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빈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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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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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왕 · 역대 왕비 · 환조 ~ 연산군 후궁
※ 정식 후궁 첩지가 있는 사람만 기재
※ 고종의 후궁 보현당 귀인 정씨, 광화당 귀인 이씨, 복녕당 귀인 양씨, 삼축당 김씨, 정화당 김씨는 대한제국 멸망 이후에 후궁이 되었으므로 조선의 후궁이었던 적이 없다.






조선 선조의 후궁
순빈 김씨 | 順嬪 金氏





순빈 김씨묘 위치
출생
연대 미상
사망
1647년 1월
능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산 1-1
재위기간
조선 숙원~순빈
1592년 이전 ~ 164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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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김씨
부모
부친 김복장(金福長)
모친 평산 신씨[1]
형제자매
1남 1녀 중 장녀
배우자
선조
자녀
슬하 1남
장남 - 순화군(順和君, 1580 ~ 1607)
봉작
숙원(淑媛) → 숙용(淑容)
→ 숙의(淑儀) → 순빈(順嬪)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조선 선조후궁. 아버지는 김복장(金福長)은 정4품 무관인 호군(護軍)이자 역관이었으며, 어머니는 신수응(申應秀)의 딸이다. 순빈 김씨의 동복형제는 김득기(金得祺)로 《통문관지》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당대에 유명한 역관으로 1592년(선조 25)에 선조를 호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여러 번 조천사로 에 다녀왔으며, 1604년(선조 37)에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그의 아들 김근행(金謹行)도 1627년(인조 5) 식년시 3등 2위로 역과에 합격하여 대마도 도주와 친분이 있을 정도로 유능한 역관이었다.[1]

이를 통해서 선조의 간택 후궁인 정빈 홍씨, 정빈 민씨와 달리 양반 출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집안의 외가, 처가가 모두 잡과에서 합격자를 배출하고 문과 합격자가 없으므로 이 경우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의 집안처럼 중인 집안인 것이다. 또 《선조수정실록》에 "1580년(선조 13)에는 하원군(선조의 맏형)이 역관의 딸 중 예쁜 사람이 있다고 천거했다" 라는 기록[2]이 있어 이 당시 하원군이 천거한 역관의 딸이 그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슬하에 싸이코패스로 악명 높은 순화군 이보를 두었다.


2. 생애[편집]


1580년(선조 13)하원군의 천거로 입궁하였고 그 해 아들 순화군을 낳았다. 1592년(선조 25) 《선조실록》에서 나오는 '숙용 김씨(淑容 金氏)'가 순빈 김씨인 것으로 보인다.[3]

당시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정1품 빈(嬪)으로 진봉된 것은 선조의 사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임진왜란 당시 순화군이 포로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폭행, 강간 등 순화군이 저지르는 온갖 사건·사고를 지켜보았지만, 《선조실록》에서는 어머니인 순빈 김씨보다 순화군의 이름이 더 많이 실렸을 정도.

1647년(인조 25) 《승정원일기》에서 순빈 김씨를 예장할 때 전례를 따를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아 이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4] 그녀의 묘소 아래에 순화군의 묘소가 같이 있다.

순화군을 낳았을 당시, 나이를 적게 잡아서 15세에 낳았다고 가정하면 82세로 장수하였다. 다만, 순빈이 중인집안 출신의 비간택후궁인걸 감안하면 같은 승은후궁인 인빈 김씨가 19살에 후궁이 되고 장남 의안군(1577년 생으로 순화군보다 3살 위의 형)을 낳았을 때의 나이가 23살이었던걸 봐서, 순빈도 20대 초반 혹은 그 이상의 나이에 순화군을 낳았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80후반~90초반까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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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666년(현종 6) 김근행은 대마도주와의 친분과 자신의 능력으로 대마도에서 연례로 보내는 사신 파견 횟수를 줄이는 공로를 세웠다. 사신이 오면 조선도 그만큼 후한 대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자주 오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 [2] 선조수정실록 14권, 선조 13년 2월 1일 신미 7번째기사 [3] 선조실록 26권, 선조 25년 5월 8일 정묘 8번째기사. # [4] 승정원일기 96책 (탈초본 5책) 인조 25년 1월 20일 임술 3/5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