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급 고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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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해군이 운용한 소형 고속정(PK: Patrol Killer). 최초의 국산 고속정이다.
2. 동급 함정[편집]
3. 상세[편집]
1972년 11월 첫선을 보였으며, 1973년부터 1978년까지 28척이 취역했다. 시제함은 '학생호'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학생들이 방위성금으로 모금한 3억 8천만 원이 설계 및 제작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를 기리고자 붙여졌다. 건조사는 대한조선공사 및 코리아타코마.
제비급은 중형 고속정인 참수리급(PKM, 당시 기러기급)이 등장하기 전까지 연안 경비를 책임졌으며, 참수리급의 배치 이후에는 참수리 1척 + 제비 2척의 편대 조합으로 운영되며 대간첩작전 및 초계 등 각종 임무에 쏠쏠히 쓰였다. 그러나 선체가 70톤급으로 매우 작았던 탓에 작전에 무리가 있었고, 80년대 중후반경부터는 물 밀 듯이 양산되던 참수리급에 밀려 항만경비 등으로 임무가 축소되었다.
알루미늄 선체로 내구성이 약하여 1980년대 후반부터 퇴역을 시작했으며, 1993년을 끝으로 최종 퇴역하였다. 최종 퇴역하면서 12척이 필리핀 해군에 공여되었다. 1991년에는 185호정이 유조선과 충돌하여 침몰하기도 했다.
3.1. 사업 배경[편집]
1970년 이후 미국의 군수물자 무상지원 감소 결정은 국내 예산을 이용한 전력증강투자를 늘렸고 국민의 세금이 곧 군사력 증강의 밑거름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해군 역시 보다 체계적으로 한국의 실정에 맞는 장비와 무기체계의 확보에 노력했으며, 1970년대 초 고속정 확보 계획이 해군에 시달되었다. 이러한 고속정 확보 계획과는 별도로 1970년 11월 정부는 국민들의 방위성금을 해군에 배정하여 40노트급 고속정을 확보하도록 했다. 따라서 국민의 방위성금을 재원으로 한 70톤급 고속정의 국내 건조가 결정되었으며, 방위성금 중 학생들이 모금한 성금 3억 8천만 원을 고속정의 설계, 건조 비용으로 배정한 이유로 학생호라는 이름을 얻었다.
1972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서 상세 설계, 건조된 학생호는 당시의 낙후된 조함기술과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며 41노트라는 속력을 달성한 획기적인 사업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해군 조함단이 주관하여 해군 자체의 기술과 설계능력으로 만든 최초의 고속정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학생호는 이후 율곡사업으로 건조한 소형 고속정(PK) 획득사업의 기본이 되는 최초의 함정획득 사업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김효철 외, 『한국의 배』 (지성사, 2006).출처
4. 제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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