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수트 외질/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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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메수트 외질의 국가대표 경력을 다룬 문서이다.

2. 초창기[편집]


독일과 터키 이중국적자여서 모국인 터키가 자국 대표 선수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외질의 선택은 태어나고 자란 독일이었다. 2006년 독일 17세 이하 대표팀에 첫 발탁되었고, 이후로 연령별 대표팀을 소화하면서 2007년 21세 이하 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 이후 2009년, 21세 이하 유럽선수권 대회에 잉글랜드와의 결승전에서 골을 넣어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면서 독일의 우승을 견인시켰다.

2009년 2월 11일, 노르웨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독일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첫 A매치에 출전하였고, 9월 5일,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3경기만에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2018년 7월 23일 독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월드컵 전 독일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인 미하엘 발락이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외질은 이러한 세간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좋은 활약을 보이며 키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조별예선 세르비아와 경기에서는 클로제의 퇴장으로 독일이 열세인 상황이었으나, 창조적이고 절묘한 패스를 선보이며 오히려 한 명이 더 많은 세르비아와 대등한 경기 운영을 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루카스 포돌스키가 그 찬스를 다 날려먹고 결국 외질이 교체되어 나간 후 독일은 이렇다 할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후 가나와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팀의 16강을 이끌었다.

잉글랜드와 16강 경기에서는 왼쪽을 휘저으며 뮐러, 케디라 등과 함께 잉글랜드 수비진을 쌈싸먹고 팀을 8강에 올려놓았다. 골은 넣지 못했지만 첫번째 골을 제외한 모든 독일의 골이 그의 발을 거쳐 만들어졌다. 8강에서도 포돌스키와 함께 안 그래도 (비교적) 구멍으로 지적되던 아르헨티나의 오른쪽 수비진을 잘 돌파해내며 좋은 활약을 보였다. 비록 4강전인 스페인전에서는 패해 독일은 4강에 머물렀지만 토마스 뮐러, 트로초우스키, 토니 크로스등 독일의 20대초반 신인선수들과 함께 활약하며 독일팀을 4강에 올려놓으며 화려한 신고식을 알린 대회로 남게되었다.

남아공 월드컵 직전에는 신인왕 후보 다크호스 정도로 평가받았으나, 월드컵 후에는 남아공 월드컵이 낳은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안드레아 피를로, 프랭크 램파드, 스티븐 제라드, 카카 등등 MF 포지션의 탑클래스 선수들이 다같이 죽을 쑨 판국에서 더 돋보인 결과였다. 같은 포지션에서는 네덜란드베슬리 스네이더르, 스페인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정도가 그보다 나은 활약을 펼쳤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4. UEFA 유로 2012[편집]


UEFA 유로 2012 예선에서 7어시스트로 예선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본선에서도 1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대회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 8강 그리스전에서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경기 MOM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팀은 4강전에서 이탈리아에 1-2로 패하면서 탈락했고, 외질은 이 날 독일의 유일한 득점이 되는 골을 PK로 득점했다.


5.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편집]





조별 본선 첫 경기였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는 시작하자마자 2-0이었던 점수와는 달리 경기력 자체는 별로였던 전반전을 홀로 하드캐리하는 활약을 펼치며 궁합이 맞는 공격수만 있다면 상대를 찢어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뢰브는 다음 경기인 가나전을 대비해 65분경 외질을 빼며 휴식을 취하게 해줬다.

2번째 경기의 상대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만나 멋진 득점을 보여줬던 가나. 가나는 전 경기였던 미국전에서 극장 경기에 당한 반면, 독일은 호날두가 버티는 포르투갈을 4-0으로 대파했기에 독일의 우세가 점쳐졌다. 허나 생각외로 고전하고 2선(외질, 괴체, 크로스)이 전반적으로 부진에 빠지며 무승부에 그쳤다. 경기 막판에는 양 팀이 서로 지친 와중에도 끝까지 승점 3점을 얻기 위해 치열한 공격을 추구하며 즐거운 축구를 선보였다.

낙승이 예상됐던 알제리와의 16강 경기에서는 부진했다. 외질을 측면에 두지 말라는 건 레알 마드리드 시절 모리뉴가 보여줬는데 뢰브는 괴체와 외질을 모두 윙에 두는 본인만 이해할 수 있는 전술을 들고 나온 것. 게다가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던 4터백의 수비 라인이 이 경기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크로스, , 슈바인슈타이거의 3중앙 미드필더들로는 전진이 안되니 외질, 괴체, 뮐러 모두 고립. 결국 후반 시작과 동시에 괴체가 쉬를레로 교체되며 뢰브 본인도 자신의 실패를 인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교체 투입된 쉬를레가 연장전에 선제골을 넣으면서 승기를 잡고 외질이 쐐기골을 넣으며 1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알제리에게 신승을 거뒀다. 종합하자면, 뢰프의 전술적인 패착과 측면과는 영 맞지 않는 외질 그리고 현지 기후의 삼위일체 아래 득점은 했으나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경기였다.

4강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7-1 승리에 묻힌 감이 좀 있지만 외질은 간만에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득점 찬스를 놓치면서 자비를 베푼 것은 덤.[1] 해설자로 나선 아르센 벵거는 외질은 스코어러가 아니며 득점 상황에서 심리적인 위축을 받는 경향이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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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역시 왼쪽 측면으로 선발출전했다. 경기 전 워밍업에서 경미한 부상을 당한 사미 케디라 대신 선발출전한 크라머가 31분만에 뇌진탕으로 빠지자 외질은 본연의 위치인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고,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확실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독일의 우승으로 외질은 4년 전에 들지 못한 월드컵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이적한 아스날의 무관을 끊은데 이어 월드컵까지 들어올렸기에 만족스러운 시즌의 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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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이셔널한 플레이를 보여준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비해 부진했다고 평가를 받은 대회였지만, 막상 다 끝나고 뚜껑을 열어보니 독일 팀내 찬스메이킹 1위, 최다 키패스 성공, 최다 드리블 성공의 스탯을 보여주었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 이후 폭발적인 활동량의 플레이를 보여주기 보다, 간결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패스와 공간활용으로 찬스를 만드는 스타일로 변화했기에, '독일의 에이스 외질'이라는 이름값에 비해 보이는 플레이만으론 다소 아쉬워 보일수도 있다.

월드컵이 독일의 승리로 끝나고 30만 유로(약 4억 1,800만원)의 보너스를 독일 축구 연맹 측으로부터 받게 되자 외질은 이 돈을 전액 기부한다고 밝혔다. 독일의 승리에 기여한 국가대표팀 23명의 상징성을 고려해 23명의 브라질 어린이 환자들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데 쓸 것이라고.#


6. UEFA 유로 2016[편집]


조별리그 1차전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전, 교체투입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추가골을 돕는 왼발 크로스를 올리며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독일 팀은 2-0 승리로 대회를 시작했다.

조별리그 2차전 폴란드와의 경기에서는 0-0으로 비겼고, 조별리그 3차전 북아일랜드전에서는 토마스 뮐러에게 자로잰듯한 키패스를 넣어 마리오 고메스의 결승골의 기점이 되며 팀은 1-0으로 승리했다. 외질은 이 경기에서 98.5%의 패스성공률을 기록하며 MOM에 선정되었다.

토너먼트 16강 슬로바키아전에서 외질은 1-0으로 앞서고 있던 전반전에 페널티 킥을 찼는데 막히긴 했지만, 독일 전체가 페널티킥에 상관없이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3-0으로 승리했다.

토너먼트 8강 상대는 독일의 전통적인 천적 이탈리아였고, 경기전 인터뷰에서 외질은 이번엔 다를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실제로 활발한 수비가담과 함께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으며, 후반 20분 마누엘 노이어-마리오 고메스-요나스 헥터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역습의 방점을 찍으며 선제골을 기록한다. 그렇게 자신의 말을 지키며 아주리 징크스를 깨는가 했지만 후반 33분 제롬 보아텡이 어처구니없는 만세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내주며 레오나르도 보누치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경기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고, 연장전에서도 양 팀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며 승부차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외질은 이탈리아가 2-1로 앞서고 있는 가운데 독일의 3번키커로 나왔지만 실축하면서 좌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역시 정규시간에 골을 넣은 보누치를 포함한 선수들이 승부차기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9번키커까지 가는 혈전끝에 마누엘 노이어마테오 다르미안의 킥을 선방하고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올린 요나스 헥터가 마무리지으며 독일은 간신히 4강에 진출했다.

개최국 프랑스와 만난 4강전에서는 독일이 전반전 10분 프랑스의 공세를 막은뒤 남은 35분을 압도했고 외질 역시 정말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실제 여러 매체에서 이 경기에서 외질의 평점은 그리즈만과 더불어 제일 좋았다.) 그러나 독일은 마리오 고메스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으로 0:0 상황이 유지된 가운데 전반 추가시간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핸드볼 반칙으로 PK를 내주어 앙투안 그리즈만에게 실점하며 말려들어갔다. 이때 그리즈만이 PK를 준비하고 있을때 카메라는 뜬금없이 허망해하는 외질의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후반전에서는 선제골을 실점한 탓인지 독일 전체가 말리는 경기력을 보여줬고 결국 제롬 보아텡의 부상 아웃으로 수비진마저 흔들리는 바람에 추가골 실점을 하며 0-2로 패배했다. 경기 종료후 아스날 동료들인 올리비에 지루로랑 코시엘니에게 위로를 받으며 대회를 마감했다.

그리고 이 대회 이후 외질과 독일에게는 추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7.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편집]



7.1. 예선[편집]


한국시간으로 2017년 9월 2일 열린 체코와의 월드컵 예선에서 선발로 출전해 풀타임 활약했다. 이 경기에서 외질은 전반 4분에 티모 베르너에게 박스 왼쪽에서 빠른 땅볼 패스를 전달하며 티모 베르너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외질의 어시스트로 인한 티모 베르너의 선제골과 마츠 후멜스의 결승골 덕분에 독일은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하며 월드컵 예선 7연승을 이어나갔다.

한국시간으로 2017년 9월 5일 열린 노르웨이와의 월드컵 예선에서도 선발로 출전해 풀타임 활약한다. 전반 10분에는 요나스 헥토르가 왼쪽 구석에서 찔러준 패스를 받아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전반 17분에는 본인이 율리안 드락슬러에게 땅볼 패스를 찔러줬는데 드락슬러는 그걸 받아 터닝 후 바로 슛을 때려 득점에 성공했다. 외질의 큰 활약과 함께 독일은 6:0 대승을 거둔다.

부상으로 인해 2017년 10월 북아일랜드, 아제르바이잔과의 2018년 월드컵 예선 명단에서 아예 제외됐다. 독일 국대는 외질이 없어도 북아일랜드전에서 3:1로 승리하며 러시아 월드컵 진출을 확정짓는다.

2017년 11월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 명단에 포함됐다. 잉글랜드전에서는 풀타임 활약했지만 팀은 0:0 무승부를 기록한다.

2017년 11월 프랑스와의 평가전(풀타임 출전)에서는 말도 안되게 넓은 시야와 아름다운 패스플레이를 보여주며 독일의 두 골에 모두 기여하며 독일의 2:2 무승부에 큰 공헌을 했다. 57분에 역습 상황에서 날카로운 패스로 티모 베르너의 1:1 동점골을 어시스트했으며 후반 추가시간에는 본인이 마리오 괴체에게 찔러준 패스를 괴체가 짧은 논스톱 패스로 라르스 슈틴들에게 패스했으며 슈틴들은 그것을 골로 성공시켰다. 75분에는 제바스티안 루디와 교체되어 나가는 사미 케디라에게 주장 완장을 이어받았다.

2018년 3월 말 브라질, 스페인과의 평가전 명단에 포함됐다.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는 풀타임으로 활약하며 팀의 1:1 무승부에 기여한다. 하지만 브라질과의 평가전은 출전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독일 국대 훈련캠프에서 나와 아스날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이를 두고 요아힘 뢰프 감독이 휴식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과 부상 때문이라는 추측 두 가지가 있는데 정확한 건 지켜봐야 할 듯하다.#


7.2. 본선[편집]


조별리그 탈락으로 끝난 외질의 러시아 월드컵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첫번째 시각은 외질이 조별리그 탈락의 원인으로 비판받을 만하다는 시각이다. 제일 큰 비판은 외질이 가지는 한계가 드러났다는 것. 외질이 상대방보다 덜 뛰는 상황에 상대방의 공미들은 외질과 같은 포지션에 있으면서도 거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처럼 뛰면서 독일을 상대로 중원싸움에서 이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드필더 숫자 싸움에서 우위가 승패로 연결되는 현대 축구에서, 외질은 그런 중원싸움에서 딱히 보탬이 되는 선수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그리고 이를 역이용한 상대팀들은 독일과의 경기에서 수적우위를 가져가면서 경기를 주도하게 되고 승리를 따낼 수 있다는 것이다. 외질이라는 선수 개인의 퍼포먼스 외에 플레이스타일에 언급된 한계로 인한 간접적인 책임을 고려할 때 외질의 문제점이 결코 적지 않다는 주장도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에 있다. 무엇보다도 팀은 외질&케디라가 있던 멕시코전과 한국전을 무득점으로 패했고 둘이 없었던 스웨덴전을 이겼다는 점도 있고. 외질이 한국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전 중후반에 몇몇 그럴듯한 패스를 잘 찔러준 것을 고메즈나 훔멜스 등이 날려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걸 감안해도 외질 본인이 팀에 주는 제약을 감수할 만큼의 공격 생산성을 180분간 보여줬다고 보기 힘들 수 있다.

거너블로그의 주인장은 "우리가 외질을 No.10으로 기용할시, 오늘 경기에서 본 문제점을 아스날에서도 볼 수 있다고 봐. 숫자싸움에서 지고 중원이 약해지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문제점이 또다시 한국전에서 불거지면서 독일이 한국에게 패배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

두번째는 외질이 조별리그 탈락으로 비난을 받는 것이 억울한 일이라는 견해이다. 멕시코전에서의 외질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케디라와 함께 해당 경기 워스트로 뽑혔지만 적어도 한국전에서 외질의 스텟은 키패스 7개로 매우 좋은 편이었다.[2] 템포를 끊어먹었다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케디라, 크로스 등 미드필드진이 전체적으로 망가졌었던데다가 결정적으로 고메즈와 베르너 등의 최전방의 삽질이 워낙에 컸던지라, 탈락의 원흉으로까지 지목되는 것은 억울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에이스로서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고, 이전의 에르도안과의 논란까지 겹쳐서 비난을 받고있는 상황.

외질이 팀에게 주는 제약이 외질의 창의성이나 키패스가 주는 플러스효과를 상쇄시켰다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독일이 탈락했다는 점에서 그럴듯하게 들린다. 허나 설령 전략적 제약이 생겼더라도 어찌됐건 한국전에서 기회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외질 본인은 뢰브에 전술적 선택에 부응해 어느정도 생산성을 보여줬다고 보는 것이 맞고, 그 생산성이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한 책임은 베르너나 고메스같은 최전방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작 독일은 한국전에서 중원 싸움의 주요한 지표인 점유율, 패스 성공률, 세컨 볼 경합, 태클, 슈팅 숫자 등의 스텟에서 분명한 우위를 보였다.

애초에 우리와의 중원싸움에서 독일이 패배했다는 주장 자체에 허점이 존재하니 적어도 독일의 한국과의 경기의 패인이 외질 기용으로 인한 중원싸움 패배에 있다는 주장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셈이라는 것. 사실 따지고 보면, 7회나 되는 키패스를 성공시켰다는 것 자체가 외질이 그러한 현대축구에서의 플메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한국전에서만큼은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보여주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3] 하다못해 중원싸움에서 독일이 밀렸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수긍하더라도, 베르너, 고메즈, 그리고 비록 본업이 수비수라서 역시나 억울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박스 내에서 평소의 결정력을 보여주지 못한 등이 마츠 훔멜스 등이 그 결정력을 보여주었다면 독일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경기였다. 키패스를 떠줘도 받아먹질 못하는 공격진이 외질을 능가하는 원흉이라는 것.

게다가 사미 케디라 문서에도 적혔듯이 믿던 케디라마저 중원서의 힘싸움에서 완패당하며 중원서의 볼돌리기만을 시전하고는 점유율은 아이고 의미없다 수준이 되었으며, 외질을 포함한 공격진들도 상시 압박에 시달리면서 세밀한 공격전개는 힘들어졌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키패스를 찔러준것 만으로도 그의 역할은 충실했던 셈.

외질이 결장한 스웨덴전을 승리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있으나, 스웨덴전이 승리했다는 사실만으로 멕시코전이나 한국전보다 확실히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승리했지만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면서도 분명한 스코어러의 부재로 경기를 어렵게 가져갔다는 점에서 스웨덴전이 한국전보다 경기 내용이 더 우수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고. 경기 내내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정말 가까스로 거둔 승리라 외질을 뺀 것이 명확한 경기력 향상을 가져왔다고 보기 어렵기도 하고...그리고 경기는 실망스런 모습 속에서 독일팀은 온통 마르코 로이스가 주도했으며 스웨덴이 무승부 챙길 심산으로 라인을 당기고 수비적으로 나가다가 경기 내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크로스의 프리킥에 얻어맞은 게 컸다.

어찌됐건 저번 시즌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라스 벤더를 선발하지 않음으로써 외질, 케디라, 크로스 등 기존의 중앙 미드필드진이 약발이 듣지 않을 때를 대비치 못한 뢰브 감독의 선택을 비판할 여지는 있을 듯.

아스날처럼 독일은 토니 크로스가 중심이 되어서 미드라인을 구성하고 있다. 문제는, 토니 크로스가 절대로 발락이나 슈바인슈타이거급으로 공수밸런스가 좋은 선수는 아니라는 거다. 이번 월드컵에서 드러났듯이 크로스는 결정적인 패스 미스를 했었을 뿐만이 아니라 수비상황 시 기민한 움직임이 매우 아쉬웠다. 결국, 미드필더 밸런스를 위해서 레알처럼 그를 위한 선수로 팀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시 외질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못 지킬 확률이 높다.

게다가 이번에 독일 축구협회단장인 올리버 비어호프가 말했듯이, 귄도안과 함께 찍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과의 사진은 분명하게 팀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다. 비어호프는 이례적으로 외질의 향후 국가대표팀내에서 입지를 말하면서 이 사진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는 외질을 관리하는데에 있어서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그가 에르도안과 찍은 사진이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영향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선수들이야 터키인으로서 자신들의 대통령과 사진을 찍은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하였지만, 에르도안은 독일과 관계가 매우 안 좋고,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자임은 유럽인, 특히나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질과 귄도안이 그와 찍은 사진은 나쁜 의미로 상당한 이슈가 되었고, 이는 결국 팀내 스쿼드에까지도 악영향을 끼쳤다. 고참 선수로서의 처신을 고려하더라도, 이 건은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다. [4]

물론, 터키에서는 뭐가 문제냐고 하는 반응이다. 거꾸로, NBA에서 활약하는 터키인 선수 에네스 칸터는 에르도안을 결사비난하던 터에 결국 테러리스트로 몰려 구속대상이 되어버렸다. 결국, 미국으로 망명 신청을 한 상태.

외부의 시선과는 별개로 한국의 수비수로서 상당한 활약을 선보였던 김영권이 회고한 바에 의하면 가장 막기 어려웠던 선수로 외질을 꼽았다고 한다.# 직접 외질을 상대해본 당사자로서는 외부에서 지켜보는 평가와는 체감이 다른 모양.


8. 국가대표 은퇴[편집]


독일 현지 시간으로 2018년 7월 22일 오후 8시경 본인의 SNS를 통해 장문의 메세지를 남기며 123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을 만난 것은 그 어떤 정치적 메세지도 담겨있지 않으며, 자신이 튀르키예계이기 때문에 터키 대통령을 만난 것 뿐이니 튀르키예 대통령이라는 직책과 에르도안을 분리해서 봐달라는 글을 남겼다. 또한 독일 미디어가 자신이나 팀의 퍼포먼스가 아닌 자신의 터키계 혈통 자체를 비판하고 있으며 이것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밝혔다. 로타어 마테우스가 정치인을 만난 일은 하나도 조명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만 비판이 가해지는 상황에 대해서 실망했다고도 전했다. 독일 축구 연맹 측의 반응 역시 호의적이지 않았고, DFB 회장과 만나 사진에 대해 해명하는 동안에도 회장 라인하르트 그린델은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늘어놓기에 바빠 외질 본인의 의견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며 비판을 가했으며, DFB의 행동과 라인하르트 그린델에 대해 본인도 굉장히 많이 실망하고 화가 난 듯 하다. 글이 총 세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마지막 세 번째 파트에서는 절반 가량이 라인하르트 그린델에 대한 비난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라인하르트 그린델과 그의 지지자들의 눈에 나는 이길 때만 독일인이며, 졌을 때는 이민자가 된다."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똑같이 비독일계 독일인인 루카스 포돌스키미로슬라프 클로제는 폴란드계 독일인으로서 조명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왜 자신은 터키계 독일인이어야만 하냐며, 자신이 독일 축구선수로서 이룬 업적에 대해 언급하며 이래도 자신이 독일인이 아니냐며 비판을 가했다.

또, 자신이 어떤 모욕적인 표현들을 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자신이 DFB로부터 받은 대우 때문에 더 이상 독일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싶지 않아졌으며, 인종 차별과 모욕을 느꼈기 때문에 독일 국가대표를 은퇴한다라고 밝혔다.[5] 좋은 선수, 코치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 굉장히 힘들었다고 밝혔는데, 그럼에도 DFB로부터 본인의 터키계 혈통을 부정당하고, 정치적으로 엮이는 상황에 대해 화가 났다고 한다.

SNS에서도 많은 독일인들이 그의 은퇴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특히 독일 내 이민자계 중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터키계 이민자들이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6] 외질의 은퇴는 비단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 뿐만이 아니라, 독일 사회에서 터키인이 받는 인식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사례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래도, 외질이 장문의 편지를 통해서 독일축구협회 뿐만이 아닌 독일 사회를 까낸 만큼, 한동안 상당한 이슈가 됐다. '빌트'지가 공식적으로 반박 기사를 게재하는등 굉장한 이슈가 되고 있으며, 옹호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 울리 회네스 뮌헨 회장은 아예 2014년 이후 땅만 찼다고 대놓고 비난하고 나섰다.[7] 이쯤 되면 외질은 독일 국가대표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독일에 돌아가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될 수도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성명을 통해 메수트 외질의 국가대표 은퇴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고 외질의 의사를 존중하며 독일 축구에 기여한 것을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독일 내의 여론은 매우 미묘한데, 일단 문제의 발단은 터키의 에르도안 총리가 독재 및 인권탄압으로 독일 내에서 매우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터키계 독일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외질이 에르도안과 만남을 갖고 그를 옹호하는 뉘앙스의 SNS를 작성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더욱이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의 이슬람 이민자, 난민에 대한 반대여론 및 혐오정서가 높아지는 상황에서[8] 이슬람 원리주의를 주창하는 에르도안에 대한 독일 내 극우/보수 지지자들의 반대가 더해져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다. 메르켈 총리가 자신이 지금껏 보여줬던 언행과는 달리 상당히 원론적인 수준의 입장을 표명한 것 역시 이슬람 난민 포용정책이 자칫 이 문제로 인해 논란이 촉발될 우려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실제로 메르켈은 작년 2017년 독일 총선에서 지지율 추락 속에 힘겹게 재집권에 성공하였지만, 기민당, 사민당, 기사당 등 연정을 구성하는 각 당들과의 난민 대처문제에서 많은 양보를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외질의 은퇴는 단순히 한 축구인의 국가대표 은퇴문제가 아니라 독일, 더 나아가 유럽권 전체에서 이슬람이라는 정치적 문제로 공격받아 희생된 케이스라 볼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외질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곤란한데, 외질 본인이 애매한 스탠스로 대응하면서 자초한 면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터키계 선수들의 사례를 보면 아예 에르도안과의 만남 자체를 거절해서 논란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엠레 찬은 적어도 터키계라는 이유로 욕먹지는 않으며, 심지어 "나의 대통령"이라는 말을 써서 까이던 일카이 귄도간도 빠르게 사과해서 비난 여론을 어느 정도 진화했기 때문에 사고 친 스케일에 비해서는 덜 까이는 편이다.[9][10] 특히나, 독일과 터키는 이민자와 관련해서 독일 사회 내에서 이슈가 근 70년을 넘은지라 더욱 더 타국인이 함부로 뭐라 재단하기는 매우 힘든 난제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외질은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다른 이민자 출신들과 달리 월드컵 탈락 후 여론이 급격히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11] 그리고 나빠지는 여론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되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것.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있기 전부터 독일은 터키에 대한 경제제재를 부여하던 상황이었고 이에 터키 대통령인 에르도안은 무고한 독일인을 구속시키면서 두 나라의 갈등은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특히 독일 내에서는 터키인 또는 터키계들의 무고한 독일인들을 향한 테러가 자행되고 있었던 터라 외질로서는 절대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건을 제공해서는 안 되었다. 아무리 뿌리를 터키에 두고 있었다고 한들, 무고한 독일인들이 희생이을 치르는 상황에서 독일을 나치에 빗대어 책임론을 주장하고 비하하던 에르도안을 만났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독일에선 마테우스가 만나 악수를 했던 푸틴과 터키 대통령이었던 에르도안이 동일선상에서 다뤄질 수 없는 이유가 명백했다. 이에 다른 선수들은 잘못을 인지하고 재빨리 사과를 하였지만 터키의 색채가 짙었던 외질은 끝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인종차별의 희생 코스프레를 이어나가면서 독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에도 독일 내에선 여전히 외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강세를 보이고 있고 외질같은 이민자들의 국가에 반하는 내셔널리즘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새로운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외질을 옹호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독일에서 터키계, 터키인들로부터 무고하게 희생된 독일인들을 두고 애도는커녕 피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는 말들로 독일인들을 울분을 사게 했던 터키계 정치평론가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점에서 외질의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될 수밖에 없다.

국대도 은퇴했겠다, 은퇴에서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결혼식에 에르도안 대통령을 초청해서 다시 파장이 일었다. 확실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모양새고 독일 내에서도 외질을 사실상 튀르키예인으로 보고 있다.

[1] 배성재는 이 장면을 보면서 "자신의 등번호 스코어는 만들지 않습니다!" 라는 드립을 쳤다.[2] 다만 키패스 수치가 높다고 반드시 경기력이 좋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 전과 스웨덴 전 키패스 1위는 각각 율리안 드락슬러토마스 뮐러였는데 이 둘은 해당 경기 최악의 경기력으로 평가 받는다.[3] 다만 키패스라는 스탯이 슈팅 전 마지막 패스를 집계하는 스탯인데 한국이 내려앉아서 독일이 중거리슛을 난사하던 상황에서 쌓은 키패스 스탯이 얼마나 영양가가 있을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4] 귄도안은 자기 사인 유니폼에다 "나의 대통령에게 존경을 담아" 라는 말까지 정성스레 써놨는데 만약 한국 국대에 대입해볼 경우, 화교 2세 출신 국가대표 선수가 시진핑하고 기념촬영하면서 "나의 주석"이라고 하거나, 일본계 한국인 국가대표 선수가 아베 신조하고 기념촬영하면서 "나의 총리"라고 드립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단순히 아버지 조국의 국가원수와 기념촬영한 그런 수준의 일이 아니다. 독일이 아주 민감한 이유 때문에 분란거리 만들 소지가 있어 그 당시에 참아넘긴 거지, 한국 국대였음 클럽이고 국대고 뭐고 한국에서 축구 인생 자체가 끝장났을 행동이었다.[5] 독일은 한국에 좋은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이슬람계, 유대계에 대해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이며 알려진 것과 다르게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결코 깨끗한 국가도 아닌, 오히려 어떠한 점에서는 한국에서 그토록 비판받는 중국 및 일본보다 더욱 더 심각한 숙제들이 남아있는 국가이다. 단, 독일의 터키계, 이슬람계, 유대계 등에 대한 인종차별은 경제권을 둔 민족간의 갈등에 근본이 있긴 하다.[6] 19세기 오스만 투르크 시절부터 많은 터키계 사람들이 독일에 정착해 살며 100여년이 훨씬 넘는 역사동안 독일 사회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폴란드 및 타 지역 이민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이민 역사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외질의 국가대표 은퇴는 터키계 독일인들 입장에서 볼 때 단순한 축구인의 국가대표 은퇴 수준이 아니라 10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독일 사회에 정착하고 기여한 터키계 독일인들의 역사가 무시되고 모욕당했다는 의미이다.[7] 이전에 나온 스파이 발언은 오역이다.[8] 난민 수용정책을 고수하던 메르켈 총리마저 강경파들로 인해 입장을 바꾸어야 했을 정도.[9] 다만 외질의 경우는 귄도안이나 엠레 찬과는 경우가 좀 다른 게 귄도안과 엠레 찬은 독일 국적만 있기에 민족 혈통만 터키계일 뿐 독일 태생의 독일인이지만 외질은 터키 국적을 지닌 터키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에르도안은 외질 입장에선 자국 대통령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므로 외질 입장에선 "나는 터키인인데 터키인인 내가 내 나라 대통령 만나서 악수하고 사진도 못 찍냐?"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질은 터키인인 동시에 독일인이기도 하므로 독일 사회의 정서도 헤아렸어야 했다.[10] 참고로 터키계 독일인들은 분명 독일 국민이면서도 독일이라는 국가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소속감이 없어서 꾸준히 사회문제가 되어왔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대놓고 독일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달라고 발언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11] 앞서 말했듯이 일카이 귄도안과 엠레 찬은 그냥 독일 국적만 있는 독일인이지만 외질은 터키 국적도 소지한 터키인이기도 하므로 그의 입장에 에르도안과 만난 것은 자국 대통령을 만난 것에 불과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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