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즈모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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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편집]
"There's a Rocket to Fit Your Pocket"
주머니에 맞는 로켓이 있습니다
- 1950년대 당시 슬로건.[1]
"Start Something"
무언가 시작해 보십시오
-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슬로건.
랜섬 올즈가 1897년에 설립한 자동차 제작 브랜드로, 2004년까지 107년 동안 3천5백2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2004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은 자동차 브랜드였고, 다임러와 푸조, 오펠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자동차 브랜드[2] 였다.
2. 상세[편집]
올즈모빌의 상세 역사
플라이셔 스튜디오가 제작한 1932년 올즈모빌 단편 애니메이션 광고
창립 이후 수년간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자동차 브랜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당시 자동차 시장이 작아서 한해 생산대수가 천단위를 넘어가지 않았다는 점은 염두에 두자. 여담으로 창업자 랜섬 올즈는 창업 7년만인 1904년에 대주주들과의 갈등으로 자신이 만든 회사를 떠나게 되는데, 다음 해(1905)에 자신의 이름 '랜섬 E. 올즈'의 이니셜을 딴 'REO Motor Car Company'를 설립했다.[3] REO는 1907년에 매출 기준 미국 4위를 하는 둥 비교적 선방하는 듯 했으나 이때가 최대 전성기였고, 이후 포드(1903년 창립), 제너럴 모터스(1908년 창립) 등과의 경쟁에 밀려 도태되어 트럭 등의 상용차 제조에 집중하다가 여러 차례 파산과 화이트 모터 컴퍼니(1957년 인수), 다이아몬드 T 트럭(1967년 합병) 등과의 인수합병을 반복하며 결국 1975년 문을 닫았다.[4]
한편 올즈모빌은 1908년 GM 산하로 인수되었고, 이후 GM 산하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완전 자동변속기 하이드라매틱을 포함한 당시 GM의 신기술들이 가장 먼저 적용되는 브랜드로 자리잡으면서 올즈모빌은 혁신적인 이미지를 얻었고, 이후 1950~70년대에 88, 98, 토로나도, 442 등의 다양한 명차들을 쏟아내며 젊은 고객들로부터 적잖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낮은 가격에 장비가 많은 일본차들이 올즈모빌의 자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는데[7] , 올즈모빌은 한동안 중·대형 승용차 계열에만 중점이 놓여 있었고, 미니밴과 SUV를 비롯한 RV 열풍으로 승용차 수요층이 RV로 이동하자 판매 실적이 점점 나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올즈모빌은 한동안 엔트리급 라인업[8] 이 부실했으며, 그나마 뒤늦게 RV 시장에 뛰어들면서 판매하는 차들도 2륜구동의 부재 등으로 경쟁력이 약했고, 거기에 새 수요층들의 유입량이 줄면서 중장년 고정 수요층의 비중이 높아지자 전체적인 판매량도 급격히 감소했다. 올즈모빌이 많이 죽어가던 1990년대에 올즈모빌 오로라를 통해 렉서스/아큐라/인피니티 등의 일본 고급차와 다투는 젊은 유럽풍 고급차[9] 로서의 이미지 쇄신을 꾀했다가 새로 생긴 고객층에 비해 기존 고객층의 상실이 너무 커져 실패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올즈모빌의 이미지까지 부정하는 자기부정 마케팅 캐치프레이즈였던 1988년의 "아버지의 올즈모빌이 아닙니다(This is not your father's Oldsmobile)"는 기존의 고정 고객층들만 몰아낸 대실패로 평가받았고[10] , 여기에 위 광고를 포함한 멜 블랭크[11] , 링고 스타 및 심지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12] 까지 꺼내드는 광고 전략을 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게다가 올즈모빌이란 브랜드 자체도 스포티한 폰티악과 고급스러운 뷰익 등의 여러 브랜드로 가득한 GM 속에서 애매한 포지셔닝으로 확고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면서 1980년대부터 전문가들이 브랜드 폐기를 주장하고 있었고, 1984년부터 로저 스미스 당시 GM 회장의 주도하에 구조조정을 한 결과로 간부급 임원의 비중이 더 늘어나서 수익구조와 배분이 되려 악화되었다. 모회사인 GM도 1980년대 내내 1984년의 조직개편, 배지 엔지니어링 라인업의 남발같은 그룹 단위의 실책을 저지르면서 올즈모빌의 브랜드 파워와 미래를 대처할 밑천들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 위의 실책들과 이로 인한 실적부진 심화가 겹치는 바람에 결국 2001년에 브랜드 폐지를 선언, 2004년에 브랜드 자체를 폐기하고 올즈모빌 홈페이지를 간략한 브랜드 소개와 아직 남아 있는 차주들의 애프터서비스 연결 방법을 알려 주는 소규모 정보 페이지로 간소화시켰다. 이때 마지막으로 생산, 출고된 차량은 올즈모빌 알레로였다.
올즈모빌은 항상 고성능의 고급스러운 차량들을 만들어 왔고 역사가 오래 된 만큼 신뢰성이 높았기 때문에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의전용 차량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박정희 前 대통령 재임 시절 관용차로 델타 88 로얄 컨버터블 모델이 사용되었는데 대부분 국가행사나 군 관련 행사에서 사열용 차량으로 사용되었다.
3. 생산한 차종[편집]
- 66/68
- 76/78
- 88
- 98
- 442
- F-85
- 브라바다
- 비스타 크루저
- 스타파이어
- 실루엣
- 아치바
- 알레로
- 오로라
- 오메가
- 인트리그
- 제트스타
- 커스텀 크루저
- 커틀러스
- 커틀러스 수프림
- 커틀러스 시에라
- 커틀러스 칼레
- 토로나도
- 피렌자
(참고 자료)
4. 기타[편집]
Ransom Olds, the father of the Oldsmobile, could not produce his “horseless carriages” fast enough. In 1901 he had an idea to speed up the manufacturing process — instead of building one car at a time, he created the assembly line. The acceleration in production was unheard-of — from an output of 425 automobiles in 1901 to an impressive 2,500 cars the following year. ② While other competitors were in awe of this incredible volume, Henry Ford dared to ask, “Can we do even better?” He was, in fact, able to improve upon Olds's clever idea by introducing conveyor belts to the assembly line. As a result, Ford's production went through the roof. Instead of taking a day and a half to manufacture a Model T, as in the past, he was now able to spit them out at a rate of one car every ninety minutes. The moral of the story is that good progress is often the herald of great progress.
* in awe of: ~에 깊은 감명을 받은 ** herald: 선구자
올즈모빌의 창립자인, 랜섬 올즈는 “말 없는 마차”를 충분히 빨리 생산할 수 없었다. 1901년에, 그는 생산 과정의 속도를 높이는 아이디어를 가졌다 ― 한 번에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드는 대신에, 조립 라인을 고안했다. 생산의 가속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 1901년 425대의 자동차 생산량에서 이듬해 인상적인 2,500대의 자동차로. 다른 경쟁사들이 이 놀라운 분량에 깊은 감명을 받는 동안, 헨리 포드는 감히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는, 사실, 컨베이어 벨트를 조립 라인에 도입함으로써 올즈의 훌륭한 아이디어를 개선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포드 사의 생산은 최고조에 달했다. 과거처럼, 모델 T를 제작하는 데 1.5일이 걸리는 대신에, 그는 90분마다 한 대씩의 속도로 차를 뱉어낼(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좋은 진보는 종종 위대한 진보의 선구자라는 것이다.
지문 내용 中
- 2021년 6월 모의고사 고2 영어 영역 39번에 창업주 랜섬 올즈가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