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비판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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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회적 논란
2.1. 최순영신동아그룹 회장 관련 논란
2.2. 김선일 피살사건과의 관계
2.3. 2014년 문창극 총리지명자 강연 동영상 파문
2.4. 안태근의 간증
3. 신학적 논란
3.1. 'Acts29' 비전에 대한 비판
3.2.1. 신학적 평가
3.2.1.1. 무로부터의 창조는 기독교의 유일한 창조론인가?
3.2.1.2. 반과학주의는 개신교적인가?
3.2.1.3. [결론] 목적이 있는 선동 - 탄압받고 있다는 망상
3.3. 전통과 신학 무시 : 성장만능주의
3.3.1. 근본적 원인 : 폐쇄적 성경중심주의




1. 개요[편집]


온누리교회의 비판과 논란에 관해 서술한 문서이다.


2. 사회적 논란[편집]



2.1. 최순영신동아그룹 회장 관련 논란[편집]


서빙고 온누리교회 건물의 건설사는 1997년 IMF 사태 때 부도처리된 신동아그룹인데, 해당 그룹의 회장 최순영은 하용조 목사와 인척관계로(동서지간) 긴밀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건설사의 사장이 교회 건물을 헌정하는 경우와 달리, 온누리교회는 건설사에 건설비를 지불하고 건축을 시행했다. 대부분의 경우 투명하게 입찰을 붙이는 것이 타당한데, 하용조의 지인인 최순영의 신동아그룹에 수의적으로 건설을 맡긴 것은 석연치않은 부분이 있다. 지불된 건설비가 교인들의 헌금으로 조성된 것이라는 걸 생각했을 때, 건설비를 타당하게 또한 알뜰하게 책정해야 하는데, 경쟁없이 수의계약으로 건설을 시행하면 건설비 부풀리기가 가능하다.

최순영은 1,574억여원의 추징금을 돈이 없다고 내지 않고 있으면서, 양재 온누리교회 앞에 위치한 30억원 이상의 주택에 살고 있다. 그 자체는 온누리교회와는 독립적인 논란이라 교회의 문제라고 볼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2015년에 온누리교회에서 이러한 인물을 간증석에 세우며 종용했다는 것이다. 보통 간증은 교회의 믿음에 모범이 되는 사람을 세워 그 사람을 통해 배우는 자리이다. 또한 예수를 영접한 이야기나 성령의 역사를 증언하는 것이 간증의 주된 목적이라는 점에서, 최순영의 행실(비리를 통해 재산을 쌓음)이 성령의 역사라는 잘못된 믿음을 교회가 후원해주는 꼴이 된다.

또한 최순영은 해당 2015년 간증 자리에서 "비리로 축적한 비자금을 통해 내 자식들이 집을 산 것은 하나님의 덕"이라는 망언을 했다#. 신동아그룹 부도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을 것임을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언이다. 또한 기독교의 십계명에 따르면 신자는 신의 이름을 망령되게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비자금 축재)에 하나님이 공범이다"는 어조의 이러한 간증은 해당 십계명 조항을 대놓고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누리교회에서는 해당 간증에 대해 어떠한 제제도 하지 않고 오히려 종용했다는 사실은, 사회적인 수준뿐만 아니라 신학적 수준에서도 심각한 문제의 소지가 된다.


2.2. 김선일 피살사건과의 관계[편집]


2004년 6월 22일 이라크의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 한국인 김선일이 피살되었다. 이 사건에 온누리교회가 관련있다는 정황상의 주장이 있었고 온누리교회는 이를 일축했다.

김선일은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통역사에 불과했고 민간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2004년 사건 당시 사람들은 김선일이 살해당한 이유가 사실 그가 통역사로 위장한 기독교 선교사이고 현지에서 무리한 기독교 선교를 감행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심지어 김선일과 온누리교회와 관계가 있다는 설이 항간에 계속 제기되었고, 온누리교회에서는 이를 일축했다. 당시보도 회고기사(2021년)

김선일 피살 사건과 온누리교회가 관련되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 김선일은 이라크 현지 한국인교회인 '한인연합교회'를 다녔는데, 이는 온누리교회가 선교목적에서 세운 교회이다.
  • 온누리교회는 '한인연합교회'에 선교사 8명을 파견했다.
  • 김선일이 일하던 회사인 '가나무역' 직원 12명 가운데 온누리 교회 소속 교인으로 알려진 인원이 4명 있었다.
  • 김선일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온누리교회의 법무팀이 도움을 주었다.
  • 김선일의 장례에 온누리교회 측이 도움을 주었다.

특히 '가나무역' 자체가 무역사를 위장한 선교단체이고 무리한 선교로 인해 김선일이 살해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다. 실제로 가나무역 사장 인터뷰를 보면@, 무역과는 별개로 '이라크 선교에도 뜻이 있는 회사'이며 '선교사로 뛰어들기 위한 준비과정을 제공'하는 등 '이라크의 복음화를 위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나무역 근로자 중 온누리교회 신자들이 있고, 또 김선일이 온누리교회가 설립한 한인교회에 다녔다는 사실로 인해 온누리교회로까지 화살이 향한 것이다.

그러나 온누리교회가 필연적으로 가나무역과 연관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김선일은 온누리교회의 교적조차 올라있지 않기 때문에 김선일과 온누리교회의 연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음모론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다. 온누리교회는 확장적 선교전략으로 인해 전 세계에 수 많은 한인교회를 세웠다. 또한 이라크 바그다드에는 한인교회가 그곳이 유일했기 때문에 개신교와 관련된 가나무역 직원들이나 김선일 등은 어쩔 수 없이 온누리교회가 설립한 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온누리교회가 법적으로나 장례에 있어서 도움을 준 것도 자신들이 세운 한인교회에 출석하던 신자이기에 도의적인 차원에 의한 것이지 반드시 연관되었기 때문이 아닐 수 있다. 실제로 기독교는 장례를 베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관련성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한 것이 이상한 것을 아니다.

한편 김선일이 J선교회라는 곳을 통해 선교사 신분으로 이라크에 간다고 글을 남긴 것이 밝혀졌다. 해당 선교회에는 자신들이 김선일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였다.(기사)


2.3. 2014년 문창극 총리지명자 강연 동영상 파문[편집]


박근혜 정권에서 2014년 총리로 지명된 문창극이 과거 온누리교회에서 했던 강연 중 했던 발언 하나가 정치화된 사건이다. 강연 전체를 보았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맥락과 해석에 따라 '식민지 수혜론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물론 한 장로의 발언은 교회 자체와는 무관하다고 볼 수도 있다.

2014년 당시 총리후보로 지명된 문창극2011년 온누리교회 양재캠퍼스에서 '기회의 나라를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강연에서 "일본의 식민지배하나님의 뜻"이라는 내용의 강연을 한 동영상이 일파만파 파문을 불러왔다. CGNTV 측은 황급히 영상을 삭제했지만, 당시 청와대가 해명하기 위해 해당 영상의 풀버전을 공개하면서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물론 문제의 발언은 당초 알려진 것처럼 식민지 수혜론을 옹호하는 취지의 발언 아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한민족은 게으른 DNA가 있다"와 같은 해당 강연의 내용이나 표현에 대해서 정치·사회적, 신학적 논란과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편향된 세계관과 정세인식을 가진 인물이 단지 자기네 교회 장로라는 이유만으로 강단에 설 기회를 주고, 그걸 바탕으로 편향된 역사인식을 선전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초 알려진 것처럼 강연 내용 전체가 식민지 수혜론을 옹호한다거나 일제의 식민통치 자체를 긍정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풀버전이 공개되면서 이번에는 강연의 다른 부분이나 전체 내용, 표현에 대해 정치·사회적, 신학적 비판이 봇물을 이루었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한동안 강연 내용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와 교계 전체가 극심한 홍역을 치렀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는 아예 특별 강연을 개최하여 교수진들이 해당 강연의 내용 전체를 갖다가 분석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당초 잘못 알려진 것처럼 '일제의 식민통치를 긍정하고 식민지 수혜론을 선전했다'는 측면은 아니고 다른 측면에서 말이다.

다만 이것은 온누리교회 장로로 있는 한 평신도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이지, 온누리교회 교역자가 강단에서 정교분리에 위배되는 편향적인 발언을 한 것은 아니다. 편향적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빤스 목사나 불륜 6걸의 사례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사건임에 유의할 것. 당장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CGNTV 측에서 해당 발언은 온누리교회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하다며 선을 그은 바 있다.


2.4. 안태근의 간증[편집]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세례 요한, 마태복음 3장 8절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 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 와 예물을 드려라."

예수, 마태복음 5장 23-24절

굳이 성경까지 갈 필요도 없이, 타종교인이나 무종교인의 입장에서도 잘못을 반성한다면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게 사과하고 모든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그런데...

돈봉투 만찬 사건 때문에 면직되었으며 최근 검찰 내 후배 검사를 성추행한 가해자로 밝혀진 안태근 전 검사가 지난 2017년 10월 29일에 양재캠퍼스 주일2부예배(오전 9시) 세례식에서 간증을 했다. 하다못해 그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말을 하고, 이 자리를 빌려 피해자들과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용서를 구했으면 조금이라도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말은 커녕, 뻔뻔하게도 '그간 깨끗하게 공직생할을 했다', '억울하게 본의 아니게 공직을 그만두어', '스스로 회개했다'고 했다. 이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작태가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영상(21분 20초부터)[1] 공교롭게도 이 날의 설교 제목은 '인생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해당 간증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삭제된 영상의 시간 기준)

21분 20초
윤길중 목사
오늘은 세례식이 있습니다. 안태근 성도님께서 대표로 세례 간증 해주신 후에, 이재훈 목사님께서 세례식 진행해주시고요. 차세대 교사 모집 홍보 영상과 유치 1부 특순 이후에 '인생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담임목사님께서 말씀 선포하시겠습니다. (강단에서 물러난다.)
21분 45초
안태근
(마이크를 잡으며, 하단에 '안태근 성도'라는 자막이 띄워진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초A 공동체에 소속된 안태근입니다. 저는 중학교 때까지 함께 모시고 살던 외할머니가 교회에 다니셨던 것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와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왔었습니다. 저의 본관은 오히려 다른 종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불과 몇 개월전까지만 해도 제가 교회에 다니면서 성경 공부를 하고, 또 이렇게 세례를 받으리라는 것은 저 자신도 어...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일이었습니다.
저는 대학교 졸업한 후, 얼마 전까지 약 30년 동안 공직자로서 살아왔었습니다. 나름대로는 깨끗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오면서 공직사회에 적응을 해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상사들이나 동료, 그리고 후배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리고 소위 말하는 인사 때마다 중요한 보직에 배치되면서 순탄하게 공직생활을 해왔습니다. 어리석게도 그 모든 것이 다 제 노력 때문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일로 본의 아니게 공직을 그만 두게 되었죠. 제 주위에 많은 선후배, 그리고 동료나 친지 분들이 '너무 억울하겠다'며 같이 분해하기도 하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위로와 격려해도 불구하고 그 일을 겪는 과정에서 저와 가족들은 극심한 고통에 하루하루 괴로워하면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훌쩍이고) 그러다가 다른 교회에 다니던 저의 아내의 손에 이끌려 함께 지금 나오고 있는 이 온누리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지만, 찬송과 기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접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저 혼자 힘으로 성취해왔다고 생각한 저의 교만에 대해 회개하니, 저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그러면서 그동안 바쁜 공직생활동안 전혀 돌아보지 못 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훌쩍이고) 고난 가운데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고,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께서 너무나 큰 은혜를 끊임없이 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얼마나 마음 고생 많냐'고 묻지만 그러한 고난 또한 하나님께서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저에게 하나님을 영접할 기회를 주시고 저의 고난을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진정하게 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그런 기회를 주신 거라고 생각하니 처음 느꼈던 억울함이나 분노, 불안함도 상당히 사라져버린 후였습니다.
(훌쩍이고) 무직, 아직도 불완전하고 죄많은 육신의 옷을 입고 있는 터이라서 완전한 평화를 찾지 못 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런저런 일로 불안해하기도 하고, 과연 저와 저의 가정에 온전한 은혜를 내려주실까 하는 회의를 품은 적도 있지만, 이런 때일 수록 더욱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키우고, 늘 감사하고 찬양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떨리며) 믿음이 없이 교만하게 살아온, (울먹이며) 죄로 간 저에게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이처럼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해 주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26분 20초
성도들
(박수를 친다.)
26분 34초
이재훈
담임목사

귀한 간증에 감사를 드립니다. 억울하게 사회적 위치를 잃어버렸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그 모든 잃어버린 것보다 더 귀한 것을 얻게 해 주시고, 더 귀하게 가치있고 쓰임받는 그런 삶을 허락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성도들이 '아멘'이라 답하고) 세례는 우리의 연약함, 교만.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닌 저희의 인생을 발견하고 우리를 정말 가치있게 만들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기로, 그분과 동행하기로 결단하고 받아드리는 예식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하며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음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받아들이며,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신부됨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이 귀한 예식을 통해 오늘 세례를 받는 8분의 성도님들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인생임을 고백하고 체험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8분 21초
이제 서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28분 25초
(하략. 서약 후 새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부르고 세례식을 한 뒤에
복음성가인 <야곱의 축복>을 부르고 마친다.)

온누리교회 측은 안태근성추행 의혹으로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가 계속되자 2018년 1월 31일 페이스북 글을 올려 입장을 밝혔지만 2월 1일 오전 8시 경에 삭제되었다.#아카이브

안태근 씨의 온누리교회에서의 세례식 간증은 그분이 고위층 이력이 있다고 특별하다고 인정해서 세운 것이 아니며, 또한 일부 언론에서 발표하는 것처럼 ‘간증을 하고 다닌 것’이 아니라, 매월 세례식에서 이루어지는 고백에서 그때 세례받는 사람들을 대표로 한 사람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담당자가 자세한 내용을 전혀 모르고 세운 것입니다.[2] 또한 그가 검찰에서 그만둔 사실도 담당자는 모르고 세운 것입니다.

교회에서 세례식에서 고백을 하는 사람의 과거 이력까지 샅샅이 조사하기란 사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세례받은 성도로서 과거에 불미스런 사건의 가해자였다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죄받는 행동을 보이도록 권면하도록 하겠습니다.

온누리교회가 페이스북에 올린 공식입장(2018년 1월 31일)


3. 신학적 논란[편집]



3.1. 'Acts29' 비전에 대한 비판[편집]


온누리교회는 2003년 'Acts29' 비전을 선포했다. Acts는 신약성경 중 예수의 가르침이 여러지역에서 전파되는 과정을 기술한 사도행전을 의미하고, 29는 사도행전의 29장을 의미한다. 성경 상의 사도행전은 28장이 끝이므로, 29장은 새로 쓰여질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진행형의 성경이다. 따라서 'Acts29 비전'은 이제 온누리교회가 '사도행전의 새로운 장인 29장을 써내려가겠다'라는 비전이다. 이 비전의 구체적인 실현 형태는 지교회의 설립으로 이루어졌다. 지교회의 개념은 회사의 '지사' 개념을 생각하면 된다. 지사가 본사의 관할권에 의해 통제받듯, 온누리교회의 지교회는 중앙으로부터 통제를 받는다. 다시 말하자면, 'Acts29 비전'에 따라 서빙고 온누리교회는 '온누리교회' 타이틀의 소형교회들을 전국 각지에 설립한 후, 중앙에서 목회자를 파송하고 심지어 서빙고캠퍼스의 설교 실황까지 중계하는 방식으로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이에 대한 사회적, 신학적인 비판이 존재한다. 우선, 'Acts29' 비전에 따라 지교회가 들어설 지역은 많은 경우 주변에 개척교회 등 군소교회들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아닌 기존에 이미 다른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 온누리교회로 교회를 옮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동네교회 신자 뺏어오기 혹은 정식적으로는 교인수평이동이라고 부르는데 바람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에 따라 애초에 교회가 없는 지역에 개척하여 새로운 신자들에게 전도하던 지방의 중소교회들은 '대형교회가 성장 위주 이벤트를 한다'고 강하게 반발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을 교계 밖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표현하자면, 대형마트가 동네상권을 무너뜨림과 동시에 "동네마트 가면 안 되고 대형마트로 와야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격이다. 관련 기사

보수주의/복음주의 개신교 신학의 입장에서 보아도 온누리교회의 'Acts29'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복음주의 개신교 신학에 따르면, 사도와 선지자의 시대는 종결되었고 새로운 계시 또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 또한 완성된 형태로, 더 이상 확장될 수 없다.[3] 이러한 기본 바탕에서, 사도행전을 확장하겠다느니, 온누리교회 신자들이 사도행전의 주인공(즉, 사도들)이라느니 하는 주장은 개신교 신학의 큰 전제를 흔드는 것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더군다나 온누리교회의 애초 설립 기반이었던 초기 윔버주의가 2000년대 이후 들어와 신사도운동으로 변질되었고, 이 때문에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온누리교회의 'Acts29' 구호가 신사도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다.

온누리교회의 설립근간은 기존의 경직된 예배 분위기를 파격적으로 바꾸어 부흥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이 기조는 '경배와찬양'의 하스데반[4]이 기초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80년대 초기윔버주의자였던 하스데반은 온누리교회를 통해 윔버의 부흥전략을 대한민국에서도 활용하고자 하였다. 존 윔버(John Wimber)는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소재의 애너하임 빈야드 기독교회(Anaheim 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의 목사였는데, 당시까지 예배에서 사용되던 딱딱한 찬양을 기독현대음악(CCM, Christian contemporary music)으로 바꾸고 20세기 현대음악과 악기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선구였다. 윔버는 전통에 대한 파격과 특히 현대음악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기독교를 어필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빈야드 교회의 성공을 본 하스데반은 이를 한국적 맥락에 적용하였고, 이것이 CCM 찬양단 '경배와찬양' 그리고 파격적 교회인 온누리교회로 실현된 것이다. 즉 요약하자면, 미국에서 성공한 부흥전략인 윔버주의를 한국에 최초 적용한 사례가 온누리교회의 '열린예배'였고,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크게 부흥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런데 문제는 2000년대 들어와서 존 윔버의 부흥운동이 신사도운동으로 전이되었는데, 신사도운동은 온누리교회가 속한 예장(통합)을 포함한 보수주의 개신교의 신학적 전제와 크게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누리교회가 '사도행전을 계속 써내려간다'라는 식의 캠페인을 시작하였으니 윔버주의의 변질에 대해 우려하던 보수신학자들이 'Acts29'를 주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Acts29'에 이단성이 없다고 판단하지만, 이를 신사도운동 혹은 은사주의로 이해하는 견해 역시 존재한다.참조


3.2. 반과학주의 선동[편집]


온누리교회는 일명 창조과학(창조설)을 지속적으로 후원해온 교회 중 하나로, 교회 내에서 창조과학 스쿨을 열어 지속적으로 창조과학을 전파하는 중이다. 또한 초등학생에서는 캠프까지 열어서 가르치고 창조과학 협회 소속 대학교수들이 강의를 하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졸업여행에서 천문학과 진화론을 반박하는 영상도 보여주었다. #, #, #, #

2012년 기준으로, 중등부를 대상으로 진화론은 원숭이가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여러번 가르쳤다.

2014년엔 온누리교회에서 설립한 CGNTV에서 창조과학을 알려주는 다큐를 방송하기도 했다. #

2018년 5월 20일, 소속 목사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주장(천동설)을 설교 중에 했다. #


3.2.1. 신학적 평가[편집]


비록 해당 이슈는 종교가 아닌 과학의 교도권에 있으므로 과학적 평가가 우선시되어야하나, 온누리교회가 근본주의 개신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단체라는 점에서 개신교 신학 상에서의 평가를 덧붙인다.


3.2.1.1. 무로부터의 창조는 기독교의 유일한 창조론인가?[편집]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온누리교회가 추종하는 창조론은 신이 무(無)의 상태에서 세상을 창조했다는 소위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가설이라는 점과 이것은 유일한 창조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로부터의 창조' 이외에, 기독교 성서에 기반한 창조론 가운데에는 '혼돈으로부터의 창조'도 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창세기 1-2장에 주로 기반한 신학적 가설인데, 클라우스 베스터만이 주창하였다. 이는 신의 권위와 능력을 강력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위 권력지향형 카리스마주의 교회에서 매우 선호하는 창조론이다. 그러나 창세기를 제외한 구약성서(히브리성서) 대부분은 온누리교회의 창조론이 아닌 '혼돈으로부터의 창조'를 지지한다. 따라서 온누리교회의 창조론이 정말 성경에 제대로 기반한 것이 맞는지, 아니면 입맛에 맞는 성경 구절만 취합하여(cherry picking) 그 자체의 우상을 만들어낸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우선 구약성경 전체에서 신의 창조가 어떻게 묘사되는지 살펴보자. 신의 우주 창조에 대한 구약성서의 서술은 창세기1장 뿐만 아니라 시편, 이사야, 욥기 등에 '창조기사' 형태로 나타난다. 창세기 이외의 구절에서는 신이 창조 전의 혼란상태를 정돈한 것을 창조라고 칭하고 있다. 혼란상태는 생명이 살 수 없는 상태로 묘사되고 '통제되지 않는 바다괴물'(리워야단, 탄닌) 혹은 '원시 바다'(바다, 깊은 물 등)로 표현된다. 따라서, 신의 창조는 이를 제압하고 불안정성을 안정성으로 바꾸어 생명이 살수 있는 환경을 만든 사건으로 이해된다.

심지어 창세기1-2장조차 온전히 무로부터의 창조를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김윤정&김회권, 2020)[5]. 창세기 1장 2절에는 이미 "물"과 "깊음"이 언급되는데, 창세기 그 어디에서도 이것들이 언제 창조되었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즉, 6일 창조론은 '원시 바다'와 같은 사전상태를 이미 전제하고 그 위에서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또한 언어학적으로 보았을 때, 창조행위가 이루어진 양상, 즉 '빛이 있으라' 등의 명령형(jussive mood)의 사용은 그 명령을 듣고 실제로 행동을 할 청자가 있음이 전제된다. 간단히 말해 신의 가장 처음 창조명령인 '빛이 있으라' 조차 그 명령을 들을 대상이 이미 존재함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3.2.1.2. 반과학주의는 개신교적인가?[편집]

반과학주의는 개신교의 정신과 전혀 맞지 않다. 서방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 모두)의 교회사에서 종교개혁은 근대적 기독교의 시작으로 이해된다. 16세기 서유럽의 맥락에서, 중세 가톨릭의 맹목적 비이성주의적 신학은 더이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웠기 때문에, 기독교의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 즉 미신과 비논리를 타파한 사건이다.[6] 이는 서양사 전반으로 보았을 때 근대적 이성주의를 연 사건이다. 따라서 비이성적으로 성경의 구절을 맹신하는 것은 개신교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반과학적 창세기 이해는 온누리교회가 속한 장로교의 신학에 큰 영향을 준 장 칼뱅의 과학관과도 상당히 배치된다. 장 칼뱅의 저술 시기에도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신학 사이의 관점차이와 갈등이 존재했다. 오늘날 신학의 창조설과 과학의 진화론이 갈등관계인 것처럼, 칼뱅의 시기에도 신학의 '창세기서술'과 과학의 '천문관측' 사이의 갈등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이때 칼뱅은 과학의 손을 들어준다.

창세기에 보면 우주의 탄생과 천체의 움직임 등에 대한 서술이 나오는데, 근대 이후 망원경의 발달과 천문관측 데이터 수집으로 인해 창세기의 천체 움직임 서술들이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칼뱅은 '창세기 주석'에서, 자연현상의 기술에 관해서는 과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견해를 표명했고, 창세기의 서술은 단지 자연현상을 어리석은 자도 알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풀어쓴 것이라고 이해했다. 칼빈은 창세기를 주석하면서 성경에서 천문학이나 고도의 기술을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3.2.1.3. [결론] 목적이 있는 선동 - 탄압받고 있다는 망상[편집]

근본주의 종교는 절벽에 매달린(cliff-hanging) 상황에서 부흥한다는 특징이 있다. 탄압을 받는 상황에서 오히려 불굴의 의지를 드러내고 이를 부흥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보수 개신교는 한국사회의 명실상부 주류 겸 지배계층으로 군림하게 되었다.[7] 따라서 더 이상 실질적 탄압이 없는 현사태에서 부흥을 위해서는 '절벽에 매달린 듯한' 위기의식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보수개신교는 외부에서 적을 찾기 시작하고, '과학이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구도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무로부터의 창조'론에 대한 신봉은, '오히려 그것이 비이성적이라는 사실때문에' 순교자적 신앙으로 떠받들여진다.[8] 그러나 무로부터의 창조론은 1에서 언급되었다시피 성경적이지 않으며, 비이성적인 맹신은 2에서 언급되었다시피 개신교적이지도 않다.

사회학자 브래들리 캠벨과 제이슨 매닝은 '피해자성 문화의 부상(The Rise of Victimhood Culture)'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결코 폭력이나 탄압의 피해자가 아님에도, 마치 폭력이나 탄압에 대하여 자신이 맞서 싸우고 있다는 구도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탄압받고 있다는 망상'을 지적한다. 예를 들자면, 조선일보가 1930년대 일제권력에 야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폐간을 당하는 탄압을 받았다'[9]고 스스로를 포장함으로써 '민족주의 언론'이라고 브랜딩을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온누리교회 역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즉,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등의 실질적 '차별'은 예전같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부흥'을 위해서 선과 악의 선명한 구도 속에서 '세상이 교회를 탄압하고 교회는 피해자이다'라는 선동적 포지셔닝을 취하는 것이다.


3.3. 전통과 신학 무시 : 성장만능주의[편집]


이 문단을 읽기 전에 전제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개별 교회의 건전성을 파악하는 데에는 여러 교회들의 집단이 보이는 건전한 신앙물결(mainline trend)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는 것이 하나의 요인이다. 예수의 부활과 성령강림 이후 제자들이 각지에 흩어져서 선교를 했으나 공의회를 열며 서로의 차이를 조율했고 하나의 건전한 신앙물결을 이루었으며, 성경에 나오는 보편교회의 세 직분인 주교-사제(목사)-부제(집사)를 보더라도, 개교회가 목사와 집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더라도 집단교회의 주교와의 동기화 과정을 항상 거쳤음을 이해해야 한다. 신약성경에 수록된 바울의 목회서신이 그러한 동기화의 과정을 나타낸 역사적 흔적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신학에서, 진리와 교회의 관계는 바퀴의 모습으로 흔히 비유된다. 바퀴의 가장 외곽, 땅과 직접 닿는 타이어가 개교회다. 타이어가 땅에 직접닿듯 개교회는 세상과 직접 소통한다. 타이어는 바큇살로 연결되어 있다. 바큇살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바퀴의 중심에 진리가 있다. 즉, 건전한 진리의 교회일수록 다른 교회들과 유사한것이 많아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일치를 잣대로 개교회의 건전성을 파악할 수 있다.

온누리교회에서는 열린예배라는 명목 하에 찬송가도 복음성가로 대체하고[10] 대예배에서 자체제작한 번역본의 성경을 사용한다. 성경과 찬송이 개신교 내의 건전성의 척도라는 점에서 온누리교회는 건전한 개신교 신앙의 측면에서 상당히 괴리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물론 온누리교회 측은 찬송과 성경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온누리교회가 가진 위험한 신학이다.

성경과 찬송보다는 중점이 될 수 없지만, 부차적으로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은 교회력과 전례의상의 준수에 관한 것이다. 교회력과 전례의상의 준수는 어떠한 개교회가 보편교회에 얼마나 근접하는지를 알수있는 척도로 볼 수 있다. 교회일치운동에 반대하거나, 혹은 보편교회로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 개신교회들에서도, 부활절-맥추절-성탄절의 간소화된 교회력이나, 대예배시 성가대와 목회자가 가운을 입는등의 기본적 전례의상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온누리교회 신자들은 이러한 기초적 수준의 경향성조차 경험해보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력과 전례의상은 지키지 않으면서, 세속의 달력인 송구영신과 세속의 전례의상인 한복은 빠지지않고 지킨다. 교회 공동체로서 무엇이 중심인지 무엇이 부차인지를 상실한 것이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이쯤에서 온누리교회가 일반대중에게 소구하는 측면들이 어떤 부분인지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건전한 개신교회라면 이의 없이 받아들일 '성경 중요성'만을 다루고자 한다. 온누리교회가 일반적 교회과 다른 성경을 쓰는 이유는 성경을 쉽게 만들기 위함이다. 이것은 정말 기독교의 근본인가? 다만 진리를 포기하고 대중에 영합하고 타협하려는 것은 아닌가? 물론 성경을 쉽게 전하고 찬송가를 더 흥이나게 만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더 중요한 지점은 교단 혹은 교회전체에서 이러한 노력을 안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일절 무시하고 개교회의 주장을 관철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현대어로 쉽게 쓰려는 노력은 성서공회를 중심으로 쉬운번역새번역이라는 신학적으로 건전한[11] 성경으로 꽃피웠다. 그러나 온누리교회는 이러한 노력은 모두 안중에 두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신학의 근거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자신만의 성경을 만들어내서 읽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섹션인 '근본적 원인'에서 서술.

대중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은 교회의 성장이 아닌가? 특히 위에서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은 무제약적 선교우선주의와 맞물려서 온누리교회는 성장만을 위해 다른 모든것을 타협하는 성장중심주의 집단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생물계에서도 온누리교회와 비슷하게 무제한적 자기성장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종양이다.

사실 이 부분은 정교회가톨릭 그리고 성공회 등 초대 교회로부터의 전통을 중시하는 보편교회와 달리 성경에 나오지 않는 전통을 중히 여기지 않는 개신교의 교회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복음주의 미국 개신교의 영향을 짙게 받은 한국 개신교 교회들 전반의 문제라고 본다면 비단 온누리교회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일은 아니다. 자세한 사항은 개교회주의를 참조할 것.


3.3.1. 근본적 원인 : 폐쇄적 성경중심주의[편집]


이러한 신학적 비이성주의 내지는 반지성주의의 근간에는 성경중심주의가 있다. 즉 과학적 탐구의 결과물보다 성경의 서술이 자연과 사회를 설명하는 데 우선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성경중심주의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온누리교회에서는 성경을 자체생산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12]에는 내부에 다양한 신학적 견해가 존재하지만 성경 자체는 성서공회 등 초교파적인 단체에서 다양한 출신의 성경학자들이 참여하여 번역하고 있으며 욕을 많이 먹는 개역판도 의외로 신학적 논쟁을 거친 건전한 번역이라는 것이다. 과학적 발전방향이 아니더라도, 잘못된 주장을 견제할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새로운 원어 판본이 발견된다거나 (사해사본) 하는 경우 서지학적으로 온전하게 성경을 업데이트하는 등이 있다.

그러나 온누리교회는 성경을 쉽게 읽게 한다는 명목하에 우리말성경이라는 자체 성경을 제작하고 자체 소비한다. 온누리교회 계열 '두란노서원'에서 공개한 번역진 정보@에 따르면 해당 성경은 소수의 신학교수들이 분담번역했으며 1명의 교수가 여러권의 성경 내부의 책을 단독 번역했다(예: 창세기 - 신명기를 박철현 교수 혼자). 책임필자(총괄)나 상호검증 과정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성경 번역과정은 초교파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책임필자가 말 그대로 책임을지고 신학적 퀄리티를 보장한다. 또한 출간에 앞서 여러 교파의 많은 목사들이 문체나 신학 등의 측면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베타테스트)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말성경과 동일한 현대어 성경인 공동번역이나 새번역의 경우 교계 외부의 어문학자들을 초빙하여 모호성과 문체를 점검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말성경은 이러한 과정을 일절 무시하고, 오직 온누리교회 한곳에서 소비되도록 제작된 성경이다. 온누리교회의 입김만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성경번역 구조다. 또한 이 성경번역과정이 온누리교회의 신학적 모순에 환류(되먹임)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온누리교회가 모세오경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온누리교회는 모든 창조신학을 모세오경에 의존한다. 기독교 신학에서 창조는 창세기뿐만 아니라 시편, 욥기 등에 기록된 창조과정 묘사에서도 그 근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온누리교회는 오직 모세오경, 심지어 박철현 교수 혼자 번역한 모세오경에 의존해서 신학을 구성하는 것이다.

심지어 온누리교회에서는 '우리말성경'을 주일 본예배(대예배)[13]를 포함한 거의 모든 예배에 사용한다.[14] 성경중심주의에 대해 강조하면서 스스로 쓴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들의 행동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자체 제작한다는 비판을 듣기에 충분해보인다. 우리말성경이라는 것은 온누리교회를 제외한 다른 교회들에서 예배 뿐 아니라 성경공부용으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한 '새번역' 내지는 '쉬운번역'등이 '그나마 보조적으로' 사용된다. 대부분은 개역개정이나 개역한글[15]을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설상가상으로 불균형적인 성경 독서가 편향된 신학을 가중할 우려가 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온누리교회는 교회력과 연간독서를 인정하지 않는다. 거칠게 말해서 어떠한 견제도 없이 원하는 성경만 취사선택하여 다루고 설교하여도 문제가 없는 구조다. 애초에 성서정과 등 개교회를 초월한 넓은 단위에서 설교본문을 결정하고 개교회가 이를 따르는 것은 건전한 기독교 신학이 성경에 기반한다는 것과, 그렇게 되려면 성서에 대한 균형잡힌 독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 현대 기독교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누리교회는 이러한 흐름에서 이탈되어 스스로 고립되고 왜곡된 신학을 계속 되새김질하고 있는 것이다.

[1] 2018년 2월 1일 현재 삭제되었다.[2] 만약 이 해명이 사실이라면 더 큰 문제다. 바로 세례/입교교육을 담당하는 교역자가 안태근의 과거 이력과 논란을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간증문글솜씨만 보고 세례/입교식 때 간증하는 사람을 선정한 것임을 스스로 밝힌 것이 되기 때문이다 . 보통 교회에서 세례 교육을 하면 평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입교식에서 간증할 사람을 선정할 때, 안태근의 얼굴과 이름만 세례/입교 담당 교역자가 정확히 기억하여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봤으면, 온누리교회가 사회 안팎으로 지탄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3] 이것은 흔히 '계시의 종결'이라고 불리는 신학 개념으로서 온누리교회가 속한 장로교회의 가장 중요한 신학 자료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4] 온누리교회의 설립자인 하용조 목사의 동생[5] 김윤정 & 김회권. (2020). “無로부터의 창조” 교리에 대한 비판적 연구. 신학사상, 191, 403-438. http://doi.org/10.35858/sinhak.2020..191.014[6] 종교개혁 뿐만 아니라 이에 대응하여 가톨릭 내부에서 이루어진 '반종교개혁' 역시 중세 가톨릭의 미신을 일소하는 기능을 했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에는 새로 세워진 개신교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가톨릭 역시 중세시대 교회와는 달라졌다.[7] 이는 본인이 장로임을 표면에 드러내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이라는 기표로 표상된다. 소위 '장로 대통령'론.[8] 단, 이성의 잣대로 보았을 때 불건전하다고 해서 그것이 기독교 신학에서 배척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테르툴리아누스 참고. 여기에서 문제시하는 것은 제멋대로 비이성적으로 만들어낸 다음 그것을 순교자 신앙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십자가 신앙, 동정녀수태 신앙 등 이성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으나 사도로부터 이어져온 신앙들이 있다. 테르툴리아누스 교부의 말처럼, 이것들이 비이성적인대도 예수가 살아있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내려오는 것은 그것이 진리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비이성적 헛소리라면 열 두명이 똑같이 이구동성으로 그것을 말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로부터의 창조는 사도로부터 내려오지도 않았으며 성경을 편향적으로 해석하여 조직된 '폰신학'인 것이다.[9]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제는 한국계 일본계 할 것 없이 언론통폐합을 진행중이었다. 조선일보 폐간의 과정도 폭력적인 억압이 아니라, 100만원이라는 파격적 금액을 일제가 보상하고 조선일보가 자체 폐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10] 찬송가는 교파를 초월한 한국 개신교 연합운동의 상징이다. 즉, 일치된 찬송가를 사용함으로서 만약에라도 교파 혹은 개교회 특유의 엇나간 미신이나 신앙이 생기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보수적인 대형교회들이 찬송가를 새로개발하거나 하지 않고 기존의 찬송가를 사용하는게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다. 특히 온누리교회가 속한 장로교의 신학적 선생인 장 칼뱅도 찬송가의 제한을 강조하며 심지어 '시편의 글로만 찬송가를 지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1] 해당 역본들은 개신교의 주요교단 전체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다.[12] 여기서는 개신교만 한정하는 협의의 '기독교'가 아니라, 가톨릭정교회까지 합하는 그리스도교를 말한다.[13] 가톨릭의 교중미사에 해당[14] 단, 화요성령집회에서는 개역성경을 사용한다.[15] 2022년 현재, 개신교 17개 주요 교단 소속의 교회들은 예배용 성경으로 개역한글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설교 중 인용정도로 사용하거나 소수의 군소 보수교단 등만 예배용으로 사용한다. 급격히 바뀐데에는 개역한글 성경만 고집하는 신천지의 역할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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