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탄희/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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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년기
2. 사법연수원 시절
2.1. 법관 경력
2.3. 김명수 대법원장 비판
2.4. 최초의 판사출신 공익변호사
2.5. 칼럼니스트 활동
3. 정치 이력
3.1. 정치 입문
3.2. 법관 탄핵소추 대표 발의 및 가결
3.3. 이재명 선거캠프 참여
3.6. 대정부질문
3.7. 한동훈의 라이벌
3.8. 용인정 불출마 선언
3.9. 22대 총선 불출마 선언



1. 초년기[편집]


1978년 11월 3일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이효익(李孝翊, 1951. 3. 15 ~ )과 어머니 진주 강씨(1949. 5. 20 ~ )[1] 사이에서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효익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출신으로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회계학 전공)를 역임했다.

가락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 사법연수원 시절[편집]


2003년 사법연수원 34기로 입소했고, 당시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논의가 진행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작성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헌법 5조 1항에 규정된 침략전쟁이기에 파병결정은 위헌임과 동시에 헌법 10조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다는 논지였다. 이에 33기(2년차)와 34기(1년차) 연수생 1,900명 중 561명이 서명했고, 연수생들이 논란이 뜨거운 사회 현안에 의견을 표출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뉴스로도 보도되었을 정도.. 결과적으로 이 사건을 이유로 감봉 3개월 1명을 포함해 서면ㆍ구두 경고까지 모두 19명이 징계를 받았다. 국가공무원법 57조(복종의 의무)와 66조(집단행위 금지)를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도 서면 경고를 받았다.

그는 2019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비 법조인이니까 파병의 법적인 쟁점에 의견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토론 공화국'을 표방했고,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을 통해서 사회 각계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하려고 노력했죠. 예비 법조인으로서 국민참여수석실에 파병 여부를 헌법에 비춰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게 특별한 돌출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 강금실 장관도 실질적 법치주의를 강조하면서 헌법적 가치를 강조했고요."라고 당시 일을 회상했다. 한국일보 인터뷰


2.1. 법관 경력[편집]


법관 재직시 지방변호사회가 해마다 평가하는 우수법관으로 세 번(2012년, 2013년, 2015년) 선정되었다. 초임을 수원지방법원에서 시작했고, 그 후에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했으며,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연수 등을 거쳐, 2017년 출세의 지름길인 법원행정처 발령을 받게 되었다.

2017년 2월 승진 코스인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제2심의관으로 발령받았으나,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PC에 암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고, 이를 관리하는 일을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 심지어 자신이 속해있는 판사들의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는 업무도 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서 같은 달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후 법원행정처는 이탄희 판사를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로 원직복귀하도록 발령을 내렸고, 2018년 초에는 헌법재판소로 발령받아 근무하기도 했지만 이탄희 판사는 2019년 1월 24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구속되자 자신의 판사생명도 여기까지라며 다시 한번 사의를 표하고 결국 2019년 2월에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그는 사법농단을 '배신'이라고 표현했다. "국민은 판사들을 믿었죠. 그 믿음은 슬픈 믿음이에요. 필요에 의한, 저 판사는 내 진실을 밝혀 주리라는, 그래서 슬픈 믿음이죠. 그 믿음을 배신했으니 엄중한 일이에요." #



JTBC <뉴스룸> 출연 영상 (2019.1.30.)


2.2.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편집]


당시 이탄희 판사는 이른 나이에 법원 내 요직을 거치며, 이른바 출세길이 보장된 전도 유명한 판사였다. 실제 당시 많은 판사들이 이탄희 판사를 두고 뭔가 대법관이 될만한 판사였는데, 그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사직서를 낸 판사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2017. 2. 16. 이탄희 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겸임 인사발령된 상태에서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법원행정처는 4일 뒤 이탄희 판사에 대하여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 겸임발령을 해제하였다. 2017. 3. 6. 경향신문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보도로 사법농단 사건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 보도를 시작으로 각급 법원의 판사회의, 전국법관대표회의, 법원 내 3차례 조사, 검찰이 현직 판사에 대한 피의자조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구속,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그 후 재판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으로 부른다.[2]

사법농단 사건은 크게 (1)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던 '상고법원'에 대하여 반대 목소리를 내던 (차성안 판사 등) 법관들을 따로 관리하여 사찰을 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주려고 하였고, '우리법연구회'의 후신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저지하고 이에 깊이 관여하던 법관들을 따로 관리하던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 (2)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행정부 조직인 청와대와 협력하여 일제강제징용 사건, 통합진보당 사건, KTX승무원 사건 등 시국사건에 관하여 협력을 하고 그 대가로 '상고법원'을 받아내려고 했다는 이른바 '재판개입' 사건, (3)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외부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일부 법관들의 비위행위를 눈감아주기 위하여 수사기밀을 빼내거나 다른 사건 재판부의 재판기록을 받아보려고 했다는 이른바 '수사무마' 사건 등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이탄희 전 판사는 이 중 (1)번인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하여 처음으로 저항한 당사자인 것이었다.



SBS <김현우의 취조> 출연 영상 1부 (2019.6.14)



SBS <김현우의 취조> 출연 영상 2부 (2019.6.21)


2.3. 김명수 대법원장 비판[편집]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뒤를 이어 대법원장의 자리에 오른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을 배신했다"고 비판했다. 시사IN인터뷰 검찰이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현직 판사 66명의 사법농단 연루 사실을 지목해 법원에 통보했으나, 김명수 대법원이 66명 중 10명만 징계를 청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공사(公私)의 구분이 없다"고도 비판했는데, 이는 김 대법원장의 며느리와 한진 법무팀의 대법원장 공관 만찬 의혹을 저격한 것이다. 조선일보


2.4. 최초의 판사출신 공익변호사[편집]


이탄희 변호사는 법관 사직 후 공감에 입사했다. 2003년 염형국 변호사가 중심이 돼 설립한 공감은 △공익소송 △시민 대상 법률교육 △공익단체 법률지원 △각종 공익활동 프로그램 개발을 주로 하는 등 공익활동에 특화된 비영리단체다. 공익활동의 대의에 공감하는 후원회원들이 내는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이탄희 변호사는 공감의 인터넷 블로그에서 "이제 변호사 등록한 지 갓 4일 된 풋풋한(?) 새내기 변호사 이탄희"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공감에 합류하면서 '희망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되어 보자'라는 대담한 목표를 세웠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어 "세상에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참 괜찮을 것"이라며 "조만간 여러 활동으로 소식 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세계일보 2019. 5. 17.자)

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수임료를 받지 않는 공익변호사로 활동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2.5. 칼럼니스트 활동[편집]



파일:이탄희공감.png

2019년 6월부터 2020년 1월까지 한겨례신문에서 '이탄희의 공감(公感)'이라는 칼럼을 연재했다. #

사법농단에 저항한 그에 대한 유명세와 유려한 필력이 더해져 매번 SNS에 수천번 공유되며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여러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3. 정치 이력[편집]



3.1. 정치 입문[편집]


공익인권법재단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다가 2020년 1월 19일 더불어민주당에 제10호 영입인재로서 영입되었다. 2020년 2월 7일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공정과 정의를 위해 용기와 기개를 보여준 젊은 정치인의 후원을 맡게 돼 기쁘다"며 이탄희 변호사의 후원회장을 맡기로 결정했다. #
그리고 경선 때는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쪽으로 붙었다
당시 이탄희 변호사는 사법개혁을 위해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는 순회강연, 인터뷰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2019년 5월 9일 김명수 대법원장사법농단 판사 66명 중 56명의 징계청구를 포기하고, 2020년 1월 13일 사법농단 첫 1심판결에서 법리적인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는 등 면죄부가 부여되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더불어민주당에서 이 변호사에게 직접 국회로 들어와 결자해지 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

더불어민주당은 내부관계자의 전언을 통해 2020. 2. 14. 영입인재 제10호 이탄희 변호사를 경기 용인시 정 지역(표창원 의원의 지역구)에 전략공천 하기로 하였다고 언론에 밝혔는데, 이는 표창원 의원이 당 지도부에 이탄희를 적극 추천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탄희 변호사는 "당 결정에 따를 것"이라며 전략공천이 확정 되면 이에 따를 것임을 밝힌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 2. 19. 이탄희 변호사를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던 표창원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용인 정 지역에 전략공천한다고 공식 밝혔다. 그리고 선거 당일날 치열한 접전 끝에 최종 53.4%(7만9794)표를 얻어 당선되면서 양형개혁법을 비롯해 장발장방지법, 사회적의인법 등 이탄희 3법을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2020년 6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법농단 사태로 인한 스트레스와 후유증으로 공황장애 증세가 심하게 발생했었는데, 선거 과정에서 이것이 재발하여 건강 회복에 집중하며 잠시 국회를 떠나있겠다고 밝혔다. # 현역 의원이 공황 증세를 고백하고 3개월 간 세비 전액을 반납한 최초의 사례였다.

다행히 8월 이후 회복하면서 국회에 본격적으로 등판하고 있고, 그해 9월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상위 점수를 받아 많이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월 26일, 머니투데이 주관 2020 대한민국 최우수 법률상 & 국정감사 스코어보드 대상을 수상했다. #


3.2. 법관 탄핵소추 대표 발의 및 가결[편집]



파일:이탄희 한국일보.png

이탄희의 '결자해지'

2021년 2월 4일, 헌정 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소추를 이끌어냈다. 국회의원 당선 이전부터 법관 탄핵을 주장했고,#시사IN인터뷰 법관을 탄핵하라 # 당선 인터뷰에서도 사법농단에 가담한 판사들의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KBS 1TV <더라이브> 출연 영상 (2021.1.31.)


2021년 1월, 퇴직을 앞둔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판사와 이동근 판사에 대해 탄핵소추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민주당에서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해서만 탄핵안을 발의하여 그 표결을 앞두고 대표발의자로서 단상에서 제안설명을 하면서 "판사는 헌법을 위반해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연설했다. 결국 탄핵소추안은 정의당기본소득당 의원들까지 모두 찬성하며 찬성 179표로 가결되었다.

2021년 10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사상 첫 법관탄핵 심판 사건'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 때 5:3:1로 재판관들의 의견이 갈렸다. 5명은 임성근 판사가 재판 도중 이미 퇴직해버렸다는 이유로 본안판단을 하지 않았고, 3명은 이런 식이면 혐의자들이 모두 처벌받지 않고 퇴직하게 된다며 본안판단을 해서 "중대한 헌법위반으로 탄핵사유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탄희 의원은 다수의견인 5명의 판단에 대해 "법기술자적인 판단"이라며 헌법재판소가 헌법수호를 포기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법원 내부 사정을 제대로 아는 의원이 없는 상황에서 이탄희의 열변에 끌려간 측면이 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탄핵안 의결은 피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


3.3. 이재명 선거캠프 참여[편집]


2021년 8월 여권의 유력대권후보인 이재명의 선거캠프에 참여하였다. 이탄희 의원은 당시 SNS에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리는 건 '변화와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국열차의 칸막이를 부숴버릴 정도의 확실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6명의 민주당 경선 후보 중 "가장 큰 변화를 가지고 올 후보"는 이재명이라고 판단하였다고 캠프 합류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국민들이 가지고 계신 우려도 잘 알고 있다"며 "수많은 개혁진보진영의 인사들이 '보완재 역할'을 해야한다"고 했다. * 21대 총선 당시 자신의 후원회장이었던 이낙연이 아닌 이재명 선거캠프로 간 것은 의외라는 의견도 있으며 일부 이낙연 지지자들이 이탄희의 SNS에서 비판 의견을 올리기도 하였다. #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탄희가 '자신은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이재명을 지지한다'라는 발언을 비판하며 이탄희가 원하는 것은 "이념도 가치도 변화도 아닌 그저 이권과 권력의 네트워크에 계속 꼽혀 단물을 빨고 싶을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권순일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에서 거액의 자문료를 받은 것이 드러난 상황에서 이탄희측에서는 별다른 의견제시를 하고 있지 않다. 김태규 전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을 위해서라면 세상이라도 뒤집어버릴 듯이 목소리 높이던 법관 출신의 여당 국회의원 최기상, 이수진, 이탄희, 이분들도 아무런 말이 없다. 의아하다"는 평을 내렸다.

이재명 캠프에 동맥경화가 발생하였고, 이에 따른 정당쇄신 정치개혁 의원모임을 가지며, 혁신방향에 대해서 3선 의원 제한 등 개혁적인 입장문을 냈다. #

이탄희 의원의 이재명 캠프 합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이재명 후보의 경선 승리 이후 오히려 선대위 직을 선대위 짓을 반밥하며 쇄신을 주장하였고, 이후 이 <당신한사람의목소리를듣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 현장 순회를 시작하였다.


3.4. 제20대 대통령 선거 이후[편집]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부친상에 문재인 대통령 및 더불어민주당 고위급들이 근조 화환을 보낸 것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섬세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

  • 2022년 전당대회의 최고위원 후보군으로도 언급되었으나, 7월 18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


3.5. 법제사법위원회 활동 [편집]


후반기 21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6. 대정부질문 [편집]




이상민 직격한 이탄희 "대우조선 불법엔 왜 한 마디 없나"

윤석열 정부의 첫 국회 대정부질문이 2022년 7월 25~27일에 진행되었는데, 이탄희는 마지막 3일차에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대정부질문에 나섰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농성 파업을 주제로, 노동자 유최안 씨가 한 달간 생활했던 철제구조물 사진을 보여주며 정부가 이를 불법점거로 규정하고 사측의 불법행위에는 침묵하는 "편파적 법치주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파업이 시작된 2022년 6월 2일부터 유최안 씨가 농성을 시작 6월 22일까지 하청노동자에 대한 집단폭행, 특수상해, 협박 등의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이 모든 과정에서의 불법에는 단 한마디 말도 없냐"며 울분을 토했다.

대정부질문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진중권CBS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대정부질문은 이탄희처럼 하는 겁니다.", "이탄희 의원의 질의에 울림이 있는 것은 그것이 올바른 프레임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며 극찬했다.


3.7. 한동훈의 라이벌 [편집]


진보진영에서는 이탄희 의원을 추켜세우고, 보수진영에서는 한동훈 장관을 추켜세우면서 둘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동훈씨 천적은 탄희씨? -YTN-



한동훈 장관 앞뒤가 다르지 않습니까! -YTN-

한동훈의 유시민 사과 요구 비판으로 대립 기미를 보였던 이탄희가 법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그 대립각이 넓어지고 있다.

특히 한동훈 장관 취임 이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출범, 검찰청법 수사 개시 시행령 강행, 이재용 특별사면 등의 논란이 많아지면서 대립의 양상도 다양화되고 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한동훈 장관을 상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의원이라고까지 추켜 세우는 중이며, 지지자들은 이탄희를 한동훈 담당 일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아무래도 기존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한동훈에게 당한 것이 많다보니 그 기대감이 더 큰 측면도 있는 듯.

2022년 10월 6일 진행된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법무부 성범죄 TF에서 법무부 측에 권고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개정 법률안들에 대한 이탄희의 질의에, 한동훈 장관은 "사전 질문지를 달라, 갑자기 질문하면서 왜 모르냐고 장학퀴즈 식으로 물으면 어떡하냐"라고 답변했다. 이에 이탄희는 "지난 7월 28일 법무부 업무보고 때 이미 물어봤고 장관 본인께서 검토하겠다고도 답변하신 내용"이라며 반박했다.


파일:이탄희한동훈.png

이탄희"70일 전에 질문했는데" 한동훈 :사전 질문지 주고 질문하라"#

애초에 "사전질문지를 달라"는 답변도 적절하지 않은 것이, 국회가 정부의 행보와 정책을 감사하고 비판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국정감사이다. 그런 자리에서 미리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를 알려주면 감사의 의미가 없는 것. 심지어 이탄희 의원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야당이다. 국민의힘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야당의 가장 큰 역할은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인데, 어떤 비판을 하고 무엇을 감시할 것인지를 미리 알려준다면 그 의미가 크게 훼손될 수 밖에 없으며, 상세한 질문 내용을 사전에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그러나 정작 한동훈 장관과 얘기하라는 총리의 제안에는 바로 꼬리내리고 동문서답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1

그러나 영상에서는 해당 정책 총괄해야 하는 총리가 제대로 된 실행계획도 없이 "그 부분에 대해서 아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라며 법무부 장관을 불러 답변하게 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에 어이가 없어하는 모습이 더 타당하다.[3]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를 국무총리가 인지도 못 하고 모르고 있다는 자백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3.8. 용인정 불출마 선언[편집]


선거제 개혁을 재차 주장하며, 본인의 지역구에서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 설립을 막고자 노력하고도 있다. #


3.9. 22대 총선 불출마 선언[편집]


용인정 지역구 불출마 선언 및 험지 출마를 선언하는 강수를 두었지만, 당 주류의 선거제도 개혁을 향한 움직임이 미진하자, 급기야 차기 총선 불출마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1] 강병훈(姜秉勳)의 딸이다.[2] 사법농단 사건에 대해서는 인터넷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265회b,c, 266회b,c, 280회a,b,c에서 제1,2,3차 보고서 내용을 정리했다. 265회b, 265회c, 266회b, 266회c, 280회a, 280회b, 280회c[3] 실제로 표정 또한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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