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드 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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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렌 공작
장 드 투렌
Jean de Touraine


이름
장 드 투렌
(Jean de Touraine)
출생
1398년 8월 31일
프랑스 왕국 파리 호텔 생폴
사망
1417년 4월 4일 (18세)
프랑스 왕국 콩피에뉴
배우자
에노의 자클린 (1414년 결혼)
아버지
샤를 6세
어머니
이자보 드 바비에르
형제
이자벨, 잔, 샤를, 마리, 미셸, 루이, 카트린, 샤를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프랑스 왕국의 도팽, 투렌 공작. 프랑스국왕 샤를 6세의 아들이다.


2. 생애[편집]


1398년 8월 31일 프랑스 왕국의 수도 파리 호텔 생폴에서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이자보 드 바비에르 사이의 9번째 자식이자 4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1406년 6월 23일 콩피에뉴에서 에노, 홀란트, 잘란트 카운티의 상속녀이자 프리슬란트의 영주인 에노의 자클린과 약혼했다. 자클린은 에노 백작 기욤 4세와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필리프의 딸인 부르고뉴의 마르그리트의 장녀였다. 당시 그는 8살이었고, 자클린은 5살이었다.

약혼식이 끝난 뒤 장과 자클린은 부르고뉴의 마르그리트의 보호 아래 발랑시엔으로 돌아간 뒤 몽스로 이동했다. 이후 프랑스 왕국은 아르마냑파와 부르고뉴파 사이의 내전이 한창 벌어졌지만, 그들은 여기에 휘말리지 않고 르 께누와에서 즐거운 삶을 보냈다. 1411년 4월 22일, 교황청으로부터 친족 관계인 장과 자클린의 결혼을 승인하는 특별 허가증이 발부되었다. 1413년, 샤를 6세는 장의 결혼이 그대로 이뤄지기를 희망한다는 서신을 에노 백작 기욤 4세에게 보냈다. 그는 프랑스 왕실의 직할지 중 하나인 퐁티외 백국을 지참금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혼은 1414년경 상리스 평화 협약이 논의되는 중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1415년 12월 18일, 장의 형이자 샤를 6세의 후계자였던 도팽 루이가 자녀를 두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후 프랑스 도팽이 된 장은 1417년 1월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의 보호를 받으며 파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해 4월 4일 콩피에뉴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일각에서는 아르마냑파에게 독살당했다고 주장했고, 다른 이들은 머리와 목에 난 종양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콩피에뉴의 생 코르네유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이후 샤를 6세의 마지막으로 남은 아들 샤를이 프랑스의 도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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