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지사

덤프버전 :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전라북도지사

[ 펼치기 · 접기 ]
초대
신현돈
제2대
장현식
제3대
김가전
제4대
이성득
제5대
이요한
제6대
신용우
제7대
김규진
제8대
이하영
제9대
박정근
제10대
이기세
제11대
임춘성
제12대
이용택
제13대
김상술
제14대
이존일
제15대
김인
제16대
이정우
제17대
이환의
제18대
이춘성
제19대
황인성
제20대
김학중
제21대
조철권
제22대
심재홍
제23대
홍석표
제24대
강현욱
제25대
최용복
제26대
강상원
제27대
이강년
제28대
조남조
제29-30대
유종근
제31대
강현욱
제32-33대
김완주
제34-35대
송하진




파일:attachment/Jeonbuk.jpg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전라북도지사
全羅北道知事
Governor of Jeollabuk Province


파일:전라북도 도지사 김관영.jpg

현직
김관영 / 제36대 (민선 8기)
취임일
2022년 7월 1일
정당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1. 개요
1.1. 전라북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
2. 목록
2.3.1. 관선 1차
2.3.2. 민선 1차
2.3.3. 관선 2차
2.3.4. 민선 2차
3. 역대 선거 결과
4. 역대 정당별 전적
5. 역대 후보별 순위
6. 도정 구호
7. 이야깃거리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전라북도지사전라북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10년까지는 관찰사(觀察使)라고 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전라북도 관찰사는 1908년에 부임한 친일인사 이두황(李斗璜)이며 국권침탈 이후에도 계속해서 전라북도장관을 맡았다.

특히 김완주 - 송하진 전 지사는 둘 모두 재선 전주시장을 바탕으로 재선 도지사가 된 케이스다.[1]

그 외에도 대구광역시장, 경기도지사와 함께 3선은 커녕 선거에 3번 출마한 후보조차 없는 몇 안되는 광역자치단체이다. 송하진 전 지사는 3선 도전을 시사하긴 했으나 경선에서 컷오프되면서 결국 도전하지 못했다.

1.1. 전라북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도입 이후 전라북도지사 선거는 지금까지 총 8번 있었다. 이 중 고창군부안군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전라북도지사 선거 적중 지역이다. 민주당계 정당의 텃밭이라 대체로 민주당계 정당 유력 후보가 완승하는 편이지만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난립할 경우 접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실제로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열린우리당민주당 간 경쟁 구도에서 비교적 접전이 일어났는데 이 때 민주당 정균환 후보의 정치적 근거지였던 위 두 지역이 적중 지역에서 탈락했다.

2. 목록[편집]



2.1. 일제강점기[편집]


대수
이름
임기
비고
초대 장관
이두황 (李斗璜)
1910년 10월 1일 ~ 1916년 3월 9일
[전라북도장관]
2대 장관
유혁로 (柳赫魯)
1916년 3월 9일 ~ 1916년 3월 27일
3대 장관
이진호 (李軫鎬)
1916년 3월 28일 ~ 1919년 3월 2일
4대 장관
유혁로 (柳赫魯)
1919년 3월 2일 ~ 1919년 3월 30일
초대
이진호 (李軫鎬)
1919년 3월 30일 ~ 1921년 8월 5일
[전라북도장관][2]
2대
이스미 나카조 (亥角仲蔵)
1921년 8월 5일 ~ 1925년 8월 11일

3대
아오키 가이조 (青木戒三)
1925년 8월 11일 ~ 1926년 3월 8일
4대
와타나베 시노부 (渡辺忍)
1926년 3월 8일 ~ 1929년 1월 21일
5대
하야시 시게키 (林茂樹)
1929년 1월 21일 ~ 1929년 12월 11일
6대
김서규 (金瑞圭)
1929년 12월 11일 ~ 1931년 9월 23일
7대
홍승표 (洪承均)
1931년 9월 23일 ~ 1932년 9월 27일
8대
고원훈 (高元勲)
1932년 9월 27일 ~ 1936년 5월 21일
9대
김시권 (金時權)
1936년 5월 21일 ~ 1937년 4월 1일
10대
손영목 (孫永穆)
1937년 4월 1일 ~ 1940년 9월 2일
11대
이원보 (李源甫)[3]
1940년 9월 2일 ~ 1942년 1월 24일
12대
김병태 (金秉泰)[4]
1942년 1월 24일 ~ 1943년 8월 18일
13대
김대우 (金大羽)
1943년 8월 18일 ~ 1945년 6월 16일
14대
정연기 (鄭然基)[5]
1945년 6월 16일 ~ 1945년 8월 15일

전라북도지사라는 직함은 1919년 8월에 기존의 전라북도장관을 전라북도지사로 개칭한 것이 최초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전라북도장관을 포함했다.

2.2. 미군정[편집]


대수
이름
임기
비고
초대
갤로글 (R. F. Galloghy)
1945년 9월 2일 ~ 1945년 10월 11일
[6]
2대
가포불지[7]
1945년 10월 12일 ~ 1945년 12월 19일
3대
갤로글 (R. F. Galloghy)
1945년 12월 20일 ~ ?
[8]
4대
윌리엄
? ~ ?
[9]
5대
에거
? ~ 1946년 4월 3일
6대
정일사 (鄭一史)
1946년 4월 4일 ~ 1947년 6월 28일

7대
박종만 (朴鍾萬)
1947년 6월 29일 ~ 1947년 7월 8일
8대
1947년 7월 9일 ~ 1948년 9월 9일
[10]

2.3. 대한민국[편집]



2.3.1. 관선 1차[편집]


대수
이름
임기
정부
비고
관선 (임명직)
초대
신현돈 (申鉉燉)
1948년 9월 10일 ~ 1949년 8월 16일
이승만 정부

2대
장현식 (張賢植)
1949년 8월 17일 ~ 1949년 12월 14일
3대
김가전 (金可田)
1949년 12월 15일 ~ 1951년 10월 5일
4대
이성득 (李聖得)
1951년 10월 29일 ~ 1952년 9월 16일
5대
이요한 (李要漢)
1952년 9월 17일 ~ 1955년 9월 1일
6대
신용우 (申鏞宇)
1955년 9월 2일 ~ 1956년 9월 23일
7대
김규진 (金圭鎭)
1956년 9월 24일 ~ 1957년 3월 10일
8대
이하영 (李夏榮)
1957년 3월 11일 ~ 1959년 5월 12일
9대
박정근 (朴定根)
1959년 5월 13일 ~ 1960년 5월 11일
10대
이기세 (李琦世)
1960년 5월 12일 ~ 1960년 6월 26일
허정 내각

11대
임춘성 (林春城)
1960년 6월 27일 ~ 1960년 10월 6일
12대
이용택 (李龍澤)
1960년 10월 17일 ~ 1960년 12월 28일
장면 내각


2.3.2. 민선 1차[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11]
출신지
비고
민선 (선출직)
13대
김상술 (金相戌)
1960년 12월 29일 ~ 1961년 5월 23일


전북 정읍


2.3.3. 관선 2차[편집]


대수
이름
임기
정부
비고
관선 (임명직)
14대
이존일 (李存一)
1961년 5월 24일 ~ 1961년 8월 24일
국가재건최고회의

15대
김인 (金仁)
1961년 8월 25일 ~ 1963년 12월 16일
16대
이정우 (李玎雨)
1963년 12월 19일 ~ 1968년 2월 21일
박정희 정부

17대
이환의 (李桓儀)
1968년 2월 22일 ~ 1971년 6월 12일
18대
이춘성 (李春城)
1971년 6월 22일 ~ 1973년 10월 22일
19대
황인성 (黃寅性)
1973년 10월 23일 ~ 1978년 12월 25일
20대
김학중 (金學重)
1978년 12월 26일 ~ 1980년 7월 17일
21대
조철권 (趙喆權)
1980년 7월 18일 ~ 1983년 10월 14일
최규하 정부

22대
심재홍 (沈載弘)
1983년 10월 15일 ~ 1986년 8월 28일
전두환 정부

23대
홍석표 (洪錫杓)
1986년 8월 29일 ~ 1988년 5월 19일
24대
강현욱 (姜賢旭)
1988년 5월 20일 ~ 1990년 6월 20일
노태우 정부

25대
최용복 (崔鎔福)
1990년 6월 21일 ~ 1992년 4월 21일
26대
강상원 (姜相源)
1992년 4월 22일 ~ 1993년 3월 3일
27대
이강년 (李康年)
1993년 3월 4일 ~ 1994년 9월 23일
김영삼 정부

28대
조남조 (趙南照)
1994년 9월 24일 ~ 1995년 6월 30일

2.3.4. 민선 2차[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12]
출신지
비고
민선 (선출직)
29대
유종근 (柳宗根)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파일:민주당(1991) 글자.svg

전북 정읍
[13]
30대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14]
31대
강현욱 (姜賢旭)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전북 군산
[15]
32대
김완주 (金完柱)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전북 임실
[16]
33대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17]
34대
송하진 (宋河珍)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전북 김제
[18]
35대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36대
김관영 (金寬永)
2022년 7월 1일 ~ 현재
전북 군산

전북특별자치도지사 민선 (선출직)
36대
김관영 (金寬永)
2023년 1월 18일 ~예정

전북 군산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역대 민선 전라북도지사
1960
1995
1998
2002
2006
민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김상술
유종근
강현욱
김완주
2010
2014
2018
2022

민주당


더불어민주당


김완주
송하진
김관영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역대 민선 전북특별자치도지사

[ 펼치기 · 접기 ]
구분
주요 후보 득표율
1960년
1위: 김상술 41.20%
2위: 임춘성 40.10%
1995년
1위: 유종근 67.15%
2위: 강현욱 32.84%
1998년
1위: 유종근 100%[주의]
2002년
1위: 강현욱 74.56%
2위: 손주항 17.12%
2006년
1위: 김완주 48.08%
2위: 정균환 36.53%
2010년
1위: 김완주 68.67%
2위: 정운천 18.20%
2014년
1위: 송하진 69.23%
2위: 박철곤 20.45%
3위: 이광석 10.31%
2018년
1위: 송하진 70.57%
2위: 임정엽 19.11%
2022년
1위: 김관영 82.11%
2위: 조배숙 17.88%


3.1. 1960년[편집]


{+1 [[파일:전라북도 구 휘장(1969–1997).png}}} 전라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이기영(李基永)
15,263
5위

3.45%
낙선
2
이완구(李完求)
15,424
4위

3.48%
낙선
3
이중학(李重學)
15,151
6위

3.43%
낙선
4
김봉두(金奉斗)
15,109
7위

3.40%
낙선
5
김상술(金相述)
185,384
1위

41.20%
당선
6
임춘성(林春成)
180,012
2위

40.10%
낙선
7
정진호(鄭鎭浩)
22,812
3위

5.10%
낙선

선거인 수
1,105,513
투표율
42.19%
투표 수
466,526
무효표 수
-

3.2. 1995년[편집]


{+1 [[파일:전라북도 구 휘장(1969–1997).png}}} 전라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강현욱(姜賢旭)
319,452
2위

32.84%
낙선
2
유종근(柳鍾根)
653,295
1위

67.15%
당선

선거인 수
1,360,350
투표율
73.65%
투표 수
1,001,959
무효표 수
29,212

민주당 유종근 후보가 모든 시군에서 승리를 거두며 더블 스코어 차이로 압승을 거두었지만, 민주자유당 강현욱 후보도 30%대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특히 군산시에서는 무려 49%를 득표했고, 특히 군산시 갑(舊 군산시)에서는 승리했다. 그리고 이듬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 군산시 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3.3. 1998년[편집]


{+1 [[파일:전라북도 휘장(1997-2009)_White.svg}}} 전라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2
유종근(柳鍾根)
758,141
1위[주의]

100%
당선

선거인 수
1,400,419
투표율
57.78%
투표 수
809,167
무효표 수
51,026

3.4. 2002년[편집]


{+1 [[파일:전라북도 휘장(1997-2009)_White.svg}}} 전라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나경균(羅庚均)
63,661
3위

8.30%
낙선
2
강현욱(姜賢旭)
571,650
1위

74.56%
당선
3
손주항(孫周恒)
131,320
2위

17.12%
낙선

선거인 수
1,431,722
투표율
54.98%
투표 수
787,135
무효표 수
20,504

3.5. 2006년[편집]


{+1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전라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완주(金完柱)
389,436
1위

48.08%
당선
2
문용주(文庸柱)
62,922
3위

7.76%
낙선
3
정균환(鄭均桓)
295,891
2위

36.53%
낙선
4
염경석(廉京石)
61,672
4위

7.61%
낙선

선거인 수
1,429,632
투표율
57.87%
투표 수
827,387
무효표 수
17,466

1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유일하게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된 곳이다. 반면 민주당은 전라북도지사 탈환에 실패해 한화갑 전 대표이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 그래도 정균환 후보가 나름 선방했지만.

3.6. 2010년[편집]


{+1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전라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정운천(鄭雲天)
151,064
2위

18.20%
낙선
2
김완주(金完柱)
569,980
1위

68.67%
당선
5
하연호(河然鎬)
52,331
3위

6.30%
낙선
7
염경석(廉京石)
35,565
4위

4.28%
낙선
8
김대식(金大植)
20,990
5위

2.52%
낙선

선거인 수
1,442,805
투표율
59.34%
투표 수
856,111
무효표 수
26,181

민주당 김완주 후보가 텃밭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으나, 한나라당 정운천 후보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래 15년 만에,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래 처음으로 선거비 전액 보전 하한선을 넘기는 저력을 과시했다.

3.7. 2014년[편집]


{+1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전라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철곤(朴鐵坤)
177,172
2위

20.45%
낙선
2
송하진(宋河珍)
599,654
1위

69.23%
당선
3
이광석(李光石)
89,337
3위

10.31%
낙선

선거인 수
1,503,242
투표율
59.87%
투표 수
900,029
무효표 수
26,181

예상대로 새정치민주연합 송하진 후보가 69.2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새누리당 박철곤 후보는 비록 패배하였지만, 20.45%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19]

3.8. 2018년[편집]


{+1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전라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송하진(宋河珍)
682,042
1위

70.57%
당선
2
신재봉(愼宰奉)
26,374
4위

2.72%
낙선
4
임정엽(林呈燁)
184,728
2위

19.11%
낙선
5
권태홍(權泰弘)
52,496
3위

5.43%
낙선
6
이광석(李光石)
20,827
5위

2.15%
낙선

선거인 수
1,527,729
투표율
65.23%
투표 수
996,504
무효표 수
30,037

친노계>동교동계 성향을 보이며 광주광역시·전라남도와 차별화됐던 2006년때와는 정반대로 지금은 거꾸로 제일 민주평화당의 총 득표수가 많은 지역으로 등극했다. 되돌아보면 1995년에도 DJ 중심 민주당으로부터의 가장 두드러지는 이탈을, 2002년에는 반대로 지금처럼 가장 높은 결집을 보여준 적이 있다.

정리하자면 (어디까지나 광주광역시·전라남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1995:(상도동계/여당) 2002:(동교동계/여당) 2006:(친노계/여당) 2018:(동교동계/야당)인 셈이다. 호남 민심의 속사정, 임정엽 후보가 민선 완주군수를 지낸 인물 경쟁력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3.9. 2022년[편집]


{+1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전라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관영(金寬永)
591,510
1위

82.11%
당선
2
조배숙(趙培淑)
128,828
2위

17.88%
낙선

선거인 수
1,532,133
투표율
48.64%
투표 수
745,354
무효표 수
25,016

바른미래당 출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민주평화당 출신 국민의힘 후보의 결전이 벌어졌다. 비록 더불어민주당 김관영 후보가 5배 격차로 낙승하였지만, 국민의힘 조배숙 후보도 15% 이상 넘은 득표율을 내서 나름 선전한 성과를 거두었다. 다만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새누리당 박철곤 후보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편 김관영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유일하게 80%대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호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전라북도지사 후보에만 제3정당 후보가 없었기 때문.[20]

4.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민주당계 정당
보수 정당
제3후보[21]
1회
유종근
강현욱
-


당선 67.15%
낙선 32.84%
2회
유종근
-
-

당선 100%
3회
강현욱
나경균
손주항[22]



당선 74.56%
낙선 8.30%
낙선 17.12%
4회
김완주
문용주
정균환[23]



당선 48.08%
낙선 7.76%
낙선 36.53%
5회
김완주
정운천
하연호[24]



당선 68.67%
낙선 18.20%
낙선 6.30%
6회
송하진
박철곤
이광석[25]



당선 69.23%
낙선 20.45%
낙선 10.31%
7회
송하진
신재봉
임정엽[26]



당선 70.57%
낙선 2.72%
낙선 19.11%
8회
김관영
조배숙
-


당선 82.11%
낙선 17.88%

5.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1위
2위
3위
4위
5위
1회
유종근
강현욱
2회
유종근
3회
강현욱
손주항
나경균
4회
김완주
정균환
문용주
염경석
5회
김완주
정운천
하연호
염경석
김대식
6회
송하진
박철곤
이광석
7회
송하진
임정엽
권태홍
신재봉
이광석
8회
김관영
조배숙

6. 도정 구호[편집]


김학중
풍요로운 전북건설
조철권
살기좋은 전북건설
심재홍
약진하는 새 전북
홍석표
300만의 전진 대전북 건설
강현욱
서해안 시대의 새전북 건설
최용복
살기좋고 활기찬 새전북 건설
강상원
밝은 미래 활기찬 대전북
이강년
새시대 다함께 새전북 창조
조남조
화합으로 새전북 건설
유종근
세계로 뻗어가는 전북건설
강현욱
강한전북 일등도민
김완주
하나되어 전북을 바꿉시다
송하진
한국 속의 한국, 생동하는 전라북도
아름다운 山河 웅비하는 생명의 삶터, 천년 전북!
김관영
함께 혁신, 함께 성공, 새로운 전북

7. 이야깃거리[편집]


  • 김완주 전 지사와 송하진 전 지사는 민선 전주시장 출신인데, 두 사람 모두 재선 전주시장 출신의 재선 전라북도지사라는 행보가 똑같다. 그런데 비슷하게 도청소재지 청주시가 도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충청북도는 아직까지 청주시장 출신의 충청북도지사가 나오지 않았다.
  • 역대 민선 전북지사 6명이 모두 전북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이지만 정작 전주시 출신 지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읍시군산시 출신이 각각 2명, 김제시임실군 출신이 각각 1명씩 배출됐다.

8. 관련 문서[편집]




[1] 둘 모두 5급 공채 출신인데 상대적으로 한직으로 여겨지는 광역단체장일수록 직업 정치인 출신보다는 관료 출신이 많은 편이다. 보통 재선~4선의 국회의원들이 광역자치단체장에 도전하는 편인데 직업 정치인들에게는 해당 선수 정도되면 시류에 따라 국회의원을 계속 역임하다가 중앙에서 힘을 쓸 수 있는 당 대표, 원내대표장관 등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공채 출신은 기관장 역할을 할 수 있는 고위공무원 영전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아 한직이라 하더라도 단체장 자체가 기관장인 고위공무원인만큼 이에 만족한다. 때문에 현직 단체장일수록 관료 비중이 높은 편이다.[전라북도장관] A B [2] 1919년 8월부터 도지사.[3] 창씨명 리노이에 겐포(李家源甫)로 활동함.[4] 창씨명 가네무라 야스오(金村泰男)로 활동함.[5] 창씨명 구사모토 젠키(草本然基)로 활동함.[6] 현역 미 육군 중령.[7] 당시 동아일보에 가포불지 중좌라는 표기로 등장.[8] 재취임.[9] 현역 미 육군 중령.[10] 정부 수립 후 인선 지연으로 유임.[11] 선거 당시 당적.[12] 선거 당시 당적.[13] 1995.
파일:민주당(1991) 글자.svg
탈당.
1995.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입당.
[14] 2000.1.20.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당명 변경.
[15] 2004.3.11.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탈당.
2004.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입당.
[16] 2007.8.5.
[[대통합민주신당|
파일: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흡수 합당.
2008.2.17.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신설 합당.
2008.7.6.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당명 변경.
[17] 2011.12.23.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으로 신설 합당.
2013.5.4.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당명 변경.
2014.3.26.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당명 변경.
[18]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주의] 지금과는 공직선거법이 달랐기 때문에 자치단체장은 단독 출마라도 무투표 당선 될 수 없었다. 당시 공직선거법 제191조 2항에 따르면 단독 출마일 경우 득표수가 투표자 총수의 3분의 1이상에 달하여야 당선인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2010년 1월 25일 삭제되었다.[19] 고향인 진안군 백운면에서 송하진을 더블스코어로 따돌렸고 상전면에서는 무승부를 거뒀다.[20] 광주광역시는 정의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후보가 출마하였으며 전라남도는 진보당 후보가 출마했다.[21]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2] 중도 성향 후보.[23] 민주당계 정당 후보.[24] 진보 정당 후보.[25] 진보 정당 후보.[26] 민주당계 정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