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의(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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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懿
오의

작위
고양향후(高陽鄕侯)→제양후(濟陽侯)
최종직위
거기장군(車騎將軍)겸 가절(假節), 독한중(督漢中), 옹주자사(雍州刺史)

(吳)

(懿)

자원(子遠)
생몰연도
?~237년
고향
연주(兗州) 진류군(陳留郡)

역임한 관직 [ 펼치기 · 접기 ]
유장→촉한
(유비

유선)
중랑장(中郞將)[1]→호군(護軍), 토역장군(討逆將軍)→관중도독(關中都督)→좌장군(左將軍)→거기장군(車騎將軍)겸 가절(假節), 독한중(督漢中), 옹주자사(雍州刺史)




1. 개요[편집]


후한유장 수하의 장수이자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로 목황후의 오빠, 오반의 족형이다.

정사에서는 이름을 오일(吳壹)로 표기했는데, 사마의의 이름을 피휘하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오의와 사마의의 이름이 의(懿)자로 같기 때문. 한편으로는 피휘가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사마의의 이름을 피휘해서 오일이라고 적은 것이라면, 예컨데 장소(張昭)나 동소(董昭), 학소(郝昭)의 이름은 왜 사마소(司馬昭)의 이름을 피휘해서 '소(昭)'자를 다른 글자로 적지 않았는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사 삼국지>를 비롯한 모든 사서에는 오일로 등장한다.[1] 일단 두 한자의 현대음은 성조만 다르고 상고음(上古音) 역시 아주 비슷하다고 한다.


2. 정사[편집]


어려서 고아가 되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유언과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가족 모두가 유언을 따라 익주(益州)에 들어갔다. 유언이 사망한 뒤, 그 아들 유장 때는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했는데 부현에서 유비와 맞섰으나 패하고 투항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호군(護軍), 토역장군(討逆將軍)을 거쳤으며 그의 누이 목황후(원래는 유언의 아들인 유모의 아내)가 유비와 결혼하면서 황제 유선의 의붓 외삼촌이 되었다. 221년, 관중도독(關中都督)에 임명되었다. 228년,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모든 사람들이 선봉에 설만한 장군으로 위연과 오의를 추천했지만, 제갈량은 마속을 선택했고 북벌은 대차게 망한다. 230년, 위연과 양계에서 함께 조위의 장수 곽회비요를 격파했다. 전공을 인정받아 좌장군(左將軍)으로 승진[2]했으며 고양향후(高陽鄕侯)에 봉해졌다. 제갈량 사후(234년)에는 독한중(督漢中),[3] 거기장군(車騎將軍), 가절로 한중 방어를 담당하고, 옹주자사(雍州刺史)를 겸임했으며, 추가로 제양후(濟陽侯)에 봉해졌다. 237년에 세상을 떠났다.

강인하면서도 자애로왔던 장군으로 눈부신 무용은 없지만 통솔력이 뛰어나 적은 군사로 많은 병력을 제압했고 좀처럼 위기에 빠지지 않았다. 또한 유언 시절부터 복무한 장수인지라 장수로서의 경험 역시 상당히 풍부했다. 오의는 익주 지역의 장수들 중에서 상당한 고참이었다. 독한중을 맡아 왕평 이전의 북벌의 책임자였고,(왕평은 당시 한중태수) 거기장군까지 겸임한 것으로 보아 장완과 함께 군부의 중심이었던 인물이며, 위연과 함께 전투의 선봉에 설만한 장수로 여겨질 만큼 능력자였으며, 유언, 유비와 연속해서 인척관계를 만들었을 정도로 인간관계도 잘 맺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기록이 소실되면서 따로 열전을 남기지 못했다. 그의 기록은 양희(楊戲)의 ≪계한보신찬(季漢輔臣贊)≫(241년)[4]과 <촉서>의 <선주전>, <후주전>, <왕평전> 등에 극히 적은 분량만 전해진다.


3. 연의[편집]


위연과 양계에서 함께 위장 곽회비요를 격파한 전공을 강유에게 빼앗기고 유비유장이 다스리는 촉을 공격할 당시 장임의 부장으로 나와서, 장임의 계략에 따라 유인된 장비를 장임과 같이 양쪽에서 협공해 장비를 위기에 빠뜨렸지만, 때마침 구하려고 달려온 조운에 의해 사로 잡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비록 장임과 같이 둘이서 달려든 것이지만 혼자서 만 명을 이긴다는 천하의 맹장 장비를 그 두 명만이서 수세로 몰아넣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무예실력이 있는 편으로 인정되는 점이 위안이랄까...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사후 조운, 위연과 견줄만한 무장에 황실 외척이었으나 연의에 묘사되지 않는다.

헌데 김홍신 평역판 삼국지에서는 유장의 명을 받고 구원군으로서 장임 일행을 도우러 갔을 때 "이제까지 뭐 하느라 적도 사로잡지 못하고 있냐?"라는 식으로 빈정거리더니,[5] 막상 조운에게 사로잡혀 유비 앞에 서자 "이왕 잡히게 됐으니 항복할 수 밖에 없잖습니까!"라면서 뭔가 소인배 이미지가 씌워졌다.


4. 미디어 믹스[편집]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편집]


오의(삼국지 시리즈) 문서 참조.


4.2. 영걸전 시리즈[편집]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레벨 37 발석차로 등장한다. 이엄보다 1레벨 높지만, 유비로 설득하면 그 전투에서 못 써먹고 퇴각하고, 이엄은 설득 후 바로 그 전투에서 책략노가다로 레벨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의가 이엄보다 레벨이 낮아진다. 간옹, 관순 등 초기에 쓸 수 있는 궁병대가 못 미덥고, 궁병대로 따로 클래스 변경을 하지 않는다면 능력치는 좋은 편이기 때문에 이엄과 더불어 고려해 볼 만한 장수다. 특이하게도 다른 투항 장수들과는 달리 전투를 시작할 때 전의를 잃은 듯한 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연의를 읽지 않았다면 오의를 그냥 지나치고 격퇴시킬 수도 있다.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익주를 손에 넣고부터 아군 유일한 포차대로 등장한다. 소포차일 때는 단일 타격이라 레벨 15까지가 매우 험난하고 공격력은 허접하고 이동력이 2밖에 안되나,[6] 남만정벌 즈음부터 살 수 있는 경차를 오의에게 장비시켜 줄 경우 이동력이 2가 올라 4가 된다. 파서 전투에서 얻는 보물 질풍마차를 채워주면 5까지 나온다. 클래스 업하고 범위타격이 되고부터는 레벨 업 자체는 수월해진다.

레벨 30 때 벽력차로 클래스 업하면 무려 최대 9명까지 타격이 가능해지는 살육병기가 될 수도 있으나, 그 과정 자체가 매우 귀찮고 성에서는 이동력보조를 달아줘도 최고 2칸밖에 못 움직이는지라 마지막 전투에서 써먹기가 힘들다는 게 오의가 버려지는 요인이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촉의 무도가로 등장한다. 민첩이 90으로 상당히 좋은데, 능력치가 뇌동과 거의 비슷하고 전작의 에이스였던 장억보다 더 좋은 수준의 무장이다. 어느 정도냐면 정봉보다 능력치가 좋다. 포차로 나오지 않은 것은 유엽, 신평을 제외하고는 포차 장수가 없는 게임 특성에 따른 것으로 추정 되는데, 촉에 무도가와 기병대만 넘쳐난다는 점에서는 좀 아쉬운 측면이 있다.


4.3.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편집]


파일:전략오의.png

콧수염 난 중년으로 등장했다.


4.4. 삼국전투기[편집]


베르세르크페무토(그리피스)로 패러디 되었다.[7] 그 영향인지 부장인 오란뇌동도 신생 매의 단의 멤버들인 그룬벨드로크스로 나온다. 그리피스가 일식 때 매의 단을 바치는 장면이 유비에게 투항하는 컷에 패러디 되기도 했다. 그 밖에는 강주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낙성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유장이 유비군을 막기 위해 소집한 익주 5명장 중 하나로 등장하지만, 낙성에 투입된 나머지와는 달리 오의는 성도에 남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토록 하였기 때문에 낙성 전투 편에서는 별 활약이 없었다.

기 전투 편에서는 밑에서 제갈양이 치고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가 다시 낙성 공략에 나서자, 유순과 함께 낙성으로 지원을 간 것으로 묘사된다. 유괴와 더불어 총지휘자인 방통을 잃은 유비군을 영격하자고 주장했고 유순의 허락도 받았지만 유괴, 오란, 뇌동이 전부 얻어터지며 패배하게 된다. 이에 본인이 직접 나섰지만 위연에게 제압당하고 생포된 뒤 그대로 유비에게 투항한 것으로 묘사된다.

유비에게 투항한 뒤부터는 별로 활약이 없다. 조운이 앞에 서서 자기 얼굴을 가린다고 불평하는게 전부.

가정 전투 편에서 오랫만에 재등장. 제갈양의 북벌에 참여했으며, 가정에서 위군과 일전을 치를 것이라는 제갈양의 말을 듣고 왜 가정인지 의문을 표하고 제갈양의 설명을 듣기도 했다. 마속 등이 가정으로 향한 뒤에는 제갈양과 함께 만일을 대비해 기산에 남아서 전장 전체를 관장하기로 했다.

한편 오의는 열류성에 배치된 고상을 보고 처음 보는데 누구냐고 의문을 표했고 비의에게서 일단은 대단한 검사라는 대답을 들었는데, 막상 고상이 곽회에게 허무하게 잡히자 대단한 검사가 뭐 이렇게 홀라당 잡히냐고 어이없어하기도 했다.

전투외편 2편에서는 오일에 대한 내용이 잠깐 나오는데, 최훈 작가가 '오의'와 '오일'이 동일인물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였는지 '오일'과 '오의'를 다른 인물로 설정하고선, '오일'이 별다른 기록 없이 거기장군까지 역임했다가 사망한 인물이라고 소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일단 239년 당시에는 사망한게 맞긴 하지만... 그러고선 열전에 별로 적힌 내용이 없다고 진도와 함께 사이버 장수 취급해버리기까지 했다.

유비 사후에는 그나마 제갈량의 북벌에 참전하면서 얼굴을 좀 비추기는 하는데 여기서도 큰 역할은 없고 비의와 함께 고상의 허접함을 까는 만담만 한다. 이후에는 아예 등장 자체가 없어서 공기. 양계전투에서도 위연 혼자 곽회비요를 이겼다고 나오는 등 오의의 활약상이 대부분 삭제된 채로 나왔다. 패러디 캐릭터의 존재감에 비해 취급은 영 좋지 않아 캐릭터가 아까울 지경이다.

[1]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지 상식 백가지>, 서전무, 정원기역, 현암사. 이 책에서는 나관중이 피휘설을 활용하여 촉한정통의 입장에서 억지로 개명을 했다고 본다.[2] 좌장군은 그 옛날 유비가 역임한 관직인 만큼 객장군벌 마초나 외척인 오의를 존중하는 뜻에서 제수했다는 의견이 있다.[3] 한중 주둔 중군(中軍) 지휘관이다.[4] <촉서> 권 15ㆍ<양희전>, 즉 <등장종양전(鄧張宗楊傳)>에 전문이 수록되어 내용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5] 유장의 처남이라 장임을 비롯한 장수들이 쉽사리 대꾸를 못했다는 설명도 들어 있다.[6] 참고로 주인공인 제갈량, 보병계, 궁병계, 맹수계, 산적계가 이동력이 4다.[7] 애초에 익주의 5명장이 전부 베르세르크의 고드 핸드로 패러디 되었다. 5명장 중에서도 금방 퇴장해버리는 유괴, 장임, 냉포, 등현과는 달리 그나마 살아남아 비중을 어느정도 가져가기 때문에 중요인물인 페무토 역을 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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