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가키 다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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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가. 자유당의 당수. 토사 번의 상급 무사 출신.
2. 생애[편집]
야마우치 요도의 친(親) 도쿠가와 요시노부 행보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삿쵸군에 가세하여, 무력 토막 운동의 핵심인 보신 전쟁에서 곤도 이사미를 격퇴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유신 후에는 참의(參議)로 신정부에 출사하였다. 조선 출병을 바탕으로 하는 과격한 정한론을 주장하지만 구미 시찰에서 귀국한 이와쿠라 도모미 등의 반대에 부딪히며 사이고와 함께 하야한다. 이후 의회 정치를 목표로 자유민권운동에 몸을 던진다.
이후에는 사이고가 택했던 무력으로서의 저항과는 반대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메이지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하고, 곧 자유민권운동의 중심 인물로서 떠올랐다.
3. 여담[편집]
- 원래 성은 이누이(乾)였으나 그의 집안은 다케다 신겐의 가신 이타가키 노부카타의 후예였기 때문에, 다케다 신겐의 영지였던 고후 성의 전투를 앞두고 이와쿠라 도모미의 조언으로 이타가키(板垣) 성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고후 성이 위치한 카이 국 민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곤도 이사미가 이끄는 갑양진무대(甲陽鎮撫隊)를 대파한다.
- 1882년에서 83년 사이에 유럽 시찰을 갔을 때 일본인 최초로 루이비통 가방을 구매했다고 한다.
- 암살범에게 피습을 당했을 때 '이타가키는 죽어도 자유는 죽지 않는다'는 명언을 했으나 죽지는 않았다.
4. 창작물에서[편집]
- 1990년 방영된 대하드라마 나는 듯이에서 사이토 요스케가 연기했다. 2013년 방영된 대하드라마 야에의 벚꽃에서 가토 마사야가 연기했으며, 2018년 방영된 대하드라마 세고돈에서는 시부가와 키요히코가 연기했다.
- 소설 조선, 혁명의 시대에선 일본 자유 민권론자로 언급된다. 김옥균을 지원하여 조선에 연속혁명을 일으켜서 일본의 민권과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한다.
- 만화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에서 켄신 일행에 빨간 기와에서 처음 사가라 사노스케와 만난 에피소드에서 가게 안에서 술에 취해 격론을 벌이던 자유민권운동가 사이에서도 그 이름이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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