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의 샤를로테(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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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마이닝겐 공작부인
빅토리아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테 샤를로테
Charlotte von Preußen


파일:princess charlotte, duchess of saxe meiningen.jpg

이름
빅토리아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테 샤를로테
(Viktoria Elisabeth Auguste Charlotte)
출생
1860년 7월 24일
프로이센 왕국 포츠담 신궁전
사망
1919년 10월 1일 (향년 59세)
독일국 바덴바덴
배우자
작센마이닝겐 공작 베른하르트 3세 (1878년 결혼)
자녀
페오도라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
어머니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형제
빌헬름 2세, 하인리히, 지기스문트, 빅토리아, 발데마어, 조피, 마르가레테
1. 개요
2. 생애
3. 건강 문제
4.1. 조상
4.2. 자녀



1. 개요[편집]


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장녀이자 영국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 작센마이닝겐의 마지막 공작인 베른하르트 3세와 결혼했다. 애칭은 샬리.[1]


2. 생애[편집]



파일:1669907534778.jpg


파일:Viktoria Elizabeth Auguste Charlotte.jpg

어린 시절의 샤를로테

1860년에 프로이센 왕국 포츠담의 신궁전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첫 손녀의 이름을 똑같은 빅토리아라고 짓고 싶어했다. 그러나 프로이센 왕실에서는 공주의 이름을 친할아버지 빌헬름 1세의 첫째 여동생인 프로이센의 샤를로테[2]에게서 따와서 짓고자 했다. 결국 타협안으로 퍼스트 네임은 빅토리아라고 지어졌고,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미들네임인 샤를로테라고 불리게 되었다. 참고로 러시아의 황후였던 샤를로테는 종손인 샤를로테 공주가 태어난 해에 사망했다.

샤를로테는 매우 까다로운 성격의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으며,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형제들 중 가장 돌보기 어려운 아이였다고 한다. 어머니인 빅토리아 황후는 공부에 관심없는 공주에게 빈번히 실망했다. 한번은 자신의 어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에게 '어리석음은 죄가 아니지만 학습을 힘들고 어려운 일로 만든다.(Stupidity is not a sin, but it renders education a hard and difficult task.)'라며 불평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다만 그래도 어머니라고 샤를로테의 외동딸로 본인의 외손녀인 페오도라를 대신 돌봐주기도 하는 등, 모녀간에 정이 없지는 않은 듯. 샤를로테는 자신의 부모님보다 조부모와 더 가까웠으며, 형제 중에는 오빠인 빌헬름 2세와 친했다.

샤를로테는 아름다웠지만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편이었다. 그리고 건강 문제가 끊이지 않았는데, 종종 격렬한 흥분 상태에 빠지며 두통, 소화불량, 불면증, 류머티즘을 앓았다고 한다. 당시 의사들은 샤를로테의 상태를 보면서 애를 먹었다. 오늘날 샤를로테의 건강 문제는 후술할 포르피린증으로 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1877년에 샤를로테는 친척인 작센마이닝겐의 베른하르트 공과 약혼했다. 일설에 의하면 둘이 빌헬름 2세의 차에 탔을 때 빌헬름이 과속하는 바람에 겁먹은 샤를로테가 베른하르트의 팔을 붙들면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흔들다리 효과일지도 1879년 5월 12일에 샤를로테는 딸 페오도라를 낳았다. 샤를로테는 임신 기간 내내 불편함을 호소했고 이 아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샤를로테는 딸을 돌보는 일보다 파티에 가는 쪽을 택했고 아이를 시녀어머니에게 맡기곤 했다. 자연스럽게 페오도라는 자신보다 사교계를 선택한 어머니와 친해지지 못했다. 페오도라가 성인이 된 후 샤를로테는 자주 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으며, 페오도라의 남편인 하인리히도 싫어했다.

그러나 샤를로테와 페오도라는 성격이 매우 비슷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모녀는 성격뿐만 아니라 건강 상태도 비슷했다. 페오도라는 허약했으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불임이었다. 하지만 샤를로테는 페오도라가 자신처럼 아이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길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페오도라의 불임을 기뻐했다고 한다. 아이를 진심으로 원했던 페오도라에게 이러한 어머니의 태도는 위로가 되지 못했고, 모녀의 불화는 나아지지 못했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독일 제국이 붕괴되었다. 작센마이닝겐 공국은 몰락했고, 샤를로테는 작센마이닝겐 공작부인 칭호를 잃었다. 그 다음해인 1919년에 샤를로테는 심장병을 치료하고자 바덴바덴으로 향했고, 같은 해 10월 1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3. 건강 문제[편집]


샤를로테와 그녀의 딸인 페오도라는 영국 왕실에 유전적으로 이어진 포르피린증 환자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모녀의 각종 건강 문제와 샤를로테가 어렸을 적 보였던 과잉 행동, 외동딸 페오도라의 우울증 등 정신 문제는 포피리아의 증상으로 의심된다. 유럽사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역사가 존 C.G. 롤은 저서 <Purple Secret: Genes, 'Madness' and Royal Houses of Europe>(1998)에서 이에 대해 다루었다. 존은 유전학자의 도움을 받아 샤를로테와 페오도라의 유해를 발굴했는데, DNA 검사 결과 모녀에게서 포르피린증과 관련된 돌연변이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4. 가족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호엔촐레른 가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 조상[편집]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Princess Charlotte
of Prussia)

프리드리히 3세
(Frederick III)
빌헬름 1세
(Wilhelm II)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Frederick William III)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여공작 루이제
(Duchess Louise of Mecklenburg-Strelitz)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 공녀
(Princess Augusta
of Saxe-Weimar-Eisenach)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카를 프리드리히
(Charles Frederick,
Grand Duke of Saxe-Weimar-Eisenach)

러시아 제국의 여대공 마리야 파블로브나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3]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Victoria,
Princess Royal)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 공자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
(Ernest I, Duke of Saxe-Coburg and Gotha)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공녀 루이제
(Princess Louise of Saxe-Gotha-Altenburg)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
(Prince Edward,
Duke of Kent and Strathearn)
[4]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녀
(Princess Victoria
of Saxe-Coburg and Saalfeld)


4.2. 자녀[편집]



샤를로테의 외동딸 페오도라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1녀
로이스쾨스트리츠 하인리히 30세 공비 페오도라
(Feodora, Princess Heinrich XXX Reuss of Köstritz)
1879년 5월 12일
1945년 8월 26일
로이스쾨스트리츠 공 하인리히 30세
외동딸 페오도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거처인 슐레지엔 히르슈베르크가 폴란드 공산정부에 넘어가고 난 수개월 뒤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어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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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 여동생 빅토리아의 애칭은 모레타(Moretta), 둘째 여동생 조피의 애칭은 소시(Sossy), 셋째 여동생 마르가레테의 애칭은 모시(Mossy)였다.[2] 니콜라이 1세의 황후이자 알렉산드르 2세의 어머니. 러시아로 시집가면서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로 개명했다. 또한 그녀의 증손자인 니콜라이 2세의 황후 헤센의 알릭스가 샤를로테의 이종사촌이다.(이모 앨리스 공주의 4녀.)[3] 파벨 1세의 3녀이다.[4] 조지 3세의 4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