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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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주요 인물


1. 개요[편집]


존속 기간: 1804 ~ 1867

오스트리아 제국의 군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군을 계승한다. 대타협 이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특히 합동 육군과 황립 해군으로 이어진다.


2. 역사[편집]



2.1. 나폴레옹 전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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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군 원수 카를 루트비히 대공.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인 1804년, 합스부르크 제국은 위기에 놓여 있었다. 나폴레옹신성 로마 제국프랑스가 주도하는 체제로 개편하여 독일 전체를 손에 넣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 그는 친프랑스 영방국들에게 선제후 지위를 주는 등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이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2세합스부르크 가문으로써는 매우 큰 위기였다. 선거군주제인 신성 로마 제국의 특성 상 프랑스의 꼭두각시가 된 영방국들이 제국의회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 선출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했으므로, 그동안 공고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 지위가 매우 불투명해졌다. 이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직위가 창출하는 역사적, 외교적인 영향력과 우위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보헤미아 왕과 헝가리-크로아티아 왕, 오스트리아 대공 등 잡다한 작위의 소유자로 전락할 위험이 눈 앞에 다가왔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프란츠 2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소유한 영지들의 개인 동군연합인 합스부르크 제국을 개편하여 통합, 오스트리아 제국을 출범시켰다. 오스트리아 제국군, 일명 황립 및 왕립(k.k)[1] 군대도 공식적으로는 이 때 탄생했다. 오스트리아 제국이라는 정치적 실체가 형성되면서 합스부르크 제국이라는 동군연합의 군대들의 연합체인 황제군이 본격적으로 한 국가의 군대로 재편된 것이다.

제국군의 데뷔 무대는 창군 이듬해인 1805년의 오스트리아 전쟁이었다. 나폴레옹이 영국 침공을 준비하며 그랑다르메를 칼레 해협에 대기시키자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제국은 이를 기회 삼아 이탈리아 반도바이에른을 휩쓸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바로 반격을 개시, 울름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의 주력을 무너뜨린 뒤 수도 빈에 무혈입성하곤 잔여 부대들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날려버렸다. 이 굴욕적인 결과로 신성 로마 제국은 해체되었으며, 약화된 오스트리아 제국과 제국군은 후일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4년간 제국군은 영국의 후원과 카를 루트비히 대공의 주도 하에 군제를 개편했다. 1809년 시점에 약 40만의 대군으로 성장한 오스트리아 제국군은 4갈래로 나뉘어 프랑스 치하의 유럽 곳곳으로 쳐들어갔다. 당시의 오스트리아 제국군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군대였고, 훈련도 또한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군 상층부에는 구태의연한 귀족 장군들이 포진했던데다 기타 독일 국가들의 호응도 뜨뜻미지근했기에, 제국군은 다시 한 번 프랑스군으로부터 수도 을 방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갈고 닦은 군대와 카를 대공의 전술을 바탕으로, 제국군은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최초의 패배와 장 란 원수를 포함한 23,000명의 사상자를 안겨주는 데 성공했다. 이는 여타 유럽 국가들에게 프랑스를 패배시키는 게 가능한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이어진 바그람 전투에서 패배하여 결과적으로는 패전하게 되었다. 반신불수가 된 오스트리아군은 1813년까지 대프랑스 전선의 전면에 나설 수 없었으며, 오히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프로이센과 함께 반강제로 동원되어 끌려나가야 했다.[2]

그러던 1813년, 러시아 원정이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이 유럽에 날아들어 반프랑스 국가들이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군 또한 연합군의 일원으로써 카를 필리프 추 슈바르첸베르크 원수의 지휘 아래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곧 전 독일이 프랑스에 등을 돌리면서 전선이 라인 강으로 순식간에 축소되자 오스트리아군은 러시아 제국군, 프로이센군과 함께 프랑스군을 추격하며 본토 침공을 감행했고, 공방전 끝에 1814년 나폴레옹을 축출하면서 복수에 성공했다.

1815년 백일천하 때에는 재차 군대를 몰아 프랑스로 쳐들어갔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전하며 완전히 몰락한 후, 오스트리아 제국군은 제2차 파리 평화조약의 내용에 따라 연합군의 일원으로써 프랑스 동북부 요새지대를 점거하고 주둔했다. 주불 오스트리아군은 1818년 엑스 라 샤펠 회의에서 부르봉 왕조 프랑스의 국제적 지위가 복구되자 철수했다.


2.2. 빈 체제[편집]


전후 유럽에는 빈 회의를 거쳐 오스트리아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가 주창한 빈 체제가 들어섰다.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의 회귀를 목표로 했던 이 체제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프로이센이 주도했다. 프랑스에는 부르봉 왕조가 다시 들어섰고, 독일 지역에는 라인 동맹 대신 독일 연방이 세워졌다. 폴란드는 프-오-러 3국에 다시 분할되어 사라졌다.

구체제 그 자체나 다름없던 오스트리아는 이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위협적인 혁명은 가라앉았고, 나폴레옹도 사라졌으며, 프로이센조차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독일 연방의 맹주로써 과거 신성 로마 제국 시절의 위상을 어느 정도 복구했다. 외교적으로도 프로이센, 러시아, 영국과 신성 동맹과 4국 동맹을 맺고 있었으며 여기에 부르봉 왕조 프랑스와도 우호 관계였다. 당대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은 유럽 외교의 중심지였다. 비록 영토 측면에서 외지오스트리아(Vorderösterreich)로 불린 독일 내의 월경지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3]를 상실하긴 했으나 이는 옛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인 베네토를 병합하고 옛 밀라노 공국 영토와 통합하여 이탈리아 반도에 세운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군은 이러한 빈 체제를 유지하는 철권들 중 하나로 기능했다. 1820년 이탈리아 양시칠리아 왕국에서 반 오스트리아 반란이 일어나자, 오스트리아는 라이바흐 회의를 열어 국제 개입을 보장받고는 제국군을 나폴리에 파견하여 혁명정부를 진압했다.

1840년, 오스만 제국이집트에서 총독 메흐메드 알리가 오스만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자, 영국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열강들은 이를 막고자 했다. 오스만의 붕괴는 곧 러시아의 지중해 및 발칸반도 진출을 의미했기 때문. 오스트리아 또한 함대를 보내어 영국 해군과 함께 이스라엘과 이집트 해안 도시들에 포격을 퍼부었다. 고작 19세였던 프리드리히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이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원정함대는 영국 해군과 함께 이집트 나일 강 하구를 봉쇄한 것을 시작으로 레바논 베이루트와 현 이스라엘의 아크레 항구를 포격하여 쑥밭으로 만들었다. 특히 아크레 전투는 이집트군의 방향을 돌려버린 결정적인 전투였는데, 프리드리히 대공은 아예 직접 오스트리아 수병과 영국 해병대, 오스만 제국군 분견대를 지휘하며 상륙해 아크레 성내에 돌입하곤 성을 점령하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메흐메드 알리는 오스만의 종주권을 인정하되 자신의 태수직 세습만을 인정받는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했다.


3. 주요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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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08:06:18에 나무위키 오스트리아 제국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여기서 왕립은 헝가리 왕국이 아니라 보헤미아 왕국을 의미한다.[2] 물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제대로 교전하지 않았다.[3] 현재의 벨기에룩셈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