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빈 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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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태종의 후궁. 아버지는 검교 한성윤 안의(安義)이다. 본래 궁녀였으나 태종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다.
슬하에 혜령군 이지, 익녕군 이치를 비롯하여 두 옹주를 낳아 2남 2녀를 두었다. 특히 막내 아들 익녕군 이치는 태종의 유복자로 태어났고, 나머지 자녀들도 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2. 생애[편집]
1421년(세종 3) 숙선옹주(淑善翁主)로 봉작되는데, 이때 그녀의 아버지는 검교 판한성부사에 제수된다.[1]
태종의 사후에는 안씨는 송사 문제로 실록에 여러 번 이름이 오르내린다. 1430년(세종 12)에는 신빈 신씨의 첫째 딸 정신옹주의 남편인 영평군 윤계동(尹季童)과 집터 문제로 송사를 벌였고, 1468년(세조 14)에는 자신의 딸인 경신옹주와 노비와 전답을 비롯한 재산 분배로 송사를 벌였다.
1468년(세조 14)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녀와 노비 문제로 다툼이 있었던 딸 경신옹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녀보다 먼저 사망한 상태였다.
3. 묘[편집]
묘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에 있다. 2019년 6월 7일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3호로 지정받았다.
4. 대중 매체[편집]
태종이 처음 보고 반한 것으로 묘사된다. 역사와는 달리 궁녀가 아니고 이숙번의 집에 얹혀살던 양반집 딸로 각색되었다가 태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된다.[5] 대놓고 자신의 아이도 세자가 될 수 있냐며 물어 볼 정도로[6] 후궁 중에서 가장 야심이 많은 성격으로 그 성격 드센 원경왕후에게도 지지 않고 맞섰으며, 이 때문에 가장 갈등이 심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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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 5월 11일 임신 3번째기사. # [2]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3] 송윤아가 배역을 맡았는데, 설정과는 달리 이보희가 14살이나 많다.[4] 당시의 이보희는 39세였는데 이숙번의 처[3] 보다 어린 나이라는 설정과 맞지 않는 미스캐스팅이라는 말이 많았다.[5] 참고로 원래 원경왕후의 몸종이었던 신빈 신씨는 용의눈물에서는 엉뚱하게도 원래 선빈의 롤이어야 할 상궁 출신으로 나온다.설정 돌려막기[6] 이 직후 태종은 "이것들이!" 라며 원자를 후다닥 세자로 책봉한다.[7] 원작인 박종화의 세종대왕에서 혜선옹주가 맡았던 역할이 거의 대부분 선빈에게 옮겨온 것으로 추측된다. 만남에 이숙번이 엮여있다든가, 대놓고 자식을 왕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내보인다든가, 원경왕후와 극심한 대립을 보인다든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