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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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영수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時波

조선 후기, 사도세자의 추숭에 찬성하면서 정조의 정책에 찬성한 정파. 대부분의 남인들과 소론,[1] 그리고 노론 시파로 이루어졌던 정파이다.

2. 역사[편집]


벽파가 노론 청명당에서 유래가 된 정파적 성격이 뚜렷한 집단이었다면, 시파는 그런 집단은 아니었다. 애초에 시파가 형성되게 된 계기는 사도세자의 추숭이 아니라 정조 초기 정국을 주도하던 홍국영이 탄핵당한 이후 새롭게 등장한 소론 서명선에 따르는 세력이 '시류에 편승하는 자'라며 시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시파의 중심인물이라 불리었던 남인의 영수 채제공서명선에 의해 배척당했기 때문에 반 시파에 속했다.

《실록》에서의 시파와 벽파의 분열은 1780년(정조 4년)이라고 하지만 시파, 벽파라는 용어는 1784년(정조 8년)부터 등장한다.

하지만 1788년 정조가 서명선을 대신해 새로운 3정승 체제를 구축하고 사도세자 추숭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시파의 성격도 과거 서명선이 주도하는 정국을 따르는 것에서 정조가 주도하는 사도세자의 추숭을 따른다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시파는 정조의 사도세자 추숭 노력에 따라 상당한 집권 능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채제공을 중심으로 하는 남인 세력과 소론 강경파 그리고 노론의 김조순과 같은 온건파들도 중용되었다.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벽파에 의해 정국에서 밀려났다가 경주 김씨 출신의 정순왕후의 사망 이후 다시 집권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는 순조의 장인 김조순(신 안동 김씨)이 주도하는 정국이었기 때문에 정파로서의 성격은 사실상 없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김조순 이후 붕당정치는 종식되고, 이른바 세도정치기가 시작된다.


3. 영수[편집]


  • 서명선 - 원래 시파의 뜻에 부합되어서 시파를 이끈 사람은 서명선이었다. 소론에도 속한다.
  • 채제공 - 1788년 전격적으로 우의정에 발탁되면서 이 때부터 시파를 이끌었다. 남인에도 속한다.
  • 정민시 - 정조 시대 노론 시파의 영수이며, 정조의 측근이기도 하다
  • 이조원 - 본관은 연안. 순조 이후 노론 시파로 활약하다가 1805년, 벽파인 김달순과 함께 신 안동 김씨의 김좌근에 맞서다 방귀전리[2]당했다.
  • 김조순 - 노론 시파 출신으로 순조의 장인이기도 하다. 김조순 이후로는 세도정치가 이어진다.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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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인과 소론은 당시 비주류에 가까웠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정조를 밀어줄 때가 많았다. 반대로 말하면 이들 중에서도 벽파는 있었다. 당장 시파의 영수기도 했던 서명선이 시기에 따라선 소론 벽파 테크를 타기도 했다.[2] 조선 시절, 벼슬을 삭탈하고 제 고향으로 내쫓던 형벌. 유배보다는 한 등급 가벼운 형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