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펠코프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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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도펠코프 작전은 랴지민 전투와 함께 독일군이 바그라티온 작전기에 소련군을 상대로 진행한 2개의 작전술적 반격 중 하나이다. 목표는 중부집단군과 북부집단군의 연속된 전선을 재구축하는것이었으며 리가에서 전선을 연결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전과 확대에 실패하며 독일군의 전술적 승리가 되었다.[3] 랴지민 전투가 소련군의 폴란드 서부 진출을 막아내면서 중부 전구에서 소련군의 공세를 끝냈다면 도펠코프 작전은 북부집단군을 구해내면서 소련군의 차후 공세를 6주나 늦추는데 성공했다.
2. 전선의 상황[편집]
3. 전투 서열[4][편집]
3.1. 독일군[편집]
- 중부집단군 ( 사령관 : 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 상급대장 )
3.2. 소련군[6][편집]
- 제1 발트 전선군 ( 사령관 : 이반 바그랴만 대장 )
- 제3근위기계화군단
- 제19전차군단
- 제2근위군
- 제11근위소총군단
- 제13근위소총군단
- 제54소총군단
- 제1전차군단
- 제6근위군
- 제2근위소총군단
- 제23근위소총군단
- 제103소총군단
- 제51군
- 제1근위소총군단
- 제10소총군단
- 제63소총군단
4. 공세 준비[편집]
독일군은 공세를 위해 6개 기갑사단과 1개의 사단급 기갑전투단을 2개 기갑군단에 배속시켜 투입했다. 15일 기준으로 3기갑군이 보유하고 있던 기갑 전력은 다음과 같다. 아래 수치는 가동가능(단기수리/장기수리) 순이며 따라서 독일군은 공세 개시 당시 399대의 가동 가능한 전차/돌격포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추가로 215대의 단기간[7] 에 수리 가능한 전차/돌격포를 포함해 총 722대를 보유중이었다. 여기에 해상으로 수송 되고 있던 기갑차량들까지 가세하면서 독일군의 기갑전력은 공세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계속 증가했다.
- 제4기갑사단 - 4호 전차 32(31/5), 5호 전차 15(23/9)
- 제5기갑사단 - 5호 전차 24(10/10)
- 제6기갑사단 - 4호 전차 26(18/7)
- 제7기갑사단 - 5호 전차 19(25/18), 돌격포 5(0/1)
- 제12기갑사단 - 4호 전차 25
- 그로스도이칠란트 기갑연대 1대대 - 5호 전차 30(15/3)
- 그로스도이칠란트 기갑척탄병사단 - 4호 전차 7(1/0), 5호 전차 41(13/28), 6호 전차 B형 29(8/0), 돌격포 20(4/1)
- "폰 베르터" 기갑척탄병 여단[8] - 4호 전차 1(2/4), 돌격포 4(4/9)
- 제510중전차대대 - 6호 전차 B형 13(27)
- 군/군단 직할부대 - 돌격포 108(34/13)
5. 전개[편집]
6. 결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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