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비행예과연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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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軍飛行予科練習生

일본 제국해군 항공대 조종사를 양성하던 제도. 약칭은 요카렌(予科練), 한국식 독음은 예과련. 요카렌을 상징하는 노래로는 젊은 독수리의 노래가 있다.

1. 창설[편집]


1929년 12월 해군항공대 조종사 양성을 위해 해군비행예과연습생 제도가 신설되었다.

14세 이상 20세 미만의 고등소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 보유자를 대상으로 모집되었다. '장래의 항공사관'을 모집한다는 홍보가 실시되었기에 사관후보생 대우를 기대했던 소년들로부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실상은 약속과 달랐다.

사관급으로 약속된 대우와는 달리, 복제와 진급에서 사실상 '조종간 잡은 수병' 대우를 받는 등 푸대접에 직면하면서 많은 이들이 실망했다. 요카렌에 대한 악평이 퍼지고 후보생들의 소요 사태가 일어나는 등 반발이 잇다르자, 이들에 대한 대우는 '하사관급'으로 상향되었다. 훗날 요카렌을 상징하는 7개의 벚꽃 단추 복장이 기존의 수병 복장을 대신하여 지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실제로 교육 기간을 마칠 무렵엔 대부분 병조(해군 하사관)로 진급했다.

이와 같은 개선조치에도 불구하고, 타국의 조종사 대우를 상기해본다면 여전히 터무니 없는 수준이었기에, 1937년부터는 구제중학교 4학년 1학기 수료 이상의 16세 이상 20세 미만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갑종 제도가 신설되고, 기존의 제도는 을종으로 분류됐다. 또한 빠르게 간부가 될 수 있으며 특무소위로 임관하는 것도 가능하고 중좌까지 진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선전되었다. 그러나 중학교 상당의 학력자는 육군사관학교해군병학교에 지원하는 것이 가능했으므로, 학생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매력이 떨어지는 선택지였다.


2. 특공 동원[편집]


태평양 전쟁의 전황악화로 제국지도부가 가미카제를 강행하게 되면서, 요카렌 역시 특공에 대거 투입되기에 이른다. 전쟁 말기에는 항공기수가 격감함에 따라, 인간어뢰 카이텐, 자폭보트 신요 등에도 요카렌이 투입되면서 '비행조종사 양성'이라는 본래의 취지마저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


3. 여담[편집]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어린 소년들이 제국의 소모품으로 소진된 비극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문학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는 영원의 제로.

김재규가 요카렌 출신이라는 낭설이 인터넷에 퍼졌던 적이 있으나, 김재규는 학도병 출신이다.


4. 관련도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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