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다 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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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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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다 세이지
亀田(かめだ誠治(せいじ | Seiji Kameda

출생
1964년 6월 3일 (59세)
미국 뉴욕주 뉴욕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직업
음악 프로듀서, 베이시스트, 편곡가, 작곡가
활동
1989년 – 현재
악기
베이스, 코러스, 프로그래밍
소속 밴드
도쿄지헨(2004년~)
Bank Band(2005년~)
소속사
하프톤 음악, 마코토야
레이블
EMI 레코드
신체
175cm, 66kg
학력
무사시고등학교 (졸업)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 학사)
가족
배우자 시모나리 사토코
슬하 1남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1]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2]

1. 개요
2. 생애
2.1. 초기
2.2. 프로듀서 활동
2.3. 베이시스트 활동
3. 관련 아티스트
4. 여담
5. 관련 문서
6.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카메다씨가 없으셨다면... 여러 가지 일들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승님'이라고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시이나 링고, 2009년 12월 6일 '정열대륙' 인터뷰 中 #


일본음악 프로듀서, 베이시스트, 편곡가, 작곡가. 2004년부터는 밴드 도쿄지헨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편집]



2.1. 초기[편집]


1964년에 미국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다만, 1년 후 귀국하여 쭉 일본에서 생활했다.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기타피아노[3]를 배우기 시작했으며[4], 14세부터 베이스를 시작했다. 음악을 엄청나게 좋아했으며, 음악 리스너로서의 열정도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고, 초등학생 때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따라 '오리지널 TOP 차트'를 스스로 구성했다. 또한 비틀즈와 대중적인 서양 음악을 엄청나게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찍부터 음악에 관련된 일을 꿈꿨으며, 밴드, 백뮤지션, 프로듀싱 담당, 믹싱 엔지니어 - 직종 구분 없이 무조건 음악에 관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교육을 열심히 하는 가정에서 자라 공부벌레처럼 자랐으며,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부터는 밴드를 결성했다.

피아니스트보컬리스트인 요시나카 미키(吉中美樹)와 음악 유닛 'Miki-Pooh'를 결성해, 자택 녹음을 하거나 오디션이나 콘테스트에 자작 데모 테이프를 보냈다. 자신이 전부 작곡, 작사, 편곡, 연주를 한 데모테이프가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나 최우수 작곡상, 최우수 편곡상을 수상하게 되어 '이 상태면 이대로 데뷔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더니 데뷔한 것은 보컬과 외모가 좋은 드러머라는 냉엄한 현실을 맞닥뜨렸다. 이후 카메다는 여러 현장에 나가서 프로 스튜디오를 견학했다. 그러자 뮤지션이나 보컬을 뒤에서 받쳐주는 음악 구조, 예를 들면 디렉터, 엔지니어의 일하는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어서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여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카메다는 데모 테이프 만들기에 집중했다. 그걸 꾸준히 2년 정도 계속하다 보니, 자신의 노래가 아티스트의 싱글이나 앨범 수록곡으로 채택이 됐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1989년, 아이돌 그룹 CoCo의 싱글 곡에 카메다의 곡이 사용됐다. 그러자 다음에는 어레인지를 부탁받아 편곡가로 기용됐다. 같은 현장에서 함께 작업하다 보면 점점 디렉터에게 의견도 말할 수 있게 됐으며, '이 후렴은 코러스가 들어가는 게 좋아요. 저 시험 삼아 만들어 왔어요'라고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면서 '그럼 다음 앨범은 카메다가 다 해봐'라는 얘기가 됐고, 그게 음악 프로듀서의 길로 이어졌다.

여러 아티스트의 작곡, 편곡을 맡게 되자 '카메다를 팀에 넣으니까 뭔가 느낌이 좋네'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카메다는 후일 인터뷰에서 "아무래도 저는 낙관적인 면이 있어서 그 자리의 분위기를 밝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추어 시절의 지인이 그 소문을 듣고 싱어송라이터 사키야 켄지로(崎谷健次郎)의 투어에 베이시스트로서 권유해 줌으로써 연주자로서의 커리어도 시작했다. 20대 중반까지 아마추어 무명이었지만 26세에 작곡가, 편곡가, 베이시스트의 문이 한꺼번에 열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베이시스트로서도 다양한 아티스트의 콘서트나 레코딩에 참가했다.


2.2. 프로듀서 활동[편집]


1998년 레코드 회사 도시바 EMI로부터 신인 가수 시이나 링고를 소개받았다. 회사는 카메다에게 "시이나 링고의 편곡가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했다. 또한 카메다에게 "지금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가사나 멜로디를 쓰는 여자가 있어. 아무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마주해 주는 사운드 프로듀서는 인간적으로 봐도 카메다 정도밖에 없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

카메다: 시이나 링고씨와의 만남도 그랬습니다. 시이나 씨의 노래는 개성이 강하고 가사도 문학적이어서 데뷔 전에는 '어떻게 살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들었는데, '카메다짱이라면 함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만나보지 않을래?'라고 그녀를 소개받았습니다. 시이나 씨는 처음부터 재미있어서 '머라이어 캐리가 좋아요, 사운드 오브 뮤직도 좋아요, 더 피너츠(ザ・ピーナッツ)[5]

도 좋아해요'라고 서양 음악이든 일본 음악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감성으로 좋다고 생각한 건 다 받아들이는 게 저랑 파장이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그녀도 마켓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축이나 하고 싶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타입이었어요. 백기를 올릴 생각은 하지 않고, 이 아이와 함께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이나 씨와 작품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


편곡가로 기용됐지만, 링고의 강렬한 개성을 뒷받침한 실질적인 프로듀서였다고 한다. 링고의 뛰어난 송라이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탁월한 프로듀싱을 했으며, 앨범의 전체적인 사운드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음반사에서는 '더 이렇게 해줘'라든가 '이렇게 해야 팔리지'라고 여러 가지 제안을 했지만, 카메다는 '지금까지 없었던 거니까 하는 겁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요'라며 말하며 일체의 잡음을 물리치기도 했다. 이후 앨범의 모든 작업을 링고와 카메다 두 사람에게 맡겼다고 한다. 링고와 카메다는 약 1년 동안 데모 테이프를 함께 만들었다. 카메다는 2019년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어떻게 보면 링고씨의 방패가 됐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시이나 링고는 음악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카메다를 존경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서 '스승(師匠)'이라고 부르고 있다.





시이나 링고 - 本能
스핏츠 - 春の歌




히라이 켄 - 瞳をとじて
Do As Infinity - 深い森

카메다가 베이스와 편곡을 담당한 링고의 정규 앨범 1집 '無罪モラトリアム'와 2집 '勝訴ストリップ'이 모두 100만장을 넘기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음악 업계에 카메다의 이름이 알려지게 됐고, 2000년대부터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Do As Infinity, 스핏츠, 히라이 켄, 이키모노가카리, 스키마 스위치, JUJU, 하타 모토히로, GLAY, 스가 시카오, 포르노 그라피티, 안젤라 아키, 오오하라 사쿠라코 등의 유명 아티스트부터 아라가키 유이, 아야세 하루카 등의 배우, 요네쿠라 치히로, 모리구치 히로코애니송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수 등 폭넓은 분야에서 프로듀싱에 관여하고 있다. 많은 아티스트들의 명곡들을 프로듀싱해 일본 최고의 레코딩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07년과 2015년에는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편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많은 유명 가수들의 프로듀싱과 편곡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도쿄지헨에서 가장 바쁜 멤버이다. 2009년 기준, 20년동안 70팀 이상의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싱 및 편곡을 담당한 다작 뮤지션이다. 그가 담당한 작품 중 오리콘 차트 베스트 10에 오른 싱글 작품은 120장이 넘었으며, 오리콘 탑 10에 오른 앨범은 280장이 넘었다. 이전에도 폭넓게 활동했지만, 2010년대 들어선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도 담당하고 있으며, 쟈니스 사무소 아이돌의 프로듀싱도 하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20년 영화 '실: 인연의 시작'의 음악 감독을 담당해,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우수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카메다는 인터뷰에서 "장르 구분을 해서 울타리를 만들어 버리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음악에 대해서도 그런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카메다는 "프로듀서의 일의 절반은 청취"라고 말하고 있으며, 아티스트의 의사를 제대로 듣는 것을 소중히 한다고 밝혔다.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아티스트가 납득하는 것이 대전제라고 한다. 앨범 제작시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카메상'이라고 자칭할 정도로 거의 듣는 역할이 철저하며, 아티스트와 회의를 반복해 카메다가 착수하는 것이 '카메다 데모'라고 불리는 사운드 디자인의 제시다. # 이러한 자세가 다른 프로듀서가 '힘에 부친다'라고 생각하는 아티스트에게도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의 프로듀싱은 아티스트의 매력이나 개성을 놓치지 않고, 그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낸다고 평가받고 있다. 개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아티스트들에게 다가서는 자세가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발언들은 카메다의 프로듀싱 철학을 알 수 있는 글들이다.

그래서 프로듀싱을 하는데 있어서 저의 모토인데 어쨌든 가장 유념하고 있는 것은 '아티스트의 장점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그 아티스트를 저의 색깔로 염색하는 게 아니라 그 아티스트 안으로 제가 들어갑니다. 기본적으로는 그런 식으로 프로듀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시이나 링고씨의 프로듀싱도 하고, 히라이 켄군과 같은 R&B, 팝스 계열의 일도 합니다. 그리고 안젤라 아키 씨 같은 솔로 아티스트도 하고 스핏츠 같은 밴드 프로듀싱도 하는데 매번 아티스트 안에 제가 들어가서 새로운 내 안에서 페이지를 열어가는 식입니다.

프로듀스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저것 논의하거나 능서(能書)를 기울이기 전에, 거기에 있는 음악에 솔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핏츠라면 쿠사노 마사무네 군이 만들어 온 데모 테이프를 듣고 '그 곡의 멜로디나 가사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녹음 중에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는데 거기서 '아니, 비틀즈는 이러고 있었으니까' 이런 방법론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지금 거기에 있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하는 게 좋겠지, 그럼 시도해 보자' 이런 식으로 들어가는 거죠. 시도해보고 안되면 다르게 접근해보듯이 저는 어쨌든 거기에 흐르는 음악에 대해 솔직해집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음악을 만들다 보면 좋은 테이크를 담기도 하고, 좋은 노래를 녹음하기도 하고, 좋은 곡이 완성되기도 합니다. 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시점에서 멈추는 거죠. 그 이상으로 시도하고 싶은 것은 다음 작품에서 합니다. 하지만 뭔가 1점이라도 신경이 쓰이는 경우는 절대로 고집하여 고쳐 나갑니다. 저는 '분재를 만지작거리게'라고 자주 말하는데,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멈추고 부감으로 보고 불필요한 잎사귀가 튀어나왔다고 생각하면 가위를 좀 넣어서 갈고 닦습니다. 그렇게 좋은 곳에서 멈추고 욕심이 너무 많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이나 창의적인 것은 태어나는 순간의 온도감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욕심을 많이 내거나 '좋지만 다른 패턴도 시도해 보자' 이런 걸 계속 하다 보면 그 열정이 점점 식어서 뻔한 결과가 된다는 경험을 저는 많이 해왔습니다. 아까 저는 아티스트의 색깔로 물들어간다고 했는데 좋은 게 생겼는데 새로운 접근을 하려고 할 때는 '이제 이쯤에서 멈추자, 이거면 돼.' 하고 그 부분을 순간 냉동해 버리는 수법을 기본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2.3. 베이시스트 활동[편집]






2017년 베이스 연주
호테이 토모야스와 연주

프로듀서로 굉장히 유명하지만, 베이시스트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음반에 세션 연주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수많은 공연에 참가해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온갖 공연에서 베이스 객원멤버로도 출연하고 있기 때문에 Do As Infinity호테이 토모야스 등의 공연 영상에서 뜬금없이 베이스를 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2005년부터는 미스터 칠드런의 사쿠라이 카즈토시가 창설한 Bank Band의 베이시스트로 참가하고 있다. 또한 2015년부터는 린토시테시구레의 드러머 피에르 나카노,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의 기타리스트 카토 타카시, 도쿄지헨의 이자와 이치요와 함께 일본 록 페스티벌 Viva La Rock에서만 공연하는 커버 밴드 Viva La Rock Anthems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베이시스트로서 탁월한 테크닉과 뒤틀린 음색으로 유명하다. 오버드라이브 이펙터를 사용하여 왜곡된 베이스의 소리와 피크로 연주하는 그루브감과 곡을 살리는 베이스 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카메다가 높게 평가받는 점은 아티스트들의 노래마다 정확하게 판단하여 주법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또 틀에 박히고 정형화된 베이스 라인이 아닌 의외의 라인을 연주하기도 한다. Fender사의 Jazz Bass를 애용하고 있으며, 폴 매카트니모타운 사운드에 영향을 받은 베이스 플레이로도 알려져 있다.

카메다: 편곡으로 베이스를 칠 때도, 도쿄지헨이나 Bank Band 같은 제가 참여하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칠 때도, 드러머나 스튜디오에 따라 상황은 다르지만 항상 같은 생각으로 베이스를 치고 있어요. '카메다 씨는 항상 고집해서 베이스 소리를 만들고 있다'고 다들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치는 베이스 소리는 20년 전부터 변하지 않았고, 분명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항상 저는 '카메다 세이지가 연주하는 베이스'를 치고 있고, 제 소리는 최고라고 생각하고 믿고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곡에 따라 어떤 식으로 녹음하면 좋을지 엔지니어와 상의하면서 조립해 나갑니다. 결국 제 베이스 단체를 꺼내서 듣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어요. 드럼 킥이나 기타의 낮은 배음을 서로 도와주며 곡으로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까를 이미지화하면서 어디까지 가도 잘 들리고 그 곡에 공헌하는 음색, 프레이즈를 연주하고 그루브를 냅니다. 그렇게 유의하고 있습니다. #


카메다의 베이스 라인은 꾸준히 인기가 높아서, 지금까지도 폭넓은 세대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베이시스트다. 2022년 일본 남성들이 뽑은 "일본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베이시스트 랭킹"에서 3위를 차지했다. #


2.4. 도쿄지헨 활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도쿄지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04년에는 시이나 링고에게 권유를 받아 도쿄지헨에 가입해 밴드 데뷔를 했다. 도쿄지헨에서 카메다가 만든 자작곡은 '투명인간(透明人間)', '섬광소녀(閃光少女)', '하늘이 울리고 있어(空が鳴っている)' 등이 있다. 의외로 귀여운 팝적인 곡도 있으며, 쿨하고 멋있는 노래도 작곡했다. 카메다의 자작곡은 대부분의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3. 관련 아티스트[편집]


카메다 세이지와 협업하거나 카메다에게 프로듀스, 편곡, 곡을 제공받은 아티스트들을 정리하는 문단. 주요 담당 아티스트는 굵게 표시함. 일본어 위키백과 참고.

  • Ayaka
  • B'z[6]
  • back number
  • THE BACK HORN
  • CoCo
  • Creepy Nuts
  • Do As Infinity[7]
  • Every Little Thing
  • FANTASTICS from EXILE TRIBE
  • flumpool
  • GLAY[8]
  • JUJU
  • K
  • KinKi Kids
  • Kis-My-Ft2
  • L'Arc~en~Ciel
  • Little Glee Monster
  • MISIA
  • MIYAVI
  • NEWS
  • NICO Touches the Walls
  • puffy
  • SCANDAL
  • Sexy Zone
  • SOPHIA
  • WEAVER
  • V6
  • 나가사쿠 히로미
  • 대성[9]
  • 도모토 코이치
  •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
  • 마츠 다카코
  • 비비안 수
  • 사쿠라이 테츠오
  • 스가 시카오
  • 스키마 스위치
  • 스핏츠
  • 시이나 링고[10]
  • 아라가키 유이
  • 아라이 아키노
  • 아야세 하루카
  • 아이나 디 엔드[11]
  • 안젤라 아키
  • 야마모토 사야카
  • 엘리펀트 카시마시
  • 오오모리 세이코
  • 오오하라 사쿠라코
  • 우에무라 카나
  • 우치다 유키
  • 이시카와 사유리[12]
  • 이키모노가카리
  • 카타히라 리나
  • 칸쟈니∞
  • 코다 쿠미
  • 타카하시 유우
  • 테고마스
  • 토모사카 리에
  • 포르노 그라피티
  • 플라스틱 트리
  • 하마사키 아유미
  • 하타 모토히로
  • 호시노 겐[13]
  • 후지이 후미야
  • 후카다 쿄코
  • 히라이 켄[14]


4. 여담[편집]


  • 시이나 링고가 그를 '카메다 스승(亀田師匠)'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것이 도쿄지헨 멤버들과 팬들 사이에서 애칭이 됐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카메비(かめ美)'라고 불린다.

  • 중학교 졸업앨범에 “다들 10년 후 무도관에서 만나자”고 썼다고 한다. 그래서 25년후 도쿄지헨의 베이시스트로서 무도관에 섰을때는 정말 감개가 깊었다고 밝혔다. #


  • 자신이 매력적인 아카이브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으면, 타인의 매력은 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음악을 듣는다고 말했다. 일단 차를 타면 Spotify의 '글로벌 TOP50 랭킹'이 반드시 나온다고 하며, 저스틴 비버, 방탄소년단의 음악도 듣는다고 밝혔다. #
단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접해 온 음악, 즉 서양음악 히트 차트가 내 세포 구석구석까지 들어가 있다는 것 입니다. 수천 곡, 몇 만 곡이라는 명곡의 아카이브가 제 안에 들어 있어요. 오랜 세월 씹어서 자신의 혈육이 되어 있는 것을 그 때 자신의 필터를 통해 내놓도록 하고 있습니다. #

  • 팝 & 애니메이션송 가수 시모나리 사토코(下成佐登子)와 결혼했다. 시모나리는 세계명작극장 애니메이션 '소공녀 세라'의 오프닝 테마와 엔딩 테마를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다.

  • 메인으로 사용하는 베이스는 Jazz Bass다. 20세 때 시부야의 악기점에서 구입해, 지금까지 35년 이상 사용하고 있다. 시이나 링고, Do As Infinity, 히라이 켄 등 자신이 깊이 관여한 음악 연주는 모두 이 베이스를 사용했다. # 2010년부터는 야마하와 카메다가 공동 제작한 시그니쳐 모델 BB-2024SK도 사용하고 있다.

  • 푸근한 이미지로 한국 팬들에겐 유동근을 닮았다는 말도 듣는다. 은근 개그의 욕심이 있어 콘서트에서 큰 웃음을 주기도 한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지식을 자유롭게 공유해, 새로운 재능을 응원하는 '보은'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 미스터 칠드런의 프로듀서 유명한 고바야시 타케시(小林武史)를 동경한다고 말했다. 고바야시가 프로듀스한 真夏の果実을 듣고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 도쿄지헨의 최연장자(1964년생)지만 모히칸 스타일 머리 등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이기도 한다.[15] 의외로 '空が鳴っている(하늘이 울리고 있어)'에서 공개된 수염 깎은 모습에서 동안적인 면모를 보였다.

  • 2009년에는 일본 무도관에서 자신이 총지휘한 '카메의 보답'이라는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 라이브 이벤트는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 준 음악이나 리스너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기획됐다. 시이나 링고, 히라이 켄, 스핏츠 등도 출연했다. #


  • 2019년 6월, 실행위원장으로서 무료로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음악 페스티벌 '히비야 음악제'를 도쿄 히비야공원 일대에서 개최시켰다. # 이 페스티벌은 2일간 약 10만명이 방문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개최가 중단된 히비야 음악제 스태프들을 위해 실행위원장으로서 원조금을 지급하는 크라우드펀딩을 설립했고 트위터에서도 적극적으로 기부금을 호소했다. 이후 목표액을 달성해서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에게 지원을 해줬다.

  • 일본에서 '베이스의 날'을 제정한 사람이기도 하다. #


  • 2012년부터 J-WAVE에서 라디오 DJ로 활동하고 있다. #


  • 히라이 켄은 2009년 12월 6일 '정열대륙' 인터뷰에서 카메다에 대해 "천재같은 느낌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5. 관련 문서[편집]




6. 외부 링크[편집]



[1] 음악 프로듀싱 관련 공식 사이트이다.[2] 유튜브 이름은 '고양이의 눈깜박임'[3] 3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고 한다.[4] 어머니가 음악을 좋아해서, 집안에 클래식이 계속 흘렀다고 한다.[5] 50년대~70년대에 활동한 일본의 여성 보컬 그룹[6] 2018년 B'z의 신곡 'Wolf'의 베이스로 참여[7] 2000년 3번쨰 싱글 'Oasis'에 편곡가로 참가한 이후, 지금까지 사운드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다.[8] 2013년 이후 GLAY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9] 일본 정규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10] 1집 無罪モラトリアム, 2집 勝訴ストリップ, 커버 앨범 唄ひ手冥利~其ノ壱~ 전곡 편곡. 1998년~2002년에 걸친 링고의 싱글에 프로듀싱과 편곡을 했으며, 레코딩에 베이스로서 참가했다. 2002년 이후로는 링고의 편곡가로 활동하고 있지 않지만, 콘서트 투어와 데뷔 10주년 기념 라이브, NHK 홍백가합전 라이브에도 베이스로 참가하고 있다.[11] 2021년 아이나 디 엔드의 데뷔 앨범 'THE END'를 프로듀싱 및 편곡했다.[12] 시이나 링고의 소개로 만났다고 한다.[13] 호시노 겐은 자신의 모든 노래를 본인이 직접 편곡했지만, 개그(ギャグ)라는 노래는 카메다에게 편곡을 맡겼다.[14] 2002년 '大きな古時計'의 프로듀싱, 편곡, 베이스를 담당한 이후, 다수의 앨범에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다.[15] 파일:kamedamohican(1).jpg 파일:kamedamohican(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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