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라쿠텐 분배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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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1973후기 · 1974전기 · 1975전기 · 1976전후기 · 1977전기 · 1978전후기 · 1979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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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 문서 ||<bgcolor=#600000>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 선수역대 감독영구 결번 |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라쿠텐 산하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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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방식
3. 결과
4. 평가
5. 여담
5.1. 세 팀에서 뛰어본 선수들



1. 개요[편집]


오릭스-라쿠텐 분배 드래프트는 2004년 시즌 후 일본 프로야구 구단 재편의 완성 과정이며, 오릭스 버팔로즈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참여한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해체 드래프트이다.

2004년 시즌,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해체로 인해 두드러진 일본 프로야구 재편 문제의 결과로 오릭스 블루웨이브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가 인수합병되어 오릭스 버팔로즈가 만들어지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새로이 창단되어 2005년부터 리그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에, 오릭스와 라쿠텐은 기존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선수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선수들을 나누어 갖는 드래프트를 실시하게 되었다. 킨테츠를 인수합병한 주체가 오릭스였고 라쿠텐은 어느 구단의 역사도 계승하지 않는 신생팀이었기에, 이 드래프트에서는 오릭스에게 상당한 우선권이 주어졌다.

이 드래프트는 신생팀의 전력 보강을 위한 드래프트라는 점에서 확장 드래프트의 성격이 없지는 않으나, 신생팀에게 선수를 제공하는 팀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확장 드래프트와는 차이가 있다. 또, 정규 드래프트가 아니라는 점과 갈 길 잃은 선수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보충 드래프트적인 성격도 있으나, 이 드래프트가 정기 드래프트의 보충이 아니라 신생팀 전력의 보충이므로 통상적인 보충 드래프트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2. 방식[편집]


(1) 오릭스 - 킨테츠 양 구단의 선수 중 오릭스가 먼저 보호선수 25인을 지명하여 보호(획득)한다.
(2) 오릭스 - 킨테츠 양 구단의 선수 중 오릭스가 먼저 보호한 선수, FA 자격을 발동한 선수[1], 입단 2년차 이하의 선수를 제외하고, 라쿠텐이 선수 20인을 지명하여 획득한다.
(3) 오릭스 - 킨테츠 양 구단의 선수 중 남아있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오릭스라쿠텐 순서로 번갈아가며 각각 선수 20인을 지명한다.
(4)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선수들은 자동으로 오릭스가 소유권을 보유한다.
(5) 외국인 선수들은 드래프트 대상에서 제외된다.

실질적으로는, 선수들의 합병 반대 운동에 오릭스가 한 발 물러서 킨테츠 출신 선수 중 오릭스의 보호를 거부하는 선수를 오릭스가 굳이 보호하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가 킨테츠의 신성이었던 이와쿠마 히사시였는데, 이와쿠마가 오릭스 선수단 합류를 거부하는 강경 일변도로 나아간 끝에 오릭스는 그를 어쩔 수 없이 라쿠텐으로 현금 트레이드하였다. 또, 킨테츠가 이 드래프트에서 소유권을 얻지 못한 선수를 오릭스의 소유권 포기로 인해 데려올 수 있었던 네 선수의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하술한다.

3. 결과[편집]


기존 팀
선수명
오릭스 버팔로즈
입단을 거부한
킨테츠 선수명

오릭스
킨테츠

분배 전
주전으로
여러 시즌 활약한 선수명

향후
오릭스
주요선수명
향후
라쿠텐
주요선수명
[2]

2005년
시즌 후
방출선수명
2006년
시즌 후
방출선수명
2007년
시즌 후
방출선수명

투수
포수
외야수
카토 타츠오
히다카 타케시
무라마츠 아리히토
시바타 마사야
요시하라 코스케
타니 요시토모[3]
카토 다이스케
마에다 다이스케
히다 타카시
야마구치 카즈오
우에무라 카즈히로[이적]
아이카와 료타
오가와 유스케
나가타 마사루
하야카와 다이스케
카와고에 히데타카
마토야마 테츠야
무카에 유이치로
유키(ユウキ)
스즈키 후미히로[4]
요시다 신타로
이와시타 슈이치
요코야마 테츠야
시모야마 신지
맥 스즈키[5]
내야수
사카구치 토모타카
모토야나기 카즈야
고토 미츠타카
키라 토시노리
오오쿠보 마사노부
후쿠토메 히로키
오오니시 히로아키[6]
아이키 타카시
시오타니 카즈히코[7]
이도 노부토시
노무라 히로유키
히라노 케이이치[8]
무라카미 토요지
시오자키 마코토
하기와라 쥰[9]
고시마 유지
야마모토 타쿠지
마키타 쇼고
시오야 다이스케
시마무라 잇키
-이와쿠마 히사시-[미합류]
키쿠치 토시오
야마모토 쇼고
타마키 토모타카
카츠키 료타
키타가와 히로토시[10]
콘도 카즈키
나카무라 노리히로[해외]
타카기 야스나리
미즈구치 에이지
미야모토 다이스케
아베 마사히로[11]
아베 켄타
야마사키 코지[이적]
타니구치 에츠지
미키 마사시
우토 이타루
카케이 유지로
오카모토 아키라
나카모토 카즈키
쿠리타 유스케
요시카와 카츠나리


투수
포수
외야수
카네다 마사히코
타카하시 코지
사타케 마나부
타니나카 신지
후지이 아키히토
류타로
토카노 히사시
신자토 켄
코지마 마사야
코바야시 히로시
치카자와 마사시
나카시마 토시야
오구라 히사시
나가사카 켄지
이소베 코이치[12]
토쿠모토 사토시
내야수
카와구치 켄시
후쿠모리 카즈오
사이토 히데미츠
모리타니 아키히토
야마무라 히로키
오오시마 코이치
타카노 후미토시
아리메 카네히사

요시오카 유지
마스다 다이스케
카와지리 테츠로[13]
타카스 요스케
마키타 아키히사
아이쿄 히사시
마에다 타다토키
타카무라 히로시
야마시타 카츠미
야노 에이지
사카 카츠히코
코이케 히데오
호시노 오사무
아사이 히데키
요시다 토요히코
사토 카즈히로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드래프트 외 획득 선수[14]
투수
내야수
네이치 히로타카
야마사키 타케시
후지사키 히로노리
나가이케 야스오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트레이드 영입 선수(참고)[15]

투수
내야수

이와쿠마 히사시

사카이 타다하루

키토 마코토
외야수
코야마 신이치로

세키카와 코이치

타마키 시게오

이이다 테츠야
포수

나카무라 타케시

4. 평가[편집]



4.1. 오릭스 버팔로즈[편집]


오릭스의 원래 구상은 드래프트 전부터 어긋났으며, 구단의 끔찍한 안목은 그나마의 전력 보강의 기회도 걷어차 버렸다.

킨테츠를 합병한 오릭스의 원래 구상은, 킨테츠의 주축 선수들을 데려와 전력을 대폭 강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릭스는 선수들의 합병 반대 운동에 한 발 물러서게 되어 킨테츠에서 오릭스 합류를 원하지 않는 선수들을 지명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선수들 중에는 이소베 코이치(礒部 公一), 카와구치 켄시(川口 憲史), 요시오카 유지(吉岡 雄二) 등 킨테츠의 주축 타자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오릭스의 타선은 키타가와 히로토시(北川 博敏)의 보강을 제외하면 드래프트의 효과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이와쿠마 히사시(岩隈 久志)가 합류하지 않은 투수진 역시 카츠키 료타(香月 良太)가 당장 2005년에 47경기 10홀드를 기록해 주었을 뿐이었다.

오릭스 프런트의 멍청한 안목은 안 그래도 생각보다 부족했던 전력 보강을 더욱 부족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오릭스 감독[16]과 갈등을 빚은 연유로 오릭스가 공짜로 버린 주니치 출신의 거포 야마사키 타케시(山崎 武司)는 라쿠텐에서 완벽하게 부활했다. 오릭스에서 2004년 62경기 4홈런을 친 그가 라쿠텐에서 2005년 118경기 25홈런, 2006년 122경기 19홈런, 2007년 141경기 43홈런으로 홈런왕을 거머쥔 것.

또 다른 사례로, 해외 진출 후 2006년에 오릭스로 복귀한 킨테츠 출신의 거포 나카무라 노리히로(中村 紀洋) 가 있다. 오릭스는 그를 부진과 노쇠화를 이유로 한 시즌만에 버렸지만[17] 그는 당시 주니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주니치에 입단하여 바로 그 해 일본시리즈 MVP가 되었다. 다음 시즌 우승 결정전 MVP가 될 선수를 공짜로 내다 버리는 프로팀이 그 시절의 오릭스였던 것이다.(...) 야마사키와 나카무라 두 선수 모두 오릭스가 지켰더라면, 외국인 선수와 키타가와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거포가 없던 오릭스 타선에 거대한 도움이 되었을 선수들이었다.

물론 즉시전력 보강이 되지 않았더라도 향후에 오릭스에서 활약해 주는 선수들도 있기는 있었다. 타선에서는 사카구치 토모타카(坂口 智隆)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주전 외야수로 뛰는 선수가 되었다. 아베 마사히로(阿部 真宏)와 시모야마 신지(下山 真二) 역시 준주전급으로 각각 내야와 외야에서 장기간 활약해 주었다. 투수진에서는 카츠키 료타를 비롯하여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간 27승을 올린 야마모토 쇼고(山本 省吾)와 같은 기간 24승을 올린 콘도 카즈키(近藤 一樹)가 활약해 주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전력 보강은 2004년 퍼시픽 리그 최하위팀 오릭스가 우승은 커녕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의 전력 보강이었다. 사실은 애초에 2004년 꼴찌 팀인 오릭스에 2004년 꼴찌에서 두 번째 팀의 1.5군급 선수를 합친다고 해서 오릭스가 강해질 리가 없었다. 오릭스가 이 드래프트를 통해 이뤄낸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력 보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뎁스 확장에 지나지 않았는데, 좋은 예로 키스톤 자원의 중복 지명이 있다.

오릭스는 이 드래프트에서 키스톤 자원을 지나치게 많이 지명하여 다량의 중복 자원을 양산했는데, 결국 주전 유격수는 이 드래프트와는 상관도 없는 생 신인이 2007년에 거머쥐고(...)[18] 고토 미츠타카(後藤 光尊)만이 2루수 위치에서 주전으로 살아남았다. 이 드래프트에서 오릭스는 10명 안팎의 키스톤 자원을 지명했는데 그 중 유격수 주전으로 정착하게 된 선수가 없었던 것이다.(...) 키스톤 자원의 중복 지명에 대해서는 여담 항목에서 자세히 서술한다.

오릭스의 사례로 지나치게 깊기만 한 뎁스는 중복 자원일 뿐 강력한 주전 라인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출난 선수는 몇 명 없이 준주전급 선수만 많아서는 강팀을 구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릭스가 만약 스포츠 게임 상의 팀이었으면 여러 준주전급 선수를 가지고 강화라도 시켜서(...) 팀 전력의 진정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겠으나 현실은 게임이 아니었다. 이 때 오릭스가 뽑은 선수들 중에서는 KBO 리그 SK 와이번스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시오타니 카즈히코KT 위즈에서 포수 육성에 죽을 쑤는 스즈키 후미히로도 있었다.

결국, 이 드래프트에서 오릭스는 킨테츠 주축 선수들의 입단 거부로 초기의 계획이 틀어지고, 구단의 형편없는 안목으로 그나마 얻을 수 있었던 이득도 날려버림으로 인해, 지난 시즌의 꼴찌 팀꼴찌에서 두 번째 팀을 어설프게 합친다고 강팀이 나오지는 않는다라는 명제를 극복해내지 못한 것이다.

결국 2017년 이후 오릭스가 육성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고 나서야, 오릭스는 우승할 수 있었다.

4.2.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편집]


라쿠텐은 애초에 이 드래프트에서 제도상의 불리함으로 인해 크게 성공할 수 없었다. 라쿠텐은 오릭스가 가져가고 남은 선수들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고, 이들의 실력이 탁월할 리도 없었다.[19] 반대로, 원래 보유하고 있던 선수도 없는 무자본 팀 상태였기 때문에 밑지는 것도 없고 실패할 여지조차 없던 팀이었다.

따라서, 라쿠텐이 이 드래프트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했다고 평가할 것 자체가 별로 없다. 그나마 그 수많은 오릭스의 센터 내야 지명 러쉬에서도 빗겨나간 타카스 요스케가 2루수 주전으로 활약하고 마키타 아키히사와 아리메 카네히사를 선택하여 포텐을 터뜨려낸 것은 잘된 일이다. 하지만, 이 드래프트의 몇 번째 과정에 따라 어느 선수가 선택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라쿠텐이 어떤 선수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느 순서에 지명했는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라쿠텐의 지명 전략이나 안목이 좋다 나쁘냐도 논하기에 어폐가 있다. 그나마도 오릭스는 선수 선택에 우선권이 있었기 때문에 오릭스의 선수 선택이 어땠는지 짐작하여 논할 여지는 조금 있지만, 라쿠텐은 그런 것도 아니다.

라쿠텐은 이 드래프트와 무상 트레이드를 통해 당시 일본 야구팬이라면 들어봤을 경험 많은 선수들을 의외로 많이 데려올 수 있었지만, 상술한 표의 선수 이름 칸 색깔에서 보듯 이들은 대부분 3년 안에 방출당했다. 그래도 한때는 주전이었지만 신생 팀에서도 오래 못 버틸 만큼 노쇠한 선수들이, 불가피하게 대부분 2005년 시즌 라쿠텐의 주축 선수들이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20]

이 드래프트에서 데려온 오릭스 합류 거부 선수들인 이와쿠마, 이소베, 카와구치, 요시오카 등은 2005년을 포함하여 3-4년 간 라쿠텐의 주축이었다. 라쿠텐의 개국공신들이 있다면 오릭스 입단을 거부하며 반대로 적극적으로 라쿠텐에 입단하려 했던 이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 역시 나이로 인해 꾸준히 주전으로 뛰지 못했고 늦어도 5년 정도 후에 은퇴했다.

그러나 결과를 정산해보면 이 드래프트를 떠나서 향후 몇 년간 선수 지명, 선발, 육성 면에서는 라쿠텐이 오릭스보다 몇 배의 성과를 낸 것이 확실하다. 라쿠텐의 주축은 시마 모토히로, 타나카 마사히로 등 향후 빅 네임들이 되는 이 드래프트 이후의 신인들로 빠르게 물갈이되었다. 츠치야 텟페이, 코야마 신이치로(주니치로부터 트레이드), 와타나베 나오토, 히지리사와 료, 쿠사노 다이스케 등의 선수들도 이 드래프트 이후의 신인들이다.

이런 리빌딩의 성공으로-리빌딩이 아니라 그냥 빌딩 아닌가-, 라쿠텐은 2013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한다. 이 때의 주축 선수들 역시 상술한 다나카, 시마에 더해 이 드래프트와는 아예 관련이 없는 아카미나이 긴지, 마스다 신타로, 오카지마 타케로, 노리모토 타카히로, 아오야마 코지, 미마 마나부 등과 마쓰이 가즈오, 앤드루 존스, 케이시 맥기히 등의 영입 전력들이었다. 참고로 오릭스는 2021년이 되어서야 일본시리즈에 진출했고, 일본시리즈 우승은 2022년이 되어서야 해냈다.(...)

5. 여담[편집]


  • 이 분배 드래프트의 결과로 인해, 리그 우승결정 3점차 상황 대타 역전 만루홈런의 주인공인 키타가와 히로토시와 그 허용투수인 오오쿠보 마사노부는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동료로 만나게 되었다.

  •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킨테츠 버팔로즈를 제외하면, 유독 주니치 드래곤즈 출신 선수들이 라쿠텐에 많이 합류하게 되었다. 라쿠텐에게 가장 많은 무상 트레이드를 지원해준 팀이 주니치이기도 하지만, 라쿠텐의 역사상 첫 공식전 선발 5번 지명타자였으며 라쿠텐 초창기 핵심 타자로 활약하게 되는 야마사키 타케시는 주니치에서 활약한 거포였던 점도 있다. 킨테츠에서 분배 드래프트로 데려온 마스다 다이스케, 그리고 요코하마에서 무상 트레이드로 데려온 나카무라 타케시 또한 원래는 주니치 출신 선수들이었다.

  • 초창기, 갓 조직된 라쿠텐 응원단은 자체적으로 응원가를 많이 만들기보다는 타 구단의 곡을 많이 유용해왔다.[21] 따라서, 위에 언급된 야마사키 타케시와 마스다 다이스케는 주니치의 응원가를 유용해왔으며, 상술했듯 세키카와 코이치와 나카무라 타케시까지 있었기에 주니치 응원가를 라쿠텐 응원석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주니치에서 데려왔지만 롯데에서 전성기를 보낸 사카이 타다하루는 주니치 시절 별도의 응원가가 없었고 라쿠텐에서는 롯데의 응원가가 유용되었다.

  • 개인 응원가를 타 구단 유용으로 해결한 오릭스와 킨테츠 이외의 선수들과는 달리, 오릭스와 킨테츠 출신 선수들의 응원가는 해당 선수들의 다른 소속 구단의 응원가를 유용해오지 않는 한 범용 응원가로 처리되었다. 기존 오릭스와 킨테츠 응원단이 모두 오릭스 버팔로즈에 합류하였기에, 오릭스와 킨테츠의 응원가는 유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오릭스는 이 드래프트에서 키스톤 내야수들을 지나치게 많이 지명했다. 원래부터 오릭스 출신이었던 고토 미츠타카, 후쿠토메 히로키(福留 宏紀), 히라노 케이이치(平野 恵一), 시오자키 마코토(塩崎 真), 마키타 쇼고(牧田 勝吾), 시마무라 잇키(嶋村 一輝), 타마키 토모타카(玉木 朋孝) 등이 죄다 키스톤 또는 내야 유틸리티 자원들이었고, 고토, 시오자키, 히라노를 제외하면 전부 다 애매한 자원들이었다.[22] 그런데 여기다가 10년 이상 킨테츠의 키스톤을 지켰던 미즈구치 에이지(水口 栄二)와 킨테츠 합병 직전 3년간 주전 유격수로 뛰었던 아베 마사히로까지 지명해버리니 중복 자원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오릭스의 내야가 얼추 교통정리되는 데에는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의외로 유격수 포지션에서 교통정리가 가장 빨리 이루어졌다. 이 드래프트와는 관계없는 오오비키 케이지(大引 啓次)라는 신인이 2007년부터 확고한 주전을 거머쥔 것.

  • 최후의 킨테츠 전사들은 모두 이 드래프트에서 오릭스에 분배되었다. 투수로서는 2020년 시즌 후 은퇴한 이와쿠마 히사시와 콘도 카즈키, 그리고 타자로서는 2022년 시즌 후 은퇴한 사카구치 토모타카가 그 주인공. 그런데, 오릭스에서의 기여도는 세 선수가 천차만별이다. 이와쿠마는 오릭스 합류를 거부하며 라쿠텐에 현금 트레이드되어 오릭스에는 기여한 바가 전혀 없고, 콘도는 오릭스에서 2008-10년에 선발 로테이션을 잘 지켰지만 그 이후로는 좀처럼 자리를 못 잡는 투수였다. 반대로, 사카구치는 오릭스에서 부상으로 인한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자기 자리는 가지고 있는 외야수였다. 공교롭게도, 콘도와 사카구치는 모두 야쿠르트에서 재회하여 재기에 성공하는데, 콘도는 무려 홀드왕을 먹었다.


5.1. 세 팀에서 뛰어본 선수들[편집]



  •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레전드로서 라쿠텐에 분배되어 1년 간 활약 후 은퇴한 오오시마 코이치는 킨테츠 소속으로 프로에 데뷔한 선수였다. 아래와 같은 사례들도 있지만, 일본어 위키피디아는 오오시마를 당시 분배 드래프트 참가 선수 중 2004년 일본프로야구 재편에 관련된 세 팀에서 모두 뛰어 본 유일한 선수로 서술하고 있으며, 이 기준에 따를 경우 '세 팀'이란 합병된 킨테츠 버팔로즈, 합병한 오릭스 블루웨이브, 신설된 라쿠텐 골든이글스이다.

  • 킨테츠의 레전드인 나카무라 노리히로는 오릭스 합류 거부 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진출했다가, 오릭스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릭스가 나카무라를 멍청하게 방출한 후 나카무라는 주니치에 입단, 2007년 주니치의 53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혁혁하게 공헌하고[23], 2009년 시즌부터 라쿠텐에서 활약하고 요코하마에서 은퇴하게 되어 킨테츠 버팔로즈, 오릭스 버팔로즈, 라쿠텐 골든이글스 세 팀에서 뛰어본 이력이 생겼다.

  • 킨테츠 버팔로즈 소속으로 오릭스 버팔로즈에 분배된 내야수 야마사키 코지는 오릭스 선수로서 출장하기도 전에 히로시마 카프로 트레이드되었지만, 나중에 다시 오릭스 버팔로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이후 세이부를 거쳐 라쿠텐에서 은퇴하였다. 상술한 나카무라 노리히로처럼 킨테츠 버팔로즈, 오릭스 버팔로즈, 라쿠텐 골든이글스 세 팀에서 뛰어본 선수이다.

  • 오릭스 블루웨이브 소속으로 오릭스 버팔로즈에 분배된 투수 타나카 유키 (등록명 '유키')는 오릭스 블루웨이브 입단 이전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프로 데뷔를 하였다. 이 선수는 킨테츠 버팔로즈, 오릭스 블루웨이브,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활약한 케이스.

  • 이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세 팀에서 뛰어본 선수도 있다. 나중에 치바 롯데 마린즈의 감독이 되는 요시이 마사토가 그 주인공으로, 그는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프로 데뷔를 한 이후, 야쿠르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다녀온 후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하게 되었다. 2004년 시즌 후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이 드래프트가 열리기 전에 방출되어 자유계약 신분이 된 그를 새로 취임한 오릭스 버팔로즈의 감독 오오기 아키라가 다시 영입하여, 그는 커리어가 단절되지 않고 2005년부터 2007년 시즌 중간까지 오릭스 버팔로즈의 선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 오릭스 블루웨이브 소속으로 오릭스 버팔로즈에 분배된 투수 카토 다이스케는 오릭스 버팔로즈의 핵심 구원 투수로 활약하며, 2008년에는 리그 최다인 33세이브를 기록하였다. 이 선수는 말년을 라쿠텐에서 보냈다. 마찬가지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출신이자 오릭스 버팔로즈의 핵심 내야수였던 고토 미츠타카는 말년에 츠치야 텟페이의 트레이드 상대로 라쿠텐으로 이적하여 은퇴하였다. 이 선수들은 오릭스 블루웨이브, 오릭스 버팔로즈,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활약한 케이스.

이 외에도 세 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확인되는 대로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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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 때문에 2004년 시즌 후 FA로 소프트뱅크로 이적한 킨테츠 출신 오오무라 나오유키는 어느 팀에서도 지명되지 않았다.[2] 선발 15경기 이상 등판, 구원 30경기 이상 등판, 야수 80경기 이상 출장 시즌을 주전 시즌이라고 간주하고, 주전으로 4년 이상 활약한 선수에게 이 분류를 적용한다.[3]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주전이 아니었던 것은 아닌데, 두 시즌만 뛰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어 버렸다.[이적] A B 2005년 시즌 개막 전 트레이드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입단[4] 현재 KT 위즈 2군 배터리코치. 주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백업 포수로서 오릭스에서 든든히 활약해 주었다.[5] 프로 데뷔를 MLB에서 했으며, 저니맨으로서 7년간 4팀에서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활약했다.[6] 프로 입단 2년차에 주전으로 올라서자마자 합병된 것을 감안.[7]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주전으로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긴 했으며, SK 와이번스에서 뛰기도 했다.[8]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데뷔하고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은퇴했지만, 그 중간에 5년을 한신에서 보낸 기간이 그대로 그의 전성기 5년이었다. 오릭스의 주축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기는 하지만, 오릭스 시절 기록은 부족한 것이 사실. 그래도 2006년에 파울 플라이를 잡으려다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꾸준히 주전이었을 것이다.[9] 분배 전 3시즌, 분배 후 2시즌을 주전 구원투수로 활약하였다.[미합류] 오릭스 버팔로즈 미합류 후 현금트레이드로 라쿠텐 이적. 분배 전 주전으로 4시즌 이상을 시즌을 뛴 것은 아니나, 그 성적이 워낙 임팩트있는 성적이었다.[10] 2002년 개막전에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이 선수가 킨테츠에서 보낸 2001-04년 동안 내내 주전이었을 것이다.[해외] 오릭스 버팔로즈 미합류 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진출, 2006년 시즌 일본 복귀 및 오릭스 버팔로즈 합류, 2006년 시즌 후 연봉 삭감안 수용 거부로 자유계약선수 공시. 그리고 그는 다른 팀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11] 주전으로 3시즌 활약이지만, 2001년에 프로 입단하고 2002년부터 바로 주전이었음을 감안.[12] 킨테츠 버팔로즈 해체 당시 킨테츠 선수회장으로, 후루타 아츠야 선수회장, 미와 타카시 오릭스 선수회장과 함께 합병 반대 운동을 벌였다. 미와 타카시는 2004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여 이 드래프트에서는 이름을 찾을 수 없다.[13] 주니치에서 뛰던 이종범의 팔꿈치를 맞추어 이종범의 부상을 유발한 그 투수가 맞다. 당시에는 한신 시절.[14] 드래프트에서 누락되었으나 오릭스가 보유하지 않기로 한 선수들을 라쿠텐이 데려올 수 있었다.[15] 이 분배 드래프트와는 관련이 없으나, 라쿠텐이 무상 트레이드 또는 현금 트레이드로 시즌 개막 전까지 영입한 선수들을 참고로 서술한다.[16] 이 감독은 엄격한 지도 스타일과 직설적인 말투로 인해 몇몇 선수와 갈등을 겪는 일이 많았다.[17] 일본프로야구에는 일정 비율 이상의 연봉 삭감액을 선수에게 제시한 경우, 선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제도가 있다. 오릭스가 나카무라에게 연봉 거액 삭감액을 제시하여 내다 버린 것.[18] 이 선수의 이름은 오오비키 케이지(大引 啓次)로, 프로 입단 첫 해부터 6년 간 오릭스의 주전 유격수로 군림하다가 이토이 요시오의 트레이드 반대급부로 닛폰햄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후 FA로 야쿠르트로 이적하여 은퇴. 프로 경력이 13년으로 길지 않지만 10-11년 동안 세 구단의 주전 유격수였다.[19] 특히, 오릭스에서 데려온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 빠른 시일 안에 전력외통고를 받았다.[20] 여담으로 코이케 히데오는 라쿠텐이 센다이에 오기 이전에 있던 롯데의 1차지명 출신(물론 입단은 거부했지만) 선수였다.[21] 라쿠텐 응원단이 자체 제작한 선수 응원가는 범용 응원가와 일부 외국인 선수 응원가에 불과했다.[22] 심지어 지명하자마자 트레이드로 히로시마에 넘겨 버린 야마사키 코지(山﨑 浩二)마저 키스톤 자원이었다. 이 선수는 나중에 오릭스로 돌아온다. 킨테츠 버팔로즈, 오릭스 버팔로즈,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모두 뛰어 본 선수로 하술.[23] 무려 일본시리즈 MVP였다. 2006년 시즌 후 방출, 2007년 시즌 육성선수 입단 후 그 해 일본시리즈 MVP라는 보기 드문 인생 역전의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