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 인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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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타타의 새로운 시작, 1세대 모델(1998~2008)
2.1. 로버 시티로버(CityRover. 2003~2005)
3. 2세대(타타 인디카 비스타: 2008~2015)
4. 둘러보기 & 미디어


Tata Indica
Rover CityRover

1. 개요[편집]


"More car per car." - 타타 모터스 공식 사이트.


"India's Most Awaited Small Car(인도의 간절히 기다려진 소형차)." - 1998년 당시 광고 카피.


인도의 타타 그룹이 1998년 12월부터 생산한 소형 해치백. 인도 최초이자 타타그룹 최초의 정식 고유 승용차라는 의의가 있으며, 출시 이후 한동안 인도 자동차 시장의 베스트셀러로 당당히 자리잡았다.


2. 타타의 새로운 시작, 1세대 모델(1998~2008)[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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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 그룹에서 처음 만든 자동차는 1945년에 메르세데스 벤츠와 합작으로 만든 상용차 라인이였다. 당시 인도의 사회주의식 경제 정책은 타타에게 엄청난 성장을 가져온 계기였고 다른 부문에서도 그랬듯이 "Tata Engineering and Locomotive Company"를 통한 상용차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1986년에 가서는, 타타 스스로 개발한 첫 차인 타타 407 시리즈를 출시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렇게 상용차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타타의 염원은 승용차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데 있었다. 자신들만의 승용차를 출시하기 위한 준비로 타타는 자사의 픽업트럭인 "타타모빌(TataMobile)"을 기반으로 한 타타 시에라(Sierra: 1991년)과 에스테이트(Estate), 스모(Sumo) 등을 줄줄히 출시했는데 이 차들은 타타가 스승으로 삼다시피하던 벤츠의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은 동시에 상용차의 향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타타에서 승용차 시장에 발을 담글 준비를 하는 동안, 1947년 이후로 외국 업체들에게 좀처럼 열리지 않던 인도의 제품 시장이 개방되었다. 때문에 자동차 시장도 그러한 국면을 맞이하면서 스즈키피아트를 비롯한 해외 업체들이 만드는 질 좋은 외제차들이 인도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인도에서 만들던 승용차라고는 해 봐야 힌두스탄 앰배서더(Ambassador: 모리스 옥스포드)나 힌두스탄 콘테사(Contessa: 복스홀 빅터), 프리미너 파드미니(Padmini: 피아트 1100)과 같이, 1950~1970년대 사이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아주 오래된 외제차 기반의 차들밖에 없었다.

즉, 인도의 자동차 업체들은 외국에서 밀려들어오는 신차들을 대비할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인데 타타 그룹의 회장이였던 라탄 타타(Ratan Tata)가 1995년 9월에 "마루티 젠[1]만한 크기에 힌두스탄 앰배서더만한 실내, 마루티 800[2]의 가격과 디젤차 수준의 유지비를 갖춘 차를 만들 것"이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당시 인도와 타타 그룹의 상태를 감안하자면 매우 무모한 도전으로 예상되었지만, 이탈리아의 IDEA(이데아)에게 맡긴 외장 디자인이 일단락되고 나자 나머지 개발도 척척 진행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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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결국 타타는 3년 전에 약속한 "마루티 젠+힌두스탄 앰베서더+마루티 800+디젤 유지비의 차"를 "타타 인디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3년 전에 한 약속을 지킨 이 결과물은 인도 최초의 '토종차'로써, 인도 사람들이 기대하던 넓은 실내와 실용성을 뽐내면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1999년까지 115,000대를 계약받았고, 첫 18달 동안 10만대 가량이 팔려나갔을 정도로 엄청난 돌풍이였다.

그러나 개발을 너무 급하게 진행한 탓에 약속했던 것만큼의 출력과 연비가 좀처럼 안 나오는 등 신뢰성과 품질 문제가 야기되었다. 때문에 판매량에 비상이 걸리자 타타에서는 빠르게 리콜 조치를 취해 고객들의 신뢰를 되찾고자 했다. 또한 리콜을 진행한 후에는 초기형 인디카가 겪었던 문제점들을 바로잡은 "타타 인디카 V2(Version 2)"를 2001년 1월에 재출시하여 고객들의 신뢰를 되찾았고 인도 소형차 시장에서 가장 잘팔리는 차로 등극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인디카 V2는 팔 때마다 손해가 생겼고 타타에서는 수출을 통해 내수에서의 손해를 메꾸려고 했다. 그 결과로 영국의 MG로버 그룹과 제휴를 맺고 로버 브랜드로 인디카를 판매했으며, 유럽의 몇몇 국가들에도 타타 브랜드로 적은 수량을 수출했다. 이후에는 2004년과 2007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으며, 지금은 “인디카 eV2“라는 이름으로 세단 버전인 타타 인디고를 비롯한 여러 후임자 및 형제차들과 같이 병행생산되고 있다.

엔진 라인업의 경우, 1.4리터 휘발유와 디젤 엔진을 시작으로 2001년에는 CNG 버전을, 2005년 10월에 터보차저를 적용한 디젤엔진을 선보였고, 2006월 9월에는 1.2리터 휘발유 엔진을, 2008년 1월에는 16밸브 DOHC 구조와 터보차저, 인터쿨러를 장착한 직분사 커먼레일(DiCOR) 디젤엔진을 선보였다. 1.4리터 DiCOR과 휘발유 엔진은 2세대 모델인 "인디카 비스타(Vista)"의 출시에 따라 2008년에 잠시 사라졌지만, 2010년 10월에 "터보맥스(Turbomax)"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대신에 "인디카 V2 제타(Xeta)"라는 이름으로 업데이트되어 보쉬(Bosch)제 ECU를 얹은 휘발유 엔진을 장착했다. 2011년 3월부터는 이전의 DiCOR 엔진과 유사한 구조의 CR4 엔진을 도입한 "인디카 eV2"가 등장했으며, Auto-Drive Assist와 Clutch-To-Start 등의 시스템을 더해 인도 공인연비 25km/l을 기록했다.

피아트 팔리오, 현대 쌍트로, 스즈키 스위프트, 스즈키 웨건 R, 스즈키 알토 등과 경쟁하고 있으며, 넓은 실내와 동급 경쟁차들 평균보다 묵직한 공차중량, 이로 인해 평균보다 나은 승차감이 장점으로 꼽히는 반면에 경쟁차들 대비 마감 수준이 낮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히고 힜다. 한편, 디젤 버전은 인도 국민들의 소득 수준상 실질적인 경쟁차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2.1. 로버 시티로버(CityRover. 2003~2005)[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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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가 로버 그룹에서 손을 뗀 뒤, 로버 그룹의 새 주인이 되고자 했던 알케미 파트너스(Alchemy Partners)와 피닉스 컨소시엄이 로버 그룹을 인수하기 위한 경쟁을 시작했다. 최종적으로는 알케미 파트너스의 차기 계획에 대한 로버 그룹의 공장 직원들과 가족들의 반발로 영국 정부가 입장을 바꿔, MG와 로버를 둘 다 살리고 기존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정도의 좀 어설픈 비전을 내밀었던 피닉스 컨소시엄에서 로버 그룹을 가져다가 이를 MG로버 그룹으로 개명 후 운영하기 시작했다.[4]

피닉스에서 MG로버 그룹을 받아왔을 때 판매중이었던 차들은 1999년에 BMW와 로버가 모든 혼신을 다해 만든 로버 75, 1995년에 나온 "포트폴리오 레인지"에 해당되는 4525, MG F, 그리고 1959년부터 쭉 찍어왔던 "살아있는 역사"인 원조 미니 정도였다. 미니가 그해 10월 4일에 단종되자 이미 노후되고 부족했던 라인업에서 주목을 끌 차라고는 그나마 신차였던 로버 75 정도였으니 MG로버에게는 "없는 돈으로 라인업을 늘려야" 되는 아주 힘든 과제가 하나 주어진 셈이었다.[5]

그런 상황에서 우선 피닉스의 경영진들은 기존의 로버차 라인업을 바탕으로 한 MG 브랜드의 차를 내놓았고 자신들 나름대로의 신차인 RDX60 프로젝트를 TWR과 같은 외주업체들과 같이 진행했다. 하지만 이 RDX60 프로젝트는 장기 계획이였고, TWR이 파산한 후에는 협력업체를 찾는 일이 난관이었다. 이 문제로 머리를 싸매던 끝에, MG로버에서는 없는 돈으로 라인업을 확충할 방법으로 다른 업체와의 협업을 시도했으며 말레이시아의 프로톤(Proton)이나 중국의 SAIC(상하이자동차), 프랑스의 르노마트라와 같은 외국 업체들과 거래를 시도했다. 다른 업체들과는 일이 꼬였던 반면 위에서 언급한 인도의 타타와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영국의 워윅 매뉴팩처링 그룹(Warwick Manufacturing Group)이 타타 인디카 V2의 개발과정을 맡아 차량의 질을 최대한 항상시키려던 중, 기존 인디카의 파워트레인을 바꾸자는 제안을 통해 MG로버 그룹과 타타 간 커넥션이 생겼다.#

워윅 매뉴팩처링 그룹의 제안으로 타타와의 계약이 성사되었을 때, MG로버 그룹에서는 1997년에 단종된 오스틴 메트로의 대안으로 도입할 인디카의 외장 부품과 세팅을 손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인도 마하라슈트라의 푸네 공장에서 생산된 인디카를 들여와 영국에서 외장 부품을 장착하는 마무리 작업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RD110“이라는 프로젝트 이름 하에 인디카를 현지화하는 동안 기존의 로버 25-45-75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로버 15“라는 예상된 명칭 대신 “시티로버(CityRover)“라는 명칭을 부여했고, 유럽의 배기가스 규제와 도로 환경을 감안해 푸조-시트로엥이 설계한 84마력짜리 1405cc SOHC 엔진[6]을 가져다가 장착했고, 새 엔진과 잘 맞도록 변속기의 최종 기어비를 낮추었으며 휠 크기를 13인치에서 14인치로 키웠다. 또한 앞뒤 서스펜션의 스프링 상수를 높여 지상고를 20mm 낮추었으며, 스티어링의 록투록도 '스포티한' 2.8바퀴로 세팅했다. 외장 디자인은 기존 로버차의 MG 브랜드화에 크게 기여한 피터 스티븐스(Peter Stevens)의 팀이 담당했다. 대당 생산비는 900~2000파운드로 예상되었고, 매년 판매대수는 3~4만대를 목표로 잡았다.(런칭 당시 기사)

하지만 RD110 프로젝트는 중요한 프로젝트답잖게 넘어가는 구석이 있었는데, 개발팀에서 인디카의 단점으로 불편한 변속감과 질 낮은 인테리어 품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음에도 경영진들이 이를 무시했고, 인도 현지에는 개발팀을 무시한 체로 경영진들만 초청되었다. 여기에 MG로버 그룹을 소유한 피닉스 컨소시엄의 경영진 4인조도 타타 모터스의 경영진들 앞에서 다소 거만하게 굴었다는 후문도 있었다.[7] 또한 유럽에서 품질이 검증되지도 않았던 이 차를 “경차“로 분류했음에도, 2003년에 대리점 대표들을 모아 두고 차를 소개했을 때 발표했던 4995파운드의 시작 가격을 출시 몇 주 전에 6500파운드까지 끌어올리기로 결정하여 거의 “소형차“급으로 가격이 최종 결정되었다. 본래는 타타 인디고도 MG로버로 판매하려고 했으나 딜러점 측에서의 반응이 좋지 못했다.이 링크 본문의 끝부분에 2003년 당시의 사전발표 관련 일화가 있다. 필요할 경우 참조바람.

2003년 9월 16일에 “로버 시티로버“로 데뷔했을 때도 문제가 있었는데 소형차 수준의 가격표를 달고도 홍보가 매우 부실해 광고도 거의 없었고, 시승하는 일도 쉽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대리점에 차를 제대로 진열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인디카의 기존 단점들인 불편한 변속감과 저렴한 실내 품질 등이 제대로 해결된 것도 아니라서 자동차 관련 매체들은 대체로 시티로버에 대해 혹평을 쏟아내고 있었으며, 영국 탑기어제임스 메이가 이를 직접 타 보고 혹평하는 내용이 방송을 타자 더 이상 상황을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8]오토카“ 지가 “그리 나쁜 수고는 아니지만, 본분보다 더 높은 상대를 두고 있다“고 평했고, 당시로서는 좋은 편이였던 엔진 성능 등의 강점을 내세우는 식으로 홍보를 하면 결과가 더 나을 것이라는 비평을 한 것이 그나마 언론에서 언급한 호의적인 의견이였다.

결국 판매량은 매년 수천 대 수준에 불과했고, 판매부진과 품질 문제를 해결하고자 MG로버에서는 인도의 푸네 공장에 문제 해결팀을 파견하는 한편 시티로버의 가격을 할인해 판매했다. 또한 편의장비를 더 추가하고 조립품질을 개선한 MK2 버전을 2005년 4월에 판매하기로 했으나 MG로버가 그 시기에 파산한 탓에 공식적으로 출시되지는 못했다. 이미 수입되었던 1200대 가량의 MK2 시티로버는 포트베리 항구에 방치되어있다가 회사를 정리하는 절차를 밟던 관리 업체였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PricewaterhouseCoopers. 이하 PwC.)"에 의해 판매되었다.

여담으로 2007년에 개최된 Himalayan Challenge Endurance Rally에 2005년식 시티로버가 코스 전체를 완주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시티로버를 고른 이유는 "영국에서 탈 수 있는 가장 싼 신차"라는 이유였으며, "굳이 4륜구동차가 아니라 매우 조그만 앞바퀴굴림 소형차로도 이런 횡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또한 로버차로서는 영국에서 가장 신뢰성이 높은 차 100위 중 96위를 기록해, 100위 내에 들어간 유일한 차종이기도 하다.

3. 2세대(타타 인디카 비스타: 2008~2015)[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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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카 비스타 1.2리터 사파이어 엔진 장착사양.

이차이차
묘하게 이차가 떠오른다

출시 전에 "인디카 V3"으로 알려진 이 차는 2008년에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 9회 자동차엑스포에서 선보였으며,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 하에서 설계되었다. 이전보다 덩치가 처진 것음 물론 2008년 8월에 출시되었을 당시에는 이탈리아 피아트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1.3리터 콰드라젯(Quadrajet) CRDi 디젤엔진[9]과 1.2리터 사파이어(Safire) MPFI VVT 휘발유 엔진을 장착했으며 콰드라젯 엔진은 기술제휴를 통해 Ranjangao 공장에서 생산이 이루어졌다. 1.4리터 90마력 휘발유 엔진과 1.4리터 TDI 디젤엔진이 나중에 추가되었으나 후자는 2010년 4월에 배기가스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해 단종되었다. 1.2리터 휘발유 엔진은 시내 연비가 너무 안나온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편, 타타에서는 인디카 비스타를 바탕으로 전기차 버전인 "인디카 비스타 EV"를 2011년에 인도 내수에서 공개한 바가 있다. 한번 충전에 200km을 주행할 수 있다고 하며, 55kW 영구자석 전기 모터와 26.5kW 리튬폴리머 배터리, TM4 일렉트로다이나믹 시스템(TM4 Electrodynamic systems)"의 MOTIVE 시리즈 전기모터가 장착되어 최고시속 105km/h에다가 0~60km/h까지의 가속도 10초 미만을 기록했다.

2008년 4반기에 생산이 시작되었고, 2010년 8월 15일부터는 스페인에서도 생산이 시작되었으며, 타타 그룹에서는 가격을 밝히지 않은 체로 2010년쯤에 인도 내수에서 판매가 시작될 것이며, 2009년에는 노르웨이에서 판매가 시작되고, 영국과 유럽 대륙에도 판매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2009년 영국 정부에서도 타타 그룹에게 전기차 생산을 지원해주겠다고 1천만 파운드를 대출해주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타타 모터스의 영국 지사인 "타타 모터스 유로피언 테크니컬 센터(Tata Motors European Technical Centre)"도 전기차 기술펌 업체인 노르웨이의 Miljø Grenland/Innovasjon 지분 50.3%를 인수해 2010년에 유럽에서 인디카 EV를 판매하기로 계획을 했다. 배터리는 이 두 회사랑 제휴를 맺은 Electrovaya를 통해 리튬이온 슈퍼폴리머 배터리를 사용하기로 했다. 2011년 4월, 타타 모터스에서는 영국 코번트리에서 25대를 시험 생산했고, 2011년 중반에 판매하려고 했던 것이 2012년 5월로 미루어졌다가 결국은 사실상 생산 및 판매 계획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편, 기존의 양산형 비스타는 상품성 개선이 꾸준히 이루어져 피아트 푼토 및 만자(Manza) 세단[10]과 공유하는 1.3리터 88마력 쿼드라젯 90 엔진을 추가했으며, 전동 원도우와 센트럴 록킹 시스템, ABS, EBD, 트립컴퓨터가 적용되는 VX 트림과 알로이휠, 듀얼 에어백 등의 추가 장비들이 기존 적용된 ZX 트림의 2개 트림으로 구성되었다. 이후 출시된 D90도 같은 엔진을 적용하되 라인업을 손봐 기본형인 VX에 전동 백미러와 앞뒤 안개등, 간헐식 뒷와이퍼, ABS, EBD, 앞뒤에 적용되는 파워 아웃렛, USB와 블루투스 기능이 내장된 DIN 규격의 2스피커 시스펨, 투톤 인테리어, 직물 시트커버, 운전자 중심의 계기판, 평균 연비와 주행거리를 표시하는 운전자 정보 시스템(DIS), 2방향 조절 가능한 운전석 요추 받침대를 장착했고, 최고급형인 ZX+ 트림에는 터치스크린 정보 시스템과 위성 내비게이션, 온도계가 추가된 새로운 운전자 정보 시스템, 오토 냉난방 장치, 앞좌석 에어백, 운전자 에스코트 헤드램프, LED 정지등, 알로이휠 등이 적용되었다.

4. 둘러보기 & 미디어[편집]






참조 가능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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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ruti Zen. 인도 시장용 스즈키 세르보 모드/유럽형 스즈키 알토.[2] 인도시장용 스즈키 알토 2세대.[3] 이데아에게 맡긴 영향인지 대우 레조 이데아 제안 모델과 라인이 유사한 편이다.[4] 반면 알케미 파트너스에서는 로버 브랜드를 폐기하고 MG 브랜드에 집중하는 내용의 비전을 내밀었으며 연 7만대 규모로 스포츠카와 세단형 차량을 판매하기로 약속을 했다. 또한 직원들의 80%를 해고하는 대신에 이들에게 명당 수만 파운드의 보상을 한다고 했다.[5] 더군다나 로버 그룹을 인수할 당시에, BMW 산하에서 진행된 신차 프로젝트(R30 프로젝트나 로버 55의 양산형 등)를 피닉스가 이어받은 것도 아니라서 이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6] 개발 초기에는 로버 K-시리즈 엔진을 장착하는 기획도 있었으며, 프로토타입까지 제작했다. 이 프로토타입을 워윅 매뉴팩처링이 MG로버 그룹에게 제안하면서 시티로버의 개발이 시작되었다.[7] 워윅 매뉴팩처링 소속의 엔지니어 찰스 테넌트(Charles Tennant)는 AROnline의 지면을 통해 라탄 타타 당시 타타 그룹 회장이 존 타워스를 포함한 경영진 4인조에게 별 감흥을 못 받았음에도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회고했다. 그 예로, 인도에서 계약을 맺을 당시 피닉스의 경영진들이 1천 파운드가 넘는 호텔 바 계산서를 넘기고 떠났다(they left Tata with a £1k-plus bar bill at the Blue Diamond hotel)고 밝혔다.[8] 이후 탑기어와 시티로버의 악관계는 계속되어, 새 시즌 개최식에서 시티로버 3대로 폐차 쇼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최악의 차"로도 여러 번 선정되기도 했다.[9] 피아트 멀티젯(Multijet) 엔진의 타타 버전.[10] 인디카 비스타의 세단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