패의 극심한 부진으로 이광은 감독이 경질되고 김성근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러 상승세를 타며 4강 경쟁에 나섰으나 6위로 마무리했다. 9월초 부진으로 구단 첫 최하위 위기에 몰렸으나 마지막에 뒷심을 발휘하며 롯데를 최하위에 빠뜨렸다. 롯데는 여러 엇박자들이 발생하며 최하위권으로 처졌고 급기야 후반기가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김명성 감독이 별세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우용득 대행 체제에서 선전하며 뒷심을 발휘해 4강 경쟁에 합류했으나 펠릭스 호세가 경기 중 배영수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전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최하위로 마쳐 비밀번호의 시작을 알렸다.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레전드 김태균이대호가 고졸신인으로서 나란히 데뷔한 해이다. 김태균은 20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등극했고 이대호는 위에 언급된 호세의 징계로 1군에 처음으로 올라왔다.

2.3. 2002년[편집]


이 시즌부터 롯데의 본격적인 암흑기가 시작했다. 전년도인 2001년의 경우 비록 꼴찌였어도 김명성 감독의 갑작스런 사망 등의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었고 4위와 불과 1.5게임 차 꼴찌니만큼 이 때부터 암흑기가 시작됐다고 보긴 무리다. 다만 롯데 팬들의 금지어로 낙인찍힌 백인천 재임 시절은 영락없이 암흑기 시절이었다.

이 시즌에는 정규시즌에서 LG가 4위, 롯데가 최다 패(97패) 기록을 세운 8위, 한화가 7위를 기록하였다. LG는 SK와 롯데 두 팀 상대로만 우세하고도 전반기 2위였던 두산의 후반기 추락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LG의 진격은 이때부터였다. 준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꺾고, 플레이오프에서 KIA까지 꺾으며 8년 만의 우승을 이뤄 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부풀었다. 하지만 힘이 빠진 나머지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패하고 말았다. 이 한국시리즈는 2023년 전까지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였으며, 이 한국시리즈에 LG 소속 선수로 출전한 선수 중 마지막까지 현역이었던 선수는 다름아닌 2020년 은퇴한 LG의 3번째 영구결번자인 박용택이다.

이후 2002년 당시 LG 감독이 김성근이었다는 점 때문에 김성근의 저주에서 쌍방울과 함께 저주가 가장 세게 발현된 사례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2.4. 2003년[편집]


2003년에는 세 팀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롯데의 본격적인 암흑기와 LG의 암흑기 시작도 이 시기였으며 특히 LG는 2002년까지만 해도 삼성, KIA에 이은 팀 승률 3위였으나 이 시즌부터 승률이 깎이기 시작했다.

2003년 한화는 5위, LG는 6위, 롯데는 3년 연속 꼴찌를 했다. LG가 직전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김성근을 경질하고 1994년 우승감독인 이광환을 복귀시켰으며 한화는 구단 코칭스태프로 오래 몸담았던 유승안을 감독으로 세웠다. LG는 2003년 투수력은 ERA 2위로 훌륭했으나 이병규의 시즌아웃과 부상자 속출 등으로 역대급 타격 부진을 겪었고, 결국 롤러코스터 행보[1] 끝에 8월부터 긴 연패에 자주 빠지며 6위로 마쳤다. 이상목김태균이 투타에서 맹활약한 한화는 6위가 유력해보였으나 LG 및 SK의 추락을 틈타 막판 엄청난 상승세로 시즌 막바지 잠깐 4위에 올랐으나 7위 두산에 고춧가루를 맞고 SK와의 단두대매치를 지면서 5위로 마쳤다. 롯데는 백골퍼의 실정이 본격화되며 개막 12연패로 시작했고 두산도 덩달아 추락하며 7위에 있던 기간도 있었으나 두산이 정신차리면서 다시 최하위가 되었다. 결국 백골퍼는 8월 초 15연패라는 흑역사 끝에 경질되었고 김용철이 감독 대행을 맡아 겨우 승률 3할대는 만들어냈지만 2년 연속 90패라는 흑역사는 피하지 못했다.

2.5. 2004년[편집]


2004년에도 세 팀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한편 LG는 이 시즌이 통산 승패마진이 +였던 마지막 해였다. 그러나 이 시즌에 LG의 금지어 감독인 이순철이 부임했으며 그의 부임 2년차인 2005년부터 승패마진이 -로 바뀌며 약팀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2]

2004년 LG는 제2창단을 선언하며 작전코치였던 이순철을 새 감독으로 세웠고 LG의 투수코치였던 양상문은 롯데 감독으로 부임했다. 초반 순항하던 LG는 6월부터 고꾸라지며 하위권으로 추락했고 8월 8연승으로 4강 진입 희망을 키웠지만 9월 KIA 및 SK와의 연전에서 추락하며 2년 연속 6위로 마쳤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훈과 유지현, 김재현과 좋지 않은 이별을 한 것으로 인해 팬들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한화는 7월까지 4강 경쟁을 하다가 8월 이후 갑자기 극심한 추락을 기록하면서 7위로 마쳤다. 이상목정수근을 영입한 롯데는 승률 4할대에 상대전적 우세팀 세 팀(두산, SK, 한화)을 만들어내며 이전 2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 LG와 삼성에 많은 패배를 당한 것 때문에 4년 연속 최하위로 마쳤다.

2.6. 2005년[편집]


2005년에는 한화-롯데-LG 순서대로 4~6위를 기록했다. LG는 2005년 6위를 기록했으며 시즌 종료 기준으로 통산 승패마진이 마이너스에 진입했고[3] 롯데는 양상문 감독 체제에서 2005년 초반 돌풍을 일으켰으나 추락하며 5위를 했다. 참고로 롯데의 2005년 초반 돌풍을 두고 당시 현대 유니콘스 감독이었던 김재박이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 발언은 현재까지도 아구계에 길이 남을 발언이 되었다. 한화는 LG, 롯데가 KIA와 엘롯기로 묶여 하위권 경쟁을 신나게 하던 시절,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해 3위였던 SK와 준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는데, 8.5게임차를 뒤집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두산에 3연패를 당하며 시즌을 마쳤다.

2.7. 2006년[편집]


LG는 2006년 이순철의 중도 사퇴 끝에 양승호 대행 체제에서 구단 사상 첫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또 2006년 4월 11일 한화전을 승리하여 정확히 통산 승률 5할을 기록한 것을 마지막으로 승패마진이 -가 되기 시작했다.

롯데는 2006년에 강병철을 또다시 감독으로 맞이했으나 LG와 꼴찌 경쟁 끝에 겨우 탈꼴찌에 성공하여 7위를 기록했다.

한화는 신인 류현진의 엄청난 활약을 앞세워 2006년 정규시즌 3위를 기록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준플레이오프에서 KIA를 꺾고, 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꺾으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LG와 마찬가지로 삼성에게 패배하며 우승이 좌절됐다.이 한국시리즈는 2023년 현재까지 한화의 마지막 KS 진출이 되었는데 이는 2023년 LG의 진출 이전까지 엘롯한을 통틀어 가장 최근의 한국시리즈였다. 즉 뒤집어 말하면 엘롯한은 최근 16년 동안 한국시리즈에 진출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2.8. 2007년[편집]


LG는 김재박 감독이 부임하고 박명환이 영입된 2007년에는 우규민, 이대형, 최동수, 이종열 등의 활약으로 4강 경쟁을 했으나 뒷심 부족으로 5위를 기록했다.

롯데는 2007년 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이대호의 포텐이 터졌음에도 2연속 7위에 그쳤고, 첫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 체제를 맞게 된다.

한편 김인식 감독 하의 한화는 2007년 3위를 기록하며 2023년 기준으로 3년 이상 PS를 연속으로 진출한 마지막 시기를 보냈다. 물론 이후 LG를 뛰어넘는 암흑기가 찾아왔을 정도로 미래 전력을 끌어다 쓴 대가는 너무도 혹독했다.

2.9. 2008년[편집]


LG는 암흑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중이었으며, 이 시기 우리-서울-넥센, 한화와 엘넥한으로 묶이며 치열한 하위권 경쟁을 이어갔다. 2008년, 김재박 부임 2년 차에 구단 최다패 신기록인 80패로 2년 만에 다시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롯데는 2008년, 제리 로이스터가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로이스터 매직을 발현하며 8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고 3위를 기록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패배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쳤다.

한화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류패패패 모드를 한 달 기록하면서 2위에서 5위까지 DTD를 한 후, 2018년 이전까지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다. 그나마 2008년은 5할 이상의 승률로 마쳤고 이는 2018년 이전까지 한화의 마지막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둔 시즌이 되었다.

2.10. 2009년[편집]


LG는 2009년 전력보강에도 7위에 그치며 김재박 체제는 막을 내렸다. 이 시즌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이자[4] 삼미-청보-태평양, 롯데에 이어 역대 3번째로 7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달성했다.

롯데는 2009년,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으나 이번에는 두산에게 1승 3패로 시리즈를 패배하고 말았다.

한화는 2009년, 23년 만의 최하위의 충격을 당했고 류현진을 제외하면 믿을 구석이 없는 독보적인 리그 최약체 팀이 됐다.

2.11. 2010년[편집]


LG는 박종훈 감독 체제에서 2010년 6위로 프로야구 첫 8년 연속 PS 진출 실패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롯데는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한 후 작년에 이어 또다시 두산과 맞붙었다. 지난 두 시즌과는 달리 1~2차전에서 2승을 거두어 플레이오프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3~5차전에서 내리 3연패를 당하며 리버스 스윕을 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제리 로이스터는 팀을 8년 만에 가을야구에 올려놓는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서의 저조한 활약을 보여주는 바람에 시즌 후 물러나고 말았다.

한화는 2009년을 끝으로 김인식 감독이 물러나고 2010년 한대화가 부임했지만 김태균과 이범호의 해외 진출, 송광민의 시즌 중 입대 등 전력 공백 끝에 2년 연속으로 꼴찌를 기록하고 말았다.

한 편 이 시즌에 LG와 롯데의 경기를 두고 엘 꼴라시코라는 단어가 만들어졌고 두 팀의 라이벌리가 본격적으로 강화되었다.

2.12. 2011년[편집]


LG는 2011년 전반기에 30승에 선착하는 등 순항했으나 많은 부상자와 함께 감독의 운영 미스 등이 속출하면서 DTD를 시전해 6위에 그쳐 9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다. 결국 이 시즌을 끝으로 박종훈 감독은 경질되고 만다.

반대로 롯데는 양승호 감독이 부임한 이후 단일리그 최초로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한 후 1999년 이후 12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SK와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승 3패로 아쉽게 패배하며 4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한화는 2011년에 야왕 신드롬으로 반짝 6위로 선전했으며, 이 해의 선전으로 인해 6년 연속 꼴찌라는 최악의 불명예만은 면했다.

2.13. 2012년[편집]


LG는 박종훈 감독이 물러난 후 김기태 감독이 부임했는데 첫 시즌인 2012년 6월 중순까지는 상위권에서 버텼으나 봉중근의 첫 블론세이브를 기점으로 추락하여 7위로 마쳐 10년짜리 비밀번호가 완성되었다.

롯데는 정규시즌에 4위를 기록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승리하며 1999년 이후 13년 만에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서 2년 연속으로 SK와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승 3패로 아쉽게 패배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한화는 한대화 감독 부임 3년차였던 2012년 김태균이 복귀하고 박찬호가 입단했으나 일찌감치 최하위를 기록하며 한대화 감독은 8월 27일 중도 경질됐고 작년의 성적은 허상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다.

2.14. 2013년[편집]


LG는 김기태 감독 부임 2년 차인 2013년, 10년의 암흑기를 끝내고 2013년에 3위를 기록했다. 정규시즌은 2위였으나 그만 두산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지는 바람에 3위로 밀려났다.

롯데는 2013년 김시진 감독을 선임하였는데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다.[5] 그나마 이 시즌에 승률 .532를 기록했는데, 이는 단일리그 체제에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팀 중 최고 승률로 기록됐다.

류현진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로 떠난 한화는 김응용 체제에서 개막 13연패의 흑역사 등을 남기며 작년에 이어 2연속으로 꼴찌를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암흑기가 진행됐다.

2.15. 2014년[편집]


LG는 2014년은 김기태 감독이 부임한 지 3년차였으나 팀이 시즌 초반 하위권으로 추락하자 4월 23일 돌연 사퇴를 선언하고 만다. 이후 LG는 양상문 감독을 선임한 후 시즌 막판 기적적인 팀 성적 상승 끝에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하고 준플레이오프에서 NC를 이겼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넥센에게 패하는 바람에 2013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시리즈 진출 기회를 문전에서 날리고 말았다.

롯데는 김시진 감독 부임 2년차인 2014년 7위를 기록하며 전성기가 저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같은 동남권에 소재해 있는 신생팀 NC가 창단 이후 2014년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등 거듭된 선전을 보여준 것과 비교되었으며,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까지 겹치면서 구단의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

한화는 김응용 감독 부임 2년차인 2014년, 정근우, 이용규 등을 FA로 영입하여 전력을 보강했지만 구단 최초로 3년 연속으로 꼴찌를 기록하며 시즌 종료 후 물러나게 되었다.

2.16. 2015년[편집]


2015년에는 결국 2004년 이후 11년 만에 엘롯한 동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LG가 일찌감치 9호선을 타며 추락했고 이해 돌풍과 흥행의 팀이었던 한화와 외국인 농사에 성공한 롯데가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있었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롯데는 이종운 감독을 선임하였고 외국인 농사에 성공하고 강민호와 최준석, 황재균이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지만 불펜의 엄청난 난조와 감독의 운영 미스 등으로 인하여 승부처에서 추락해 8위를 기록했다.

한편 LG와 롯데는 2015년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을 때 KIA, KT와 묶여 헬로키티를 형성했다.[6]

한화는 김성근 감독을 선임하고 시즌 중반 SK와 5강 경쟁을 하였지만 시즌 막판 선수 혹사의 여파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17. 2016년[편집]


LG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2016년에 승패마진 -14를 극복하고 후반기의 엄청난 질주를 통해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하여 2년 만에 가을야구에 복귀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IA를 이기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을 이겼으나 플레이오프에서 NC에게 패하는 바람에 2013년, 2014년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시리즈 진출 기회를 문전에서 날리고 말았다.

롯데는 조원우 감독을 새로 선임하였고 손승락과 윤길현을 영입했지만 2년 연속 8위를 기록하고 4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한화는 공격적인 FA 투자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극심한 부진이 시즌 내내 발목잡으면서 9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18. 2017년[편집]


LG는 2017년에는 개막 6연승에 팀 ERA 1위를 기록하고도 박용택 빼고 타격이 멸망해버렸고, 로니의 도주 사건까지 겹치며 DTD해 6위로 마쳐 롯데와 동반 PS를 치를 기회를 놓쳤다. 특이한 점은 8월 초 LG가 롯데와의 3연전을 스윕했을 때만 해도 LG는 안정권, 롯데는 7위가 유력했는데 잔여 두 달 동안 두 팀의 희비는 완전히 엇갈렸다.

롯데는 2012년 이후로 현재까지 단 한 차례 PS에 올랐는데 바로 2017년이다. 2017년 당시 롯데는 조원우 감독 하에 3위를 기록해 준PO에서 NC와 만나게 되었으나 패배하였다. 다행히 NC가 PO에서 두산에 패배하며 순위가 밀려나지 않았다.

한화는 5월 23일 김성근 감독이 전격 경질되고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로 남은 경기를 치렀고 8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19. 2018년[편집]


LG는 2018년에는 시즌 초중반까지만 해도 상위권에 위치해 2년 만에 PS 복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리고 21세기 처음으로 LG와 한화가 동시에 PS 진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으나 2011년에 버금가는 DTD를 하는 바람에 2위에서 8위까지 추락했다.


2018년 시즌 내내 롤러코스터를 타던 롯데는 막판 극적인 대반전으로 LG 등을 제치고 기적같은 PS 티켓을 얻는듯 싶었으나 KT에 고춧가루를 얻어맞으며 21세기 처음으로 한화와 롯데가 동시에 PS를 진출할 기회를 놓쳤다.

한화는 2008년 이후로 현재까지 단 한 차례 PS에 올랐는데 바로 2018년이다. 2018년 당시 한화는 한용덕 감독 하에 3위를 기록해 준PO에서 키움과 만나게 되었으나 패배하였다. 다행히 키움이 PO에서 SK에 패배하며 순위가 밀려나지 않았다.

2.20. 2019년[편집]


2019년, LG는 시즌을 4위로 마무리하고 NC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승리한 후 준플레이오프에서 키움과 맞붙었으나 구단 사상 첫 준플레이오프 패배라는 멍에를 쓰며 시즌을 마쳤다.

롯데는 조원우 감독을 경질한 후 양상문을 감독으로 선임하였으나 전반기부터 추락하였으며 결국 전반기 종료 이후 자진 사퇴하는 등 총체적 난국 끝에 15년 만의 꼴찌를 기록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롯데 자이언츠/2019년/문제점 문서에서 볼 수 있다.

한화는 2018년 3위의 기세를 잇지 못하고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 및 신진 선수들의 더딘 성장 등이 맞물려 다시금 최하위권으로 추락하기 시작했으며 그나마 이 시즌에는 롯데를 제치고 9위를 기록했다.

결국 롯데와 한화는 각각 2017, 2018년의 깜짝 선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KIA와 함께 한롯기를 형성하며 하위권 경쟁을 하였다.

2.21. 2020년[편집]


2020년, LG는 시즌을 4위로 마무리하고 키움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승리한 후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과 맞붙었으나 구단 사상 첫 2연속 준플레이오프 패배라는 멍에를 쓰며 시즌을 마쳤다.

2019년에 15년 만의 최하위의 수모를 겪은 롯데는 허문회를 감독으로 선임하고 5할 수성에 아쉽게 실패하는 등 5강 진출에 실패하며 기회는 무산됐다.

한화는 2020년에 삼미 슈퍼스타즈가 세운 KBO 역대 최다 18연패와 타이를 이루는 수모를 겪었고 18연패 기간 도중 한용덕 감독이 경질되는 등 고난을 겪고 가까스로 100패의 굴욕만을 면하며 꼴찌를 기록했다.

2.22. 2021년[편집]


2021년, LG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3년 연속으로 준PO에서 번번히 떨어지고 말았다. 2021년의 경우 정규시즌은 3위였으나 준PO 승자였던 두산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순위가 한 계단 밀려 3년 연속으로 4위를 기록했다.

LG가 2013년 최종순위 3위를 기록한 이후 PS에 진출한 5번의 시즌에서 주구장창 최종순위 4위만 기록하며 롯데 및 한화가 9년과 14년 중 딱 1번 기록한 3위를 넘지 못했다. 즉 LG는 신생팀 두 팀(NC 다이노스, kt wiz)이 2020년 한국시리즈, 202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2021년 시점에서 KBO의 10개 구단 중 3위 이내에 든 지 가장 오래된 팀이라는 소리와 같다. 이는 다음 시즌 LG가 정규시즌 2위로 최종 순위 3위 이상을 확보하며 마무리되었다.

롯데는 시즌 초 허문회 감독이 12승 18패 승패마진 -6을 기록한 후 경질되는 등 내우외환을 겪었고 이후 래리 서튼 감독이 부임한 후에도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65승 8무 71패 승패마진 -6을 유지한 채 8위로 시즌을 마쳤다.

한화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선임하였지만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이는 2012~2014년 3년 연속 꼴찌를 한 기록 이후 처음이다.

한편 2021년 롯데와 한화는 각각 래리 서튼카를로스 수베로의 외국인 감독 체제를 맞이해 LG는 엘롯한 및 엘롯기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감독을 경험해보지 못한 구단이 됐다.[7]

2.23. 2022년[편집]


4월 24일 기준 LG가 단독 2위, 롯데가 두산과 공동 3위로 포스트시즌 진출권에 있다. 두엘롯 결성 반면 한화는 삼성과 공동 8위에 머물러 있다.

7월 4일 기준 LG가 단독 3위, 롯데는 2위에서 8위까지 떨어졌다가 7위로 올라온 상황이고 한화는 답이 없는 경기를 보여주며 10위를 굳혀나가는 중이다.

9월 4일 기준 LG가 다시 단독 2위로 올라왔고 롯데는 단독 6위까지 올라왔으나 5강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 한화는 여전히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9월 17일 LG가 한화를 제압하고 4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9월 22일 한화의 10위가 확정됐다.(...)

9월 27일 LG가 한화에게 1:0 신승을 거두고 키움이 NC에 5:6으로 역전패하며 정규시즌 최소 3위, 준PO 직행을 확정지었다.

9월 30일 LG가 NC에 1:2 신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최소 2위, PO 직행을 확정지었다.

10월 3일 롯데가 두산에게 9:3 패배하며 트래직넘버가 소멸,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확정되었다. 이로써 엘롯한 중 2팀 이상 가을야구 실패 징크스를 22년으로 늘렸다.

10월 4일 LG가 KIA에 8:3으로 패배하며 정규시즌 준우승이 확정되었다.

10월 7일 7위 삼성이 승리하며 롯데는 8위가 확정됐다. 정규시즌은 LG 2위, 롯데 8위, 한화 10위로 모두 짝수 순위를 했으나 LG가 KS진출에 실패해 3위로 마무리되었다.

2.24. 2023년: LG의 탈출, 그리고 해체[편집]


2022 시즌이 끝나고, LG는 류지현과 재계약하지 않고 염경엽을 감독으로 선임했으며, 공교롭게도 LG에서 첫 FA를 맞은 유강남채은성이 각 롯데와 한화로 떠나게 되면서 LG는 일종의 나눔을 하게 된 꼴이 됐다.

LG가 두 명의 내부 FA가 이탈했음에도 여전히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가운데 롯데와 한화는 적극적인 오프시즌 행보로 적어도 작년보다 승률이 대폭 오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여기에 시즌 전 WBC에 더해 9월에는 리그 중단이 없는 아시안게임 변수까지 있어 21세기 첫 엘롯한 멤버끼리의 동반 가을야구 진출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4월 12일 기준 LG는 NC와 공동 2위이고 롯데는 7위, 한화는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4월 20일 기준 LG는 1위이고 롯데는 7위, 한화는 9위를 기록하고 있다.

4월 22일 기준 LG는 1위, 롯데는 4위, 한화는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4월 27일 기준으로 LG는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나가며 1위를 유지하는 사이 롯데가 파죽의 6연승으로 1위 LG에 1.5경기차밖에 되지 않은 단독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여담으로 LG에게 유일한 루징 시리즈를 안긴 팀이 롯데다. 한화는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4월 29일, 롯데의 경기가 우천취소되었고, LG는 KIA에 6:3으로 패배하며 롯데 2위, LG 3위로 두 팀의 순위가 역전됐다. 한편 한화는 여전히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4월 30일 롯데가 10경기 이후 기준으로 약 11년 만에 1위를 기록했다. LG는 3위, 한화는 10위이다.

5월 6일 기준, 롯데는 2위, LG는 3위, 한화는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5월 19일 기준 롯데는 1위, LG는 2위, 한화는 9위를 기록하고 있다.

6월 4일 기준 LG는 2위, 롯데는 3위, 한화는 9위를 기록하고 있다.

6월 11일 기준 LG는 2위, 롯데는 4위, 한화는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6월 30일 엘롯한이 동반 승리했으며, LG와 롯데는 끝내기 승리, 한화는 2005년 6월 이후 18년 만에 7연승을 했다.

7월 1일 기준 LG는 1위, 롯데는 4위, 한화는 탈꼴찌에 성공하여 8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롯데가 6월 들어 급격히 추락했지만 6월 말 삼성-두산에 승리하며 반등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최근 8연승을 하며 성적이 상승하고 있는 한화가 더 잘한다면 엘롯한 동반 가을야구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7월 12일 기준 LG는 1위, 롯데는 4위, 한화는 9위를 기록하고 있다.

7월 29일 기준 LG는 1위, 롯데는 6위, 한화는 8위를 기록하고 있다.

7월 31일 기준 LG는 1위, 롯데는 7위, 한화는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점점 롯데의 순위가 떨어지고 있다 LG는 SSG와 우승권 경쟁을 하고 있고, 롯데, 한화는 5강 경쟁을 펼치고 있다.

8월 17일 기준 LG는 1위, 롯데는 6위, 한화는 8위를 기록하고 있다.

8월 25일 ~ 27일 주말 3연전에서는 LG, 한화, 롯데 모두 스윕을 당하였다.

9월 3일 기준 LG는 1위, 롯데는 7위, 한화는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LG는 KT와 SSG 등의 2~3위권 팀들과 승차가 좁혀졌지만 아직까지는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롯데는 5강권 경쟁에서 밀려나고 7위까지 내려갔다. 한화는 키움, 삼성과 최하위권 경쟁을 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올해도 LG만 가을야구를 할 것으로 보인다.

9월 21일 기준 LG는 1위, 롯데는 7위, 한화는 8위를 기록하고 있다.

9월 25일 기준 LG는 1위, 롯데는 7위, 한화는 8위를 기록하고 있다. LG는 정규리그 우승 매직넘버가 10이 됐으며 가장 오래 우승하지 못했던 엘롯한 체제는 슬슬 시한부가 되어가고 있다.

10월 2일 기준 LG는 1위, 롯데는 7위, 한화는 8위를 기록하고 있다. LG는 정규리그 우승 매직넘버가 1까지 줄었으며, 롯데는 마지막까지 가을야구 진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화는 PS 탈락이 확정됐고 최하위 경쟁 중이다.

10월 3일, 드디어 LG가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었다. 한국시리즈까지 우승을 차지할 경우 엘롯한에서 탈출하게 된다.

10월 10일 롯데는 LG의 손에 6년 연속 PS 탈락을 확정지으며 엘롯한 중 한 팀만 PS에 나가는 공식을 23년째 이어가게 되었다.

10월 12일 롯데의 7위가 확정되었다. 만약 한화가 9위를 한다면 작년과는 달리 정규시즌에서 3팀이 모두 홀수 순위를 하게 되고 3팀 모두 작년 정규시즌 순위에서 1계단씩 상승하게 된다.

10월 15일 LG가 최종전에서 승리하면서 6할대 승률을 확정지었다.

10월 16일 한화의 9위가 확정되었다.

11월 13일 LG가 한국시리즈에서 29년만의 통합우승을 확정지었다! 동시에 엘롯한의 해체가 확정되었다. 대신 창단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키움을 포함해 한롯키라는 표현이 등장하였다.[8]
[1] 6월 초 승률 2~3할대의 롯데와 두산을 만나 안방에서 6연패를 당하기도 했다.[2] 그리고 이때의 후유증으로 인해 LG의 통산 승패마진은 아직도 -에서 머무르고 있는데, 2023년 시즌 종료 기준 승패마진 -34(통산 2592승 129무 2626패)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꽤 복구한 수치로 6668587667의 마지막 해인 2012년 종료 기준으로는 -137이었고, 역대급 DTD 시즌이었던 2018년 종료 기준으로는 -143까지 추락했었다. 즉 지금의 승패마진으로 복구된 것에는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2019~2023년에 승패마진 +109를 기록한 것이 가장 컸다.[3] 참고로 LG는 상술했듯 이 시기 때문에 2023년 현재까지도 승패마진이 마이너스다. 다만 2005년 종료 시점 통산 승패마진이 -1이었고 2006년 초반 3경기에서 2승 1패를 거두었기에 통산 승패마진이 5할 이상이었던 마지막 경기는 2006년 4월 11일 한화전이다.[4] 종전 기록은 1984~1989년의 6년으로, MBC 시절에 기록했다.[5] 당시에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없었다.[6] 저 4팀 중 KIA는 2022년 현재 강팀이 아니긴 하지만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8년 만에 우승을 하였고, KT도 2021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신생팀 중 가장 빠른 기간인 7년 만에 우승을 하였는데, LG는 2022년 현재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2019~2021년은 준PO에서 떨어졌고 2022년에는 PO에서 떨어졌다. 또한, 롯데는 2013년 이후로 2017년을 제외하면 포스트시즌도 못 가는 신세라 앞 두 팀과 뒤 두 팀의 최근 우승 연도가 극명히 차이가 난다.[7] 다만 LG는 전신인 MBC 청룡 시절인 1986-1987년 공식적인 감독직함은 아니지만 일본인 투수코치인 미즈타니 히사노부가 사실상의 1군 선수단 운영을 한 바 있다.[8] 다만 키움은 우승을 못했지만 가을야구에 꾸준히 진출했던 강팀이었다. 그러나 2023년에 들어서 약팀으로 전락하였고, 5강 진출이 힘들다고 느끼자 1순위 지명권 확보를 위해 탱킹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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