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데마르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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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생몰: 1320년 ~ 1375년 10월 24일
재위: 덴마크 국왕(1340년 6월 24일 ~ 1375년 10월 24일).

그 유명한 마르그레테 1세의 아버지로 큰아버지 에리크 6세와 아버지 크리스토페르 2세가 박살낸 덴마크를 재건하여 중흥왕(Valdemar Atterdag)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2. 생애[편집]


1320년 덴마크 헬싱외르에서 덴마크 국왕 크리스토페르 2세와 포메른의 오이페미아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는 형 에리크와 오토가 있었으나 다들 어린 나이에 죽어 그가 계승자가 되었다.

문제는 당시 덴마크의 상황으로, 덴마크는 큰아버지 에리크 6세가 개인 유흥을 즐기고 무리한 정복 사업을 펼치느라 국고를 흥청망청 쓰는 바람에 국토 대부분을 홀슈타인 공작들에게 저당잡혔고 아버지 크리스토페르 2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결국 파멸하고 말았다. 어린 그는 누나 마르그레테와 결혼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배출하기도 한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 루트비히 5세[1]바이에른 공국으로 피신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망명한 사이 덴마크는 홀슈타인 공작들의 군벌 통치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에 견디다 못한 덴마크인들은 닐스 에베센의 주도로 홀슈타인 공작들을 암살했으며, 1340년 6월 닐스 에베센의 주도로 열린 비보르 의회에서는 발데마르를 덴마크 국왕으로 추대했다. 1340년에는 슐레스비히 공작 에리크 2세의 딸인 헬비그와 결혼했다. 덴마크의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 에스토니아 공국리보니아 기사단에 매각하여 재정을 안정시키는 한편 윌란 반도 북부의 1/4을 되찾았고, 1347년에는 홀슈타인을 물리치면서 셸란 섬을 탈환했다. 1360년에는 스웨덴을 침공하면서 헬싱보리를 차지했고 스웨덴에게 빼앗긴 스코네, 블레킹에, 할란드를 모두 되찾았다. 그러나 1362년에 스웨덴, 노르웨이 등으로 이루어진 한자 동맹 연합군이 발데마르 4세의 스웨덴 침공에 대한 보복으로 덴마크를 침공했다. 1368년에는 윌란 반도에서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1368년에 덴마크에서 추방당했다. 1370년 덴마크와 한자 동맹 사이에 체결된 슈트랄준트 조약을 통해 한자 동맹의 무역 참여 보장, 무역 함대에 대한 세금 면제 혜택을 승인했다. 1375년 셸란 섬 북부에 위치한 구레성에서 사망했으며 유해는 소뢰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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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의 맏아들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