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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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유년기~유년학교
3. 위관
4. 영관
5. 장성
6.1. 얽힌 이야기
7. 사후


1. 개요[편집]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작중 행적을 정리한 문서.


2. 유년기~유년학교[편집]


파일:DNT.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jpg
어린 시절의 키르히아이스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는 우주력 776년, 제도 오딘의 한 평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사법성의 말단 공무원으로, 상관 잔소리와 일에 시달리면서 성실히 일을 하고, 퇴근하여 집에서 맥주 1잔 마시며 시름을 잊고 난초를 취미로 기르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키르히아이스는 이 평범한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학업 성적은 간신히 상위권에 들 정도였지만 스포츠에 능해서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키르히아이스의 옆집에 제국기사 뮈젤 가문이 이사를 왔다. 뮈젤 가문의가주 세바스티안 폰 뮈젤은 아내 클라리벨 폰 뮈젤이 죽은 후 삶의 의욕을 잃고 술에 빠져 살았고, 뮈젤 가문은 명색이 귀족이면서도 평민 이하의 삶을 살고 있었다. 옆집에 누가 이사를 오자 호기심이 생긴 키르하이아스는 옆집을 보다가 그만 라인하르트 폰 뮈젤과 누이 안네로제 폰 뮈젤에게 들키고 만다. 키르히아이스를 본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에게 이름을 묻고, 키르히아이스가 지크프리트라고 대답하자, 라인하르트는 지크프리트는 흔해빠진 이름이지만 키르히아이스라는 성은 멋지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키르히아이스라고 부르겠다고 선포한다. 그때 나온 안네로제 폰 뮈젤을 보고 키르히아이스는 한눈에 반했으며, 키르히아이스와 라인하르트는 그때부터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잘 어울려 다녔으며,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다. 그러나 당시 은하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4세는 여색을 탐하고 있었고, 황제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미녀를 찾던 궁내성 직원 콜비츠가 안네로제를 발견하여 궁에 데리고 가면서 행복했던 시간은 끝나고 만다.

안네로제가 황궁 노이에 상수시로 끌려가고 한 달 후, 키르히아이스는 언젠가 누이를 되찾겠다며 유년학교 제복을 입고 나타난 라인하르트를 따라 은하제국 유년학교에 입학했다. 키르히아이스의 부모님은 아들의 출세를 바랬는지, 아니면 아들을 옆집 남매에 빼앗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는 몰라도 아들이 유년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했다. 유년학교는 본래 귀족이나 상류층 시민들의 자제만 입학할 수 있어서 키르히아이스는 입학할 수 없었지만 라인하르트와 안네로제 덕에 입학할 수 있었다.

키르히아이스는 유년학교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했으며, 특히 사격과 백병전 능력은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키르히아이스는 유년학교를 다니면서 귀족 동기들의 만행을 목격하면서 문벌귀족골덴바움 왕조에 대한 반감을 키웠고, 라인하르트가 루돌프 대제의 동상 앞에서 제국에 대한 반역의 의사를 내비치자 그에 응했다. 우주력 792년, 키르히아이스는 친우 라인하르트와 함께 은하제국 유년학교를 졸업했으며, 사관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준위로 임관하여 최전선인 행성 카프체란카 B-III 기지로 부임하게 되었다.

또한 이 유년학교 시절부터 키르히아이스는 라인하르트에게 존대를 하게 되었는데, 원작에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은하영웅전설 Die Neue These에서는 유년학교를 졸업하던 날, 라인하르트가 루돌프 대제의 동상 앞에서 키르히아이스에게 자신의 야망을 밝히자 키르히아이스가 그에 응해 라인하르트에게 존대를 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3. 위관[편집]


라인하르트와 함께 카프체란카로 부임한 키르히아이스는 처음부터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기지 사령관 헬더 대령이 주산나 폰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밀명을 받아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를 적지에 던져놓아 동맹군의 손으로 죽이려 한 것이다. 그러나 키르히아이스는 라인하르트와 함께 정찰 나온 동맹군들을 격파했다. 이후 죽은 척 판처 IV 안에 숨어 있다가 라인하르트의 명에 따라 후겐베르크 대위가 이끌고 온 제국군 장갑차를 모두 파괴했다. 후겐베르크는 부하들이 몰살당한 걸 보고 라인하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키르히아이스는 안네로제를 모욕했다며 거절했고 같은 심정이었던 라인하르트는 그를 사살했다.

이후 소위로 승진했는데, 원작에는 소위 시절에 대한 묘사가 없지만 OVA에서는 하멜른 2호 조난사건을 추가하여 키르히아이스의 소위 시절을 묘사했다. 구축함 하멜른 2호의 보안주임으로 부장 하르트만 베르트람 대위가 라인하르트를 구금하자 병사들과 함께 그를 구출했다.

중위 시절 키르히아이스는 이제르론 요새에 배치된 구축함 에름란트 II호의 보안주임에 부임했다.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 중 궁정에서 밀명을 받고 온 그레고르 폰 크룸바흐 소령으로부터 라인하르트를 지켰으며, 마지막 순간 라인하르트와 함께 크룸바흐의 부하들과 싸웠다. 전투 도중 라인하르트가 회랑 밖으로 떨어졌고 키르히아이스가 그를 잡았는데, 크룸바흐 소령은 그를 회유했지만 키르히아이스는 거절했다. 그러자 분노한 크룸바흐는 키르히아이스를 구타했고, 키르히아이스는 끝까지 라인하르트를 놓지 않다가 크룸바흐가 라인하르트를 겨누자 발차기를 날려 총구를 틀었다. 그리고 이후 크룸바흐에게 뒷통수를 맡고 기절해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이후 대위로 승진한 키르히아이스는 라인하르트와 함께 은하제국 유년학교 살인사건을 해결했으며, 우주력 794년 벌어진 반플리트 성역 회전에서 라인하르트를 보좌하며 동맹군과 백병전을 벌였다. 이때 키르히아이스는 동맹군에서도 이름 높은 백병전의 달인 발터 폰 쇤코프 대령과 잠시 겨루어 쇤코프가 감탄할 만한 백병전 실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라인하르트와 함께 동맹군 지휘관 싱클레어 셀레브레제 중장을 사로잡았다.

지휘관을 생포한 공적으로 라인하르트와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은 각각 1계급씩 승진했으나, 키르히아이스는 진급하지 못했다. 이 사실에 분노한 라인하르트가 군무성 인사국장 하우프트 중장을 찾아가 따졌지만, 키르히아이스가 소령이 된다면 더 이상 귀관은 키르히아이스를 부관으로 쓸 수 없다는 말에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그림멜스하우젠 '대장'이 직접 추천해주어 키르히아이스는 소령으로 승진하면서도 라인하르트의 부관으로 계속 있을 수 있었다.


4. 영관[편집]


우주력 794년 소령으로 승진한 키르히아이스는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제3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라인하르트를 보좌했다. 제3차 티아마트 회전 이후 중령으로 승진했는데, 라인하르트가 전함 브륀힐트의 함장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키르히아이스는 완곡히 거절했다.

몇 달 뒤 라인하르트는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주최하는 연회에 참석했는데, 키르히아이스는 밖에서 대기하다가 저택이 폭발하자 급히 달려와서 라인하르트의 안부를 살폈다. 이후 빌헬름 폰 클롭슈톡 후작이 범인으로 밝혀지고 대귀족들의 사병으로 편성된 토벌군이 출정해서 반란을 진압했는데, 그 과정에서 볼프강 미터마이어 소장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일족을 죽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자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라인하르트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이를 수락한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 로이엔탈과 함께 미터마이어를 고문하고 있는 플레겔 남작 일당을 제압했다.

또 몇 달이 지나고, 로이엔탈의 계략과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의 전언으로 폭발한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곧바로 안네로제를 노렸다. 키르히아이스는 달려드는 무수한 암살자들을 쓰러뜨렸으나 위기에 몰렸을 때쯤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가 달려와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키르히아이스는 이후 레그니처 상공 조우전제4차 티아마트 회전에 참전하여 라인하르트를 보좌했으며, 우주력 796년, 제국력 487년 대령 승진이 예정되었다. 승진을 앞둔 키르히아이스는 휴양 차 크로이츠나흐 III에 방문했는데, 하필 미하엘 지기스문트 폰 카이저링 남작을 살해하려는 크리스토프 폰 바젤의 음모에 휘말려 암살 위기를 겪었으며 크리스토프 폰 바젤 중장을 체포하려는 호프만 총경을 도와주기도 했다.

우주력 796년 2월, 대령으로 승진한 키르히아이스는 아스타테 회전에 참전했다. 이 전투에서 그는 처음으로 양 웬리와 대면했다. 전투 이후 오딘으로 돌아간 키르히아이스는 대령이었기에 노이에 상수시 '흑진주실'에 열린 라인하르트의 원수 서임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자수정실'에서 대기했는데, 이 자리에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대령과 처음으로 대면하였다. 이때 키르히아이스는 오베르슈타인을 문벌귀족의 끄나풀이라고 의심하였다.


5. 장성[편집]


아스타테 회전 당시 키르히아이스는 이미 준장()이었기 때문에 준장을 건너뛰고 소장으로 승진한다. 동시에 제국원수에 등극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개설한 원수부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줄곧 라인하르트의 부관으로 활약한 키르히아이스는 별다른 무훈도 없고 계급도 다른 제독들에 비해 낮았다. 따라서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가 단독으로 공을 세워 2인자의 지위를 확보하게 만들기 위해 국무상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부탁하여 키르히아이스가 카스트로프 동란의 3차 진압군 지휘관이 되도록 했다. 키르히아이스도 라인하르트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아, 불과 10일만에 카스트로프 공작군을 진압하였다. 이 놀라운 결과에 원수부 소속 제독들은 키르히아이스를 인정하게 되었고, 키르히아이스는 중장으로 승진하고 쌍두독수리 무훈장을 수여받았다.

우주력 796년,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으로 이제르론 요새를 탈취한 자유행성동맹군이 제국령 내로 쇄도하자, 키르히아이스는 전군의 3할에 달하는 별동대를 이끌고 동맹군 수송선단을 섬멸하였으며 뒤이어 제7함대를 물리치고 13함대와 교전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이후 암릿처 회전에서도 대부대를 이끌고 동맹군 후방으로 우회하여 지향성 제플 입자로 기뢰군을 폭파해서 동맹군의 후방을 타격, 동맹군의 함렬을 무너뜨리고 제국군의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동맹군을 포위섬멸하기 위해 퇴로를 차단하던 중 동맹군 전함이 기습 워프하여 시공진동이 발생하는 바람에 제국군은 잠시 혼란에 빠졌고, 그 때를 노려 도망치는 동맹군을 놓아줘여만 했다.

전투 이후 라인하르트가 무리한 공격으로 작전을 말아먹을 뻔한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를 질책하며 근신 처분을 내리자 직접 라인하르트를 찾아가 비텐펠트를 용서해 달라고 청원했고, 라인하르트는 이를 받아들여 비텐펠트의 처벌을 취소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오베르슈타인이 보면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오베르슈타인의 견제에 시달리게 된다.

프리드리히 4세가 승하하고 은하제국 권력층이 리히텐라데-로엔그람 추축파와 문벌귀족 연합으로 나뉘자, 키르히아이스는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임명된 라인하르트를 따라 상급대장으로 승진하고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에 임명된다. 오베르슈타인은 이 인사에 불만을 가졌지만 라인하르트는 듣지 않았다.

우주력 797년 립슈타트 전역이 개전하자 키르히아이스는 직접 5000명의 장병을 이끌고 라인하르트와 안네로제가 있는 슈바르첸 관저를 안톤 페르너의 기습부대로부터 지켰으며, 코르넬리우스 루츠 중장과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중장을 휘하에 두고 별동대로 활동하여 제국 변경의 문벌귀족 세력을 몰아내고 통치를 주민들의 자치에 맡겼으며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귀족연합군 부맹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을 전사시켰다. 이 거대한 무훈 덕에 몇몇 사람들은 키르히아이스를 '변경성역의 왕'으로 부를 정도였다.


6. 죽음[편집]


하지만 키르히아이스는 바로 그 뛰어난 능력과 라인하르트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오베르슈타인의 견제를 받게 되었다.[1] 강력한 1인자를 정점으로 하는 일사불란한 조직을 추구하는 오베르슈타인에게 있어, 능력까지 뛰어난 완벽한 2인자였던 키르히아이스의 존재 자체가 그의 이상과는 어긋났던 것이다. 따라서 키르히아이스는 오베르슈타인으로부터 강한 견제를 받게 되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를 절대적으로 신임하였기 때문에 별 문제 없었다.

본격적으로 라인하르트와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립슈타트 전역 도중 일어난 베스터란트 학살사건 때문이였다. 키르히아이스는 베스터란트에서의 끔찍한 학살을 생중계로 보게 된 이후, 라인하르트가 이 학살을 묵인했다는 소문을 듣고 경악하며 그에게 직접 항의했다.[2]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가 자신을 비판하자 잘못을 자각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화를 냈고[3], 이로 인해 어릴 때부터 이어져온 반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견고했던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의 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하필 이때 오베르슈타인은 두 사람의 신뢰가 아주 잠깐 흔들린 틈을 타서[4], 키르히아이스만이 가졌던 라인하르트의 앞에서도 무기 소지가 허용되는 특권을 취소하라고 진언했다. 이전의 논쟁으로 인해 감정이 상한 라인하르트도 이 진언을 받아들인다.

결국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립슈타트 귀족연합의 패배로 끝나면서, 립슈타트 전역은 마침내 라인하르트군의 승리로 진압되었다. 이후 라인하르트는 내전의 전후처리로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의 식전용 홀에서 립슈타트 전역이 끝났음을 선포하고, 주요 주모자들을 처벌함과 동시에 패장들을 처분하거나 등용하기 위해 전승 축하식을 열었다. 키르히아이스 역시 이 식전에 참석했다. 하지만 오베르슈타인의 진언을 받아들인 라인하르트의 명령으로, 이번 식전에서는 휴대한 무기를 반납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다. 이에 키르히아이스는 서운함을 느꼈지만, 특권의식을 가지면 안 된다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런데 이 식에서 안스바흐주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시신 속에 숨겨놨던 핸드 캐논으로 라인하르트의 암살을 시도하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난다.

안스바흐가 다른 곳도 아닌 주군의 시체 안에서 핸드 캐논을 꺼내 라인하르트에게 조준하자, 그 자리에 있던 장성들 모두 혼이 나가다시피 당황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5] 이때 그들 중 유일하게 키르히아이스만이 반응하며, 바로 안스바흐에게 온몸을 날려 그를 막았다. 이로 인해 조준이 어긋난 채로 발사된 포탄은 간신히 라인하르트로부터 왼쪽으로 2m 떨어진 벽면을 파괴했다. 포탄이 발사된 직후 키르히아이스가 안스바흐의 팔목을 붙잡고 바닥에 찍어 눌르면서, 그의 라인하르트 암살 시도는 저지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준비성이 철저한 안스바흐는 반지로 위장한 소형 블래스터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붙잡히지 않은 한쪽 손을 그대로 키르히아이스의 가슴에 조준하여 블래스터를 쐈다. 키르히아이스는 가슴 한가운데에 살인 광선을 맞으면서 타버릴 것 같은 고통을 느꼈으나, 안스바흐의 한쪽 손이 부러질 정도로 끝까지 그의 팔목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안스바흐는 재차 블래스터 반지를 쏘면서 키르히아이스의 경동맥을 관통시켰다. 그대로 키르히아이스의 목에서 붉은 피가 터져나오고 대리석 바닥을 적시면서, 결국 키르히아이스는 치명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제서야 주위의 다른 장성들도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움직여서 안스바흐를 제압했다.[6] 이 쓸모없는 부하 놈들!

OVA에서는 이 대목의 묘사가 아주 부실하다. 키르히아이스가 나서서 핸드 캐논을 밀어뜨리고 힘싸움하고 있는데 주변에선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다 키르히아이스가 레이저(혹은 에너지 광선)를 맞고 피가 흐르는 걸 본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기다 군의관은 더럽게 늦게 오고 주위 위병은 나이트하르트 뮐러가 그대로 서서 뭐 하는 거냐고 윽박을 지른[7] 뒤에야 움직인다. 다만 원작에서 안스바흐의 암살 시도는 고작 10초라는 매우 짧은 시간에 이뤄진 것이라는 설정이긴 하다.

그나마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판에서는 키르히아이스에게 치명상을 입힌 안스바흐가 키르히아이스에게 한쪽 손을 잡혀 잡힌 팔이 부러졌는데도, 다른 손으로 핸드 캐논을 잡으려고 했지만 비텐펠트가 재빨리 그 손을 밟고 손가락에 낀 블래스터 반지를 빼놓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키르히아이스는 이미 바닥에 누어 죽어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라인하르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라인하르트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키르히아이스에게 비틀거리듯이 걸어갔고, 키르히아이스 역시 간신히 라인하르트의 손을 잡고 마지막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8] 라인하르트는 누가봐도 가망이 없는 키르히아이스의 상태를 애써 부정하며 안네로제를 보러 가자고 하지만, 결국 키르히아이스는 라인하르트에게 아래의 유언을 말한 뒤 과다출혈로 숨을 거두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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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키르히아이스의 죽음.jpg
키르히아이스의 죽음

ラインハルト様・・・宇宙を手にお入れください。それと、アンネローゼさまにお伝えください。ジークは昔の誓いを守ったと・・・

라인하르트 님, 우주를 손에 넣으십시오. 그리고 안네로제 님께 전해주십시오. 지크는 옛 맹세를 지켰다고…

유언. 일본어 원문/한국어 번역(이타카판)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에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그의 시체를 껴안고 흐느낀다. 보다못한 미터마이어가 "그만하십시오.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이젠 편안하게 잠들도록..."이라고 말리지만, 라인하르트는 미터마이어를 노려보며 "거짓말하지 마라, 미터마이어. 경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 키르히아이스가, 나를 놔두고 죽을 리가 없단 말이다."라고 절규할 정도로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만큼 라인하르트에게 있어 키르히아이스는 단순한 친우이자 부하장수를 넘어, 공통의 목표를 위해 함께 움직이며 모든 면에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였다.

키르히아이스가 이리도 허무하게 당한 건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의 견제가 작용해 일어난 비극이었다. 식전 행사에서 누구도 무기를 소지할 수 없는 관행에 대해 원래 키르히아이스만이 예외가 적용되었는데, 오베르슈타인의 말을 들은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에게도 예외없이 무기 소지를 금지시켰다. 여기서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의 사이가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으로 소원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라인하르트는 전같이 그를 믿지 못했지만 키르히아이스는 그걸 알면서도 변함없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라인하르트를 위해 희생하고 말았다. 작중에서는 라인하르트와 안네로제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이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을 오베르슈타인의 진언 탓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라인하르트가 절절하게 후회했듯이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라인하르트가 내린 키르히아이스의 무장 해제 명령이였다.

결과적으로 무장 해제로 인해 암살 시도를 무기가 아닌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9] 사망하게 되었던 것이다.[10] 누구도 이런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않았건만 우연이 겹쳐서 일어난 최악의 사태였다.[11]


6.1. 얽힌 이야기[편집]


그런데 사실 작가 다나카 요시키도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은 결정해 두었지만 이렇게 빨리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은하영웅전설 사전』에 수록된 도쿠마 쇼텐 초대 편집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자신이 키르히아이스를 2권에서 죽이자고 요청했다고 한다. 다나카 요시키의 첫 장편소설인 『백야의 조종』의 판매량이 매우 나빠서 은영전도 연재중단을 고려하여 전 3권으로 구상하고 있었는데, 정작 1권 판매량이 높게 나오자 10권으로 구상을 바꾸면서 인재가 넘쳐나는 제국과 인재 기근에 시달리는 동맹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을 요청한 것이다. 다나카 요시키는 도쿠마 노벨판 은영전 5권에 수록된 작가후기에서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의 관계를 빛과 어둠에 비유하며 한 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 쪽이 쇠약해지니, 키르히아이스는 적어도 라인하르트가 절정에 달한 5권까지는 살아남아야 했다고 푸념했다.

당연히 인기 캐릭터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때 죽였으니 수많은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다나카 요시키도 작품을 좀 더 풍성하게 해 줄 모티브를 자신의 손으로 파괴해 버렸다고 후회했다. 이후 다나카는 "누구누구는 죽이지 마라"는 수많은 편지를 받았고, 그걸 보고 캐릭터는 사랑받을 때 죽이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다나카 왈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은 독자들에게 "다나카 요시키라는 사람을 내버려두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심어줬다고. 참고로 이런 사태는 양 웬리자 죽을 때 재발하는데 이 때는 키르히아이스의 죽음때와는 달리 바빠서 그 편지들을 보지 않았다.

코믹스의 작가 미치하라 카츠미는 키르히아이스가 죽는 대목을 읽고 "왜 키르히아이스를 죽인 거야? 다나카 선생님 너무해"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키르히아이스가 죽는 장면을 그릴 때 어떻게 그릴까를 생각하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고(...).

7. 사후[편집]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잘못으로 키르히아이스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식음을 전폐하고 사흘 내내 저온보존된 키르히아이스의 유체 옆에 앉아 있었다. 제독들은 엄중한 함구령을 내려 전승기념식의 참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았지만 언제까지 침묵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이 참사가 밖에 새어나간다면 자나깨나 뒤통수를 칠 생각을 하는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에게 라인하르트 원수부가 모두 숙청당할 수도 있었다. 누구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자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나서 리히텐라데에게 라인하르트 암살교사 혐의를 뒤집어씌워 숙청하고, 안네로제에게 키르히아이스의 부고를 전하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키르히아이스의 부고를 접한 안네로제는 자신이 예전에 라인하르트와 잘 지내달라는 부탁을 한 것 때문에 키르히아이스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녀 또한 자신이 키르히아이스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라인하르트와의 통신에서 당분간 만나지 말자는 의절 선언을 했다. 그리고 슈바르첸 관저에서 나와 키르히아이스와 추억이 있는 프로이덴 산장으로 거처를 옮긴 뒤 훗날 라인하르트가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와 결혼할 때까지 칩거에 들어갔다. 누이의 의절 선언을 들은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가 맹세를 지킨 것처럼 자신도 우주를 손에 넣겠다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재기하였다.

이후 키르히아이스는 제국원수에 추서되었고 제국군 3대 장관에 제국군 최고사령관 대리, 제국재상 고문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황제로 즉위하자 대공에 추서되었을 뿐만 아니라[12] 그의 이름을 딴 '키르히아이스 무훈장'이 제정되었다. 또한 페잔 회랑에 건설될 드라이 그로스아트미랄스부르크,Drei Gro β admiralsburg, 삼원수의 성,라는 요새는 키르히아이스를 비롯해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원수를 기리기 위한 이름이었다.

키르히아이스의 시신은 오딘에 있는 제도중앙묘지에 묻혔고, 장엄한 장식 대신 하얀 묘비가 세워졌다. 라인하르트가 새긴 키르히아이스의 묘비명

파일: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묘비명.png
키르히아이스의 묘비

"나의 벗 (Meine Freunde)"[13]

이였다. 라인하르트가 키르히아이스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자 헌사. 훗날 힐데가르트는 키르히아이스의 묘에 참배하러 오면서 "나의 벗이라는 이 두 마디가 가진 의미가 얼마나 무거운지 과연 몇 사람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은 라인하르트에게 얼마나 큰 슬픔이었는지, 다음의 일화가 전해진다. 라인하르트가 은하제국군 최고사령관인 시절 키르히아이스가 한 고급장교의 인사에 대해 조심스럽게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그를 노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놈을 냉대한다고? 냉대란 말이지. 재능 있는 자를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 거야. 놈은 무능하니까 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했을 뿐이고. 면직하지 않은 것만이라도 내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키르히아이스가 죽은 후 은하제국의 실권자가 된 라인하르트는 전 군부 인사들을 대거 예편시켰지만, 그 무능한 장교만은 키르히아이스의 생전 충고를 받아들여 실권은 적되 급여는 좋은 자리로 올렸다. 이는 키르히아이스에 대한 보상심리에 비롯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대패한 뮐러에게 처벌을 내리려다가 문득 키르히아이스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떠올려서 엄벌 대신 휴양을 명령했고, 전사한 켐프에게 상급대장으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유가족들에게도 보상을 내렸다.

파일:은하영웅전설 OVA.펜던트.jpg
파일:은하영웅전설 DNT.펜던트.jpg
OVA[14]
DNT
키르히아이스의 머리카락을 넣어둔 펜던트
또한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의 사후 그의 붉은 머리카락을 담아둔 펜던트를 보물처럼 여기며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게 된다.[15]

더불어 이후 아들을 얻게 된 라인하르트는 아들의 이름도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이라고 지으며 그에게서 따와 지었다. 그런데 사실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 생전에 그의 이름인 '지크프리트'를 별로 멋없다고 여겼었다. 절친한 사이임에도 성으로만 부르던 게 그 탓이었는데, 너무나도 흔한 이름이라고 좀 고민하여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퍼스트 네임으로 붙이고 중간 이름으로 삼았다. 하지만 안네로제는 키르히아이스를 지크라는 애칭으로 불렀던만큼, 조카인 알렉산더도 지크라고 똑같이 불렀다.[16]

후에 라인하르트가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도중 홀로 피로를 호소하면서 "키르히아이스가 있었다면 그에게 원정부대를 맡기고 나는 오딘에서 정치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대사가 나온다. 버밀리온 성역 회전 직후, 양 웬리와의 회담에서는 "키르히아이스가 있었다면 이 아닌 경의 시체와 대면했을 거다"내 친구 있었음 넌 죽었어!라고 말하기도 했다.근데 정 반대로 키르히아이스가 시체가 되어 양 웬리와 대면했을 수도 있다.[17] 이러한 대사들은 라인하르트가 키르히아이스에게 심정적으로 얼마나 기대고 있었는지 나타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게다가 양조차도 상당히 무례한 이 말에 그리 기분나빠하지 않았는데 양 웬리 본인도 키르히아이스가 살아있었더라면 외려 동맹과의 전쟁을 막고 평화를 누리고자 중재를 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기 때문이다.[18]

라인하르트에게 '특권'을 허락받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성격과 능력이 좋았기 때문인지 개성이 풍부하고 자존심이 강한 제국군의 원수나 상급대장들도 누구 하나 그를 질투하지 않았다.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는 "좋은 녀석일수록 빨리 죽는단 말야!"라며 키르히아이스가 없는 상황에 화를 냈고[19] 볼프강 미터마이어 또한 그의 빈 자리를 아쉬워했다. 미터마이어를 뺀 동료들에게 대체로 냉랭했던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와의 술자리에서 키르히아이스 얘기가 나오자 진지하게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20] 립슈타트 전역 당시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라인하르트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을 가장 먼저 키르히아이스에게 전달할 정도였으며, 한때 키르히아이스의 상관이나 선임자였고 나중에는 부하 지휘관으로 종군한 루츠와 바렌도 호의적이었다. 안스바흐와 대치하다 쓰러진 그를 살피는 동료 제독들을 보아도 그의 높은 평판을 알 수 있다.

키르히아이스는 이처럼 뛰어난 능력과 성격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술수와 불운에 말려 목숨을 잃은 비운의 명장이다. 작중에서 상당히 초반에 죽는 관계로 독자들에게도 한탄을 불러 일으킨다. 이미 그의 단명은 보리스 코네프지구교 신도들을 싣고 가다가 키르히아이스를 만났을 때 약간이나마 암시되어 있었다.

"좋은 사람이네요, 키르히아이스 제독이란 사람은."

"안됐지 말이야."

"응? 뭐가 말입니까?"

"좋은 사람은 오래 못 살아. 특히 이런 시대에는"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147

마리네스크는 선장의 말을 헛소리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지만 결국 이것은 예언이 되고 말았다.[21]

"키르히아이스가 살아있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은영전 독자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는 떡밥 중 하나이다.[22] 작중에서도 "키르히아이스가 살아있었다면?" 이라는 가정이 종종 등장하는데 노이에란트 전역 전 로이엔탈도 그런 가정을 한 바 있다. 이쯤되면 작중공인 IF떡밥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런 훌륭한 대장을 잃은 키르히아이스의 부하들은 오베르슈타인을 미워하게 된다.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에는 라인하르트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라인하르트는 본인부터가 친우를 잃고 매우 큰 충격에 빠져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키르히아이스의 부하들은 그런 주군을 차마 미워할 수 없었고, 반면 오베르슈타인은 늘 그렇듯 반성 따위 안 했기 때문에 부하들의 반감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오베르슈타인의 견제 때문에 존경하는 상관을 두 명이나 잃은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은 로이엔탈이 죽음을 택하자 격분하여 '공훈을 징벌로 보답한' 라인하르트를 저주하는 발언을 한 사발 퍼붓고 자살했다.
[1] 정확히 말하면 능력 때문은 아니다. 오베르슈타인이 그를 경계한 것은 능력이라기보다는 라인하르트의 각별한 총애와 그에 따르는 특권 등, 2인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요소 때문이었다. 오베르슈타인은 이후 로이엔탈을 경계하지만 로이엔탈 역시도 능력이라기보다는 야심 때문에 경계받았다. 거기에 로이엔탈 역시도 2인자가 된 건 덤.[2] 당시 키르히아이스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라인하르트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은 해선 안 될 짓을 했습니다. 라인하르트 님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라인하르트 님 정도 되시는 분이 왜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를 하십니까? 민중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민중을 희생양으로 삼으면, 그 루돌프 폰 골덴바움과 하나도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3] 잘못을 저질러놓고 웬 헛소리를 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게 바로 라인하르트가 가진 성격의 단점이다.(...) 라인하르트는 자신이 잘못한 걸 알아도 자존심과 관련되어 있으면 잘 인정하지 않는 성격인데, 마침 이 사건은 라인하르트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딱 좋은 사건이었던 것. 게다가 라인하르트도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의 방관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있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키르히아이스까지 대놓고 항의하고 있으니 더욱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잘한 일은 아니지만.[4] 심지어 키르히아이스도 라인하르트의 질책에 마음이 상한 건지, 그동안 쓰던 "라인하르트 님"이란 호칭 대신 "로엔그람 후작 각하"라는 사무적인 호칭을 사용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5] 하다못해 암살 대상이 된 라인하르트조차 당황해서 뭘 하지 못했다.[6] 서울문화사판에서는 가슴을 관통한 부분까지 나오다가 경동맥의 치명상은 잘렸다. 왜 이랬는지는 불명. 이타카판에서는 제대로 나온다.[7] OVA에서는 "거들어라! 안스바흐도 옮기는 거다!"라고 재촉하고서야 머뭇머뭇 움직였다.[8] OVA에서는 과다출혈로 앞이 안 보이는 키르히아이스가 허공에서 손을 흔들며, 라인하르트를 애타게 잡으려는 게 나온다.[9] 은하영웅전설 DNT에서는 안스바흐가 핸드 캐논을 라인하르트에게 조준하자 경악한 키르히아이스가 블래스터를 꺼내려다가 뒤늦게 없음을 깨닫는 장면이 나왔다.[10] 이미 키르히아이스보다 먼저 오베르슈타인이 인간방패를 자처했지만, 핸드 캐논의 위력을 생각하면 그냥 라인하르트랑 동반자살하는 꼴이였다. 실제로 핸드 캐논에게서 라인하르트를 지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11] 이같은 행적으로 인해 오베르슈타인은 제국의 모든 장성들의 혐오를 받았고 라인하르트는 미친듯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고 안네로제는 동생에게 사실상의 의절을 해버리고 수년간 만나지 않았다. 오베르슈타인이 일부러 이 타이밍을 고른 것인지는 몰라도 일단 1차 원인은 애초부터 모든 부하를 공정하게 대해주지 않았거나 혹은 애초부터 키르히아이스를 특별하게 대하다가 치졸한 이유로 특별함을 박탈해버린 라인하르트에게 있는지라 멘탈이 날아간 것이다. 원래부터 공정하게 대해줬다면 그 대신에 경비원을 서게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경호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테고 공정하게 대하지 않았다가 특권을 박탈해도 납득되는 이유로 했다면 그렇게까지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그러나 자신이 벌인 악행에 대해 비판 좀 했다고 특권을 박탈해버린 자신의 치졸함이 키르히아이스를 죽게 만들었으니 라인하르트 입장에서는 이중고다. 안네로제가 한동안 라인하르트와 사실상 의절해버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운 나쁘게 암살시도를 막다 죽었다면, 혹은 전사했다면 그건 라인하르트 탓이 아니지만 이건 순전히 라인하르트 탓에 그것도 심히 치졸한 사유로 일어난 일이라 안네로제 입장에서도 동생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그 때 밝혀지는 안네로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키르히아이스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황제 후궁생활 벗어나고 키르히아이스랑 꽁냥꽁냥 할 수 있을 타이밍에 상대가 동생놈 뻘짓으로 죽어버렸으니 폭발할만도...[12] 오베르슈타인은 이때는 '이건 좀...'이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라인하르트가 이 일로 피해보는 사람은 없다고 반론하자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13] 어미에 e가 들어가면 복수가 되어버리므로 '나의 벗들'이 되어버린다. 'Mein Freund'가 올바름. OVA판에서는 수정되었다.[14] 원작과 DNT에서는 그저 은으로 만들어진 펜던트에 키르히아이스의 머리카락만 넣어두고 다니지만, OVA에서는 머리카락과 더불어 과거 안네로제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던 어린 시절의 사진도 넣어뒀다.[15] 라인하르트가 이 펜던트를 어찌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큄멜 사건 당시 큄멜 남작이 무엇인지 보여달라고 하자 단번에 거절하고, 이에 큄멜 남작이 펜던트를 강제로 빼앗으려고 하자 자신을 죽이겠다던 협박에도 꿈쩍하지 않던 라인하르트가 친히 주먹질을 하였다.[16] 다만 일반인들은 알렉이라고 부른것 같다. 시바 성역 회전 당시 병사들이 "지크 프린스 알렉!" 이라 외친걸 보면... 애초에 보통 퍼스트 네임이 더 많이 쓰이는걸 감안하면 당연하다.[17] 이런 드립을 칠만도 한게 마침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 참전한 나이트하르트 뮐러가 무려 기함을 세 번이나 바꿨을 정도로 용전분투는 다 했지만 탈탈 털렸기 때문이다. 다만 키르히아이스가 생존 상태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면 라인하르트는 귀족과 전쟁 시기 때처럼 키르히아이스에게 함대 통솔권을 주었을 것이고 스스로는 후방에서 제국의 안정화에 전념했을 것이다. 귀족과의 전쟁 시기와는 다르게 두 사람 모두 전쟁에 참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데 키르히아이스+제국군 장성들의 조합이라면 양 웬리라고 해도 전력 차이로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불패이자 우주 정복이라는 대업에 자존심을 불사르던 라인하르트와 다르게 성격적인 약점이 없는 키르히아이스라면 무모한 공세는 안하고 이기는 싸움만 하려 했을 것이고 양 웬리라고 해도 동맹군과 제국군의 양적, 질적 차이를 사령관의 찰나로 극복해왔지만 그런 찰나가 일어나지 못할 상황으로 유도 됬을 것이다.[18] 양 웬리와 키르히아이스는 귀족과 라인하르트 진영의 내전 시기 직전에 협상 결제자로 만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양 웬리는 제국군의 장성이 동맹의 정치인-일부 군인들보다 친근감이 간다며 굉장한 매력을 지닌 인물로 키르히아이스를 고평가했다. 과거 암리처 전투 당시에도 키르히아이스의 함대의 움직임을 보며 제국과 인재풀 차이를 실감하고 견실한 장군들이 너무 제국에 많다고 암울애했던 적도 있다.[19] 다만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에선 비텐펠트가 질투하는 게 나온다. 그렇다고 질투하여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죽이는 것은 절대 아니고 부하인 오이겐 소령에게 라인하르트를 찬양하면서 "그분 곁에 늘 붙어 있는 그 자식은 뭐야?"라며 언짢게 말하는 게 나오지만 그도 나중에는 능력도 좋고 성격도 좋다면서 "쳇, 내가 이 녀석을 이기긴 어렵겠군."이라고 말하며 미소짓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이 정도의 질투는 애교다. 훗날 그 오베르슈타인의 멱살까지 잡는 행보를 보면 저 정도는 작은 해프닝 정도.[20] 로이엔탈이 사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한 인물은 미터마이어와 함께 키르히아이스밖에 없었다. 키르히아이스 생전에도 그의 능력을 이견없이 인정하고 독립적인 함대 운용에도 반감이 없었다. 죽음 직후에는 감정적으로 거리감이 사라졌는지 그가 살아있었다면 오베르슈타인이 날뛰는 일 따윈 없었는데라며 한탄하기도 했으며 노이에란트 총독자리에 오르며 사실상 제국의 2인자가 되자 만약 키르히아이스가 살아있었다면 사후 추서된 대공의 자리와 함께 총독 자리도 어떤 이견 없이 받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21] 그런데 나중에 양 웬리도 지구교에 의해 불의의 죽음을 맞으면서 보리스 코네프의 말은 또 한번 더 맞는 말이 되었다(...) 그나마 양 웬리는 회랑 전투까지는 살아있었지만...[22] 일단 안네로제X키르히아이스와 양 웬리의 버밀리온 회전 이후의 라인하르트와의 독대, 라인하르트가 키르히아이스를 그리워하며 했던 생각을 종합해서 생각해본다면 일단 안네로제와 키르히아이스는 적당한 시기에 혼인을 했을 것이고 운빨이 따르면 이제르론 공화정부로 가지 않고 엘 파실 혁명정부 선에서 자치권 획득이 회랑의 전투를 겪지 않고도 실현될 수 있었을 것이며 어떻게 보면 라인하르트가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전개가 아닌 다른 쪽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키르히아이스가 라인하르트가 우주정복을 이룬 이후에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라인하르트가 우주정복을 달성한 후 무엇을 했을 것인가'라는 것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다르게 보면 라인하르트가 우주정복을 이룬 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시해줄 키르히아이스가 빨리 죽어 라인하르트는 뭘 할 것인지를 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 라인하르트를 퇴장(...)시킨 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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