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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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페니실린-G.jpg
최초의 페니실린인 페니실린-G(벤질페니실린).

penicillin

1. 개요
2. 발견 과정
3. 사용
4. 기타



1. 개요[편집]


페니실리움(Penicillium)[1]속에 속하는 푸른곰팡이에서 얻는 화학물질이며, 세균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베타-락탐(Beta-lactam) 계열 항생제의 일종이다. 대표적으로 '페니실리움 노타툼(Penicillium notatum)' 즉, '페니실리움 크리소게눔(Penicillium chrysogenum)'[2]이라는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한다.


2. 발견 과정[편집]


최초의 발견 사례는 1928년 9월 28일 새벽에 영국의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우연히 발견했다. 실험을 위하여 샬레에 포도상구균을 배양하고 휴가를 갔다 왔는데 하필 샬레의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았고 다시 연구실에 돌아와보니 어디선가 날아온 괴상한 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을 전부 먹어치워버린 것이다.

이 곰팡이가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는 말이 많다. 그냥 창밖에서 곰팡이가 날아왔다는 설도 있고, 플레밍의 실험실 바로 밑층이 곰팡이 실험실이라 거기서 넘어왔다는 설도 있고... 다만 확실한 것은 만약 그가 포도상구균을 성공적으로 배양하고 뚜껑만 제대로 닫아 푸른곰팡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페니실린의 발견은 한참 미뤄졌을 것이다. 이처럼 푸른곰팡이를 발견한 계기 자체는 순전히 우연이었던 셈이다.

본인의 실수로 졸지에 실험을 망쳐버렸다고 할 수 있었겠지만, 관찰이 끝난 표본을 바로 처분하지 않고 한동안 묵혔다가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기묘한 버릇[3]이 있었던 플레밍은 샬레를 폐기처분하는 대신에 세균을 먹어버린 그 곰팡이의 (정확히는 푸른곰팡이의) 성질을 연구함으로써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이 푸른곰팡이가 만드는 분비물로 만든 항생제는 수많은 생명을 구하게 된다. 이는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대한 발명 중의 하나로 손꼽히며 만약에 페니실린 연구가 없었다면 현대의학은 지금보다 몇 세대는 뒤쳐져 있었을 것이다. 페니실린 이후에 비슷한 개념과 방법으로 수많은 오만가지 항생제가 우후죽순 연구되면서 다양하고 참신한 방법들로 백신항생제가 본격적으로 개발이 가속되어 인류는 질병과의 싸움에서 엄청난 혁신과 진보를 이루어내게 됐으니, 실험에 실패한 부산물에 대한 어느 과학자의 흥미가 만들어낸 실로 거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페니실린은 박테리아, 즉 세균의 세포벽을 합성하는 효소를 날려버려 세포벽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세균 세포가 분열을 시도할 때 둘로 나뉜 부분에 격벽이 생기지 않아 내용물이 흘러나오면서 죽게 된다. 영상에서 왼쪽. 따라서 생식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번식을 포기한 세균들만이 살아남게 되고, 이들은 몸의 면역력에 의해 자연박멸된다. 세균과 달리 인체세포와 같은 동물세포에는 세포막이 있을 뿐 세포벽이 아예 존재하지 않아서, 페니실린이 아무런 악영향도 미치지 않는다.[4] 인체에 공존하는 수많은 이로운 미생물들도 싸그리 죽여버리는 부작용도 있지만, 원래 항생제란 게 그런 법이고 몸 속의 미생물들이야 다시 번식할테니까.

하지만 초창기의 페니실린은 온도, 환경 등이 무진장 적절해야 살아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했다. 게다가 발견 당시에는 천연 페니실린을 다량으로 생산할 수 없었고, 몸에 투여한 후에도 반감기가 30분 이내로 짧아 쉽게 배설되는 문제가 있어 실제로 질병 치료에 이용되지는 못하였다. 페니실린이 발견될 때의 곰팡이 종류가 워낙 생장이 느렸던 데다, 공기와의 접촉을 상시 하지 않으면 곧바로 사멸하는 민감한 종이었다. 공기펌프를 쓰는 대용량 배양탱크를 쓸 수 없을 정도로 민감했기에, 실험실 수준의 규모로만 생산 될 수 있으며, 2차 세계대전이라는 힘든 정세인 데다 신약에 대한 제약회사들의 망설임까지 겹쳐 값은 비싸고 양도 터무니 없이 적었다. 그 생산된 양을 재사용하기 위해 투약환자의 소변에서 페니실린을 추출해 다시 써야 할 정도였다. 가끔 플레밍의 제자들이 눈병 치료에 좋다고 연락을 하는 등 효과는 좋았지만, 지극히 부족한 양 때문에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설파제"[5]란 것이 발견되자 플레밍은 불안정한 페니실린을 제쳐두고 그쪽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한편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플로리와 체인은 플레밍이 예전에 발견했던 라이소자임[6]을 연구하다가, 점차 페니실린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플레밍과 비슷하게 페니실륨을 만들어냈고, 화학적 처리를 통해 가루 형태로 만들어냈다. 그들은 즉시 쥐들에게 약을 주사하여 효과를 관찰했고, 24마리 중 23마리가 살아남는 결과를 발표했다. 플레밍은 이를 보고 즉시 옥스퍼드 대학에 달려가서 자신의 초기 페니실린 표본을 줬고, 플로리와 체인은 이를 더욱 연구하여 한 사람에게 쓸 수 있을 만큼의 양을 만들고, 세균에 감염된 환자에게 주사한 결과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페니실륨의 양이 부족하여 치료를 중단했고, 그 환자는 병이 다시 악화되어 사망했다.

이로써 그들은 이 물질이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음을 알아채고, 더욱 연구를 했다. 그때가 한창 2차대전 중이라서 연구시설이 공습을 받을 것을 우려했고 대량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구할 수도 없었지만, 미국의 록펠러 재단에서 지원을 하겠다는 연락이 오자 그들은 모든 자료를 들고 미국으로 날아가서 공장을 세운다. 결국 페니실린 크리소게눔[7]이란 종이 발견되어서야 배양액 탱크에 공기를 불어넣는 방법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페니실린은 알약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 2차 대전 이후에 페니실린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박테리아로 인한 병을 치료하여 많은 생명을 구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플레밍 경은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고안한 플로리(Howard Walter Florey)와 체인(Ernst Boris Chain)과 함께 1945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박테리아는 방사능 오염지역, 화산, 북극, 심지어 우주에서도 살아남는 생존왕스러운 명성을 가지고 있었기에,[8] 몇년도 지나지 않아 페니실린을 파괴하는 '베타-락타메이스[9](Beta-lactamase)'라는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도 등장했다. 그 후, 1959년에 나온 메티실린과 같은 합성 페니실린은 베타-락타메이스에 가수분해되지 않도록 화학적 구조변경을 하였으나, 1961년 세포벽 합성 효소의 구조에 돌연변이가 생겨 아예 페니실린 계열의 항생제가 듣지 않는 MRSA(Methicill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가 등장했다. 그 후 지금까지 이래저래 세균과 인간의 물고 물리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이후 채산성이 안 맞아서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하는 페니실린은 생산 중지되었다. 비록 MRSA와 같은 몇몇 위험한 균들은 페니실린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고, 또 상술했듯이 페니실린은 내성균이 잘 생기는지라 강력한 항생제는 아니지만, 매독 등 몇몇 질환에서 매우 탁월한 효과를 보여준다. 특히 매독의 경우 2기까진 페니실린 주사 몇 번으로 완치될 정도로 특효. 현재 나오는 페니실린계 항생제는 모두 인공적으로 합성된 제품들이다.

3. 사용[편집]


페니실린(Penicillin)은 '베타-락탐 고리(Beta-lactam ring)' 를 기본 구조[11]로 하여 이루어지는 항생물질이다. 이 Beta-lactam ring은 Lactone과 Amide가 합쳐져 이루어지며, Lactone은 고리의 모양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그 중 사각형의 고리를 갖고 있는 것이 Beta. 여기에 Thiazolidine이 결합해 최종적인 Penicillin 구조가 완성된다.

페니실린의 '베타-락탐 고리(Beta-lactam ring)', 이것이 박테리아 세포벽의 펩티도글리칸의 연결을 방해한다. 불행히도 펩티도클리칸이 외부막과 내부막 사이에 있는 '그람 음성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박테리아들도 진화하여, 저 베타-락탐 고리를 방해하는 효소를 가진 녀석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페니실린 또한 진화하여 암피실린(ampicillin), 아목시실린(amoxicillin) 등 수많은 페니실린 유도체가 등장하였으며, 이런 페니실린계 항생제는 베타-락타메이스에도 저항하고 그람음성균에도 작용한다. 아목시실린은 전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항생제이기도 하다. 물론 병원균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최신의 페니실린에도 내성을 기르고 있으니, 차세대 페니실린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로 엉덩이근육주사로 놓는데, 산성도에 민감하여 까딱하면 무력화되기 때문. 대부분의 약물이 위산에 파괴되거나 장에서 혈관으로 침투할 수가 없다. 이 주사는 정말 아프다고 한다. 주사는 바늘 굵기가 굵을수록, 약물의 점도가 높을수록 통증이 큰데 이 주사는 둘 다 충족한다. 근육주사에는 보통 21~23G가 일반적인데, 이 주사는 근육주사임에도 굵은 바늘인 18G를 사용하기도 한다. 최소 20G는 쓰는 편. 굵은 것을 쓰는 건 그만큼 점성이 높아서 직경이 작은 바늘에는 막힐 가능성이 높아서이다. 특히 근육주사 특성상 깊게 찌르기 때문에 주사바늘 삽입만으로 같은 게이지의 정맥주사를 맞을 때보다 더 아프다. 주로 한 번에 놓지 않고 두세 번에 나눠서 놓는 경우가 많다. 주로 매독 확진이나 우려될 때에 놓는다. 연쇄상구균이나 장구균 등 매독 이외 전신감염증의 경우에는 정맥투여를 한다. 몇몇 페니실린계 항생제는 캡슐제로 경구투여가 가능하다.

단, 일부 사람들에게 과민성 쇼크의 일종인 페니실린 쇼크가 나타난다. 복용 후 몸이 화끈거리고 속이 울렁이거나, 피가 섞인 소변을 보거나 얼굴이나 발목이 붓거나 혹은 호흡곤란, 피곤한 증상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만약 이런 증상을 경험한다면 당장 119를 부르자. 빠른 시간 내에 응급처치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죽을 수도 있다. 그 외의 부작용은 피부발진, 발열, 가려움증, 호흡곤란 등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페니실린을 사용하기 전에 미리 피하에 약간의 페니실린을 주입하여 미리 반응 검사를 한 후에만 놓는다. 물론 반응이 없다고 해도 안심은 금물이다. 피부반응이 없는데도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나타나기도 한다.

과민성 쇼크의 메커니즘으로는 페니시린이 적혈구와 혈소판과의 결합으로 인한 작용이다. 일반적으로 화학물질은 생체 유기물질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고 분자량이 작기 때문에 면역원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페니실린이 적혈구와 혈소판에 결합할 경우 페니실린-적혈구 혈소판을 항원으로 인식해서 과민성 반응뿐만 아니라, 적혈구 혈소판 감소증이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12] 물론 요즘 페니실린을 항생제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13]

그리고 희귀한 경우지만, 같은 속인 페니실리움으로 발효시킨 치즈(까망베르 치즈, 브리 치즈, 블루 치즈 등)를 먹고 페니실린 쇼크가 나는 경우도 있다.


4. 기타[편집]


  • 플레밍과 처칠에 관련해서 1943년 폐렴에 걸린 처칠을 페니실린으로 살린 이야기에 대해, 어렸을 때도 처칠이 물에 빠졌을 때 플레밍이 구해준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무엇보다, 처칠은 1874년생이고 플레밍은 1881년생으로 7년 차이로. 처칠이 19세에 육사에 입학했으므로 이런 일화가 생기려면 적어도 처칠이 17~18세에 일어난 일일 텐데, 이때 플레밍의 나이는 10~11세. 해외토픽감이다. (MBC 서프라이즈에서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책에 실었지만... )이런 사실 때문인지 플레밍의 아버지가 물에 빠진 처칠을 구했고, 감동한 처칠이 그의 아들 플레밍이 의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후원하여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플레밍의 아버지는 플레밍이 고작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난 터라 은혜를 잊지 않았던 처칠이 나중에 은혜를 갚은 거라 해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플레밍은 런던에서 해상 회사에서 일하다가 친척의 유산을 물려받은 덕에 의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14] 무엇보다 처칠의 목숨을 구한 것은 페니실린이 아니라 설파제였는데, 독일 과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J. P. Domagk)가 발견한 프론토질로부터 나온 설파제로 목숨을 구했다고 알려지는 것보다 영국인이 발견한 약으로 총리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지는 것이 국민의 사기에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언론에는 플레밍이 처칠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플레밍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는 리소자임이 어디에 포함되어 있는지 알기 위해 세균배양접시에 침과 눈물 등 온갖 체액을 뿌렸는데, 이 체액들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심지어 어린아이에게도)에게 레몬즙을 투척하기도 했다. 후에 리소자임이 달걀이나 물고기 알 등 알 종류에 많다는 걸 알자 직접 낚시(그의 취미 중 하나)를 해서 실험용 동물을 구해오기도 했다.
  • 쥐 태아에게 사지 기형을 유발시킨다.
  • KBS 모 프로에서는 콧물(코딱지)에서 발견했다는 이상한 발언을 했다. 아마 콧물에서 발견한 리소자임(라이소자임)과 착각한 듯.[15] 90년대 중반까지 플레밍 위인전이나 어린이용 과학잡지 등에 플레밍이 콧물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했다는 글이 실리곤 했는데, 이 때문에 이를 사실로 생각하는 중년층도 상당수 있다.
  • 일하는 세포 BLACK에서 이 페니실린을 투여해서 임질을 치료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생긴 것이 마치 인공위성의 레이저 캐논같이 생겼다. 고전 항생제인데 이렇게 테크니컬하게 생긴 게 맞냐는 지적이 있다
  • 최초 발견자라는 트로피를 제외한다면 페니실린 발전사에 대해 플레밍의 기여도는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것이 의학사 연구자들의 견해이며, 실제로는 하워드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이 최대 공로자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패혈증에 대한 페니실린의 효과를 규명한 논문을 쓴 것도 이들이며, 플레밍은 페니실린 추출의 어려움에 부딪혀서 지지부진한 이후로는 이 연구에 관심을 끊기도 했다. 페니실린의 효과가 널리 알려지자 그 유명세가 플레밍으로 향하긴 했지만 최초 발견자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나마 세명이 함께 노벨상을 받아 이름을 남긴 반면에, 페니실린 연구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르네 듀보스[16]와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허친슨 루소의 이름은 잊혀지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플레밍의 사례는 종종 각종 협업으로 진행되는 현대 과학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직도 영웅서사를 원하는 대중의 관성을 꼬집는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 다만, 이러한 지적은 과학적 업적, 공헌과 산업적 업적, 공헌을 혼동한 착각이다. 듀보스의 그라미시딘 연구는 이후 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항생제로서 그 자체로서 의미있는 연구인 것은 맞지만 플레밍의 첫 발견 후 11년이나 뒤의 일이다. 허친슨 루소가 화이자의 의뢰로 페니실린의 대량생산 공정을 가능케 한 것 또한 정확하지만, 이는 공학적이자 산업적으로 더 의미있는 업적이지 과학적 업적과는 구분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뉴턴역학의 존재와 가능성을 이용해서 뉴턴 본인이 상상도 하지 못한 다양한 공학의 산물과 산업 제품들이 생산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 때문에 뉴턴이 "뉴턴 역학"이라는 과학적 업적을 얻을 자격이 없다고 논하지는 않는다.
  • 플레밍의 발견이 우연적인 것이란 것과 페니실린의 실질적 개발에 플로리와 체인의 공헌이 더 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듀보스의 그라미시딘 연구나 루소의 생산공정 개발이 이들의 업적과 동일하다거나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단순한 역사 수정주의적 관점의 산물에 불과하다. 우연이든 아니든 "항생제"라는 존재를 역사 처음으로 발견하고 인류에 알린 플레밍의 업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과학적, 의학적으로 중요한 업적이며 실제 이를 인류가 사용 가능토록 한 플로리와 체인의 업적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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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학명이 다 그렇듯이, 학명도 라틴어 발음법에 비춰 보면 틀린 단어. 제대로 된 라틴어 발음으로는 페니킬리움이 된다. 교회 라틴어 기준으로는 '페니칠리움'에 가깝다.[2] 노타툼과 크리소게눔은 현재는 같은 종으로 분류한다. [3] 자신이 발견했지만 효용성을 증명하지 못했던 (나중에야 후배들이 증명했다.) 라이소자임 역시 감기에 걸린 자신의 콧물에 동료의 콧물을 떨어트려 발견한 것이였다.[4] 이론상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세포로 문제와는 별개로 알레르기 반응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는 있다.[5] 술폰아미드라고도 하며 최초의 항생제이다. 2차대전 배경 전쟁영화에서 총맞은데 위생병들이 듬뿍 뿌리는 하얀 가루의 정체가 바로 이것. 원래는 프론토실이라는 상표로 팔고 있던 염료에서 분리해낸 성분이다. 설파 또는 술폰은 황 화합물이라는 뜻.[6] 플레밍은 이를 통해 인체에 항생 물질이 기본적으로 존재하며, 당시의 약이 병을 약화시킨다고 밝혀냈다. 하지만 인체에 기본으로 존재하는 만큼 큰 병을 치료하지는 못했다. 나중에야 후배들이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7] 이 페니실린 크리소게눔이 발견된 곳은 플레밍의 실험실 근처 과일가게에서 내다버린 곰팡이 핀 썩은 멜론.(켄털루프 멜론)[8] 어차피 우주가면 죽을 게 뻔한 우주선에 붙은 박테리아를 전부 꼼꼼하게 살균 처리하고 발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혹하기 그지 없어 생존할 수 없어 보이는 행성이라도 천문학적인 확률로 살아남는 또라이들이 있기 때문. 이는 그 또라이들이 만들어질 '천문학적인 확률'보다 개체수가 훨씬 천문학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만약 극초기 상태의 외계생명체라도 있었다면 광년 단위로 떨어진 행성에서 날아온 미생물이 그 생태계에 끼칠 영향은 예측 불가능이다.[9] 과거에는 '베타락타마제'라고 표기했다.[10] 각 탄소와 질소를 구성하는 오비탈들의 반발력으로 인해 구조가 상당히 불안정하다.[11] [math(C_3N)]의 형태로 이루어진 4각고리를 말한다. 즉, 탄소 셋에 질소 원자 하나가 달라붙어 이루어진 고리형태의 구조. 이 구조는 사이클로뷰테인과 비슷한 상황[10]인지라 화학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구조이기 때문에 쉽게 파괴되는데, 이 구조가 파괴되면서 생기는 결합기가 후술하는 펩티도글리칸의 연결고리에 끼어들어 결합을 방해하는 효과가 발생한다.[12] 이렇게 그 자체는 항원이 아니지만 다른 물질과 결합하여 항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물질을 합텐(hapten)이라고 한다. 금속 이온도 합텐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생체 내 정상 단백질과 결합하여 알레르기를 일으킨다.[13] 물론 다른 베타 락탐 계열도 알레르기 가능성이 있긴 하다.[14] 참고로 당시 의대(정확히 말하면 병원 연구소)에 합격한 이유가 총을 잘 쏴서다. 플레밍이 다니던 의학 연구소에서는 사격팀이 있었는데 총을 잘 쏘는 그를 놓치기 싫었던 것이다.[15] 사실 콧물 속에는 다양한 세균들이 생존을 위해 타감작용으로 발생시키는 항생 물질들이 들어있다. 루그더닌이라는 물질도 또한 알려져 있다.# [16] 그라미시딘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