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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Österreichischer Schilling (독일어)

파일:Oesterreichische_Nationalbank_Logo.svg.png

1. 개요
2. 역사
3. 지폐
3.1. 1950 ~ 54
3.2. 1956 ~ 65
3.3. 1966 ~ 70
3.4. 1982 ~ 85
3.5. 1984 ~ 97(최종)
4. 주화
5. 기타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오스트리아에서 사용했던 통화. 기호는 S 혹은 Ös. ISO 4217 코드는 ATS 이다. 보조단위로는 그로센 (Groschen)이 있었다. (100 그로센 = 1S.) 최종 인플레이션은 2%. 유로화와의 교환비는 13.7603실링/EUR이다.

2002년 1월 1일부터 모든 통용이 중지되었다. 다만 현찰로 가지고 있는 실링은 계속해서 유로화로 교환해 준다고 한다. 공식적인 실링의 교환 기간은 다른 유로 이전 화폐와 달리 기간의 정함이 없이 유로로 교환이 가능하다.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은행 본점으로 우편으로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은행 홈페이지에 있는 실링을 유로로 바꾸기 위한 신청서(Exchange Schilling - Euro)에는 오스트리아 은행 본점 주소가 명시되어 있다. 해당 신청서의 빈 란을 다 채우고 실링 현찰을 넣어 보내면 신청서에 쓰인 계좌번호로 유로가 들어온다.[1]일반 우편으로 보내면 지폐 기준으로 1000원을 안 넘는다.

그 이외에도 350유로(=50만원)의 가치를 가진 5,000실링의 경우는 도안도 도안이지만, 희소성이 매우 희귀함과 동시에 수집가들 중에 인기가 가장 많은 지폐라 이베이 등에선 평균 200~300만원대로 팔리고 있다. 극미품이라도 150~200만원대 수준.

다만 보품~미품 급이라면 울며 겨자먹기로 KEB하나은행 본지점에 가서 해당 통화를 비고시 추심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3주후에 현금 수령이나 해당 은행계좌를 제시하면 송금해줄것이다.


2. 역사[편집]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깨지고 난 후인 1924년 12월 20일 제정된 실링통화법안(Schillingrechnungsgesetz)에 의해 기존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네를 대체하는 통화로서 등장했다. 교환비는 10,000크로네 = 1실링. 하지만 1938년 안슐루스로 인해 2 라이히마르크 = 3 실링의 비율로 강제전환당하며 막을 내렸다.

2차 대던 이후 제국 마르크와의 교환비는 1:1로 해주되 150실링을 한도로 두었다. 이는 제국마르크의 괴멸적인 폭락으로 인해 통화 자체가 바닷물처럼 넘쳐나다보니 정부측에서 아예 계산을 포기하고 한 사람당 150실링씩 뿌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현실적일 정도다.

이후 1947년 11월에 다시 한 번 신 실링화 법안이 공표되고, 그동안 뿌려준 150실링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벌었나를 테스트하듯 150실링까지는 1/1로, 그 초과값은 1/3비율로 다시 신권으로 교환하며 통화를 재정비하였다. 이렇게 되자 1950년의 환율은 26실링/USD로 정립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브레튼우드 시스템을 포기하면서 흔들릴 조짐이 보이니 1976년 7월 오스트리아 실링은 도로 독일 마르크에 의지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화폐박물관 홈페이지


3. 지폐[편집]



3.1. 1950 ~ 54[편집]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11.jpg
S 10
호프부르크궁, 스페인 승마학교
벨베데레궁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12.jpg
S 20
요제프 하이든
아이젠슈타트 갈보리 언덕 교회, 케틀드럼 치는 천사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13.jpg
S 50
야코브 프란타우어
멜크 수도원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14.jpg
S 100
프란츠 그릴파르처
뒤른슈타인 성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15.jpg
S 500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
빈대학교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16.jpg
S 1,000
안톤 브루크너
성 플로리안수도원의 브루크너 오르간


3.2. 1956 ~ 65[편집]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21.jpg
S 20
칼 아우어 폰 벨스바흐
카라바겐 산, 마리아 라인 지방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22.jpg
S 50
리하르트 베트슈타인
마우테른도르프 성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23.jpg
S 100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쇤부른 궁전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24.jpg
S 500
조세프 레셀
시베타 호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25.jpg
S 1,000
빅토르 카플란
페르센부르크 성, 읍스 페르센부르크 댐
  • 당시 1,000실링은 처음에 얇은 테두리를 유지하여 150 * 75mm 크기로 발행되었으나, 통화가치[2]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다는 불만이 많자 4개월 만에 확대한 크기로(160 * 84mm)로 재발행하게 되었다.


3.3. 1966 ~ 70[편집]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31.jpg
S 20
칼 리터 폰 게가
젬머링 철도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32.jpg
S 50
페르디난트 라이문트
부르크극장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33.jpg
S 100
앙겔리카 카우프만
브레겐처발트의 주택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34.jpg
S 1,000
베르타 폰 주트너
레오폴트 스크론성, 호넨잘츠부르크 요새


3.4. 1982 ~ 85[편집]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44.jpg
S 500
오토 바그너
우체국 저축은행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45.jpg
S 1,000
에르빈 슈뢰딩거
대학교


3.5. 1984 ~ 97(최종)[편집]


()는 유로화 환산가격.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41.jpg
S 20
(€1.45)
모리츠 미카엘 다핑거
알베르티나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42.jpg
S 50
(€3.63)
지그문트 프로이트
조세피넘[3]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43.jpg
S 100
(€7.27)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국립과학대 아카데미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51.jpg
S 500
(€36.34)
로자 마이레더
마이레더 부부, 오스트리아 부인협회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52.jpg
S 1,000
(€72.67)
카를 란트슈타이너
현미경 관찰중인 란트슈타이너
파일:attachment/오스트리아 실링/schilling46.jpg
S 5,000
(€363.36)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국립 음악 극장


4. 주화[편집]


파일:Austria Coins.jpg

최종적으로 10, 50그로센과 1, 5, 10실링. 20, 50실링 주화가 있으나 그건 기념주화.

10그로센 - 국장
50그로센 - 실드
S 1 - 에델바이스
S 5 - 승마
S 10 - 국장

5. 기타[편집]


1997년 신권들 중 위의 500, 1000실링을 제외한 아래의 나머지 액면의 신권은 1998년 유로화 전환이 결정되며 계획이 크게 틀어지자 결국 미발행으로 종결되었다. 이후 중앙은행은 미발행 권종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진 않고 있으나 다행히도 가끔 화폐박람회 등에서 해당 시제품을 공개하면서 존재 자체를 없애진 않았다.#

아래는 예정되었던 도안.
  • 20실링 : 구스타프 클림트(앞), '베토벤 프리즈'의 일부분(뒤)
  • 50실링 : 이다 파이퍼[4](앞), 자이로스코프범선(뒤)
  • 100실링 : 프란츠 슈베르트(앞), 연주회, 피아노와 미완성 교향곡 자필 악보(뒤)
  • 5,000실링: 마리 에브너 에셴바흐[5](앞), 시골집과 유리병, 깃펜(뒤)


6. 둘러보기[편집]





[1] 외국인이 오스트리아 중앙은행으로 직접와서 신청해도 가능하다.[2] 당시 환율값으로 약 38.5 미국달러(USD), 이는 맥도날드 치즈버거를 약 200개 가까이 사먹을 수 있는 큰 돈이었다.[3] 의학교[4] 오스트리아의 여행가이자 전기 작가. 장수풍뎅이 중에 그녀의 이름을 딴 학명이 있다.[5] 체코 출신 오스트리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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