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큐리 에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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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ght
1. 개요
2. 상세
2.1. 1세대(1939~1940)
2.2. 2세대(1941~1942,1946~1948)
2.2.1. 호주 시장
2.3. 3세대(1949~1951)
2.3.1. 단종
3. 미디어에서
4. 게임에서
5. 모형화
6. 여담
7. 둘러보기


Mercury Eight/Mercury Club Coupe Utility[1]

1. 개요[편집]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인 포드 산하의 사라진 브랜드인 머큐리에서 생산했던 최초의 차량이다.

2. 상세[편집]


쿠페, 세단, 컨버터블, 왜건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구축된 차량이기도 했다.

2.1. 1세대(1939~1940)[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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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타운 세단(99A-73형)

The car that truly dares to ask 'Why?'
'왜?'라고 묻는 것이 정말 무모하다 느껴지는 자동차

출시 초기 광고 슬로건

1938년에 출시되었으며, 1939년형 차량은 99A라는 이름으로, 1940년형 차량은 09A[2]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으나, 같은 에이트의 역사로 취급하고 있다. [3] 포드 디럭스링컨 사이의 포지션을 갖춘 차량이었으며, 독자적인 섀시가 적용되었다. 특히 위와 같은 광고를 통해 대형차 역시 경제적일 수 있다는 내용의 홍보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당시 차량의 가격은 1,000달러[4] 정도에 책정되었는데, 이는 포드 V-8보다 100달러[5] 정도 비싼 편이었으나, 윗급인 링컨 제퍼에 비해 수백 달러 이상 쌌다. 경쟁사인 닷지, 올즈모빌, 허드슨의 차량들이나 아랫급인 드 소토, 뷰익과 비슷한 가격대에 위치했었다. 이중 선바이저는 1940년형 차량부터 추가되었고, 차량의 브레이크는 12인치 드럼 형태로 구성되었다.

차량의 전장은 4,978mm이며, 휠베이스는 2,946mm였다. 라인업은 2도어 쿠페, 컨버터블, 세단과 4도어 컨버터블 및 세단으로 구성되었다.

파워트레인은 3.9L 포드 플랫베드 V8 엔진이 탑재되어 95마력의 파워를 냈다. 디자인은 링컨 제퍼의 요소를 받아들였으며, 당시 좋은 크기의 자동차라는 점과 20mpg[6]의 연비를 기록했다고 점을 가지고 포드에서는 어떤 자동차들도 이 차의 경제성에 필적할 수 없다라는 취치의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1940년대 말에는 15만명 이상의 소유주들이 자신들의 자동차로 바꿨다는 헤드라인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2.2. 2세대(1941~1942,1946~1948)[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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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형 에이트 쿠페 사양

1941년에 출시되었으며, 디자인 변화와 공학적인 향상이 이루어졌다. 포드에서 원가절감을 위해 1세대와 다르게 독자개발 섀시가 아닌 포드의 차체를 적용시켰다. 1940년 이후 4도어 컨버터블 사양은 단종된 대신 스테이션 왜건 사양이 추가되었다. 에이트의 로고는 후면부 후드 쪽으로 위치가 변경되었다..

공학적인 향상의 경우 주로 섀시 부분에서 이루어졌는데, 전장, 걸쇠, 스태빌라이저 바와 같은 부분이 개선되었으나, 1세대의 횡방향 스프링은 계속 유지되었다. 러닝보드 위로 튀어 문 바닥부가 특징이었으며, 차량의 실내 및 좌석을 넓힌 것이 특징이었다.이로 인해 차량의 헤드룸이 51mm 넓어졌으며, 유리 면적이 더 넓어진 것이 특징이다. 전면 펜더는 기존 3개에서 2개로 감소하였다.

전면 필러 부분은 얇아졌으며, 전면 유리가 더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가파른 형태로 변경되었다. 주차등은 펜더 위에 따로 설치해 시야 개선이 이루어졌으며, 헤드램프 베젤의 수정이 이루어졌다.이 시기부터 닫힌 형태로 된 머큐리제 차량들의 후면 창문이 열리는 형태로 변경되었다.[7]

전면 환기구 윙은 2세대부터 크랭크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차량이 닫혀 있을 때에는 이 윙이 지지대와 함께 굴러 떨어지는 특징이 있었다. 엔진 콜[8] 뒤의 우디[9] 왜건 형태의 차체는 포드 사의 것으로 통일이 이루어졌으며, 생산은 미국 미시간 주 어퍼 페닌술라 지역에 위피한 아이언 마운틴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총 90,556대의 에이트가 첫 해인 1941년에 판매되었다.

파일:1942년 에이트.png
1942년형 에이트 라인업[10]

1942년형에는 기존의 가느다란 총알 형태의 주차등이 직사각형 형태로 변경되었다. 러닝보드와 같은 경우는 문 바닥부에서 완전히 가려지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계기판은 왼쪽에 게이지가 적용된 속도계와 시계가 동일한 원 2개 형태로 구성되었고, 중앙에 글로브 박스와 대형 라디오 스피커가 존재했다. 차량의 그릴은 링컨 제퍼컨티넨탈과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EIGHT'로 이루어진 로고가 사라진 대신 그릴 중앙 상단부에 '8' 형태로 변경되었으며, 3.9L 포드 플랫베드 V8 엔진은 100마력으로 출력이 상승했다. 그와 함께 포드 사 최초의 반자동 변속기인 'Liquamatic'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이는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고, 1951년에 'Merc-O-Matic'이라는 자동변속기로 대체되었다. 1942년형은 총 1,902대밖에 생산이 되지 못했는데 이는 1941년 12월에 일본에 의한 진주만 공습이 이루어지면서 미국에서는 자동차 공장에서 전쟁 물자를 독점 생산하게 하면서 2월을 끝으로 1946년형 출시 전까지 임시적인 단종이 이루어졌다.

비록 2세대 초기형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판매되었으나, 속도 및 연비 부분에서는 인정을 받았고 에드셀 포드가 정한 빠른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의 영어식 표현인 '머큐리'라는 이름과 상당히 일치해 호평을 얻었으나, 비싼 포드라는 부정적 인식도 존재했다. 이로 인해 1945년포드에서는 '링컨-머큐리'의 형태로 분리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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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생산된 1946년형부터는 1942년형과 다른 새로운 그릴이 적용된 것이 특징이며, 차체의 색상과 같은 색을 사용한 얇은 수직 바가 적용된 것이 특징이었다. '8' 로고는 중앙 지역의 아랫부분으로 위치가 변경되었으며, Liquimatic 변속기는 사양은 폐기되었다.

파일:머큐리 스포츠맨 컨버터블.png
스포츠맨 컨버터블 사양

우드 형태의 차체 패널이 적용된 스포츠맨 컨버터블 사양이 추가되었으며, 이 해를 끝으로 총 205대만 생산되고 단종되었다. 같은 해 에이트의 총 판매량은 88,603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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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형 에이트

1947년형은 큰 변화가 없지만, 후드 측면의 변화와 허브캡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릴 주변의 테두리는 크롬 도금으로 이루어졌으며, '8' 로고는 기존 위치에 있었으며, 새로운 트렁크 트림이 적용되었다. 크롬 부분은 실내에 더 많이 적용되었고 대시보드의 수정이 이루어졌다.

가죽 커버가 적용된 컨버터블 및 스테이션 왜건 사양이 부활했으며, 86,363대의 차량이 판매되었다. 1948년형은 1947년과 다르지 않게 나왔고 스티어링 칼럼 록이 사라진 변화만 존재했으며 총 50,268대가 판매되었다.

차량의 전장은 5,121mm에서 이후 5,126mm로 늘어났고, 공차중량은 1,500kg~1,700kg이었다. 휠베이스는 1세대의 2,946mm에서 2,997mm로 늘어나게 되었다.

2.2.1. 호주 시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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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트(ute) 사양

1946년부터 1948년형으로 생산된 쿠페형 유틸리티 차량이 있었으며, 독특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차량명은 머큐리 클럽 쿠페 유틸리티로 판매되었으며, 2,997mm 휠베이스와 10[11]~12[12] cwt[13]의 견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1946년형은 S9A형으로 1947년형과 1948년형은 6M으로 판매되었으며, 패널 밴 사양도 존재하였다.

2.3. 3세대(1949~1951)[편집]


파일:1949년 머큐리 에이트 쿠페.png
1949년 스포츠 쿠페 사양

1949년형으로 출시되었으며, 2세대와 다르게 링컨 브랜드에서 사용하던 차체가 적용되었다. 차량의 파워트레인1949 포드보다 조금 더 좋은 4.2L 플랫헤드 V8 사이드밸브 엔진[14]이 탑재되었다. 오버드라이브 시스템 같은 경우, 대시보드 아래의 핸들에 의해 작동되는 구조였으며,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자동차 디자인 언어인 '폰톤' 방식이 채택되었다. 이로 인해 2차 대전 이전의 단조로운 디자인과 구별이 안 가던 포드머큐리 브랜드 간의 차별화가 이루어지는 시장 전략이 구상되었고 이로 인해 1949년 판매량은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링컨 브랜드에서 판매하던 코스모폴리탄에도 적용되었다.

풀 인스투르멘탈 방식의 계기판이 사용되었고, 8개의 튜브로 된 AM 라디오가 옵션으로 적용되었다. 2세대에 판매되던 스테이션 왜건 사양은 2도어 왜건으로 교체되었으며, 지붕은 금속으로 이루어졌으나, 차체 측면의 우드 장식이 적용된 것이 특징이었다. 이 목재는 포드 아이언 마운틴(킹스포드)[15]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전면부 서스펜션은 독립식이었으며, 스테이빌라이저 바가 적용된 것이 특징이었다.

당시 3세대 에이트는 여러 차량 개조업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여러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기도 하는데, 1949년에 샘 베리스라는 사람은 이 차를 이용해 '납 썰매'를 만들었으며, 1953년에는 49년형 차량을 이용해 조지 베리스와 함께 밥 히로하타를 위한 '히로하타 머크'(Hirohata Merc)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센세이션을 불러왔고, 여러 잡지에서 소개가 되기도 했으며, 이후 1991년에 로드&커스텀 지에서는 '20대 최고의 작품'에도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이 차의 섬유유리 복제품은 아직도 생산되고 있으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파일:1951 머큐리 에이트.png
1951년형 컨버터블 사양

1950년형은 제너럴 모터스의 하드탑 차량과 경쟁하기 위해 포드 크레스트라이너, 링컨 리도 쿠페, 코스모폴리탄 카프리 쿠페 등이 생겨나면서 이에 따라 2도어 쿠페 사양인 몬테레이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후 에이트를 대체하는 차량으로 판매되었다.

2.3.1. 단종[편집]


1952년포드에서 포드-머큐리-링컨의 형태로 전략을 변경했고, 그에 따라 머큐리 몬테레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되었으며, 몬테레이는 1974년까지 판매가 이루어졌다가 2004년미니밴으로 잠깐 부활해서 2007년까지 판매되다가 판매 부진으로 단종되었다.

3. 미디어에서[편집]



4. 게임에서[편집]



5. 모형화[편집]


  • 머큐리 브랜드에서 생산된 차량 중에서 모형화가 잘 이루어진 차량이며, 초기에 나온 턴파이크 크루저머라우더[16] 등은 모형화가 잘 이루어진 반면, 머큐리 세이블[17]이나 2000년대에 생산된 밀란, 마리너, 마운티니어 등과 같은 차량들은 모형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비대칭적인 모형화 양상을 보여주는 것도 특징이다.

  • 1990년대 마텔 산하의 핫휠에서 'Purple Passion'이라는 이름으로 개조한 튜닝카 다이캐스트를 선보인 적이 있다.

6. 여담[편집]


  • 스티븐 밀러 밴드의 머큐리 브랜드와 관련한 노래인 'Mercury Blues'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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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세대 차량의 호주시장 수출명[2] 그럼에도 상단 후드 부분에 앞뒤로 이어지는 더블 레드 바 형태의 크롬 앰블럼에 '에이트'라는 이름이 들어가기는 했다.[3] 이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현대 쏘나타의 1세대 차량인 스텔라의 고급형인 '소나타'나 현대 아반떼의 전신인 엘란트라, 현대 스타렉스 이전에 만들어진 그레이스를 역사에 포함하는 예와 비슷하다.[4] 현재 달러 가치로는 약 117만원 정도이다.[5] 약 12만원[6] 약 8.5km/L[7] 물론 당시 머큐리 차량이라 하면 에이트 라인업밖에 없었기 때문에...[8] cowl, 대시보드와 윈드실드 등이 이를 구성하고 있다.[9] woodie, 나무 등이 적용된 형태의 미국식 스테이션 왜건의 일종이다.[10] 당시 미국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다 보니 배경 속 인물들 중에는 군인이 많이 섞여 있다.[11] 약 508kg[12] 약 610kg[13] Hundred Weight, 1 cwt=약 50.8kg[14] 당시 경쟁사인 GM 산하의 올즈모빌이나 캐딜락OHV 방식의 V8 엔진을 개발해 탑재하던 시기였다.[15] 미국 최대의 목탄 생산업체이다.[16] 이는 예외로도 볼 수 있는데, 2003년에 출시된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 기반의 차량도 그린라이트를 통해 출시된 적이 있다.[17] 2세대 왜건 사양 정도만 모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