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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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빌헬름 작전은 제1기갑군이 진행한 프리데리쿠스 II 작전과 함께 하계 공세 이전에 선행한 2개의 공세 중 하나이며 목표는 볼찬스크 근처의 소련 제28군 섬멸이었다. 공세 결과, 28군을 밀어내고 큰 타격을 입히면서 차후 공세에서 유리한 시작 지점을 차지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소련군이 이전과 달리 무작정 전선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포위되기 전에 미리 퇴각하면서 예상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2. 전투 서열[편집]
2.1. 독일군[3][편집]
- 남부 집단군 ( 사령관 : 페도르 폰 보크 원수 )
- 제6군 ( 사령관 :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기갑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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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소련군[4][편집]
- 남서 전선군 ( 사령관 : 세묜 티모셴코 소연방 원수 )
- 제28군 ( 사령관 : 드미트리 라비셰프 중장 )
[ 펼치기 · 접기 ] - 제3근위기병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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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09경폭격기항공연대
- 제655혼성항공연대
- 제3근위기병군단
3. 전개[편집]
남서 전선군은 제2차 하리코프 공방전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전선군 사령부[5] 는 10일 이내로 독일군이 반격에 나설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7개 소총사단, 2개 전차군단, 4개 전차여단을 증원받았지만 사라진 병력 대비 그렇게 큰 규모라고 보기 힘들었다. 독일군의 반격 작전은 6군과 1기갑군이 각각 진행할 2개로 구성됐으며 이 중 6군이 진행할 빌헬름 작전은 6월 7일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6일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3기갑군단과 4항공군단은 작전이 불가능할 것이라 보고했고 10일까지 밀리게 된다.
독일군은 북쪽의 8군단과 남쪽의 3차량화군단이 양익 포위를 시도할 예정이었고 10일부터 공세를 개시했다. 첫 날 공세는 순조로웠다. 8군단은 도네츠 강을 건너 오후 늦게 볼챤스크(Volchansk)에 도달했고 3차량화군단도 벌루크 강(Burluk)을 건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1일부터 비가 다시 많이 내리면서 땅이 진흙이 되자 3차량화군단의 진격 속도는 급격하게 느려졌다. 8군단은 보병으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에 영향을 덜 받아 3차량화군단과 만나기로 한 예상 지점인 벨리 콜로데즈(Belyy Kolodez)에 도달했다. 3차량화군단은 아직 약속 지점에서 48km 떨어져 있었다.
11일 밤에 6군 사령부에 와 있던 보크는 소련군이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퇴각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고 3차량화군단은 명령에 따라 12일에 하루 종일 교전을 피하고 달려 13일 오전에 마지막으로 포위망을 뚫으려는 소련 전차 부대와의 교전 후 8군단과 만나는 데 성공했다. 포위망 내부는 15일까지 정리됐다. 이미 많은 소련군이 빠져 나간 상태여서 포로는 25,000명 정도였다.
4. 결과[편집]
독일 제6군은 소련 제28군을 섬멸하지는 못했지만 전선을 붕괴시키는데 성공했고 하계 공세의 시작인 블라우 II 작전[6] 의 개시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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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 8일 기준[2] 6월 1일 기준[3] 6월 8일 기준[4] 6월 1일 기준[5] 사령관 세묜 티모셴코 소연방 원수, 참모장 이반 바그라먄 중장, 정치장교 니키타 흐루쇼프 중장[6] 청색 상황 2단계, 나중에 클라우제비츠 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