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관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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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스토리
2.1. 동령관
2.2. 낙양
2.3. 사수관
2.4. 형양
2.5. 활주
2.6. 여남으로
2.7. 드디어 재회
3. 등장한 지역
4. 기타


1. 개요[편집]


소설 삼국지연의의 27회에 나오는 사건으로, 관우가 유비를 찾아 조조를 떠나고 하북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다섯 관문[1]을 지나면서 길을 가로막은 여섯 장수를 벤 이야기를 뜻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 혹은 말 한필로 천리를 나아갔다 하여 단기천리(單騎千里)라고도 칭하기도 한다. 게임으로 접한 사람들은 '관우 천리행'으로 알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정사에서는 이런 내용이 없다. 정사의 조조는 도리어 관우를 쿨하게 보내주는 관용을 보였고 오관참장 에피소드는 관우의 무용과 충정심을 부각시키기 위한 나관중의 창작이다. 그러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유비를 찾아나서는 관우의 형제애와 충성심. 그리고 이런 모습을 흠모하고 아쉬워 하면서도 마지막엔 일절 해를 끼치지 않고 보내주는 조조의 대인배스러운 묘사 등 하나같이 사나이의 로망이 철철 흘러넘치는지라 삼국지를 다루는 매체에서는 정사를 반영하더라도 반드시 넣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오관참장의 희생자들은 공수, 한복, 맹탄, 변희, 왕식, 진기이며 전부 가상인물이다. 물론 여기에서 관우를 도와주는 조력자인 배원소, 주창, 보정, 호반 등도 전부 가상인물이다. 판본에 따라서 중간에 끼이는 요화와 활주 태수 유연, 진기의 숙부로 나오는 채양만 실존인물이다.

지도상에서 관우의 행로를 그리면 빙빙 돌아가는 형태다. 중국의 지형 변화가 워낙 심해[2] 오늘날의 지형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연의 이전의 이야기에서 관우의 출발지가 장안이었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 초기 판본에서 관우의 출발지가 패릉교인 것이 그 흔적.[3]


2. 스토리[편집]


감부인과 미부인의 안위를 위해 조조에게 투항하여 객장으로 생활하던 관우는 관도대전 중, 우연히 원소에게 의탁 중이던 형 유비의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생사도 알지 못했던 형님의 소식을 알게 되자 관우는 그동안 조조가 제공해준 온갖 부귀영화를 망설임 없이 내버리고 서둘러 유비가 있다는 하북으로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관우의 무예와 인품을 깊이 흠모하고 있던 조조는 그를 어떻게든 보내지 않으려는 심산으로 피객패(避客牌)[4]를 날마다 대문에 걸어두면서 가기 전 마지막 인사를 위해 찾아오는 관우를 애써 피하고 있었다. 심지어 관우랑 친한 사이인 휘하 장수 장료에게 관우를 만나지 말라고 명하는 등, 다소 쪼잔할(...) 정도로 붙잡고 있었다.

결국 시간이 지체되자 조바심이 난 관우는 조조가 선물했던 모든 하사품을 창고에 잘 쌓아두고 영수증까지 작성하여 정리해둔 뒤, 관직의 인장도 봉해놓고[5] 그동안 신세졌다는 인사를 남긴 서신을 남긴 뒤, 두 부인을 모시고 지체없이 길을 떠난다. 채양이 나서서 추격하겠다고 하자 조조는 오히려 관우의 충의에 감복하여 너희들은 관우를 본받아야 한다며 채양을 물린다. 이에 관우가 원소한테 가면 후환이 될 것이니 추격하여 죽여야 한다고 정욱이 조언하지만 이미 약속이 있으니 깰 수 없다고 하며 거부하고, 마지막 인사라도 해야 하겠으니 먼저 가서 관우를 잠시 멈추도록 하라고 장료에게 명한다.

관우는 일행을 호송하여 천천히 행군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장료에게 따라잡혔고, 장료는 관우에게 사연을 말한다. 관우는 형수들을 비롯한 일행을 먼저 다리 건너로 보내고, 자기 혼자 말을 타고 다리 위에 버티고 서서 조조를 기다린다. 이어 조조가 수십명을 대동하여 따라오고, 그들에게 무기가 없는 것을 본 관우는 의심을 내려놓는다. 조조가 마지막 선물로 비단옷 한 벌과[6] 여비로 쓸 황금 한 접시를 주려 하지만 관우는 경계를 풀지 않기 위해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무기를 내밀어 옷을 가져가고 황금은 데려온 병사들에게 나눠주라면서 거절한 뒤, "다시 뵐 일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조조를 따라온 허저는 이 무례에 매우 분노해 바로 추격하자고 말하지만 조조는 이쪽은 비무장이라곤 해도 장수가 수십명인데 관우의 입장상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를 만류하고 돌아간다.

그렇게 조조와 헤어진 관우가 일행을 쫓아 30리를 행진했지만 찾을 수가 없어서 당황하던 차에 황건적 잔당인 요화가 나타나서 상황을 설명한다. 유비의 두 부인은 요화의 동료인 두원이라는 자에게 납치당했고 두 부인의 신분을 안 요화는 돌려보내려고 하지만 두원이 따르지 않아서 두원을 죽이고 관우를 찾아온 것이다. 요화는 부하들을 이끌고 관우를 따르려 하지만 관우는 황건적 잔당이라는 점이 탐탁치 않아서 거절한다.[7]

요화와 헤어진 일행은 어떤 마을에서 유숙하게 되는데, 마을 주인인 호화라는 사람은 관우를 존경하여 환대하였고, 자신의 아들 호반이 형양 태수 왕식의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다음날 일행은 동령관 앞에 오게 된다.


2.1. 동령관[편집]


동령관을 수비하는 직책을 맡은 장수 공수는 이 길은 하북으로 통하는 길이니 함부로 지나갈 수 없다고 관우 일행의 길을 막아선다. 관우는 불필요한 싸움과 시간낭비를 피하기 위해 '승상의 허락을 받고 길을 떠나고 있으니 비켜달라'고 설득했으나, 공수는 '승상의 통행증이 없으면 그 누구도 절대로 지날 수 없으며 부인들이 인질이 되면 보내주겠다'라고 하면서 강경하게 나선다. 돈 관우가 덤벼들자 공수는 관내로 후퇴한 뒤 병사들을 이끌고 다시 나와 관우와 싸운다. 관우는 한 합에 공수의 목을 베어베리고 이를 본 병사들이 경악해서 도망치거나 벌벌 떨자 "공수가 무례하게 굴어서 죽인 것이니 너희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조승상께 소식이나 전해라."라고 안심시키며 다시 갈 길을 갔다.


2.2. 낙양[편집]


제2 관문 낙양관에 도달한 관우 일행은 해당 관문을 지키는 장수 한복과 조우하게 된다. 동령관의 소식을 전해들은 한복은 정면싸움에서 승산이 없으리라 여겨 부하 장수인 맹탄이 거짓 패배로 관우를 유인하고 자신이 활을 쏘아서 관우를 사살한다는 계략을 꾸민다. 하지만 관우의 적토마가 예상보다 빨랐기 때문에(...) 맹탄은 도망치다가 참살당하고, 한복은 관우의 팔에 화살을 맞추지만 입으로 화살을 물어 뽑아낸 관우는 부상입은 몸으로도 한복의 목을 베어버리고 그대로 낙양을 돌파한다.


2.3. 사수관[편집]


사수관을 담당하는 장수인 변희는 앞선 두 관문의 장수와 달리 관우 일행을 환대하고 인근의 사찰인 진국사로 모셔와 접대하려 하는 듯 했으나 사실 사찰엔 변희의 부하 200명이 매복해 있었고 관우가 방심한 틈을 타 기습하려 했었다. 하지만 진국사에 거주하던 보정이라는 승려는 관우의 동향인이었고 동향 사람의 위기를 보다 못한 보정은 몰래 신호를 줘서[8] 위험을 알렸고 이를 눈치챈 관우는 곧바로 변희와 매복한 부하를 모조리 참살한 뒤, 사수관을 떠난다.


2.4. 형양[편집]


형양관에 도착한 관우 일행은 사수관 때처럼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장수 왕식의 환대를 받는다. 왕식은 관우일행을 역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물론 성대한 잔치를 권하지만 사수관의 일 때문인지 관우가 이를 거절했으나 그래도 잔치 음식을 역관에 보내는 등, 아낌없는 호의를 보내는 듯 했지만.... 이것도 사실 왕식의 함정이었다. 왕식은 사실 한복의 사돈이었고, 사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역관 주변에 부하 1000명을 매복시킨 것은 물론 마른 장작을 쌓아놔 야밤에 불을 질러 그대로 태워죽일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왕식의 지시를 받고 역관에 함정을 준비하던 부하인 호반이 호기심에 관우의 모습을 엿보다가 좌씨전을 읽고 있는 관우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실로 천인이 여기 계셨구나!'라며 감탄하게 되고, 이에 '그쪽은 누구인데 이 야심한 밤에 사람을 엿보고 있었나?'라고 반응한 관우와 대면하게 된다. 그런데 관우는 우연히도 여정중에 호반의 아버지인 호화와 만나 그의 편지를 받았었고 이를 받게 된 호반은 하마터면 자기가 대인을 죽일 뻔했다고 한탄하며 왕식의 계획을 관우에게 털어놓고 만다. 관우는 곧바로 역관을 떠났고 이를 쫒아온 왕식을 단칼에 베어버린 뒤, 마지막 관문을 향해 나아간다.


2.5. 활주[편집]


쿨가이 관우 전설의 시작.

하북으로 가는 길의 마지막 관문인 활주 나루터에 도달한 관우 일행. 활주 태수 유연은 이전에 백마 전투에서 관우에게 은혜를 입은지라 앞의 장수들과는 달리 예우를 갖추고 관우를 순순히 보내주었다. 그러나 배를 내어달라는 관우의 부탁에는 그것만큼은 조조하후돈 때문에 내어주기 곤란하다고 부득이하게 거절하지만, 지금까지 거쳐온 관문의 장수들과 달리 최소한 길을 막지도 않고 공손하게 예의를 갖춘지라 별다른 불만 없이 그냥 지나간다.

그렇게 관우는 활주관의 나루터의 경비를 맡은 장수 진기에게 황허를 건널 배를 빌려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진기는 '나는 하후돈 장군의 명으로 이 곳을 지키니 절대로 지나갈 수 없다'며 엄포를 놓는다. 관우는 이에 여기까지 오면서 참살한 장수들을 언급하며 "지금껏 내 앞을 가로막은 장수들이 다 어떤 꼴이 났는지 너도 들었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날 막겠다는 거냐?"며 은연중에 경고를 하나, 진기는 그들을 잡졸들이라 폄하하며 자기를 그런 잡졸들과 비교하지 말라고 반박한다. 이에 관우가 "그럼 네놈이 안량이나 문추 정도라도 된다는 것이냐?"라면서 비꼬자[9] 진기는 흥분해서 달려들었고, 관우는 다른 장수에게 그랬듯이 진기를 쿨하게 베어죽이고 강을 건너려 한다.

그런데...


2.6. 여남으로[편집]


나루터에서 손건을 만나 유비의 소식을 전해듣게 되는데 사실 유비는 하북이 아니라 여남에 있었다. 여남은 허도 내부, 그것도 1관문인 동령관 근처의 지역이였다. 공수는 몰라도 나머지 관문의 장수들은 졸지에 억울하게 목이 달아난 꼴이 되버린 셈. 그야말로 오관육참은 완벽한 삽질이었다. 아이고...관우는 길을 도로 틀어 여남으로 진로를 바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후돈이 부하를 이끌고 쫓아와 관우를 공격한다. 아무리 보내줬다지만 주군의 장수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넘긴 것은 물론 자신의 부하 진기를 죽인 것에 극도로 분노한 하후돈은 관우와 생사결을 낼 기세로 싸운다. 중간에 조조가 두 번 사람을 보내서 관우를 그냥 통과시키라고 하지만 하후돈은 '승상께서 관우가 살인한 것을 몰라서 저러시는 것이다.'라며 계속 싸우려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료가 나타나 둘을 뜯어 말린다. 애초에 통행증을 줬으면 이 사달도 없었겠지만 조조가 통행증도 없이 서둘러 나선 관우가 여러 장수들을 참살한 것까지도 전해듣고 장료를 보낸 것이었다. 장료가 전한 조조의 명을 들은 하후돈은 애써 분을 삭히고 관우를 보내준다. 이때 장료가 조조진영에 다시금 합류하는 것을 은근히 권하나 관우는 그저 미소로 답하며 강 너머 하북으로 나아간다.

수일동안 행진하다가 곽상이라는 노인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는데 곽상의 아들은 도둑이었고, 관우의 적토마를 훔치려다가 들키고 곽상이 싹싹 빌어서 관우가 용서한다. 그런데 이렇게 용서받은 곽상의 아들은 개심하지 않고 다시 와우산의 산적들을 찾아가 부추긴다. 하지만 이렇게 출전한 배원소는 상대가 관우라는 것을 알자 오히려 항복해 버렸고, 관우는 다시 한 번 곽상의 아들을 용서한다. 이어 와우산의 다른 두목인 주창이 나타났고, 주창 역시 관우를 따르려 하지만 감부인은 '일전에 요화가 따르려 할 때는 거절했는데 지금 주창의 무리들은 왜 따르게 하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에 관우가 '형수께서 꺼리시니 안되겠다'고 답하자 주창은 홀몸으로라도 관우님을 따르겠다며 정성을 보여줘서 감부인의 허락을 받아내고, 배원소를 남겨서 남은 군사들을 통솔하게 한다.

여남가는 길에 있던 지역인 고성에서 일행은 동생 장비가 고성을 점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형 유비와 마찬가지로 생사를 알수없던 동생의 소식에 서둘러 만나러 갔으나 정작 장비는 관우가 오자마자 살기등등한 기세로 덤벼든다. 장비는 관우가 조조군을 이끌고 원소의 장수를 둘이나 베어넘겼다는 소식을 듣고 옛날의 맹세를 깨고 조조에 붙었다고 생각해 분노한 것이었다. 미쳐날뛰는 장비를 상대로 관우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쩔쩔매던 도중 미부인과 감부인, 그리고 손건이 장비를 만류하며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하지만 잔뜩 흥분해 있던 장비는 이를 믿지 않고 관우가 자신을 잡으러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우는 그렇다면 내가 군사를 대동해야 하지 않겠냐며 항변하지만, 하필이면 관우의 뒤에서 조조군이 몰려오고 있었다.

맨 앞에서 달려온 장수는 채양. 관우가 활주관에서 죽인 진기의 외삼촌이었는데 조조의 명으로 관우를 눈앞에서 보내주게 되어 울분이 쌓여가던 중 여남으로 유벽을 토벌하러 가다가 우연히 이곳에서 조우한 것이었다. 장비는 채양이 이끌고 온 군을 보면서 관우가 조조군을 이끌고 자신을 치러 왔다고 분개하며 이를 완강히 부정하는 관우에게 '그렇다면 내가 이 북을 3통[10] 치는 동안 저 장수의 목을 가져와 보라' 며 내기를 걸고 이에 관우는 1통의 북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채양의 목을 치는 것으로 화답한다.

그리고 포로로 잡은 부하 병사 한 명에게서 전후사연을 캐물은 장비는 그제서야 의심을 풀고 마침 미축, 미방 형제가 고성으로 찾아온다.

관우는 유비의 부인들과 일행을 장비와 함께 고성에 남겨두고 몇몇이서 여남에 가는데 유비는 여남에도 없었다. 여남의 병력이 시원치 않다고 생각해서 유비가 다시 하북으로 돌아간 것이다.

하여 관우는 주창을 와우산으로 보내서 배원소 및 휘하 병력들을 데려오게 하고 본인은 다시 손건과 함께 하북으로 간다.


2.7. 드디어 재회[편집]


관우와 손건은 하북 근처에 도착했지만 아무래도 원소가 안량, 문추의 일로 원한을 품을 것 같아서 관정이라는 노인의 집에 관우를 남겨두고 손건 혼자만 유비를 찾아간다. 유비는 손건의 제안에 따라 유표와 연합하겠다는 핑계로 떠나가고, 역시 하북에 있던 간옹은 유비를 감시하겠다며 원소한테 제안하여 따라간다. 유비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곽도가 간언했지만 원소는 듣지 않는다. 이렇게 유비와 재회한 관우는 관정의 차남인 관평을 양자로 들이고 와우산으로 출발한다.

와우산 근처로 도착한 일행은 어떤 장수가 배원소를 죽인 뒤 산채를 점거하였고, 그와 싸우던 주창 역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장수는 바로 유비를 찾아헤매던 조운이었고, 일행은 함께 고성으로 가 장비 일행과 합류한다.


3. 등장한 지역[편집]




4. 기타[편집]


안량, 문추와 더불어 이 때 관우에게 죽은 이들은 관우 사후 관우가 한을 못풀어 구천을 떠돌고 있을 때, 역시 이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던 보정의 입을 통해 "모든 세상사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이니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관 공께서는 목을 돌려달라고 하시나, 그렇다면 공이 죽인 안량문추, 그리고 오관의 여섯 장수는 대체 누구에게 목을 돌려달라 해야겠습니까?"라며 언급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정사를 다루는 삼국지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삼국전투기삼국지톡[11]이 대표적이다. 쿨가이 관우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의 오관참장 부분에서 나온 장면이다. 워낙 유명해서 삼국지톡에서 마지막에 이 장면을 통째로 오마쥬했다.

고전 RPG게임 천지를 먹다2에서 오관육참을 꽤나 충실하게 재현했다. 맹탄이 잘려서 오관오참이 되었지만.. 변희의 술자리 초대나 왕식의 뒷치기 시도, 호화와 호반, 보정 스님까지 등장한다. 이 맵은 나중에 최종보스전 스테이지로 재활용되어 다시 등장한다.

영화 삼국지 : 명장 관우가 이 에피소드를 메인 스토리 삼은 영화다.

엽기 삼국지에서는 여섯 쌍둥이로 나오는데 다섯 장수는 난전도중에 서로 찔려죽었고 생존자 진기는 관우한테 청룡언월도로 살해당한다(...).
[1] 다만 실제 낙양이나 형양은 관문이 아닌 도시였고, 활주는 나루터였다. 실제 관문이라고 할만한 요새는 동령관, 사수관 두 곳이다.[2] 당장 황하도 수차례 물길이 변했다.[3] 패릉은 장안 일대의 지역이다. 나관중이 관우의 출발 지점을 역사 고증에 맞춰 허창으로 수정하였지만 패릉이라는 지명은 미처 수정하지 못했고, 모종강본에서 이 패릉교라는 지명까지 고친 것. 하지만 관우의 행로까지는 결국 고치지 못했다.[4] 주인이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알리기 위해 걸어두는 패. 회피패(廻避牌)라고도 한다.[5] 즉 그동안 받았던 선물들과 관직을 다 고스란히 돌려주고 간다는 것.[6] 판본에 따라서는 그냥 비단옷이 아니라 전포.[7] 요화는 이후 한참 지나 유비가 익주를 공략하러 떠나기 직전에 형주로 들어오게 된다.[8] 승복을 재단하는 칼을 슬쩍 드러내면서 눈치를 줬다고 한다.[9] 요는 네가 원소의 이름난 맹장들만큼 강한 줄 아냐는 비웃음과 그 둘을 관우 본인이 썰어버린지 오래니 그래봤자 네 놈은 상대가 전혀 안 된다는 조롱을 동시에 담고 있다.[10] 과거 북치기의 횟수를 세는 단위로, 1통이 북치기 몇 번에 해당되는지는 사서마다 기록이 다르다. 보통은 330회에서 336회까지 근소한 차이를 보이지만 드물게는 36회라고 기록된 사서도 있다.[11] 해당 작품의 경우, 가장 가까운 직선 경로가 관도대전의 주전장이라 두 부인을 데리고 가기엔 위험할 뿐더러 조조군을 지나는 동안 조조의 변덕스러운 성격상 나를 다시 붙잡으려 들것이라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유로 이 우회로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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