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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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7월 5일 ~ 2013년 3월 21일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종교는 개신교(감리교)이다[1] .
1936년 경기도 강화군(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공민학교만 졸업한 후 인천시로 이주하여 고학으로 중학교, 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한 후 동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이던 1964년 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하여 6.3 항쟁에 참여하였다가 구속되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재학 중이던 1966년 크리스마스 공휴일 지정에 대해 기독교만의 기념일이라는 사유로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각하되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후 건설공제조합에서 근무하며 기획과장 등을 지냈다. 1980년 음력 설날의 공휴일 지정을 청원하였으나 거부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김포군·강화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정해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일국민당 김두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인천 강화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강화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강화군수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유병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며 3선에 실패했다. 참고로 1995년부터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민선 강화군수를 선출한 이래 유일하게 뽑힌 민주당계 정당 출신 강화군수다.[2] 옹진군과 함께 인천의 보수정당 텃밭으로 꼽히는 강화군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의미있는 성과였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봄, 지병인 골수이형성 증후군으로 작고하였다.
가족관계로는 부인 박정자 여사와 장남 김정구와 차남 김이구를 두었다.
2. 선거 이력[편집]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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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혜감리교회 장로이다. 부인은 권사.[2] 나머지는 보수정당 소속으로 당선됐거나 무소속으로 당선된 군수들이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군수들도 대부분 보수정당에 입당했고 이상복 전 군수는 군수직에서 퇴임한 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