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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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서(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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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儀
?~235
1. 개요
2.1. 유비 휘하
2.2. 제갈량 휘하
2.3.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대립
2.4. 실각과 비참한 최후
4. 평가
5.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삼국시대 촉한의 관료이며 자는 위공(威公)으로 형주 양양군 양양현 출신이다.


2. 정사[편집]



2.1. 유비 휘하[편집]


원래 형주 자사 부군의 밑에서 일했던 인물이지만, 당시 형주에 주둔 중이던 관우에게 귀순했다. 관우는 귀순한 양의를 익주에 머무르고 있던 유비에게 보냈는데, 접견한 자리에서 유비는 양의의 정치적 식견을 높이 평가하고는 좌장군병조연에 임명하여 곁에 두었다. 그리고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상서에 임명되어 유비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양의의 성격이 매우 모나고 영 좋지 않다는 것. 보통 주변 사람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트집을 잡는, 즉 인간관계에서 늘 마찰을 일으키는 타입이라고 묘사된다. 그나마 윗사람의 말을 따르기는 하고 실무 능력은 뛰어났지만 그 실무능력이라는 것도 마량에는 한참이나 못미치는, 이른바 식스맨인 인물에 툭하면 주변 사람들이랑 충돌하니 윗사람 입장에서 봐도 다루기 힘들었다. 때문에 상서령 유파와 사이가 나빠 사사건건 부딪혔다.[1] 그래도 유파 역시 능력이 좋아 유비가 어떻게든 안고가려 애쓰던 인물이었기에, 결국 유비는 유파를 선택하고 양의는 홍농 태수좌천시켰다. 홍농은 위치상 장안낙양의 중간에 있는 곳으로 당시 조위영지다. 즉 적지의 태수인데, 이건 사실상 무보직과 다를 바 없었다.[2] 그런데 이게 신의 한 수가 되어 유파가 촉한의 경제를 엄청나게 발전시켜 놓았다.


2.2. 제갈량 휘하[편집]


유비 사후 제갈량이 다시 양의를 불러들여 남만정벌하는 동안 해당 부서의 일을 맡겼고, 남만 정벌 후에는 제갈량을 따라 한중으로 옮겨가 북벌 일선에서 활동하였다.[3] 제갈량이 양의를 아꼈던 이유는 양의는 사람됨이 뼈대가 있고 민첩하였는데 작전계획에 따라 부대를 편성하고 필요한 물자를 산정하는 행정/보급 업무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개차반인 성격은 여전히 어디 가질 않아 여러 사람과 반목하여 대인관계가 영 좋지 못했다. 특히 촉나라의 핵심 장군인 위연과 사이가 매우 나빠서 서로 원수나 다름없었는데 만나기만 하면 서로 싸워대서 제갈량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위연의 성격 역시 양의와 피장파장이라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란 식으로 충돌을 피했는데 반해, 양의는 위연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꼬장꼬장하게 나오는 바람에 마찬가지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고 말았다.[4]

높은 지위에 있는 두 사람이 이 모양이니 당연히 누군가를 내치거나 충돌 가능성이 없는 곳으로 보내야 할 상황이었지만, 이릉대전으로 인하여 많은 인재들을 잃은 촉과 제갈량에게는 군수품 조달 및 관리라는 국가에 꼭 필요한 재능의 소유자였던 양의도,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될 맹장 위연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갈량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최대한 공정하게 두 사람을 대하였지만 둘의 사이가 좋아지게 할 수는 없었다. 감척론이라는 글을 지어 두 사람을 깨닫게 하고자 했으나 이 둘은 깨닫지 못했고 여전히 서로를 미워했다.

보통 상사가 이 정도로 신경쓰는 걸 보면 부하 입장에서 눈치를 좀 보기 마련인데, 이 두 사람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예 논쟁 도중 위연이 양의에게 화가 치밀어 칼을 뽑아들고(!) 양의를 위협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제갈량도 그저 최대한 두 사람을 달래가며 제어할 수밖에 없었고[5], 제갈량이 없을 때는 호방하고 온화한 성품이었던 비의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뜯어말리고 달래는 식으로 갈등을 완화시켰다.


2.3.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대립[편집]


건흥 12년(234년), 제갈량을 따라 북벌군으로 출병해 곡구(谷口)에 주둔했다. 그런데 이때 제갈량이 죽으면서, 직후 이들의 충돌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임종하기 직전 자신의 후계자로 장완을, 그 다음으로는 비의를 지명했다. 다만 장완은 성도에 남아 있었기에 강유와 양의, 비의에게 후퇴 작전을 지휘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위연이 평소에 자신이 싫어하는 양의의 지시를 받는 것이 싫고 북벌은 반드시 이뤄야한다며 후퇴를 거부하면서 반기를 들고 북벌군의 퇴로를 끊었다. 이에 양의와 위연이 동시에 상대방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표를 올렸다. 북벌군이 전멸하고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양쪽의 표를 받은 장완은 침착하게 판단하여 위연이 먼저 저지른 짓임을 파악하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위연을 잡아올 것을 명했다. 위연은 남곡구(포야도 남쪽)를 막고 아군 장수인 양의와 그가 보낸 왕평을 공격하는 개막장짓까지 저질렀는데, 왕평의 사자후 한 번으로 위연군은 흩어졌다.[6] 이렇게 비교적 시의적절한 조치가 취해져 북벌군이 전멸하는 사태만은 막을 수 있었다.

이후 양의는 마대를 보내 위연을 처단했는데, 양의는 이 과정에서 위연의 수급이 도착하자 짓밟으며 욕을 하고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자신이 앞장서서 위연의 남은 일족들까지 처형시켜 버렸다. 위연이 죽어도 싼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양의 본인도 양보하거나 물러서는 것 하나 없이 매번 위연과 대립했기에 이 사태의 책임에서 별로 자유로울 수 없는 주제에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않은 양의다운 짓이었다. 이 때문에 양의 역시 주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가뜩이나 나쁜 평판이 더욱 추락하게 된다.[7]


2.4. 실각과 비참한 최후[편집]


이 때문에 북벌군이 돌아온 뒤 장완은 제갈량의 뒤를 이어 상서령으로 임명되며 정무를 승계받았지만, 양의는 고작 중군사(中軍師)에 임명되어 여전히 한직에 머무르게 된다. 이에 양의는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당시 중군사는 예전에 유염이 맡던 자리로 군사직 가운데선 제일 높긴 하지만 하는 일이 별로 없는 명예직에 가까웠던 것이다. 사실 양의 본인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애초에 제갈량은 양의의 능력을 아껴 중히 쓰긴 했으나 양의를 후계자로 언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8] 더군다나 사실 양의는 과거에도 여러차례 문제를 일으켜 선제(유비)가 추방했던 사람이다. 전대에 그렇게 된 사람을 후대에 승상이나 대장군 등 정치/군사의 중추로 삼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언어도단이기에, '중군사' 정도도 이미 충분히 호의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다.[9] 그리고 양의는 유능하지만 성미가 급하고 편협하여 인망이 워낙 나쁘기에 능력이 있으면서 성품도 후덕한 장완에게 뜻을 둘 수 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제갈량은 양의에게 그저 북벌군 퇴각작전의 공동 지휘와 뒷처리를 맡겼을 뿐이고 자신의 경쟁자 위연이 먼저 자폭해버렸던 까닭에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양의는 이것을 모르고 오히려 제갈량이 어쨌든 자기 능력을 아꼈고 병력들을 무사히 복귀시켰으며 반기를 든 위연을 죽인 공도 있으니 자신이 제갈량의 후계가 될 것이라며 혼자서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10] 추가로, 당대의 촉한은 조위손오와는 달리 황실을 계승하는 국가라는 매우 강력한 명분이 존재하기에, 제갈량은 만에 하나 양의를 중용할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양의가 조상이나 손준처럼 아무렇게나 막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양의는 제갈량과, 더 나아가 촉한의 국가구조 자체를 몰랐거나 망각했기에 제갈량의 빽으로 자신이 잘나갈 줄 알았던 것이다.

양의가 불평불만을 늘어놓든 말든 원래부터 대인관계가 워낙 나빴던지라 다들 철저히 무시했지만 그나마 원만하고 호탕한 성격으로 양의를 비롯한 많은 문무백관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했던 후군사 비의만이 찾아와서 양의를 위로할 뿐이었다. 하지만 양의는 이 자리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리는데 차라리 그때 "위씨(魏氏)를 따랐으면 이런 푸대접은 받지 않았을 건데!" 라는 망언을 내뱉은 것이다.[11] 물론 진짜로 반역할 생각이 아닐 것이고 홧김에 되는대로 내뱉은 말일 가능성은 있겠지만 이유야 어쨌든 대놓고 역적이 될 걸 그랬다고 개드립을 친 것이다.

그나마 양의를 상대해주던 비의도 양의의 이런 희대의 반역적 언사는 묵과할 수 없었고, 그 즉시 양의의 발언을 유선에게 상주했다. 당연히 유선은 분노해서 양의를 처벌하려 했다. 원래는 반역이나 다름없는 행위라서 사형당해도 할 말이 없었으나 그래도 양의의 공적을 생각해서 사형은 면하게 해달라는 장완의 진언 덕분에 양의는 파면되고 서민으로 강등되어 한가군으로 유배를 갔다.

그런데 한가군이라는 산골짜기 벽지[12]로 보내진 양의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유배지에서 자신에 대한 처우와 주변 사람들을 쓸데없이 비방하는 서찰을 계속 보내어 화를 초래한다. 이에 진노한 유선은 즉시 양의를 체포하여 압송하게 하였다.[13] 이렇게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고 병사들이 체포하러 오자 양의는 체포되기 전에 자살한다.


3. 연의[편집]


제갈량이 지목한 반골의 상 위연과 반목했다는 이유로 많은 버프를 받아 삼국지연의의 수혜자가 되었다.

가정 수비에서 마속을 대체해 참전할 장수로 자진해 나선 것이 첫 등장이었고, 막장이던 인간관계 부분은 거의 다 삭제되고, 손권이 위연과 더불어 소인배라고 평가했던 내용[14]도 양의는 제하고 위연이 반역할 것이라는 일방적인 지적으로 바뀌었다. 아예 제갈량의 꾀주머니 하나를 받아 위연에게 '누가 나를 죽이겠느냐?'라고 세 번만 말하면 군권을 넘겨주겠다고 말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다만 제갈량 사후의 부분에 대해서는 정사에 충실한 편. 비의가 양의의 발언을 그대로 유선에게 고하자 유선은 격렬하게 화를 내며 양의를 처형하려 한다.[15] 연의에서 그 물렁하고 아둔하게 묘사되기로 유명한 유선이 격노하는 모습은 이 장면이 유일할 정도다.[16] 역사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잡으러 오기 전 저승으로 도주 자살한다.

고사 수화불상용에서 나오는 인물 중 하나. 다른 인물은 당연히 라이벌 콤비 위연이다.


4. 평가[편집]


진수도 정사 삼국지 유팽요이위양유전(劉彭廖李劉魏楊傳)의 평에서 냉정하게 '양의가 잘못된 것은 자기자신의 잘못 때문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정확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양의는 담당한 관직으로 인해 현달되고, 유염은 오래전부터 섬기었으니, 이들 모두가 귀하고 중하게 쓰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거지를 살펴보며 규준, 예법을 되짚어 보건대 화(禍)를 부르고 허물을 취함에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


계한보신찬의 평가도 짜다, 양희는 '위공(양의)은 마음이 좁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다른 것을 취했다. 한가할 때에는 논리를 따랐지만, 위급할 때에는 사람을 상하게 하고 침해했다. 도리를 버리면 흉한 데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주역에서 말한 것이다'라고 그를 비판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앙숙인 위연과 함께 능력은 있었지만 형편없는 처세술과 인격, 좁은 소견으로 인해 스스로 인생을 망친 전형적인 케이스다. 진수 역시 자신의 결점으로 패망한 자들의 열전에 위연과 양의를 함께 집어넣는 등 정사에 남겨진 평도 이와 다르지 않다.[17][18]

여담으로 아직 위연과 양의가 살아있을 무렵 오나라에 비의가 사신으로 갔을 때, 손권이 두 사람에 대해 전해듣고 평한 말이 있다. 정확하게는 술에 취해서 한 말인데 다음과 같다.

양의와 위연은 소치는 목동이어서 일찍이 당시 해야할 일에 있어서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정도의 보탬을 주었지만(=즉 활동이 미비했다는 말) 그들에게 일을 맡겼으니 가볍게 취급할 수 없다. 만약 어느날에 제갈량이 없게 되면 반드시 화란이 일어날 것인데, 제군은 심란하기만 하여 이런 일에서 생기는 염려를 막을 줄도 모르는데 어찌 자손에게까지 끼칠 꾀를 내겠는가?


비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양의와 위연이 협조를 하지 못하는 것은 사사로운 분노로 인한것 뿐이고 경포한신처럼 황제를 어렵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강적을 소제하고 화하를 하나로 하는데 있어서 공로는 재주를 가지고 이룩하고, 업적은 재주로 말미암아서 넓어지는 것이니 만약 이 사람들을 버리고 맡기지 않는다면 그들의 후환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풍파를 막으려다가 거꾸로 배를 못 쓰게 하는 것과 같으니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손권이 '당장은 급해서 제갈량이 써먹고 있긴 하지만 둘 다 성격이 개판인데 제갈량 없어지면 문제 생기지 않겠나?'고 묻고, 비의는 '둘의 성격에 하자가 있기는 한데 적어도 한신이나 영포처럼 천자에게 정면으로 개기는 짓은 안 했고, 당장의 강적(위나라)을 상대하는데 도움이 되는데 어찌 안 쓰겠습니까.'라고 반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둘 다 맞는 말이었다. 당장은 저 둘의 재능이 중히 쓰였지만 제갈량이라는 제어자 겸 보호자가 없어지자 정말로 순식간에 둘 다 차례로 문제를 일으키며 피해를 입히고 자멸해버린 것.[19] 사실 둘의 대체제는 있었으나 그 둘보다 일찍 죽은 게 문제였다. 양의보단 마량을 쓰면 되었지만 마량은 이릉대전에서 전사해버렸고 위연 대신 그런대로 조운을 쓰면 되었지만 조운은 나이가 너무 많아 저 시점에서는 이미 천수를 넘어 노환으로 사망해버린 상황이었다.

이렇게 보면 결과적으로 유비는 자신을 싫어했지만 몸조심을 할 줄 알았던 유파보다 만족을 모르며 불평을 일삼는 양의의 성정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둘과의 싸움에서 양의를 배제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니 가히 그 인물을 보는 심모원려가 대단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정사 촉서 양의전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이 양의의 말과 행동이 절제되지 못함을 두려워해 감히 따르는 자가 없었는데, 오직 후군사(後軍師) 비의(費禕)가 가서 그를 위로했다.'라 기록되어 있다. 양의가 그 성격 탓에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기피대상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기록임과 동시의 그런 사람도 호방하게 대한 비의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20]

이렇게 하여 제갈량의 왼팔과 오른팔 같았던 두 유능한 인물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이었기에 그 누구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인재 부족에 시달리는 후반기 촉한에게는 귀한 인재였지만, 그들의 성격적 결함은 그런 장점을 묻어버릴 만큼 치명적이라서 유비나 제갈량 같은 확실히 제어할 수 있는 상관이 있어야 다룰 수 있는 위험한 인물들이었다.

뛰어난 능력과 그 능력을 뛰어넘는 성격적 결함을 가졌다는 점에서 위연과 양의는 마치 거울을 보는 듯 너무나도 닮은 점이 많았다. 그렇게 서로 물고뜯고 싸운 것과 최후를 맞이한 원인의 유사함을 보아 일종의 동족혐오와 같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러니한 점은 일찍 요절한 양의의 형 양려는 덕행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5. 미디어 믹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의(삼국지)/기타 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유파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그는 그대로 유비를 굉장히 기피했지만 어쩔 수 없이 유비 세력을 따르는 마찬가지로 다루기 힘든 사람이었다.[2] 전시상황에서 적지의 태수자사, 등으로 임명한다면 이는 곧 적지를 정복하고 해당 인물을 임명하겠다는 중용을 의미하나 적지를 통치할 일도 없는 비전시라면 사실상 명예직으로 좌천시켜놓은 격이다.[3] 원래 이 일은 마량이 해야 했으나 이릉대전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양의가 대신 하게 된 것이다.[4] 위연이 성격도 더럽기는 했지만 당시 북벌 때 제갈량을 제외하면 종군한 장수들 중 위연과 맞먹을만한 경력 및 관직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충돌해봤자 장기적으로는 하급자에게 불리하니 결국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에도 양의는 끝까지 위연과 부딪쳤으니 어지간히도 불구대천이나 마찬가지였다.[5] 당연하지만 위연과 양의는 군부에서 중요한 위치였으니 분명 제갈량이 직접 주도하는 회의에서 보란 것처럼 저랬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데다 설령 제갈량의 눈을 피했더라도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이 알려줘서 인지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감척론을 지어 타이르거나 비의를 중재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조치를 취했을 리 없다.[6] 왕평이 무슨 무협지 기술을 쓴 건 아니고, 애초에 위연의 명분이 매우 부실했기 때문에 왕평이 이를 소리쳐 지적하자 굳이 위연과 함께하며 반역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던 군사들이 위연을 버린 것이다. 도망친 위연의 병사들은 신분을 위조했는지 훗날 여예가 이를 알고 시정했다고 기록됐다.[7] 위연과 자식들이 죽은 건 위연의 자업자득이지만 그의 남은 삼족의 처벌은 국가, 즉 당시로서는 군주인 유선의 황명으로서 시행해야 옳다. 오늘날에 비춰보면 사법부의 심판없이 제멋대로 월권에 사적제재까지 저지른 격이다. 즉 양의가 멋대로 삼족을 몰살시킨 건 본인이 제갈량의 후계자라고 제대로 착각한 나머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제갈량 본인부터가 법치주의에 철저한 사람이었건만 양의는 그에 철저히 반대되는 행위를 했으니 반론의 여지가 없는 내로남불인 셈이다.[8] 화양국지에 따르면 제갈량이 유선에게 은밀히 표를 올려 양의의 성정은 성급하고 마음이 좁으니, 만약 자신에게 불행이 닥치면 장완이 이를 대신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다.[9] 양의가 저런 전과와 촉한의 쌍두마차 유비 및 제갈량의 평가, 형편없는 인성 및 인망이라는 핸디캡으로 승상은커녕 그에 준하는 중직에라도 오르려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자신의 인성과 결점을 모두 뜯어고쳐 그야말로 환골탈태의 상태로 괄목상대하게끔 오랜 세월 꾸준히 노력하고 엄청난 공훈을 세워야하는데, 정작 양의는 딱히 그럴 만한 변화도 공을 세운 적도 없다. 한마디로 탐욕만 앞서서 자기 입장을 자각하지 못했다.[10] 앙숙 위연도 이런 착각에 단단히 빠져 있었으니 그야말로 끼리끼리라는 말이 적절하다.[11] 여기서 위씨란 위나라를 뜻하는데 비슷한 예로 원술이 세운 중나라 역시 중씨(仲氏)라고 불렸다. 위연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사사건건 대립했고 자기 손으로 직접 숙청하고 일족까지 씨를 말려버린 위연을 따랐어야 됐다고 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만약 정말 위연을 따랐어야 한다는 의미로 말한 거면 위나라를 따른다는 역적 인증만큼이나 제정신이 아니라 의심받아도 할 말이 없다. 사실 위연이든 위나라든 진심으로 내뱉은 발언이 아니라 불만 섞인 소리를 한 것뿐이니 엄격하게 개연성을 따지며 추측하기는 어렵다.[12] 지금의 루산(蘆山), 톈취안(天全), 잉징(滎經)현 일대로 쓰촨 성 남서부에 있는 지역이다. 정확히는 야안시에 해당된다. 요립이 유배를 갔던 문산군에 비해 낫지만 쓰촨 분지에 있는 지역도 아니고 티베트 근처의 지형이 험준한 오지임은 사실이다.[13] 이때는 양의의 공적을 생각해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진언했던 장완도 양의의 만행에 학을 떼고 그의 체포안에 동의한다. 막말로 목숨이라도 살려준 은혜를 이렇게 뒤통수를 때려버렸으니 장완 입장에서도 충분히 분노할 만하다.[14] 양양기와 자치통감 같은 사서에도 등장한다.[15]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같이 비의가 '위연이 그렇게 된 건 위연의 잘못도 있지만 양의의 잘못도 큽니다'라고 이전 행적까지 한꺼번에 몰아서 까는 작품도 있다.[16] 실제 역사에서 이렇게 '그나마 성격은 좋다' 소리 듣던 유선이 드물게 빡치는 모습을 보이게 한 사람은 이막이라고 따로 있다.[17] 주의할 점은 양의와의 대립 때문에 위연이 억울한 충신으로 오해받아 동정받는 경우가 있는데 진실은 위연도 양의만큼 인간성에 문제가 많았고 인망이 나빴으며 심각한 국가위기를 불러오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저 남말할 처지가 못되는 양의가 위연을 하도 무자비하게 처리해서 불쌍하게 보일 뿐.[18] 그나마 참작할 요소가 있다면 위연이 양의보다 짬과 실무 경험, 실권 모두 윗선이었다는 것.[19] 사실 굳이 따지자면 손권은 저 둘이 큰 도움도 안된다고 폄하했지만 공적을 놓고 보면 결코 도움이 안된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괜히 저런 성격 나쁜 두 사람을 유비도 제갈량도 끝끝내 못버리고 어떻게든 써보려한 게 아니다. 그리고 손권도 위연, 양의와 막상막하의 성격파탄자인 반장이 능력은 있다고 중히 써먹은 전적이 있다.[20] 얄궂게도 비의의 호방한 성품은 훗날 독이 되었다. 왜냐면 항장인 곽순을 너무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주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았다가 양의와 위연만큼 인성이 나쁜 항장인 곽순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물론 곽순도 비참하게 죽었지만 이는 촉에게 비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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