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아푸흐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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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코프 군민정청 민정부장관
유리 미하일로비치 아푸흐틴
Юрий Михайлович Апухтин
Юрiй Михайлович Апухтін[우]


출생
1948년 (75세~76세)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쿠르스크주 오비야니
(現 러시아 쿠르스크주 오비야니)
경력
하르키우주 주의원
1995년 ~ 불명
하리코프 인민공화국 인민의 주지사
2014년 4월 7일 ~ 2014년 4월 8일
하리코프 군민정청 민정부장관
2022년 12월 26일 이전 ~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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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
부모
아버지 미하일 아푸흐틴
학력
하리코프 공과대학교
하리코프 무선 전자 대학교
모스크바 전자 기술 대학교
소속 정당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유리 아푸흐틴소련,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탱크 기술자, 정치인이다. 하리코프 모로조프 설계국 수석 엔지니어, 하르키우주 주의원, 하리코프 인민공화국 인민의 주지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하리코프 군민정청에서 인도주의 업무를 담당하는 산업, 통상 담당 민정부장관을 역임하고 있다.


2. 생애[편집]


1948년 소련 러시아 SFSR 쿠르스크주 오비야니에서 태어났다. 이후 교육을 위해 우크라이나 SSR 하리코프주 하리코프로 이주했고, 1972년 하리코프 공과대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하리코프 무선 전자 대학교에서, 1986년 모스크바 전자 기술 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1972년부터 1995년까지 하리코프 모로조프 설계국에서 근무했으며 슈토라-1 등 다양한 탱크 관련 군수 물품을 개발했다. 이후 수석 엔지니어에까지 올랐고 1995년부터 하르키우주 주의원 직을 역임했다. 당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통합을 지지했다고 한다. #

2013년 유로마이단 혁명 시위대에 대응해 하리코프를 중심으로 안티마이단 시위대를 조직했다. 2014년 시위가 격해지자 시위대 통합을 주도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 시위 당시 하리코프 인민공화국 건국을 주도했고, 4월 7일부터 4월 8일까지 하리코프 인민공화국 인민의 주지사 직을 역임했다.

2014년 초부터 하리코프 시민 포럼을 개최했고, 그 결과 4월 21일 사회 운동 "남동부"가 탄생해 시위를 주도했다. 또 반정부 단체인 친러시아 공공 협회 "위대한 루스"의 지도자 직을 맡았다. #

2014년 4월 30일에서 5월 1일 사이에 승리의 날 폭동을 조직하고 헌법을 위반한 혐의로 우크라이나 보안국에 체포되었으나 #, 5월 7일 올레크 차료프의 보석금 납부로 풀려났다. #

2014년 5월 경, 민병대 등 폭력적인 집단이 대부분 돈바스로 이탈하면서 아푸흐틴과 하리코프 인민공화국은 투쟁 노선을 하리코프 지위에 관한 국민투표 개최와 노보로시야 가입 및 우크라이나의 연방화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점차적으로 폭력 시위가 잦아들고 대신 대중적 민족 해방 운동으로의 변모를 위한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1] 또한 외국으로 호소한다거나 우크라이나군의 보급을 막고 항의 차원에서 공공 시설 낙서 등을 촉구하는 등의 활동을 주도했다. #

이 덕분인지 하리코프 인민공화국의 지도자인 유리 아푸흐틴은 5월 17일 하리코프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2]에도 초청되었다. 그러나 본인이 참석을 거절했음을 밝혔으며 201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불참과 국민투표 강행 의지를 내비쳤다.[3]

2014년 12월, 아푸흐틴은 다시 체포되었고 2017년 5월,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 2017년 12월 27일 죄수 교환으로 석방되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지지했고, 군민정청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

적어도 2022년 12월 26일부터 하리코프 군민정청 산업 및 통상 담당 민정부장관 직을 역임했다. #

2023년 3월 5일, 소련, 우크라이나 정상급의 탱크 전문가이자 하리코프 군민정청 민정부장관으로서 레오파르트 2의 운송과 예측되는 영향, 하리코프 군민정청의 역할과 인도주의 업무에 관해 인터뷰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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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크라이나어 유리 미하일로비치 아푸흐틴[1] 예를 들어 세금을 하르키우주에만 납부한다거나 중서부 제품 불매운동 및 친정부 인사 기업 파업을 진행하는 한편 하리코프 인민공화국 국기, 성 게오르기우스 리본, 러시아 국기, 노보로시야 국기 등 친러시아 상징물을 게양하거나 제2차 세계대전 관련 기념일에 집회를 여는 것을 계획한 사례가 있다. 그밖에도 투쟁의 의미로 우크라이나어를 반대하지 않더라도 러시아어를 사용하거나 동남부 분리주의자가 아닌 노보로시야 연방주의자임을 어필하고 내분을 자제하는 등 나름 체계적인 계획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2] 분리주의 세력 지도자들을 배제한 채 개최되었다.[3] 이러한 움직임으로 분리독립을 선언한 바 있는 하르키우주 및 오데사주의 투표율은 50%를 밑돌았고 쿠퍈스크 일대에서는 전직 하르키우 주지사를 역임한 지역당의 미하일로 돕킨 후보가 깜짝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