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니콜라 루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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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사보이아 공국에서 귀화한 프랑스의 작곡가. 1725년에 파리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펼쳤으며, 루이 15세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궁중 음악교사로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2. 생애[편집]
1705년경[1] 사보이아 공국 토리노[2] 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부르고뉴 출신의 귀족이었는데, 사보이아 공국에서 포병 대위와 궁정 정원 관리자를 지냈다. 루아예는 어렸을 때부터 하프시코드나 오르간을 치는 데에 재능을 보였으며, 1725년 그가 파리에 정착했을 즈음에는 하프시코드 연주자로서 상당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발판 삼아 루아예는 오페라 분야에도 진출하게 되었으며, 1730년 페르멜뤼스[3] 가 대본을 쓴 5막짜리 오페라 퓌로스(Pyrrhus)를 왕립 음악원(현재 파리 오페라)에서 초연한다. 그는 성악도 가르쳤는데, 장필리프 라모의 여러 오페라에서 주연을 맡았던 인기 가수 마리잔 슈발리에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그는 1739년 발레 에로이크[4] 그라나다의 여왕 자이드(Zaïde, Reine de Grenade)를 발표했는데, 이는 1745년 3월 10일 페르디낭 도팽의 결혼식을 기념하여 재연되었을 만큼 많은 인기를 얻었다. 루아예는 그 밖에도 '사랑의 힘(Le Pouvoir de l'Amour)', '알마지스(Almasis)' 등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그는 또한 볼테르의 대본을 바탕으로 '프로메테우스(Prométhée)'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였지만, 그가 1755년 1월 11일 세상을 떠남으로써 초연은 이듬해 겨울로 연기되었다.
그는 1746년에 하프시코드 곡집도 한 권 출판했다. 해당 곡집에서 Le vertigo, La marche des scythes 등이 유명하다. 그가 죽은후인 1756년의 기록을 보면, 하프시코드 곡집 2권을 더 만들정도의 분량인 원고가 남아있다고 적혀있으나, 아쉽게도 해당 원고들은 실전되었다.
그의 시신은 생로슈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나, 해당 묘지는 이후 철거되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3. 활동[편집]
- 퓌로스 (Pyrrhus)
- 그라나다의 여왕 자이드 (Zaïde, Reine de Grenade)
- 사랑의 힘 (Le Pouvoir de l'Amour)
4. 영상[편집]
하프시코드 곡 La Marche des Scythes(스키타이족의 행진). 연주자는 스키프 상페(Skip Sem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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