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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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작센 왕국의 제7대 국왕. 1918년 11월 13일의 퇴위를 마지막으로 작센 왕국의 왕정이 폐지되었다.
2. 생애[편집]
1865년 5월 25일에 작센 왕국의 게오르크 왕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12살 때부터 군생활을 시작했다. 작센군 소위로 입대하고 왕위에 오르기까지 27년 동안 여러 연대에서 복무했다. 왕족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빠르게 진급해 37살에 육군 원수가 되었다.
1891년 11월 21일에 토스카나의 공녀 루이제와 결혼했다. 사이에서 7명의 아이들을 낳았으나 루이제가 아이들의 가정교사와 함께 야반도주하면서 1903년에 이혼했다. 이후 재혼하지 않았다.
1904년 10월 15일에 아버지 게오르크 국왕이 사망하면서 작센 국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로 즉위했다. 즉위 후 가장 시급한 문제는 9억 6200만 마르크의 적자를 내고 있는 국가 예산을 재편하는 일이었다. 사설 철도를 모두 매입해 국영 철도를 운영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국가 예산의 균형을 유지했다. 그리고 참정권 개혁을 통해 시민의 투표권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11월 혁명으로 작센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 소요 사태가 벌어졌다. 대다수의 독일 왕족들과는 달리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는 무력으로 봉기를 진압하는 것을 거부했다. 1918년 11월 13일, 군대를 해산시키고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후 지빌레노르트로 이주해 여생을 그곳에서 살다가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3. 가족관계[편집]
3.1. 자녀[편집]
4. 여담[편집]
- 시대의 흐름에 밀려 퇴위했으나 왕위에 있을 때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는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군주였다. 자신의 지위에 비해 겸손하고 소탈하면서도 사교적이라는 평을 받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는 때때로 선술집에 나타나거나 드레스덴 거리를 산책하곤 했다고 한다.
- 유머러스한 성격이었는지 여러 재밌는 일화들이 있다.
- 한번은 야전 병원에서 군인들이 검은색 국물이 가득한 주방 주전자를 들고 다가오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가 숟가락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담당 의사가 만류하려 하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는 말을 막고 그냥 숟가락을 가져오라 했다. 그가 의사에게 받은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보고 그걸 뱉으며 "우욱, 역겹군! 얼굴 씻는 물 맛이 난다! 이게 뭐지?"라고 하자 담당 의사가 답했다. "얼굴 씻는 물이옵니다, 폐하!"
- 1918년 11월 12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는 재무장관 슈뢰더로부터 전화로 이제 통치권은 왕이 아니라 노동자 및 군인 평의회에 의해 행사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는 이렇게 대답했다. "좋아, 그럼 이 쓰레기 같은 걸 알아서 처리해보게나!"
- 퇴위 후 몇년 뒤 기차역에서 군중의 환호성을 받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는 기차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외쳤다. "당신들 정말 훌륭한 공화주의자들이군!"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의 외삼촌이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의 바로 아래 여동생인 마리아 요제파가 카를 1세의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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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폴란드 슈초드레[2] 독신, 1차 대전 이후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예수회 신부가 되었다.[3] 작센 왕국 멸망 후 베틴 가문 알브레히트계의 수장은 마이센 변경백을 칭했다. 마이센 변경백은 베틴 가문이 작센-비텐베르크 공작으로 임명되어 작센 선제후가 되기 전 칭했던 작위이기도 하다. 현재 작센 주가 원래 마이센 변경백국(Markgrafschaft Meißen)이었고, 대공위시대 전 신성 로마 제국의 작센 공국은 오늘날의 니더작센이기 때문.[4]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의 언니인 헬레네의 손녀다.[5] 두 아들이 모두 자녀를 두지 못하여 작센 왕가는 그들이 모두 사망한 2012년에 직계가 끊어졌고, 이후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의 외손자 알렉산더와,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의 동생 에른스트 하인리히의 차남의 아들(귀천상혼 계통)인 뤼디거가 서로 계승권을 주장하여 두 계통으로 분열된다.[6] 기욤 4세의 6녀다.[7] 장남과 3남은 미혼으로 사망했고, 차남 티모는 귀천상혼을 했다. 직계 단절로 작센 왕가가 분열된 후, 현재는 티모의 손자인 다니엘이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의 외손자 알렉산더에 맞서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8] 루마니아 국왕 페르디난드 1세의 조카(형 빌헬름의 장남)로, 포르투갈 왕국의 마지막 국왕 마누엘 2세의 아내인 아우구스타 빅토리아의 남동생이기도 하다. 프리드리히의 아버지 빌헬름은 마르가레테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의 이종사촌이기도 하다.[9] 위에 나온 프리드리히 공자의 남동생이다.[10] 레오폴트 2세의 7남 요제프 대공의 증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