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튀르키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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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2.2. 중세
2.3. 근세
2.4. 19세기
2.5. 20세기
2.6. 21세기
3. 문화 교류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이탈리아튀르키예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이탈리아튀르키예는 역사적으로 많은 충돌과 관계가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고대[편집]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은 언어적으로는 튀르크어족에 해당하는 튀르키예어를 사용하나, 하플로그룹 조사 결과 여타 지중해 동부 주민들과 많은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은 아나톨리아 원주민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튀르크인들에게 언어적으로 동화되면서 형성된 민족으로, 고대 아나톨리아 지역과 이탈리아 지역 사이의 관계 역시 이탈리아-튀르키예 관계의 기원으로 볼 여지가 있다.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은 아나톨리아 일대에서 기근을 피해 이탈리아 반도로 이주한 주민이다. 한편, 오늘날 이탈리아 남부와 시케리아(시칠리아)에서 아나톨리아 동부 해안 지대에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일부로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폴리스들이 여럿 들어서서 서로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폴리스들은 알렉산드로스 3세페르시아 정복과 뒤이은 로마 공화국이탈리아 반도 통일 과정에서 영토 국가들에게 흡수되었다.

로마 공화국이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지중해 동부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아나톨리아 반도의 여러 헬레니즘 제국들이 로마 제국에 차례로 합병되었고, 아나톨리아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2. 중세[편집]


서로마 제국게르만족 출신 용병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자, 지금의 튀르키예 일대를 지배하던 동로마 제국황제 제노는 또다른 게르만족의 분파인 동고트족의 지도자 테오도리크에게 사주하여 오도아케르를 제거하도록 했다.

테오도리크가 세운 동고트 왕국은 초기에는 동로마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이탈리아 반도를 지배했으나, 테오도리크 사후에 즉위한 친로마 성향의 동고트 여왕 아말라순타가 궁정 쿠데타로 인해 폐위된 후 살해당하자,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벨리사리우스나르세스를 앞세워 이탈리아 수복 전쟁에 나섰다.

동로마군범유행전염병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동고트 왕국을 멸하고 이탈리아 반도를 수복하는데 성공했으나, 랑고바르드족의 침공을 받아 이탈리아 북부 영토 상당수를 상실하였고, 통치 거점인 라벤나 총독부를 비롯한 이탈리아 중북부 일부와 이탈리아 남부 해안 지대만을 영토로 유지하게 되었다.

8세기에 동로마 황제 레온 3세성상 파괴령을 공표하면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방 교회의 수장인 로마 교황은 갈등을 빚었는데, 751년랑고바르드 왕국이 라벤나 총독부를 함락시키면서 동로마의 이탈리아 영토가 남부로 축소되자, 더이상 동로마에게 정치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의지할 필요가 적어진 교황은 프랑크 왕국을 새로운 보호자로 선택했고, 이는 800년에 교황이 프랑크인 카롤루스새로운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동로마와 교황의 갈등은 동로마와 프랑크 왕국이 타협하고[1], 동로마의 성상 파괴가 종식되면서 일단락되긴 했으나 10세기포티오스 분열이라는 갈등을 또다시 겪었고, 1054년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한 교황청 특사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서로를 파문하면서, 칼케돈파 교회아나톨리아 등 동지중해 일대를 관할하는 정교회와 이탈리아 등 서지중해 일대를 관할하는 가톨릭 교회분열되었다.

동서 대분열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은 1071년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족이 동로마의 마지막 이탈리아 영토인 바리를 함락시키면서, 동로마는 이탈리아를 영구히 상실하게 되었는데, 같은 해에 아나톨리아 내륙에서 일어난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동로마군이 셀주크 제국에 패배하여 아나톨리아까지 상실했다.

이후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지대는 동로마군이 금방 수복했으나, 아나톨리아 내륙은 수복에 일패하여 튀르크인들이 대거 정착하게 되는데, 이들이 셀주크 제국에 독립하여 세운 나라를 룸 술탄국(로마 영토에 세워진 술탄국)이라 부르게 되었다.

교황은 튀르크인들의 침공에 맞서 지원을 요청한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에게 호응하여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지만 십자군은 아나톨리아보다는 성지 예루살렘이 위치한 레반트 지방을 우선시했기에 아나톨리아 내륙 수복은 끝내 실패했고, 급기야 1204년에는 십자군하라는 성전은 안 하고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고 약탈하기까지 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은 4차 십자군 이전의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골골거리다가, 룸 술탄국에서 갈라져 나온 오스만 술탄국에게 아나톨리아 영토를 모두 빼앗겼고, 1453년에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군에게 함락당하며 멸망하여 지금의 튀르키예 영토 전체가 튀르크인의 땅이 되었다.

2.3. 근세[편집]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지중해 동부의 패권을 두고 베네치아 공화국1396년부터 1718년까지 수백여 년간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베네치아의 식민지였던 키프로스크레타 섬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1481년 오스만 제국 해군이 나폴리 왕국 영토인 이탈리아 남부의 해안도시 오트란토를 침공하여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고 주민 전부를 노예로 잡아가면서, 이탈리아 반도 각지에서 오스만 제국에 대한 공포감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전쟁과는 별개로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과의 경제 교류는 무척 활발한 편이었는데, 오스만 제국의 지중해 주요 무역 파트너 중 하나가 바로 베네치아 공화국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탈리아 북부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이 흑해에서 수출하는 노예들의 주 수입처이기도 했다. 대항해시대 당시 포르투갈에서 흑인 노예를 이탈리아 반도로 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오스만 제국에서 이탈리아로 수출하는 노예의 규모는 감소하게 되었다.

2.4. 19세기[편집]


오스만 제국은 19세기 중반 아직 이탈리아가 통일되기 이전 밀라노로마, 나폴리에 대사를 파견하여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1861년 수립된 통일 이탈리아 왕국은 오스만 제국과 수교 관계를 이어갔다.

2.5. 20세기[편집]


1912년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의 결과 이탈리아 측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리비아 그리고 로도스 섬을 포함한 도데카니사 제도를 점령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터키 독립전쟁,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을 거치며 도데카니사 제도는 다시 그리스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2.6. 21세기[편집]


2016년 8월, 이탈리아 검찰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아들 빌랄을 돈세탁 혐의로 수사했다. #

2021년 4월, 이탈리아 총리인 마리오 드라기터키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


3. 문화 교류[편집]



  • UEFA 유로 2032의 개최국이 이탈리아와 튀르키예의 공동 개최로 결정이 되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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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로마가 카롤루스의 황제 즉위 자체는 인정하는 대신, 진정한 로마 황제는 동로마 황제 뿐이고 아닌 카롤루스는 로마 황제가 아닌 그냥 황제라는 식으로 타협했다.