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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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신 타이거스 우승 엠블럼 V2.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23

파일:Hanshin62Ueda.jpg
한신 타이거스 No.62
우에다 카이
(植田 海 / Kai Ueda)

생년월일
1996년 4월 19일 (28세)
출신지
시가현 코카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학력
오미 고등학교
신체
175 cm / 71 kg
포지션
내야수, 대주자
투타
우투양타
입단
2014 드래프트 5위 한신
소속팀
한신 타이거스 (2015~)
등장곡
아라시 "HAPPINESS"


1. 개요
2. 한신 입단 전
3. 한신 입단 후
4. 기타사항



1. 개요[편집]


한신 타이거스 소속 내야수 및 주전 대주자, 유틸리티 플레이어. 주로 경기 후반에 대주자 또는 대수비 위주로 나오고 있다.


2. 한신 입단 전[편집]


시가현 코카시[1] 출신으로 초2 때 지역 유소년 팀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처음엔 유격수 및 투수를 겸업했다가 나이가 들면서 유격수로 고정됐다. 고등학교는 야마나시현 소재 일본 항공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1학년 종료 후 집 근처 오미 고교로 전학갔고, 이로 인해 고2 시즌에는 1년간 공식전 출전을 할 수 없었다. 고3 때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팀은 3라운드까지 진출했고 본인은 대회 통산 .571의 타율에 도루 3개를 기록했다. 2014년 드래프트에서 한신 타이거스의 선택을 받았다. 등번호는 62번으로 과거 시오타니 가즈히코가 달던 번호였다.


3. 한신 입단 후[편집]


입단 첫 시즌이던 2015년엔 주로 2군에만 있었으나 그래도 나름 가능성을 보여줬다. 2016년부터 2군 감독을 맡은 카케후 마사유키의 제안에 따라 스위치 히터로 전환했고 2016년 9월 30일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어 후지카와 슌스케의 대주자로 1군 데뷔를 했다. 2016년 시즌 후 WBSC U-23 대회에 일본 대표로 나가 최다 도루상을 획득했다.

2017년에도 2군에 오래 있다가 8월 30일 처음으로 1군 등록된 이후 9월 2일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선 2번 타자 유격수로 프로 첫 선발 출전을 하게 되었고 그 날 프로 첫 안타를 기록했다. 최종 13경기에 출전해 .278, 1도루를 기록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3차전에선 5회말 대타로 기용되어 조 윌랜드 상대로 2루타를 뽑기도 했으나, 그 경기는 한신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끝나고 말았다.

2018년엔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개막 엔트리에 들었고, 주전 2루수던 우에모토 히로키의 부상 이탈으로 출전 기회가 늘었다.[2] 5월 30일엔 1993년 신조 츠요시 이래 1군 공식전에서 시즌 10도루 이상을 기록한 한신 고졸 4년차 이내 선수가 되었다. 다만 문제는 갑갑한 타격이었다. 2017년 중간부터 유격수를 지키던 호죠 후미야가 다시 대두하면서 주전 자리를 가져가 버렸고[3], 급기야 8월 말에는 외야수비를 본 적도 있었다. 9월 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1군 215타석 만에 통산 첫 타점을 1루 땅볼로 기록했고, 이는 통산 1호 타점 기록까지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타석 기록이 되었다. 최종 104경기 출전, 19도루(팀내 2위)를 기록하였으나, 타율 .192에서 볼 수 있듯이 고구마 수준의 타격을 보여줬다.

결국 2019년부터 출전 기회가 줄기 시작했다. 심지어 교류전 치바 롯데 마린즈 전에서는 1점 뒤지는 상태에서의 9회초 1사 3루에 3루에서 좌측 라이너성 타구를 보기만 하고 홈 쇄도를 하다가 좌익수에게 공이 잡혀 귀루하지 못하고 병살을 당해 이닝과 경기가 종료되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도요타 프리우스가 급발진 사고를 쳐서 프리우스 우에다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이 붙었다. 같은 해 소프트뱅크와의 교류전에서 드디어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최종 1군 공식전 81경기 출전, 12도루(팀내 3위), 도루성공률 86%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74경기 59타수까지 출전이 줄었으나, 8월 6일 전통의 일전에선 프로 처음으로 적시타를 쳤다. 타격은 여전히 59타수 9안타로 .183으로 갑갑했고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많이 나섰다. 2021년에는 아예 전문 대주자[4]가 되었다. 64경기 6타수 2안타를 기록하였으나 10도루 1도실로 .909의 도루성공률로 승부처에 대주자로서 나름의 족적을 남겼다.


4. 기타사항[편집]


별명으로는 해속급행(海速急行)이 있다. 원래 한신 본선난바선에 다니는 쾌속급행(快速急行)에서 제일 앞 글자만 이름자인 해(海)로 바꾼 것. 쾌와 해 모두 음독으로는 카이(かい)로 읽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타격에선 나름 번트에 소질은 있으나 컨택과 파워 모두 별로라서 2021 시즌 종료 시 통산 타율이 2할에 못 미친다(...). 장타율은 .217으로 차라리 장타율이 타율이라 해도 말 나올 수준이다. 그래도 자신과 비슷한 대주자나 대수비 자원인 쿠마가이 타카히로시마다 카이리는 다르게 우에다는 통산 1홈런 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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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R 서일본 쿠사츠선, 오미 철도 본선 연선에 있다.[2] 당시 주전 유격수이던 이토하라 켄토가 2루수로 가고 우에다는 빈 유격수 자리에 들어가는 식이었다.[3] 막상 그 호죠도 유격수 주전을 오래 가져가진 못했다. 이토하라 켄토키나미 세이야까지는 그런대로 주전 유격수 자리에서 경쟁이 되었으나, 나카노 타쿠무의 등장 이후로는 사실상 나카노 주전으로 고정되면서 호죠 역시 백업 및 2군 멤버로 밀렸다.[4]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 시즌에 나카노 타쿠무가 데뷔 후 그대로 유격수 주전이 됐다. 덕분에 대수비 자리도 앞의 키나미나 이토하라 호죠가 다 가져갔고 결국 남는 자리는 대주자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